[렘 7장] 예레미야를 읽다가 보면, 수십년 간의 결혼 생활 속에서 참고 살았던 남편이 아내와의 별거를 통보하기 전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그간의 사정에 대해서 토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듣고 있노라면, 정말 오래 참고 인내했구나, 할만큼 하셨구나... 하는 생각과 그 아내 해도 너무하네.. 하는 생각을 반복하게 됩니다.(내용이 기니 읽으시려면 <묵상과 적용>부분만 읽으세요.) 



[정리1. 내용의 일목요연한 정리]


1.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에서 예배하러 오는 유다 사람들에게 선포함

  1)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3절)

  2)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말라.

  3) 지금 하고 있는 죄악에서 돌이키면 너희는 이곳에 살게 되리라.

  4) 너희들은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면서도 이 집에 들어와서는 <구원을 얻었나이다>하면서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다.(10절)

  5) 너희는 이 집이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 계셨던 실로에 가서 이스라엘의 형편을 보라. 그들이 불러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실로에서 행한대로 이곳에서도 그와 같이 행하리라.


2. 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지 마라.(16절)

  1)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 위하여 구하지 말라. 듣지 않으리라. 

  2) 이들의 하는 행위를 보라.

   (1)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는 불을 피우고,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해 하늘의 여왕을 위해서 과자를 만들며,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하나님의 노를 일으킨다. 

 3) 하나님은 사실 애굽에 나올 때 번제와 희생제물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했는데,  그런데 너희들은 순종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완악하게 하여 등을 돌렸다. 

   (1) 너희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이 없이 보냈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목이 곧아 너희 조상보다 더 악을 행했다. 

   (2) 예레미야 네가 이 백성에게 이 말을 할지라도 그들은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27절)


3. 유다가 도벳 산당을 지은 것에 대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

  1) 유다가 여호와의 눈 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이 가증한 것을 두었다. 

  2)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여 그곳에서 자녀들을 불살랐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명령한 것도 아니고, 마음에 생각하신 것도 아니다. 

  3) 이곳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 하지 않고, 죽음의 골짜기라고 할 만큼 이곳을 죽음의 시체로 가득 채우겠다. 

  4)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라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정리2. 내용의 재구성, 서술적으로 표현하기]


유다의 죄악에 대한 메시지를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성전 문 앞에서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내용은 너희들이 지금의 죄악에서 돌아오면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인데, 지금 이곳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살고 있고 향락가도 아니고 성전에서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메시지가 전혀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예측된다. 역시 이들은 예레미야의 이 메시지를 미친 사람의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여호와의 성전이 여기에 있고, 나는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하는 신앙적 안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헛된 생각이다. 이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실로에서도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간구에도 응답하지 않으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들의 죄가 가증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중보와 간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들은 조상들의 악함보다 더 완악하기 때문이다. 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그들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예레미야가 그것을 지적한다고 한들, 이들은 이것조차도 듣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세운 도벳 사당은 하나님 앞에서 대놓고 악을 행한 것인데, 하나님께 이곳을 도벳이라 혹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고 하지 않고, 죽음의 골짜기라고 말하도록 그곳에 시체를 쌓을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참된 메시지는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들려지곤 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보냈고,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예레미야의 지적은 그들의 죄에 대한 것이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이 곳에서 평안이 살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의 죄와 유다의 죄악을 객관적으로 봐서 이 장면이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당시 유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이상한 장면처럼 보일 것이다. 

 

  1) 죄를 지적하려면 성전이 아니라, 향락가를 찾아 가는 것이 적절할텐데... 적어도 이들은 예배드리러 오는 정도의 신앙은 되는 사람들인데... 왜 이들을 향해서 죄를 회개하라고 하는 것인가? 

  2) 이들은 문제없이 유다 땅에서 잘 살고 있고,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사람들인데, 예레미야의 요청은 너희가 회개하면 여전히 이곳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별 효력이 없는 것 같다. 


예배를 드리러 오는 유대인들.. 이들은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유다 백성들 중에서는 좀 나은 사람들일텐데 이들의 입장에서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자기 자신보다는 저 도심에 있는 죄인들에게나 적용된다고 생각하면서 예레미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예레미야를 통해서 회개의 말씀을 전할 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자기는 아닐 것이라고,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유일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들마저도 이 메시지를 무시한다면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전혀 없게 되는 것이다. 


전혀 나와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음성을 자신을 향한 음성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겸손과 자기 성찰이 있다면 우리는 멸망의 위험 속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예레미야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결혼해서 살면서 맺힌 억울함을 쏟아내는 책이다. 


예레미야를 읽다가 보니 마치 결혼하고 참고만 살았던, 남편이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와서는 아내와 별거를 선언하기 전에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그간의 억울함과 황당함을 사람들에게 털어 놓고 있는 모습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사람들마다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며 아내의 잘못을 또한 남편이 정말 힘에 넘치도록 인내하며 사랑하며 견디어 왔구나 하는 것을 공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억울함을 들는 마음으로 예레미야를 읽으시면 더욱 공감가시리라 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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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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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6장] 병을 가벼이 여기어 더 큰 병을 초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를 가벼이 여기면 큰 재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할 기본적인 도리는 하지 않은 채, 돈으로 떼우려고만 한다면 이것만큼 분노하게 할만한 죄도 없겠지요. 유다의 죄가 그러하듯이 우리도 다르지 않을테니 늘 경계해야 합니다.

 

 

[정리1. 내용을 이해하기 좋게 정리하기]

 

1.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함
  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온다.
  2) 침략자들이 정오에 올라오려고 하다가 날이 기울어 밤에 올라가려고 대기하고 있다.
  3) 벌 받을 성을 향해 목책을 만들어 요새를 헐 준비를 하는 침략자들
   (1) 그 성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라.
   (2) 그 악이 솟구쳐 오른다.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계속해서 들린다.
   (3) 여호와께서 훈계를 들으라고 권면하지만, 이들이 듣기를 거절함으로 심판이 가깝다.

 

2. 자신의 상처를 가벼이 여기고, 평강하다고 안심했던 자들의 멸망.
  1) 하나님께서 포도를 따듯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으리라.
  2)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까 하는데, 이들은 귀가 할례받지 못해 듣지 못함.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하는 욕으로 듣고 듣기를 거부함)
  3) 그래서 여호와의 분노가 가득하여 참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남녀노소 모두 잡혀가게 될 것이고, 땅과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이 소유가 될 것이라.
  4) 왜냐하면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거짓을 행한다.
  5) 자신들의 상처를 가벼이 여기고, 평강하다 평강하다 말한다. 
  6) 이들은 가증한 일을 행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벌하고 엎드러지게 할 것이니라.

 

3.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제안하시나 듣기를 거절하는 백성들
  1) 이들에게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심령의 평강을 얻으리라.
    : 그러나 그들은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고 말함.
  2)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 그러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3) 너희들은 문제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제사가 아니라 내 말을 듣지 않음 때문이다. 
   (1)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재앙을 내릴 것인데, 그것은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내 율법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2) 시바의 유향과 먼 곳에서의 향품을 내게로 가져온 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나는 너희들의 번제와 희생제물을 원하지 않는다.
   (3) 그래서 내가 이 백성 앞에 장애물을 두리니, 아버지와 아들들이 함께 거기에 걸려 넘어지며 이웃과 그의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4. 유다와 예루살렘을 침략할 한 민족, 버림받을 유다 예루살렘
  1) 북방에서 한 민족이 일어나는데, 그들은 잔인하여 사랑이 없으며 두려우며 잔인하다.
  2) 너희들은 그 소문만으로도 두려워 할 것이고, 그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과 같을 것이다.
  3) 갑작스러운 큰 고통이 임할 것이므로 밭에 나가지도 길로 다니지도 말라.
  4) 이미 내 백성 중에 망대와 요새로 삼아 미리 알게 하였으나, 그들은 다 심히 반역한 자들이었다. 적절한 불은 납을 단련하지만, 맹렬한 불은 납을 살라버려 그 일이 헛되듯, 너희들은 내버린 은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버리셨음이라.

 

[정리2. 내용을 더 이해하기 좋게 재정리하기]

 

유다의 죄에 대한 지적과 그로 말미암아 임박하게 다가온 멸망에 대한 예언으로 이어진다.
유다의 죄는 다음과 같다.

 

1. 포악이 가득하고, 폭력과 탈취가 계속됨, 여호와의 훈계를 들으라고 권하지만 듣기를 거절.
2. 하나님의 권면을 욕으로 알고 듣기를 거절.
3. 자신들의 상처를 가벼이 알고 평강하다 평강하다고 생각함.
4. 가증한 일을 행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함.
5. 선한 길로 가라고 하고, 파수군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해도 이들은 가기를 거절하고, 듣기를 거절한다.
6. 이들은 값진 향품과 제사만 잘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들이 하나님의 길을 떠나 율법을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7. 이들은 다 심히 반역한 자들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이들이 맞게 될 심판이 어떤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 정오에 오려고 하다가 해가 저물어, 밤에 공격하려고 준비하는 모습(생각지 못한 순간에 침략하게 될 것이다.)
2. 그 땅의 남녀노소 모두 잡혀가게 될 것이고, 그 땅과 집과 토지와 아내는 타인의 소유가 됨.
3. 하나님께서 직접 장애물을 두어 넘어지게 하고 그 이웃과 친구도 함께 멸망하게 함
4. 침략자는 잔인하고 사랑이 없고 두렵다.
5. 이스라엘은 버려진 은처럼 될 것이다.

 

유다의 죄와 그로 말미암아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주고, 특히 유다의 심각성과 이로 말미암은 심판과 멸망의 강력함을 대칭적으로 보여준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유다의 문제1. 자신들의 죄를 가벼이 여긴 것이다.

 

큰 병임에도 불구하고 그 병을 작은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큰 병에 합당한 치료방식을 취하지 않고 쉽게 해결하는 방식으로 구한다면 이는 실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병을 키우게 되는 것이고, 결국 때를 놓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유다는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건강상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그러나 그것을 가볍게 생각했다. 위암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소화불량으로 본 건이다. 전문의의 신속한 수술과 체계적인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임에도, 약국에서 가스활명수를 사먹는 것으로 고통을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이다.

 

결국 유다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다. 병을 우습게 여기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은 결과인 것이다.  육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영적인 건강도 마찬가지다. 당장 큰 진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해서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조금씩 뭔가 이상하다고 느낌이 왔을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을 때, 주변 사람들의 권면이 있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한다.

 

2. 유다의 문제2. 자신의 문제에 대한 진단을 잘못한 것이다.

 

유다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번제와 화목제물을 잘 드리는 것으로 화려하게 드리는 것으로 대체가 될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유다는 당시 명품인 시바의 유향과 먼 곳에서의 향품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채우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헛다리였다.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관계였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드리는 그 제물과 물품을 싫어하실리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종교적인 상징물로 마땅히 해야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체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의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것은 전혀 기쁨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격노케 하는 것이 되고 만 것이다. 생각해 보라, 부모해게 해야할 기본적인 도리를 하지 않은 채, 돈으로 자신의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것만큼 무례하고 책망받아야 할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자꾸 다른 것으로 문제를 감추거나 대체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어떤 희생이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돈이 아니라, 자신된 도리를 해야 하는 것이고, 신도는 종교적 의식의 화려함과 희생이 아니라 내가 믿는 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의무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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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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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5장 묵상과 적용] 평화란 선이 없는 관계가 아니라, 선을 지키는 배려와 양보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리1.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용납하실 수 없는 예루살렘의 죄

  1) 만일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며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할 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에 불과하다. 

  3) 하나님이 그들을 치고 때리는데도 자신들이 징계를 받는 줄을 모른다. 얼굴이 바위같이 굳어 돌아오기를 싫어한다. 

  4) 하나님께서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어찌 이 일들에 대해서 벌하지 않겠느냐?

   (1)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 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인다. 

   (2)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니 재앙이 임하지 않으리라.

   (3)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하다. 무시하고 귀 기울이지 않음.

  5)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 되고 이 백성은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를 것이다. 

   (1) 네가 모르는 나라를 통해서 너와 너희 자녀들이 먹던 것을 그들이 먹게 하겠다. 

  6)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 여호와께서 왜 이렇게 되도록 하셨는가? 하고 묻는 자가 있다면

   (1)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땅인 아닌 곳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도록 하리라 하라. 

  7)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한다.

   (1) 만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지 못한다. 하나님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정함. 그래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넘지 못한다. 

   (2) 그런데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한다.

   (3) 너희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자기의 이익을 얻으려고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면,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한다. 

   (4) 내가 이 일에 대해서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5)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정리2. 내용을 풀어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이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근거를 말씀하신다. 


1. 단 한사람이라도 정의와 진리를 진정으로 구하는 사람이 없다. 

2. 하나님이 잘못하여 때리고 징계를 해도 이들은 얼굴이 굳은 바위라 깨닫지도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변화를 기대하겠는가!

3. 내가 잘 먹여서 풍요롭게 하면, 그 힘과 여유로 창기를 찾아가니 어찌 재앙이 없겠는가!

4. 여호와의 존재감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따라서 여호와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5. 만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지 못한다. 심지어 성난 파도조차도 그렇다. 그런데 이 백성은 반역하는 마음에 그 한계를 넘는다. 

6. 악인들이 자기의 이익을 얻겠다고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않고,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 

7. 선지자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이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또한 좋게 여기니... 이 나라에 변화과 개혁은 물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이 정도니, 어찌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재앙을 내리시지 않으시겠는가!!


[정리3. 내용에서 묵상하고 적용해 볼만한 것은....다음과 같습니다.]


1. 만물을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지 못하는데, 사람 만큼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군요.


하나님께서는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으셨습니다.(22절) 그래서 성난 파도가 거세게 불어도 그것을 이길 수는 없게 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정하신 한계 안에서 움직입니다. 성난 파도라도 결국 그 한계를 넘어 육지를 삼키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은 그 정한 한계를 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람의 죄는 결국 그 한계를 넘어서고 맙니다. 하나님을 향한 죄의 허용도 있는듯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허용된 죄(용납하실 수 있는 죄)까지도 넘어서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당신은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심판을 받고 재앙을 피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신이 허용된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팍팍한 한계를 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으라고 하셨으니까요. 어찌보면 매우 넓은 한계를 주신 것이고 그 한계는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마침내 그 한계를 넘어설 때 심판과 재앙을 맞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고,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 어떤 행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오만과 부주의함이 그 선을 무시하곤 합니다. 그 때 관계는 깨지고 평화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평화란 선이 없는 관계가 아니라, 선을 지키는 배려와 양보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부조리한 사회: 거짓말하는 선지자,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는 제사장을 선호하는 백성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5:31)


진리를 말해야 할 선지자가 거짓말을 한다. 하나님의 권력을 대변해야 할 제사장이 자신의 권력으로 다스리려 한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질서를 왜곡하는 것이며 본질을 훼손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 문제는 백성들이 그것을 좋게 여긴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진리를 선언하는 선지자를 백성은 싫어하며, 하나님에게만 의존된 제사장을 백성들은 싫어한다. 누가 누구에게 악영향을 주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서로에게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 상황 속에서 누구하나 이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내부적으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외부적인 파괴가 들어갈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내부적 변화를 이끌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외부적으로 이들을 흩으시며 이들을 깨뜨리시는 것이다.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가? 악의 구조, 변화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갇혀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지금은 내부적으로 변화를 열망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자정 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이번 대선도 그런 자정 능력의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이런 노력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이니 다행이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이런 모든 자정능력이 그 결과를 얻지 못하고 다시 구조적 악의 패턴에 의해 잠식당할 때, 그래서 역시 안돼라는 의식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을 짓누를때... 정말 그 때가 되면 우리의 마지막이 어찌될찌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외부적인 힘으로 깨뜨려지는 것 밖에는 소망이 없는 것이다. 이번 대선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번 대선 이후를 기대해 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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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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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4장] 선지서를 읽을 때 우리가 당황하게 되는 이유중에 하나는 선지자의 메시지가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것이지요. 죽일듯이 달려들면서도, 끊임없는 사랑을 이야기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말씀하면서도 회개하라고 요청하는 것 같을 때, 성경의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의 죄 앞에서 이랬다 저랬다 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심정말입니다. 이런 마음을 자식을 키워본 분들은 공감하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마음은 복잡한 것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1.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요청하시는 여호와

  1)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2)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라.

  3)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4)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소결론]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끌자가 없으리라.


2. 이스라엘을 명망하게 하는 자가 나아오리라.

  1)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 

  2)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이는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않음.

  3) 그 날에 왕과 지도자들은 낙심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 


3. 백성에게 단지 멸망을 주기 위한 심판이 온다.

  1)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오는데, 키질하거나 정결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하기 위함이다. 

  2)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네가 악함이라.(18절)

  [소결론]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4. 선지자의 탄식

  1) 선지자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었기에 그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해 한다. 

  2) 자기 백성이 확실하게 멸망하게 될 것에 대한 경고를 계속 듣는 심정이 고통스럽다.

  3) 그런데 이 백성은 미련한 자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다. 


5. 이스라엘이 황폐하게 될 것을 보이심. 따라서 현재의 화려함은 헛될 것이다. 

  1) 선지자는 전쟁의 폐허가 되어 완전히 초토화된 땅을 환상으로 본다. 

  2) 하나님이 이미 말하고 정하셨으니 작정하고 후회하지 아니하셨은즉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3) 그럼에도 소망을 주심은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심(27절)

  4) 지금의 화려함과 넉넉함은 착각이다. 

   (1)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네 화장이 헛되리라.

   (2) 네가 초산하는 자의 고통 같은 소리를 내며,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_내 방식으로 정리]


예레미야 4장은 선지서들을 볼 때, 우리가 혼란스러운 전형적인 본문이다. 선지자는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거듭 강조하면서 동시에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요청이 함께 이루어지는 메시지이기에 독자는 좀 혼란스럽다.  


오늘 본문도 그렇다. 처음에는 여호와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강력한 요청을 한다. 그러나 곧 이어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불어 심판하게 될 것인데, 이 작업은 키질이나 정결케 하는 작업이 아님을 분명히 하신다. 연당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심판하는 과정임을 분명히 한다. 북방에서 큰 재난과 전쟁이 올 것이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가 돌이키지 않을 것임을 말한다. 그래서 그 날은 왕과 지도자들이 낙심하게 되고, 제사장들도 놀래고 선지자들도 놀라게 된다. 경고인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멸망하게 되자. 놀라고 당황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 말한다. 선지자는 이모든 미래적 멸망에 대한 경고를 듣고 있으면서도 이들 돌이킬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이들은 미련한 자고 이들은 악한 자라 악을 행하기에는 빠르나 선을 행하기에는 미련하다. 결국 이 땅은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기에 미래를 낙관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모두 헛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착각이다. 곧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죽음의 고통을 호소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에게 돌아오라고 하는 요청을 멈추지 않으신다. 그들 전부는 진멸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그 진멸에서 살아남은 자를 위한 회복, 돌아옴을 요청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회복이 아니다. 그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에게 주시는 기회며 깨달음이다. 


[정리3. 묵상 및 적용]_ 내용의 흐름을 따른 설교의 대지 형식으로 작성함.


1. 이제 이스라엘의 심판은 돌이킬 수 없이 확정된 것이다. 

  1) 이는 너희들을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다.(11절)

  2)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12절)


2. 현재 자신을 꾸미고 단장할 수 있는 화려한 시대를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곧 멸망은 온다.(30,31절)


3. 왜냐하면 너희들은 악하기 때문이다. 

  1)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심판과 멸망)을 부르게 했다.(18절)

  2) 너희들은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다.(22절)

  3)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한다. (심판하는 것에서) 돌이키지 아니할 것이다.(28절)


4. 그러나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다.(27절)

  1) 심판당해 멸망하고 황폐화 되겠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5. 이스라엘아 돌아오려거든 나 여호와에게로 돌아오라.(1절)

  1) 살아남은 자들 중에 너희들은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2)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는 어리석음을 버리라. 할례를 해도 너희 마음 가죽을 베라. 

  3) 살아남은 너희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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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3장] 죄악이 훨씬 큰 북이스라엘보다 유다가 더 큰 책망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언약궤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묵상에서 좀 다루어보았습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문맥 파악해서 정리해 보기]


1. 유다의 음란과 행악

  1) 그들은 말한다. 음란한 아내를 다시 받아 준다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는가!라고.

  2)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바로 음란을 행하는 여인과 같다. 행음하지 않는 곳이 없다.

  3) 그래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그쳤는데도 창녀와 같아서 수치를 알지 못한다.

  4) 너희가 갑자기 버린 나를 다시 찾으며, 청년 때의 보호자라 말하며 노여움을 풀라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너희들은 악을 행하고 너희 욕심을 이룬다. 한 마디로 가증스럽다.


2. 이스라엘의 케이스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유다

  1) 요시야 왕 때에 이스라엘은 온통 행음으로 가득했다. 돌아오라고 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2) 이스라엘의 자매 유다는 이 모든 것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도 가서 행음하였다. 

  3) 여기서의 행음이란 우상 숭배를 지칭하는 것인데, 그 행음으로 이 땅을 더럽혔다. 

  4) 유다는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짓으로 돌아오는 척 할 뿐이다. 


3. 반전: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말씀하심

  1) 배역한 이스라엘이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으니 북으로 가서 선포하라.

  2)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니 노를 한없이 품지 않을 것이다. 

  3) 너는 오직 너희 죄를 자복하라, 돌아오라. 나는 너희의 남편임이라.

  4) 내가 너희를 택하여 시온으로 데리고 오리라. 내 마음에 합한 목자를 세워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그래서 이제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시 필요없을 것이며,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가 되어 예루살렘에 모이는 자들이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그들이 행하지 않을 것이다. 

  5)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 조상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6)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너희를 자녀들 중에 두고, 너희는 나를 나의 아버지라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라.

  7) 그런데 너희들은 아내가 남편을 속임같이 확실히 하나님을 속였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4. 진실한 회개

  구원은 하나님께 있는데, 우리가 청년 때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 즉 수치 중에 눕겠고,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며 청년 때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다. 



[정리2. 정리한 내용으로 내 표현으로 바꾸기]


유다는 말한다. 음란한 아내를 남편이 용서하고 받아 준다면 이 땅이 윤리적으로 타락하여 더러워지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영적으로 그 음란한 여인과 같기에 너희를 다시 받아 줄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는데도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창녀와 같이 수치를 모른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지만 진심함이 그 안에는 없다. 


유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이스라엘의 자매다. 그런데도 유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도 가서 음행을 행했다. 우상을 섬겼으며 그로 인해 유다 땅을 더럽혔다. 그들은 진심이 없고 언제나 돌아오는 척만 했다. 따라서 유다에 임한 진노와 심판은 돌이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하나님은 긍휼이 있는 분이고 노를 영원히 품지는 않는 분이라고 말씀하시며, 이들을 향해 돌아오라고 요청하신다. 죄를 자복하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들의 남편이시기 때문이다. 남편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은 신실하게 감당하실 것이기에 그렇다. 하나님은 이제 이들을 다시 시온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를 세우고, 그들을 지식과 명철로 가르쳐서 더 이상 완악함으로 행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될 것이고,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보좌가 되어 예루살렘에 모인 자들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할 것이고, 하나니은 너희를 자녀들 중에 둘 것이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유다가 이스라엘 보다 더 나쁜 이유


유다는 이스라엘과 한 민족이다. 그러나 두 나라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 음행을 행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죄는 유다보다 급속해서 이스라엘이 먼저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유다가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분위기에서 책망하신다. 


이유는 무엇인가? 유다는 이스라엘의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돌이키기나 새롭게 되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이 한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래서는 유다 땅 전역을 더럽혔던 것이다. 이런 유다를 하나님은 더욱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반면교사가 없었다. 그러나 유다는 바로 곁에서 반면교사로서의 이스라엘을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전혀 깨닫거나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멸의 길로 가게 된다. 


죄의 깊이와 정도에 따라서 죄의 심각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듯 하다. 하나님은 알려주는대도, 경고하는대도, 가르쳐주는대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자들을 가장 악하게 보신다. 따라서 교훈과 책망을 듣지 않고 자기 욕망의 고집대로 사는 것만큼 큰 죄가 없으며, 돌아오기 어려운 죄도 없는 것이다. 


2. 여호와의 언약궤가 없고,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가 되리라.


하나님은 쫓겨난 자기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고, 쫓겨간 인생들은 그 분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시온으로 다시 불러 모으고, 그들 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를 세워서 이들을 지식과 명철로 양육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언약궤가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가 세워져 이들을 바르게 가르칠 것이기에 더이상 언약궤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한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인 백성들은 다시는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다. 부드럽게 행동할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지혜로운 목자를 통해서 그의 백성들이 완전히 변화되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이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식과 명철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말씀 뿐 아니라 그분의 사역에 있어서도 그것은 모두 우리에게 지식과 명철로 가르치셨고, 지금도 가르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도 지금 우리에게 그와 같은 사역을 하고 있으시다. 이는 모두 학생의 훌륭함 때문이 아니라, 목자의 훌륭함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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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광야 기간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신혼기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혼여행을 광야로 간 것이지요. 행복한 신혼이란, 풍부하고 넉넉한 물질적 풍요가 아닙니다. 부족하고 가난하여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관계가 행복한 신혼인 것입니다.  


[정리1. 내용을 정리하되 메시지의 핵심 문구중심으로]


1.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광야 40년을 신혼의 시간으로 보셨다.) 

  1) 이스라엘의 청년의 때의 인애와 네 신혼의 때의 사랑을 기억하신다. 

    :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하나님을 따랐던 그 때를 기억하신다.(2)

  2) 당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성물, 곧 그 소산의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면 모두 재앙을 받음. 

 [정리] 이스라엘은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은 첫 소산처럼 소중히 여기셨다.


2. 그런데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여호와를 멀리하여 악을 행했다. 

  1) 너희 조상들은 나의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떠나 헛된 것을 따라 맹세하였느냐

  2) 하나님이 너희를 기름진 땅으로 인도하였더니, 너희가 들어와서는 하나님의 땅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다.(7절)

  3) 제사장들과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따랐다. 


3. 현재 백성들이 행한 악

  1) 깃딤이나 게달에 가서 보라.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꾸었느냐?

  2) 그런데 너희들은 나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11절)

  3) 두 자기 악: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터진 웅덩이)


4. 이스라엘의 악과 반역

  1) 네가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으며, 네가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2)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을 알라.


5.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실망.

  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21절)

  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로 되게 하지 말라, 목을 갈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너는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들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25절)


6.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1) 유다의 지도자들이 자신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는 그 우상을 향하면서 하나님께는 등 돌림.

  2) 그러다가 환난을 만나면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고 하나님을 찾는다.(27절)

  3)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28절)

  4) 하나님께서 유다의 자녀들을 경책했으나 오히려 이들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무익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이들은 선지자들을 삼켰다.(말을 듣지 않았다.)

  5) 처녀가 그 패물을 어찌 잊겠는가? 신부가 어찌 그 예복을 잊겠느냐? 그러나 내 백성은 나를 잊었다. 그 날 수는 셀 수 없다.(32절)

  6)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내게서 참으로 떠났다. 그러나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정리2. 그 내용들을 풀어서 서술형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옛 추억을 가지고 계신다. 이스라엘이 광야의 시간을 보냈을 때, 하나님을 향한 인내와 사랑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성물, 곧 소산의 첫 열매로 여기셔서 소중히 여기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삼키는 자는 하나님의 재앙이 뒤따랐다. 그런 신혼과 같은 시간을 기억하신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헛된 것을 좇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불성실과 불의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은 우상을 좇고 그 땅을 더럽혔으며, 제사장과 율법을 다루는 자도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 오히려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기도 했을 정도다. 


지금 이 백성의 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어느 나라도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으로 바꾸는 나라가 어디있는가? 그런데 이 백성은 그렇게 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어 버렸다.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린 것이며,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떠진 웅덩이라 아무런 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이 백성들은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애굽으로 가게 되든지 아니면 앗수르로 가게 될 것이다. 이는 이 백성이 하나님을 버림과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으로 그들이 행한 악이 그들을 징계하는 것이고 그들의 반역이 이들을 책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백성이 좋은 포도나무가 되기를 바라고 심었으나 악한 가지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경고를 헛되이 여기고 이 백성이 이방신을 사랑하여 따라갔다. 이들은 우상을 만들어 우상을 향하지만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환난을 만나면 하나님을 찾고 구원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들의 신의 수는 성읍의 수만큼이나 많았고 선지자들을 통해 자녀들을 경고하면, 그들은 선지자를 죽임으로 듣지 않았다. 이 백성은 하나님을 잊었고, 자신은 무죄하다고 그래서 진노가 없다고 말하니,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고 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과 이스라엘, 신혼 초에는 광야에서도 행복했으나 풍요로워지니 하나님을 등지다.


힘들고 어려운 광야의 시간을 예레미야는 결혼한 신혼 남녀의 행복한 신혼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시간, 하나님도 이스라엘이 혹 잘못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시간... 신혼 때만이 가지게 되는 부부의 사랑의 모습이다. 가난했지만 사랑으로 풍성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예레미야는 본 것이다. 


문제는 가나안의 부요가 들어오고 나서다. 하나님의 주신 풍요를 풍요 그 자체에 대해서 열망하게 되었고, 풍요를 약속해 준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었도 좋고, 바알이어도 좋은 신앙이 되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은 마음의 변화는 하나미을 등지는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그 자신도 더렵혀지고 그 땅도 더렵혀 졌다는 예레미야의 고백을 듣게 된다. 


성도의 풍요와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물질적 풍요가 아니다. 오히려 물질적 풍요는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얼마나 결속되어 있는가이다. 얼마나 의존하고, 얼마나 절실한가가 성도의 풍요와 행복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아니면 광야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2. 하나님은 이스라엘(유다)에 대해서 너무 큰 실망을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이 나무는 이방 포도나무처럼 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풍요를 주셨는데, 이 백성은 그 풍요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고 바알을 좇게 되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백성을 향한 권면을 잊지않고 주셨는데,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헛된 말이라고 일축하고는 자기가 이방 신을 사랑한다고, 그래서 그 신을 따라가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자녀들에게라도 깨우치려고 선지자를 보내 말씀했더니, 이 자녀들은 선지자들을 오히려 죽여버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무죄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들은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님을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보여 주신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 기대하고 소망했다가 그 기대와 소망이 무너질 때, 그 마음은 참 비참합니다. 아니 기대했던 그 대상이 오히려 여러가지로 협조하고 도와주고 지원했던 나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다른 사람을 찾아갈 때, 그리고 나에 대한 이상한 근거없는 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릴 때, 우리의 마음은 누구나가 무너질 것입니다. 사랑과 애정이 컸기 때문에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대한 그 분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 단계까지는 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시고, 하나님이 절망하시는 단계까지는 오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완전한 절망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마음이 큰 실망과 낙심의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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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장] 한 이틀 고민하다가 예레미야를 시작합니다. 너무 장이 길기도하고, 선지서라 내용을 정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솔직히 선지서는 아직 자신이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지난 간사 세미나때 예레미야 강의를 들은 것도 있어서 용기내어 시작합니다. 두려움 반, 기대 반. 응원부탁드려요^^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1. 예레미야에 대한 역사적 정보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

  2) 유다 왕 요시야 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을 받기 시작했다.

  3)  사역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시대부터 시드기야 11년까지(예루살렘 멸망) 임하였다.


2.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심: 예레미야를 부르심

  1) 여호와: 모태로부터 너를 성별하여 불렀고, 너를 여러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2) 예레미야: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말을 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3) 여호와: 

   (1) 너는 너 자신을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며, 무슨 명령이든 말하라.

   (2) 그들 때문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를 구원하겠다. 

   (3)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말씀하심.

   (4) 여러 나라 위에 세워 네가 그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3. 여호와께서 환상을 보여주심: 살구나무 환상

  1) 무엇을 보느냐?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살구나무=지킨다 라는 말과 음이 비슷함)

  2) 잘 보았다.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지키신다는 것을 살구나무 환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4. 여호와께서 환상을 보여주심: 끓는 가마

  1) 끓는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있었다.

  2)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북방 왕국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사방 모든 성읍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3) 재앙의 이유: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고 우상에게 절함으로 심판하는 것

  4) 요청: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명령한 바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라.

  5) 약속: 내가 너를 유다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백성 앞에서 놋성벽이 되게 하리라.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입이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나의 말로 풀어서 서술]


예레미야는 베냐민 아나돗의 제사장 중 한 명인 힐기야의 아들이다. 그는 제사장의 가문으로서 요시야 왕 13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는 여호야김 왕때부터 시드기야 왕 11년, 유다가 멸망하는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사역한 선지자다. 자기 민족의 멸망을 선언해야 했으며, 그 멸망을 지켜봐야 했다는 측면에서 고통스러운 선지자였음을 알게 된다. 


예레미야 역시 하나님의 전적 부르심 가운데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도 모세처럼 자신이 없던 자로서 <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물러서지 않고, 예레미야을 여러 나라의 선지라로 세웠으며,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며, 무슨 명령이든 말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의 입술에 주셨는데, 그가 전할 메시지의 내용들이란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것이다. 또한 건설하며 심게 하는 것이다. 


처음 두가지 환상을 보는데, 첫 환상은 살구나무 가지 환상으로 살구나무라는 히브리 말이 <지킨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히브리 말의 음과 유사함을 이용해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지키시는 분임을 확인시키고 있고, 둘째 환상은 북에서 기울어진 가마솥 환상인데, 이는 북방 민족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멸망시킬 것은 예언해 주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것에 대한 심판을 하시는 것인데, 이 메시지를 왕과 제사장들에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지켜주신다고 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라고 명령하신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은 꼭 지킨다.


살구나무 환상이라는 것은 히브리 말로 <지킨다>라는 단어의 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해 지금 보여지는 유다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을 강조한 환상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하신다고 했다가도 마음을 돌이키시거나 유보하신 적이 종종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한 모습으로 보았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이 심판은 반드시 <지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왔다는 것을 말한다. 요시야 시절에 요시야의 개혁은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므낫세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돌이키지 않으셨다는 말씀이 있다. 같은 시대적 정황 속에서 나온 말씀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고 봐야 한다. 첫번째는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이다. 듣고 돌아오면 기회를 얻고 회복된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으면, 겸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심판하신다.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이다. 그 때는 기도해도 회개해도 소용없는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예레미야 1장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은 후자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러나 가만히 성경을 읽다보면 처음부터 후자의 경우로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다. 첫번째의 케이스로 시작하신다. 그러다가 반복적으로 뉘우치지 않고 악을 행할 때, 마지막 수단으로 후자의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자비로우시지만 또한 마침내 공의로 심판하신다고 볼 수 있다. 


 

2.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보장하시는 구원이란, 적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는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의 왕과 지도자,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하도록 한다.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왕과 지도자, 제사장과 백성들을 까는 말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말이다. 당연히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구원을 보장해 줄 테니 두려워 하지 말고 그 일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대적자를 제압하고 멋진 기적으로 예레미야를 구출해주는 방식의 구원이 아니다. 적들에 의해서 치임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조롱을 당해도, 지지 않게 해주겠다는 것만을 약속하신다. 어려움을 제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이길 힘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결코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도만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장애와 어려움이 기적적으로 사라지고 갑작스러운 승리를 가지는 것만이 구원은 아니다. 구원이란 고난을 이기는 힘, 조롱을 견디는 힘, 고통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편에 선다는 것이고 구원하시겠다는 말의 의미다. 우리에게는 낯선 구원의 개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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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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