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5장] 하나님도 지쳤다. 아무도 하나님을 말릴 수 없다. 하나님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지치제 만든 우리들의 고집과 악의, 참 대단합니다.(묵상만 읽으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할 수있으면 요약하면서]


1. 여호와 앞에 모세와 사무엘이 있더라도, 이 백성은 용서받을 수 없다. 

  1)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다. 쫓아 보내라.

  2) 유다 백성들이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란 말입니까?

  3) 죽을 자는 주음으로, 칼을 받을 자는 칼로,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가라.

  4)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네 가지로 벌하신다.(죽이는 칼, 찢는 개, 삼켜 멸하는 공주의 새, 땅의 짐승)

  5) 유다 왕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여러 민족에게 흩음.


2.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길 자가 없다.

  1)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2) 네가 날 버리고 가지 내가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리라. 내가 뜻을 돌이키는 것도 지쳤다.

  3) 너희 자식이 끊어지고, 과부는 모래보다 많아졌고, 갑작스러운 멸망에 놀라고 두려울 것.

  4) 그 남은 자들은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3. 예레미야의 고통(사역자로서의 고통)과 하나님의 약속

  1) 내가 잘 못한 것도 없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저주하는 구나.

  2)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강하게 할 것을 약속하신다. 원수로 간구하게 할 것이라 약속함.

  3) 그러나 유다는 북방의 공격으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4)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자신을 기억하고 돌봐주시도록 그래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간구한다. 

  5) 예레미야는 자신을 기뻐하는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위해 홀로 앉아있다.(고독한 자신의 사역을 말함) 이는 주의 분노를 내게 채우신 것이다. 나의 고통은 점점 중하여 낫지 않고,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습니다.(낙심)

  6) 여호와는 예레미야에게 다시 돌아오면 내 앞에 세울 것이고, 헛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다시 여호와의 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다. 예레미야를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여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는 못하게 하신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을 다시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펼치기]


여호와께서 유다를 판단하고 심판하시는데 어떤 중보자도 이를 막을 수 없다. 모세와 사무엘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분노를 막을 수 없다.(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막았으나) 그만큼 유다의 죄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 가지로 백성을 벌하신다는 것은 결국 완전한 심판을 말하고 작은 것 하나 남김없이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몰인정하셨던 분은 아니다. 하나님은 한없이 좋은 분이시고 인자와 자비로 자기 백성을 대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유다는 교만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했다. 하나님도 이제는 지쳤다. 내가 뜻을 돌이키는 것도 지쳤다고 말씀하신다. 오래 참으신 만큼 하나님의 진노 또한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식을 끊고, 수많은 과부가 일어나게 하며 갑작스러운 멸망에 놀라고 두렵게 할 것이다. 남은 자들은 대적의 칼에 모두 죽게 할 것이다. 


이런 완악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실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하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즐거워할 수 없었고, 늘 고통과 소외와 영적 부담에 눌려 고통가운데 지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영적 고난의 자리에서 피하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여호와께서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분노가 예레미야에게 쌓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암튼, 신음하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놋 성벽이 되게 하여 대적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는 못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남기신다.


[정리3. 묵상 및 적용_인상깊었던 문구,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메시지 등]


1. 하나님의 진노, 중재자가 없은 유다 백성.


누가 좀 하나님을 말려보세요.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요.... 아니요, 아무도 하나님을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중재자가 없는 유다의 상태를 말한다. 모세와 사무엘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모세와 사무엘의 중재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아니고, 하나님이 막무가내라는 말도 아니다. 그만큼 유다의 죄가 넘친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중재자를 잃어버린 관계. 풍랑 속에 표류하는 땟목같은 운명이 아니겠는가? 죄를 짓더라도 중재자가 언제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죄를 지어야 한다. 엄마가 내 편이 되든지, 아니면 아빠라도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을 때 그것도 아니라 형제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중재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최소한의 정의와 사랑)는 실현하면서 살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마지막 날 중재해 줄 사람이 없거나, 효력이 없어 그대로 망하게 되고 말 것이다. 


2. 이제 하나님도 지쳤다. 


성경에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충격적인 표현은 하나님도 이제는 지쳤다는 것이라 본다. 하나님도 더 이상 자기 백성인 유다를 위해서 뜻을 돌이키시는데 지쳤다고 말씀하신다.(6절) 하나님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자이신 하나님께서 관계속에서 이 백성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상황, 용서와 끊임없는 자비가 더이상 이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이 백성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유다 백성은 참 대단하다. 이 백성 앞에 하나님도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이 지친것이다. 여호와의 천사가 야곱과의 씨름에서도 지쳤다.(창 32:25) 야곱의 포기하지 않는 자기 고집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천사는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침으로 그 싸움에서 벗어나 그를 버리고 가려고 했다.(26절) 


하나님을 지치게 하는 사람들, 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으로하여금 한계(?)에 이르도록 했으니 이는 하나님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하나님을 지치게 만드는 인간....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3. 사역자가 짊어져야 할 고통


사역자가 짊어지는 진짜 고통은 가난과 핍박과 같은 외부적 고통이 아니다. 내면적 영적 고통이다. 하나님의 고통이 자기 자신에게 전해지고 채워지는 고통이다. 그것이 사역자가 본질상 느껴야 할 고통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표면적 고통 속에서, 이는 하나님의 고통을 자신에게 채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17절) 그래서 고통이 큰 것이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벗어 버릴 수 없는 것은 그 고통이 하나님의 고통이기 때문인 것이다. 


예레미야가 짊어진 고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짊어지신 고통... 예수님은 그 고통을 벗어 버리고 싶었지만, 벗어버리기를 원치 않았다. 짊어 지셨다. 그리고 죽음까지 간직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죄에 대한 것을 정하셨다. 예레미야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본다는 말이 진실로 그렇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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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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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4장] 긍정적 메시지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들은 긍정적 메시지로 찾아오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메시지는 쓴 소리, 아픈 소리 가운데 있습니다. 고통을 참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소망은 열려있습니다.(묵상 내용만 참고하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탄식과 하나님의 응답

  1) 가뭄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2) 상황: 유다가 슬퍼한다. 사환을 보내 물을 얻으려 하나 얻지 못하고, 밭 가는 자가 물이 없으므로 부끄러워하고 근심한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린다. 

  3) 백성들의 탄식: 우리가 죄가 많을지라도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일하소서. 어찌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까? 왜 나그네처럼 무심하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리이까?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4) 여호와의 말씀: 이 백성은 어그러진 길을 가면서 그 길을 사랑하고 멈추지 않았다. 예레미야아,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금식이나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칼과 기근으로 전염병으로 멸하리라. 

  5) 예레미야의 탄식: 거짓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은 없을 것이라고 하고 평강을 예언하는 것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탄식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은 거짓 선지자라고 하면서, 그들을 보내지 아니했다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 선지자들과 처자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모든 백성이 칼과 기근으로 멸망하게 되고 알지 못하는 땅으로 다니게 된다고 하심. 


2. 백성들이 주 앞에 호소하다.

  1) 여호와여, 우리를 버리시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는 치료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치료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봅니다. 

  2)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3) 주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4) 우상 가운데 누가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만 앙망합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내글로 쓰기]


하나님께서 유다에 큰 기근으로 보내셨다. 그로인해 귀족들이나 백성들이나 농부들 모두가 물을 얻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풀이 없으므로 암사슴도 자기 자식을 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고 하고 호소하기도 한다. 어찌해서 우리를 이 지경에까지 내버려 두시는가!하고 묻는다. 자신들의 잘못이 있음도 알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무하시다고 말한다. 유다 백성과 관계가 전혀 없는 분처럼 냉정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에게 이 백성을 위해서 복을 빌지 말라고 하신다. 이들이 금식하과 번제와 소제를 드려서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결국은 칼과 기근으로 멸망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들은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면서 가고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멈춰서지를 않았다. 여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자신을 제외한 많은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은 곧 해결되고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만 백성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가 아니라고, 그들과 그들의 처자식들이 먼저 칼과 기근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뒤 이어지는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가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떠났으니 공허하게만 들린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은혜라는 것은 본질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은 따진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너무 심하게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알고 뉘우치고 있으니, 이제 그만 화를 풀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은혜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은혜는 요청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신에게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했는데, 그것을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분을 품는 것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협박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은혜란 본질상 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주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은혜의 본질이다. 따라서 은혜는 구할 수는 있지만, 얻지 못했다고 해서 수여자에게 화를 내거나 탓을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다 백성들이 지금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있는 것인가? 글쎄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 생떼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든다. 이 정도로 간절한데, 왠만하면 들어달라는 식이다. 만약에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협박하는 것일수도 있고... 


암튼,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생떼를 부리면서 하나님을 협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2.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고통당하는 참 선지자 예레미야.


당시 대 다수의 선지자들은 현재 당하고 있는 칼과 기근의 고통은 잠깐이요. 곧 화평과 평강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영방송에서는 별 문제 없다고 현재 하던 일을 동요없이 그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다른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곧 해결될테니 별일 없는 것처럼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받은 예언은 달랐다. 지금의 칼과 기근은 앞으로 다가올 재앙의 시작에 불과하다. 더 큰 재앙과 심판이 임할 것이며, 이것은 중대 사태로 하나님이 이 민족으로 버리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민족이 총체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메시지는 예레미야 혼자의 메시지니, 다수의 언론에 밀려 사람들에게는 잘 전달되지도 않는다. 그로 인해 예레미야는 고통 당했고, 혹 자신만 너무 부정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도 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명확하게 해주신다. 예레미야의 손을 들어주신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참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적어도 무조건적인 낙관과 긍정만이 참된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은 오늘 본문 속에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쓴 소리를 들을 때 그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간파해야 한다. 


쓴 소리, 아픈 소리를 들을 수 있을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거기서부터 바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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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3장] 하나님은 우리와 많이 닮았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과 많이 닮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참 인간적이시다. 아니 우리는 참 하나님적이다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

 

1. 허리에 두른 띠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시는 하나님
  1) 예레미야에게 베 띠를 하나 사서 허리에 띠라고 하심
  2) 그 베 띠를 가져다가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고 하심
  3) 여러 날 후에 유브라데에 감추었던 그 띠를 가져오라고 하심.
  4) 예레미야가 말씀대로 띠를 가져오니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다. 
  [메시지] 여호와께서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시겠다고 하심. 이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마음이 완악한 대로 다른 신을 따라가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 하나님은 이 띠가 허리에 속한 것처럼 유다 백성들을 그렇게 여기셨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다.

 

2. 포도주 가죽부대에 대한 비유로 메시지를 전하시는 하나님
  1) 모든 가죽 부대가 포도주로 가득차게 되리라고 말씀하라고 예레미야에게 명하심
  2) 사람들은 모든 가죽 부대가 포도주로 가득 찰 것이라는 것을 무엇을 알 수 있는가?
  3) 이 땅의 모든 주민과 왕위에 앉은 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이 잔뜩 취해서 피차 충돌하고 상하게 할 것이다.
   (1) 부자 사이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2)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아니하며 아끼지 않고 멸하리라.

 

3. 교만에 대해 경고하시는 여호와의 말씀
  1) 교만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말씀
  2) 하나님께서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가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기 전에 너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3)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으로 말미암아 은밀한 곳에서 울고, 통곡하리라.
  4) 왕과 왕후에게 전하여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네겝의 성읍들이 봉쇄되어 열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1) 북방에서 오는 자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네게 맡겼던 양 떼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고
   (2) 네 친구였던 자게 네 위에 우두머리가 될 것이며 네가 산고의 고통을 당할 것이다.
   (3) 어찌하여 이런 일이 생겼는가 탄식하겠지만, 너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4)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을진데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할 수 없다는 것을 반어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5) 하나님께서 이들의 수치를 치마를 얼굴에까지 들춰서 수치를 드러내듯 하셨다.
   (6) 그러면서 탄식하시는 말씀이, 네가 얼마나 오래 지나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말씀하신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을 다시 풀어서 써 보자]

 

하나님께서 두 가지 비유를 통해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가에대해서 지적하신다. 사람의 허리에 두르는 띠를 유브라데 물가에 묻어둠으로 결국 썩어서 쓸모없이 되어 버린 것을 통해서, 유용하게 쓰려고 했던 유다가 이제는 전혀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지적하셨다. 포도주 가죽부태에 포도주가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비유는 이 땅의 풍요를 말해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가득한 포도주로 인해 사람들은 취하고 그로 인해 모든 백성과 지도자들 모두가 취해 사로 상하고 충돌하는 결과가 발생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아끼지 않고 멸하시리라 말씀하신다.


유다의 죄가 얼마나 깊고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이들이 이와 같이 된 데에는 그들의 교만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교만하여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 따라서 상황은 점점 악화 일로에 놓이게 된다.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이들의 죄의 심각성이 다음과 같은 말로 비유되고 있다. 구스인들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는가? 만약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너희들도 할 수 있을 것이다.(23절)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너희들도 너희들의 죄에서 스스로 돌이킬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수치를 더 들어나도록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탄식하며, 이들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얼마나 지나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정리3. 적용 및 묵상]

 

1. 처음에는 내 몸의 일부처럼 소중했던 것이, 이젠 썩어서 쓸모가 없이 된 허리 띠처럼 된 것이 유다와 예루살렘이다.

 

2. 모든 가죽 부대에 가득한 포도주는 이 땅에 풍요가 아니라,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가득한 포도주는 모든 백성과 지도자들을 취하게 했고, 서로 싸우며 상하게 했다. 물질적 풍요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축복이요 풍요라고 생각되어 지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저주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교회에서 종종 듣는 말중에 하나는 우리 나라가 이렇게 물질적 부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기독교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기독교를 무시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질적 풍요와 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기독교로 인해서 왔다 손 치더라도 이 풍요는 또 다른 재앙을 잉태할 수 있기때문이다. 사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이미 재앙이 시작되고 멈추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선지자 적인 안목과 역사적인 안목이란, 눈에 보이는 풍요에 대해서 긍정할 수 많은 없는 삶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서 외로움과 고통과 눈물, 고독을 본사람들인듯 하다. 이들은 풍요의 또 다른 면을 본 것이면서도, 그것은 그 풍요의 본질이되어 미래를 예견한 것이 되곤 했다.

 

3. 내가 얼마나 더 참아야 하겠는가? 참는다고 구스인의 피부가 희어지며, 표범의 반점이 달라지겠는가?

 

하나님의 기다리심의 한계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도대체 얼마를 더 참아야 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참기만 하고, 용납하시기만 하고, 기다리시기만 하는 분은 아니다. 못참겠다고 말씀하시고, 빈정거리기도 하시며(구스인의 피부, 표범의 반점) 분노하시기도 하시는 분이다. 우리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은 참 낯설지만, 그러나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많이 닮았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과 많이 닮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참 인간적이시다. 아니 우리는 참 하나님적이다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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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2장]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의로움에 대한 항변을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질문이 하나님께는 무례하며 난처한 질문일 수 있을 텐데, 하나님은 정치인처럼 답하지 않으면서도 답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말입니다.(묵상 내용만 참고하세요)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예레미야의 항변(악한자의 형통이 어찜입니까?)

  1) 주께서는 의로우신데, 악한 자가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평안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2) 주께서 그들을 심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닙니까? 

  3) 그들의 입술은 주께 가까운 듯해도, 그들의 마음은 머니, 죽일 날을 위해 그들을 구별하소서.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여호와의 답변] 네가 보행자와 걸어도 이렇게 피곤해 하면 어떻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네 형제와 네 부모가 너를 속일지라도 너는 믿지 말라.(악한 자가 형통하고, 결코 평온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삼판받지 아니하리라...와 같은 말을 할찌라도 믿지말고,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라.)


2.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것을 원수들의 손에 넘기시다.

  1) 여호와께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다. 

  2) 내 백성이 나를 향해 소리지르고, 원수들이 그것을 에워쌈을 보고도 내버려 두었다. 

  3) 온 땅이 황무지가 되어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다.(버린바 된 모습)

  4)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고, 수고해도 소득이 없은 즉 수치를 당하게 되었는데 이는 여호와의 분노로 말미암은 것이다. 


3.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해하는 악한 이웃에 대해서

  1)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 내겠다. 

  2) 내가 그들을 뽑아 낸 후에 돌이켜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들의 기업으로 다시 인도하리라. 

  3)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여호와께 맹세하기를 바알에게 하는 것처럼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 세움을 입을 것이다. 

  4)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아 멸하리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내 말로 풀어쓰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신정론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며 묻는다. 하나님은 의로우신데 어찌 악한 자가 형통하며 반역자가 평안한가? 그들이 장성하여 열매를 맺고 그 힘으로 악을 행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들은 입은 주께 가까운듯 해도 그들의 마음은 멀다는 것은 주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그들을 내버려 두십니까?


탄식하는 예레미야를 향해서 하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로 낙심하고 힘들어하면 더 큰 일은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라는 말씀으로 답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자기 사랑하는 것을 원수들에게 넘겨주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들이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원수들이 에워쌈을 보고도 내버려 두신다. 하나님이 자기 사랑하는 것을 심판하시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부르짖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웃 나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다 뽑아 버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들도 영원히 뽑으시려는 것은 아니고,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를 배우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알을 섬기는 정도로 섬기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세우실 것이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를 여원히 뽑으실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하나님은 의로우신가에 대한 신정론의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피하신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의로우신가?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나온다. 하나니의 의로움을 의심해서라기 보다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행하셨는지에 대한 항변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욥의 주제가 그렇고,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도 그랬다. 오늘 본문 속 예레미야도 그런 항변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의 항변에 직접적인 답을 하시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다른 식으로 답하신다. 욥에게는 그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많은 질문을 던지신다.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으로 대신하신다. 예레미야의 항변에도 하나님의 대답은 다르지 않다. 네가 이 정도로 힘들어 하면, 어찌 더 어려운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로 답하신다. 


하나님은 의로우신가? 여기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의롭지 않은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믿고 섬긴단 말인가! 사실 질문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의롭고, 의인의 편이신데 왜 현실에서는 악인이 의인보다 더 형통합니까? 어찌 악인이 의인을 이깁니까? 라는 질문이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언제나, 나를 믿고 기다려 봐라. 신앙은 믿고 기다림이다. 하나님을 의로우심을.

덧붙여 말한다면, 믿고 기다림이란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의 자리에 서는 것을 말한다. 


2. 다시 얻기 위해서,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내 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


유다와 예루살렘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 내가 끌어 안고 사랑한다는 것 만으로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 이제 의사의 손에 맡겨야 한다. 그를 통해 수술대로 보내야 한다. 의사의 손에 들린 칼을 무서워하여 비명을 지르고 살려 달라고 잘못했다고 외치지만,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눈을 감아야 한다. 그 병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지금은 보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의 마음은 이와 같다. 사람을 만들고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는 떠나 보내야 한다. 광야로 보내야 하고, 고통의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정의롭지 않아서도 아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잠시 악한 자의 손에 맡기신 것이다. 잠시 동안이지만, 잘 견디어주고, 버텨주기를 바라면서.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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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 추수감사절 찬양 축제 설교 / 렘 8:18-23 / 거친 사랑 깊은 감사

 

 [본문](렘 8:18-23) 


[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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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1장] 예레미야를 읽다보면 신약의 이야기들이 여기에서부터 나왔구나 싶은 부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런부분들에 대한 이야기와 종교적 제의로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신앙에 대한 지적도 다루어 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하는 포인트]

 

1.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의 죄
  1)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서 던 날에 명령한 것.
  2)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룸.
  3) 이 언약의 말씀을 듣고 지키라고 애굽에서 나온 날부터 지금까지 경계하며 경계했다.
  4) 그러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 마음이 완악하게 행동했다. 그래서 언약의 규정대로 그들이게 행하였다.

 

2. 계속되어지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반역
  1) 선조뿐 아니라 지금도 유다인들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다. 이들은 자기 선조들의 죄악을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은즉 그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다. 
  2) 그래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데,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부르짖어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심.
  3)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3.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1) 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 집에서 많은 악한 음모를 꾸미더니 내 집에서 무엇을 피하겠느냐? 거룩한 제물 고기로 네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느냐? 
  3)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좋은 열매 맺는 푸른 감람나무라 부른 유다를 그 위에 불을 피우고 가지는 꺾어 재앙을 선언하였다.

 

4.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메시지로 인하여 그를 죽이려 함.
  1) 예레미야의 고향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해하려고 하고, 그의 결실을 박멸하고 자 했다. 
  2) 이로 인해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그들에게 대한 보복을 요청했다.
  3)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예언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2) 하나님께서 아나돗을 벌하시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고,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남는 자가 없게 될 것이다.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 하리라.

 

 

[정리1.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는 것이 포인트]

 

유다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그들의 조상 때부터 언약 순종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책망하시고 더 이상 용서할 수만은 없음으로 지적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출애굽할때부터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고, 마음을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들 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다른 신을 섬겨 언약을 깨뜨렸다. 그래서 기도하며 부르짖어도 듣지 않았고, 그들이 따르는 우상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어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셨다.

이제 예레미야의 중보의 기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이 백성은 하나님의 집에서 많은 악을 꾸미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을 향해 좋은 열매를 맺는 푸른 감람나무라는 이름을 처음에는 주었으나, 이제 그 나무를 불 태우며 가지를 꺽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 사람들의 완악함에 대해서도 지적하신다. 이들은 예레미야를 향해서 예언을 그만하라고 협박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나돗 사람들에게 큰 재앙을 선포하셨다. 자녀들과 청년들, 그리고 예루살렘 거민들을 벌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예레미야와 신약과의 연관성

 

예레미야를 읽다보면 신약의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우선 이스라엘과 유다가 지은 죄의 내용들은 로마서 1-3장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을 진노를 일으키는 죄의 내용들과 유사하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유다를 감람나무라고 비유하시고, 그들에 대한 심판을 그의 가지를 꺾었다고 표현했는데 이또한 로마서 11장에 언급된 비유와 유사한 방식이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자신의 고향인 아나돗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박해를 받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자기 고향애서 박해를 받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누군가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모습이 겹쳐진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약의 많은 부분이 예례미야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유다의 멸망을 지켜보는 선지자의 모습과 그의 메시지 속에서 그 시대의 심판, 절대적 심판 속에서도 샘솟는 소망, 그리고 그 일을 증거하는 선지자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사역...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그림이라 보인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도 반영되고 있는 그림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어두을 보고 빛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의 사역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사역을 이루어 감에 있어서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담금질을 거쳐야 한다. 이것인 우리의 운명이다.

 

2. 거룩한 제물 고기로 네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언약을 깨뜨리고 반역하는 네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물이랍시고 드리는 고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에 대한 태도는 잊어버리고 종교적인 제의(그것을 위해서 어떤 희생을 드렸든지 상관없이)만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샤머니즘적인 신앙은 대체할 수 있다. 윤리와 도덕보다는 신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중시한다. 그래서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종교적인 의식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법에 대한,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신실성과 충성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윤리적이며 도덕적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거룩한 제물이며, 과도한 헌금과 헌신이면 주님을 향한 열정이면 도덕과 윤리와 법도 제맘대로 벗어 던지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주를 위한다는 말과 교회를 위한 다는 말이면 도덕과 윤리는 뒤로 던져지는 물건이 되고 말지 않았는가? 어찌 우리가 이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는가? 어찌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이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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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1일(주일저녁) 중동교회

본문: 렘 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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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0장] 자식이 용돈을 헛된 곳에 사용하기에 이를 고치기 위해 부모가 용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자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어린 아이들의 돈을 빼앗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 용돈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계속해서 헛된 곳에 돈을 낭비합니다. 부모는 어떻게 이 자식을 다루어야 할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보는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이방 사람들의 길과 풍습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 크신 하나님만 섬기라. 

  1)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그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나 너희는 두려워 말라.

  2)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되다. 삼림에서 벤 나무로 만든 우상이고, 은금으로 장식하였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희에게 복을 주거나 화를 주지 못한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3) 우상에는 최고의 기술이 접목되는데, 금으로 꾸미고, 기술공과 은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옷을 입혔나니, 정교한 솜씨로 만든다.(9절)

  4) 그러나 너희는 크신 여호와만을 섬기라.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진노하시면 이방이 당할 자가 없고,  (세상)신들은 땅 위에서 하늘 아래에서 망한다. 


2. 만물을 조성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인데 사람들은 무식하고 어리석다.

  1)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과 명철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고, 하늘의 물과 땅 끝에서의 구름, 비를 위한 번개를 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신다.

  2)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고 무식하여 조각한 신상을 따르니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할 때에 멸망할 것이다. 

  3) 그러나 야곱의 분깃은 이와 같지 않다. 여호와 하나님은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3. 백성들의 탄식(그나마 그 백성 중 하나님의 진노를 알고, 중보하는 백성들의 탄식인가?)

  1) 여호와는 이 땅에 사는 자들을 이번에는 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려 함이다. 

  2) 백성들은 말한다. 내 상처가 크고 중하다. 이는 참으로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라.

   (1) 내 장막이 무너지고,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떠나가고 장막을 세울자가 없다.

   (2) 목자들은 어리석어 여호와를 찾지 않으니, 형통하지 못하며 그 모든 양떼는 흩어졌다. 

   (3) 북방에서 큰 소리가 들리니, 유다 성읍들은 승냥이의 거처가 되었다.

  3)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 오히려 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였나이다. 



[정리2. 일목요연한 내용을 토대로 다시 풀어서 서술하기]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은 이방 사람들의 길로 가지 말며, 이방 사람들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길과 풍습을 따르는 것은 너희들에게 있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은데, 그것은 헛된 짓이다. 그 우상이라는 것은 너희들이 살림에서 베어만든 나무가 아니냐? 은금으로 장식한 것이며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 그것들은 너희에게 복을 주거나, 화를 주지 못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오히려 모든 만물을 그의 권능과 명철로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라. 그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하늘의 물도 그가 만드시는 것이다. 땅 끝의 구름을 통해서, 비를 위해 번개를 치게 하시고 이를 위해 하나님의 곳간에서 바람을 내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자연의 섭리를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고, 어리석고 무식하게 조각한 신상을 만들어 섬기니 그들은 수치를 당하게 되어 큰 징벌을 당하게 될 것이다. 너희 야곱의 분깃은 이와 같지 않으니 너희는 여호와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헛된 것을 섬기지 않는다고 두려워 하지 말라.)


백성 중에 이스라엘의 형편을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 유다는 심각한 병에 걸렸고, 그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을 아는 백성이다. 자신들에게 아무 소망도 없이 북방 민족에게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다. 그러면서도 이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께 없어지도록까지는 진노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징계하시되 너그러이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오히려 분노를 이방 사람들에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에게서 잠시 눈을 다른대로 돌리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러 나라의 길로 행하고, 이방 나라의 풍습(종교적인 것을 포함한)을 따라 행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2,5절) 비와 관련하여 그것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니은 곳간에서 바람을 꺼내 불게 하시고 이로 인해 구름과 번개가 치고 결국 비가 내리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섭리에서 진행된다. 그 때와 방식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여러가지 말씀을 하신다. 내가 만물을 주관한다는 말씀도 하시고, 내가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도 말씀하신다. 


그러나 유다는 소극적으로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웠다. 만에 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시거나,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치게 되는데 필요한 때에 비를 허락하지 않으면 어찌하나 걱정했던 것 같고, 그로 인해 이방 사람들이 비를 내리게 하는 방식을 하나 더 도용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 편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액션이기에 덜 불안했던 것 같다. 


유다의 잘못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책임지시고 공급하실 것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고, 자기 나름대로 그 대안을 찾는 것까지는 좋으나 우상 숭배라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금하신 일을 동원하였던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두려우면 불안하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까지도 서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다.이런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 이런 대안적 행동이 과학적 발전을 통해 물을 확보하는 것(수로)과는 다르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먹히지 않는 백성의 행동


하나니은 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계시하신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할 때에는,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비를 막고 기근을 주심으로 이들로 정신을 차리게 하기도 하신다.따라서 구약시대에 기근이나 자연적 재앙 속에는 하나님의 메시지도 함께 들어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종교적)로 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신의 기분을 풀어주게도 하며 흥분시키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을 조작함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는 기발한 능력을 생각하고 개발했다.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빌고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태도를 고치게 하려고, 비를 막으셨는데 이 백성은 삶의 태도는 고치지 않고,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 비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그렇게 했고, 그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여졌기 때문이다. 신의 영역이었던 비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그들의 모습이 선진 문명처럼 대단해 보였을 것이다. 


자식이 헛된 일에 돈을 낭비하는 것이 싫어서 용돈을 주지 않았더니, 이 자식 놈이 밖에 나가서 어린 아이들의 돈을 빼앗거나, 아니면 알바를 해서라도 자기의 필요를 채우고는 여전히 헛된 것에 그의 돈을 낭비한다. 삶의 태도는 고쳐지지 않고 오히려 잔소리 섞인 부모의 용돈을 무시한다. 부모의 권고와 책망이 전혀 먹히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유다의 형편 때문에 하나님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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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9장] 하나님의 눈물, 예레미야의 눈물은 당장 슬픈 현실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빤히 보이는 멸망을 돌이킬 수 없는 안타까움에 기인합니다. 아무리 부르고 소리쳐도 대답하지 않는 멀어져만 가는 자식의 운명에 대한 통애의 눈물입니다. 이스라엘이나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인생이나 결국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인 것이지요.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함]


1. 눈물의 탄식

  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로 주야로 운다.

  2) 내 백성은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한다.(활을 당김같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못하다. 

  3) 이웃을 속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지치도록 악을 행한다. 

  4)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2.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1)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민다.)

  2) 내가 이들을 벌하지 않겠느냐? 이런 나라를 보복하지 않겠느냐?

  3) 그것들이 불에 타서 지나는 자가 없고, 가축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새도 도망가고 없는 황폐함을 만들겠다.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승냥이 굴이 되며 유다의 성읍이 황폐화 된다.


3. 누가 지혜가 있어서 깨달을만 한가? 누가 이 멸망을 막겠느냐? 

  1)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세운 율법을 버리고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자기들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을 따라갔다. 

  3) 그래서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그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흩어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4. 부녀들을 불러 통곡하게 하고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1) 시온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2) 너희 딸들에게 애곡하게 하고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 

  3) 창을 넘어 사망이 들어와서는 죽은 시체들이 거두지 못한 곡식단 같게 될 것이다. 

  4) 그러니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맹한 자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고,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지혜나 용맹이나 부도 이 재앙을 피할 수 없다)

  5) 자랑할 것은 

   (1) 명철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

   (2)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 닫는 것이라. 이 일을 기뻐함.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재구성하여 다시 정리함. 내 말로]


이 백성의 앞날을 보면 눈물과 탄식이 쏟아진다. 부녀들이 모여 통곡하는 소리로 가득차게 될 것이기에 하나님도 울고 예레미야도 운다.


이들은 거짓이 가득하다. 그들의 혀는 화살같이 이웃을 죽인다.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해를 꾸밀 뿐이다. 이들은 지치도록 악을 행하여 악에서 악으로 행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어찌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벌하지 않고 진노하시지 않겠는가? 이들이 이렇게 된 것에는 그들과 세운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조상 때부터 하던 바알 숭배를 여전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기로 하시고, 독한 물을 마시우게 하기로 작정하셨다. 이들은 불에 타서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길과 같이 되고 가축의 울음소리도 새가 날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황폐하게 되게 하겠다고 하신다. 사망은 이들의 집에 창을 타고 들어와서 많은 시체를 만들어 낼 것인데, 마치 거두지 못한 곡식단처럼 처리하지 못한 시체가 가득하게 할 것이다. 그 때는 지혜로운 자도, 용맹한 자도, 부유한 자도 그 재앙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행하시는 분인 줄을 아는 것이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눈물, 눈물, 눈물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했던가! 오늘 본문은 눈물과 애통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자기 백성의 운명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마음도 그렇고,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왜냐하면 이들의 멸망이 너무 참혹하고 비참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은 여전히 철부지 아이들처럼 자기들의 운명을 모른채 죄와 악을 행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일깨우기 위한 예레미야의 노력이 얼마였는가! 아니 하나님의 노력은 얼마였는가! 그러나 이 미련한 백성은 듣지를 않고 완악한 마음으로 더 깊은 파멸로 향하여 가고만 있다. 


여기서의 눈물은 멸망한 사실에 대한 눈물이면서(장례식 장에서의 눈물처럼) 동시에 멸망 당할 자기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보는대서 오는 안타까움의 눈물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라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역사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가? 그런 측면에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인생이 아닌가?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던가? 


자녀에게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는 부모, 지금 시간을 이렇게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과 에너지를 허망한 것에 낭비하고 있는 젊은이들, 소중한 것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급한 일에, 별볼일없는 일에 인생을 다 허비해 버리는 우리의 인생 드라마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니가? 그 마지막의 불행함을 알기에, 알면서도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기에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는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서 행하는 자인 줄 알라. 


우리는 하나님을 한 편으로만 보고 있다. 은혜와 자비와 긍휼..한 마디로 사랑인데 우리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충분하게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면서도 전체는 아닌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또 하나의 모습, 정의와 공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실행하신 것이 바로 정의와 공의였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사랑이 정의와 공의를 삼켜 버려 변질된 복음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복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사랑! 정의! 공의!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복음을 알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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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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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8장]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은 물론 그 백성의 죄 때문입니다. 적당히 했다면 용납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자히 행함으로 더이상은 두고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상하도록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상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니의 마음도 상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고통하십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기]

 

1.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한 지도자들의 결과
  1) 그 죽음의 시체 가운데서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들의 뼈를 그 무덤에 끌어내고
  2)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 펼쳐지게 하리라.
  3) 이 악한 민족의 남은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심

 

2. 회개하고 돌아올 줄을 모르는 이 백성에 대한 한탄
  1) 사람이 넘어지면 일어나고, 떠나갔다가도 돌아오는 법인데, 너희들은 항상 떠나기만 한다.
  2) 너희들 중에는 악을 뉘우쳐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는 자가 없이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기만 한다.
  3) 어찌 예루살렘 백성은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가느냐?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한다.
  4)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돌아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는 도다.

 

3. 그러면서도 안다고 말하는 너희들은 정말 어리석도다.
  1) 그런데 너희들은 우리는 지혜가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고 하나, 너희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너희에게 무슨 지혜가 있겠느냐? 
  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아내와 밭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리라.
  3)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거짓행함.
  4) 내 백성의 상처를 가벼이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다.
  5) 이 백성은 부끄러움도 없이 가증한 일을 하였다. 그래서 엎드러지고 거꾸러지리라.

 

4. 여호와께서 이들을 심판하여 진멸하심
  1)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다.
  2) 온 땅에서 평강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고, 고침을 얻지 못한다.
  3) 하나님께서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 심판하리라.

 

5. 여호와 하나님의 고통
  1) 하나님은 위로 받지 못할 만큼 병들어 있다. 그 딸인 유다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2)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백성이 탄식함.
  3)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4)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내 백성이 치료받지 못함은 어찜인가?

 

[정리2. 정리된 내용을 내 말로 다시 정리하기]

 

예루살렘의 왕과 지도자들은 더욱 큰 심판을 받아, 죽은 뼈를 끌어내어 그들이 섬기던 해와 달과 별들 앞에 펼쳐보이게 하여 부끄러움을 드러내게 하리라는 말씀을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한탄하신다. 이들은 돌아올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넘어졌으면 일어나는 법이고 떠났더라도 때가 되면 돌아오는 법인데, 유다 백성들은 계속 떠나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이 교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혜가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상처를 가벼이 여기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며, 곧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는 평강이 없다. 엎드러지고 꺼꾸러짐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진멸하시기로 결정하신다. 열매를 없이하고,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보낸다. 이들은 평강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나 좋은 것을 얻지 못하고 고침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의 심판은 그들만의 고통이 아니다. 하나님의 고통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고통에 함께 맘이 상하고 고통을 당하신다. 왜 자기 백성들이 치료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신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돌아올 줄을 모르는 백성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이것이다. 사람은 넘어지면 바로 일어나고, 떠났다가도 때가 되면 돌아와야 하는데, 이 백성은 계속해서 멀어져만 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로서 안타까운 것이다. 자식을 키우다보면 사춘기를 겪을 때가 있고, 방황을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멀어지기도 하고, 반항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어 철이 들면 자신의 미숙함을 깨닫고 수줍어 하면서 돌아오게 되는 법인데, 유다는 그렇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만 계속한다는 것이다.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 백성이 자만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고, 지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 스스로가 돌아갈 때를 알고, 돌아갈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 마지막 순간인데도 그것을 모르면서도 더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주인이 더디 오리라 더디 오리라 생각하는 종과 같다.)

 

하나님은 이들의 병을 심각하게 보고 병원에 데리고 가고자 하지만, 이들은 병의 심각성은 모른채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즐거움을 빼앗으려 한다고 불평만 하는 꼴이다. 아직 견딜만 하다고 문제 없다고만 하는 자식과 같다. 병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악화되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이것이 이들의 문제였던 것이다.

 

2. 딸인 내 백성이 상하였으니 나도 상하였다.

 

하나님이 직접 자기 백성을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래서 자기 백성은 고통을 심하게 당해 죽을 지경이 된다. 살려달라고 하고 건져 달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큰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전까지 그들을 외면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업을 하나님은 재판관으로서나 공정한 3자의 입장에서 진행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백성의 부모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의 잘못으로 인한 형벌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상하므로 자신도 상하신다. 그들이 고통당하니 자신은 더 고통당하신다. 그들이 아프니 자신은 더욱 아파하신다. 부모이기 때문에 심판하시지만, 부모이기에 사랑때문에 자식의 고통에 함께 고통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아픈가? 우리가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부모이신 하나님은 어떠하시겠는가? 내 백성이 상함으로 나도 상하는구나... 탄식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듯 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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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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