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4장] 대선을 앞두고 심판론이 오고 갑니다. 한쪽에서는 이명박 정권 심판론, 다른 한쪽에서는 노무현 정권 심판론. 누가 이 심판의 대상이 되고 누가 이 심판으로부터 잠시 벗어날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혹 이번에 그 심판이 빗겨갔다고 해서 지은 죄(잘못)에 대한 대가까지 빗겨가리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극히 나쁜 무화과 광주리는 먹지 못할 것이라 결국 버림을 받게 되니까요.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역사적으로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여호야긴)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2.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여준 환상: 

  1)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

  2) 한 광주리의 무화과는 극히 좋은 무화과이고, 다른 한 광주리는 극히 나쁜 무화과.

  3) 하나님의 말씀(메시지)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서 갈대아인의 땅에 옮겨지는 유다 포로를 하나님은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다. 그들을 잘 돌보고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주어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라. 그래서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 그러나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 땅에 남은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릴 것이다. 그들은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져서 환난을 당할 것이며,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하리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을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내 것으로 재구성하기]


본문은 역사적으로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여호야긴)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환상이다. 예레미야는 성전에서 두 무화과 광주리를 본다. 하나는 극히 좋은 무화과 광주리고, 다른 하나는 극히 나빠 먹을 수 없는 무화과 광주리다. 


여고냐(여호야긴) 왕과 함께 잡혀간 여럿의 포로들로 인해 나라는 슬픔과 비통에 잠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바벨론 왕에 의해 세워진 시드기야 왕이 유다를 통치하고 있던 상황이다. 지금 잡혀간 그들이 비참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다른 말씀을 주신다. 지금 잡혀간 왕과 신하와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잘 돌보고 세워 극히 좋은 무화과처럼 만들겠다고 하신다. 오히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 그리고 그 땅의 백성들이 극히 나쁜 무화과처럼 버려지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정리3. 정리하면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생각들, 묵상들]


1. 하나님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신다. 


여고냐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사람들은 슬퍼했을 것이고 이와 같은 큰 불행이 닥친 것에 대해 비참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남겨진 시드기야와 신하들, 백성들은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여고냐가 극히 나쁜 무화과라고 생각하고, 시드기야가 극히 좋은 무화과가 아니겠는가 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리신다. 


하나님은 오히려 바베론의 포로로 잡혀간 여고냐와 그 백성들을 극히 좋은 무화과라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돌보시고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심어서 뽑히지 않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꿈꾸시던 일을 이들을 통해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반면, 현재의 비참과 모멸을 피해 오히려 영광의 자리에 오른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 백성들에게 대해서는 극히 나쁜 무화과라고 평가하시면서 버려질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신다. 영원히 놓지 않을 것처럼 말씀하시다가도 영원히 벌하실 것처럼 돌이키신다. 그리고 파멸 시키실 것처럼 그들을 적국의 포로로 잡아가게 하신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돌아오게 하고 회복시켜 세운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변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격체인 우리를 만들어가시는 방법임을 깨닫게 됩니다. 



2. 현재의 성공과 현재의 살아남이 진정으로 극히 좋은 무화과이기 때문일까?


모든 재난과 심판을 피해 살아남은 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극히 나쁜 무화과라 곧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비난과 판단과 죄에 대한 대가를 지금 당장 받지 않는 것 같다고 하더라도(약간의 성공과 성취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이 옳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시드기야와 그 정부도 살아남았다고 안도했으나 사실 그들은 완전히 버림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큰 재난을 피해서 약간의 성공을 이루고 큰 환난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용이 그릇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고 조롱과 수치가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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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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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2장] 하나님은 고니야(여호야긴)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다윗의 왕위를 이어갈자가 없음을 말씀하신다. 다윗과 맺은 영원한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폐기되는 것 같다. 500년 이상 그 언약은 폐기된 채로 유다의 역사는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왕,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신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께서 유다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1)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2)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3)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4) 너희가 이 말을 들으면 그 영광이 유지되지만, 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집은 반드시 황폐되리라.
  5) 여호와 하나님이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6) 여러 민족은 지나가면서 여호와가 이 큰 성읍을 이같이 행함은 어찌됨인가? 놀랄 것이다.
  7)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을 버리고, 여호와의 언약을 떠나 다른 신에게 가서 그에게 절한 까닭이라 하셨다 하라.

 

2. 여호와께서 유다 왕 살룸(여호아하스)에 대해서 말하다.
  1) 너희들은 죽은 자를 위해서 애통하지 말고, 사로 잡혀간 자를 위해 애통하라.
  2)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3)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살룸이 결국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3.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해서 말하다.
  1) 화있을 진저:
   (1)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
   (2)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짓고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3)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2) 네 아버지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았는가? 그 때 형통하지 않았는가?
   (1)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다.
   (2)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3) 그런데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다.
  3)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말씀하신다.
   (1)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4.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
  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너는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5.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긴(고니야)에 대해서 말하다. 
  1) 유다 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여호야긴)가 나의 인장 반지라도 내가 빼어서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2)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으리라.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
  3) 고니야(여호야긴) 이후로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다시 풀어서 쓰기]

 

본문은 유다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더불어 유다 왕 중에 살룸(여호아하스)과 여호야김, 여호야긴(고니야)의 죄과 그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유다의 사회적인 죄악은 그들이 마땅히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 즉 사회적인 약자를 오히려 학대한 것이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이다. 이와 같은 잘못에 대한 시정요구를 듣지 않은 것이 이들의 죄다. 결국 하나님은 이로 인해 이들을 적의 손에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요시야 왕 이후로 살룸(여호아하스)과 여호야김 그 뒤를 이은 여호야긴(고니야) 왕의 악행과 그 행위에 따른 결과가 어떠할지를 말씀한다. 살룸 왕은 죽은 자보다 더 비참한 살로잡혀간 자의 운명을 살게 될 것이다. 잡혀간 땅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을 것을 말씀하신다.

 

여호야김은 화려한 건축을 위해 그 백성들에게 그 품삯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킴으로서 악을 행했다. 여호야김은 탐욕과 허영 그리고 무죄한 피를 많이 흘렸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왕을 예루살렘 문 밖에 끌려가서 나귀처럼 매장당하는 비참한 운명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고나야(여호야긴) 왕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인장 반지 같은 자라 할찌라도 빼서 바벨론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 왕은 여호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다윗의 왕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유다는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신하와 그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졌다. 특히 왕들은 허영에 가득차 정의와 공의를 잊고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리게 한다. 이것이 결국 왕과 그 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원인이 되고 만다.

 

예루살렘은 평안할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고질적인 병처럼 이들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가련한 운명이 될 것이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교훈과 묵상들]

 

1. 요시야 이후로 왕들은 허영으로 가득하고 공의와 정의를 잊었다.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왕은 자기 자신들의 권력을 자신의 허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였다. 품삯도 주지 않은 채 아름 다운 집을 짓는데 혈안이되었으며 그로 인해 백성의 고통은 말이 아니게되었다. 왕과 권력자들은 정의과 공의를 실현하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정의를 왜곡하여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게 했다.

 

요시야 왕 이후로 국가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며 추락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여전히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급급했다. 앞을 보지 못했다. 그와 같은 유다의 운명은 여호야긴(고니야)을 마지막으로 그 후손 중에 다윗의 혈통이 왕이 되는 것은 끊어지고 만다. 다윗의 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과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권력과 힘이 올바른 룰 안에서 통제됨이 없이 사용되어질 때 권력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를 중심으로 타락하게 되어 있다. 부정한 방식으로 재물을 축적하든지, 그 권력을 자신의 허영을 위해 낭비하게 된다.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무고한 자들이며, 힘없는 자들이다. 백성의 원성이 높아가게 마련이다. 유다는 하나님과의 신앙 문제에 있어서도 깊은 골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 사회적인 상황에 있어서도 긴장과 갈등으로 인한 위험이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장 반지와 같은 유다 왕을 빼어 버리기로 결정하신다. 그리고 원수의 손네 넘겨주시기로 결정하신다. 공의와 정의를 잊은 권력이 마지막은 원수에게 넘겨짐이 되고 만다.

 

2. 고니야(여호야긴) 이후로는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없을 것이다.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왕권에 대한 언약이 깨지는 순간이다. 유다가 철저하게 믿었던 믿음, 다윗의 왕권은 결코 빼앗길 수 없을 것이다라는 그들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에 있어서 신실하신 분이지만, 결코 언약에 매여 하나님의 이루어가질 정의와 공의를 포기하시는 분은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제 유다와 그 백성들은 그들의 언약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 신앙에 대해서 전면적인 새로운 인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언약에 대한 재해석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이다.

 

3. 너는 어려서부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유다의 죄가 얼마나 오래되고 뿌리깊은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 하겠다. 하나님은 이전까지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사춘기 자녀에게 관심을 보이셨던 것이 아니다. 그들이 평안했을 때(어렸을 적부터)부터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셨으나, 이들은 그 때부터 듣지 않았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완악했음을 말한다.

 

갑작스러운 반항이나 임시적인 탈선이 아니었다. 이들의 반항과 탈선은 뿌리가 깊은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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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5장] 성경적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낙관의 시대에 교만을 지적하고,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그 시대에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자는 다음 시대를 예비할 수 있는 복이 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

 

1. 예루살렘의 멸망: 히스기야 왕이 잡혀감
  1) 시드기야 9년 11째 달.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옴
  2) 시드기야 11년까지 포위함. 모든 병사들이 밤중에 도망함.
  3)갈대아 군대가 도망치던 왕을 쫓아가 여리고 평지에서 잡음. 모든 군대는 그를 떠나 흩어짐.
  4) 시드기야를 사로잡아 바벨론 왕에게 데려가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 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베론으로 끌고 갔다.

 

2. 예루살렘의 멸망: 남은 자를 데려가고, 성벽을 허물고 성전의 기물을 가져감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19년 째에 왕의 신복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름.
  2)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태움, 성벽을 험.
  3)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모두 사로잡아감. 느부사라단이 비천한 자들은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셨다.
  4) 갈대아 사람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놋으로 된 물건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두 놋 기둥과 받침, 놋 바다, 가마들과 부삽, 부집게, 숟가락, 모든 놋그릇, 불 옮기는 그릇, 주발 등 금이나 은으로 만든 모든 것을 가져감.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놋을 가져감)

 

3. 예루살렘의 멸망: 유다 백성들이 잡혀감
  1)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성중에서 여러 지도자들을 60여명을 잡아 가지고 바벨론 왕에게로 데려감
  2) 바벨론 왕은 하맛 땅 립나에서 이들을 다 쳐서 죽임당함.
  3)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4. 예루살렘의 멸망: 바벨론은 유다에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세움
  1) 바벨론이 남긴 사람만 유다 땅에 남아 있었다.
  2)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다.
  3) 유다의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는 것을 알고, 그달랴에게 찾아왔다.(이스마엘, 요하난, 스라야, 야아사니야...등 이들과 따르는 무리들)
  4) 그달리야가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요청함.
  5) 나중에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였다. 그리고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였다.
  6) 이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애굽으로 도망쳤는데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

 

5. 예루살렘의 회복(?): 여호야긴의 회복
  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37년 만에 옥에서 나왔다.
  2)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죄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다.
  3) 그가 쓸 것을 날마다 왕에게서 받아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했다.

 

[정리2. 정리된 내용을 내 말로 다시 풀어보자]

 

유대의 멸망을 다루게 되는 장이다. 시드기야 9년에 바벨론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3년간 예루살렘 성을 애워쌓으므로 결국 예루살렘 성에 있던 왕과 신하들은 견딜 수 없게 된다. 도망치려던 것이 발각되어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 왕에게 끌려간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눈까지 뽑고 바벨론으로 데리고 간다. 그와 함께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훼파한다. 모든 귀인들의 집은 불태우고, 성벽은 헐었으며 성전에 있는 놋과 금과 은으로 된 것들은 모두 거두어 바벨론으로 가지고 갔다.


포로로 잡혔던 사람 중에는 60여명의 지도층 인사들이 있었는데 이들도 바벨론 왕에게 잡혀 왔으나, 왕은 이들을 모두 죽이도록 했다. 이것은 포로된 자의 운명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바벨론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겨 놓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 중에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세워놓았으나, 유다의 군벌들이 그달리야의 친바벨론적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그 중 이스마엘에 자기 병사들과 함께 그달리야를 죽인다. 그리고 미스바에 있던 유다인들과 갈대아인까지 모두 죽인다. 그리고 갈대아 인들의 복수가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치기에 이른다.


유다는 정치적 공백의 시간을 맞게 된다.

본 장의 마지막은 포로로 잡혀갔던 여호야긴 왕이 잡혀간지 31년 만에 옥에서 나와 왕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회복하였음을 기록하는데, 이는 앞으로 유다의 상황도 이와 같이 회복될 것을 염두해 두고 표현한 거라 보여 진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유다의 멸망이 완전한 멸망임을 보여준다.

 

시드기야 왕이 도망하다가 잡혀, 자신의 아들들의 죽음을 봐야 했고 자기 자신은 눈이 뽑히는 고통 속에서 애굽으로 끄려가는 인생이 되었다. 모든 지도층들은 거의 포로로 잡혀가거나 잡혀 죽게 된다. 성벽은 허물어지고,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든 성전의 물건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된다.

 

바벨론의 왕이 남은 자들을 위해서 세워놓은 유다의 지도자인 그달리야조차 옛 유다 세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갈대아 인들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생활한다. 유다의 황폐함을 보여주며, 유대에 남아 있는 자들의 비천함과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제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셨던 성전도 훼파되었으며, 다윗의 언약도 파기된것처럼 이스라엘의 영원할 것 같은 왕조도 끊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 분의 뜻을 포기하신 것 같기도 하고, 성취하시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유다의 멸망의 상황에서 보여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와 같은 일이 그 당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유다는 완전히 망했다. 이 현상을 토대로 성전의 의미와 다윗 언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다른 해석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 이후 선지자들에게 새로운 해석을 하게 한 것이다. 해석은 이렇듯 현장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2. 여호야긴의 회복에 대한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완전한 멸망으로 마친것 같은 유대의 역사에 열왕기하 기자는 하나의 사건을 덧붙인다. 여호야긴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포로로 잡혀간지 37년 만에 옥에서 풀려 존귀한 자리를 회복하며 평생을 왕의 진미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열왕기하 기자는 여호야긴 왕의 회복 사건(작은 사건이지만)을 통해 유다에 다시 한 번 회복의 기회가 시작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고 그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이 열왕기하를 기록한 것이다.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고, 그 희망이 작았지만 그 희망 속에서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절망의 늪에 있는 자들에게 지푸라기 하나 같은 것이지만, 그것이 생명의 동아줄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가졌던 것이다. 절망의 시대에 절망을 보며 절망을 지적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절망 속에서 절망적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소망을 비추는 것으로 마감하는 역사의식을 가진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역사 의식을 가진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역사의식인가? 낙관의 시대에 절망을 볼 수 있는 역사의식이다. 절망으로 가야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절망의 시대에 소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절망 속에서 살아날 수 있고 견딜 수 있어서 희망의 때를 준비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의식의 사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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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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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4장]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으로 한계를 느끼게 끔 하지 말라. 하나님이 한계를 느끼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참담한 죄를 지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선하심을 무시했는가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무시하는 것만큼 큰 죄는 없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봅시다]


1.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해서

  1) 여호야김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바벨론을 섬기게 되었다.(친 애굽적 왕) 

  2) 3년간 바벨론을 섬기다가 애굽에게로 돌아서고 바벨론을 배반한 셈이 되었다.

  3) 바벨론에 의한 큰 침공을 당하게 됨(하나님의 심판으로 본다)

   (1) 갈대아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의 부대를 통해 유다가 고통당하게 됨

   (2) 이런 일이 임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것으로, 유다를 하나님 앞에서 물리치려 함.

   (3)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다.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이를 사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셨다. 

  4) 여호야김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됨.

  5) 이 때를 기점으로 애굽 왕이 다시는 유다로 오지 못했다. 바벨론의 강성함 때문에.


2. 유다 왕 여호야긴에 대해서

  1) 여호야긴의 나이 18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림.

  2) 그의 어머니는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3) 여호야긴도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4) 바벨론의 침공

   (1) 바벨론 왕 여덟 째 해에 바벨론이 올라와서 유다의왕과 신하들이 끌려옴

   (2)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다. 

   (3)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버림.

   (4) 비천한 자만 그 땅에 남게 됨.

   (5)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권세자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갔다. 용사 7000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1000명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갔다. 

  5)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의 숙부(요시야의 아들)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시드기야라 함.


3. 유다 왕 시드기야에 대해서

  1)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1년간 다스림. 

  2)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름.

  4) 시드기야가 나중에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내 표현으로 바꾸어 정리합니다.]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워진 여호아하스는 석달만에 애굽 왕 느고에 의해서 잡혀가고, 애굽은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이 왕으로 세운다. 여호야김은 친애굽적인 왕이었으나, 바벨론이 침공으로 어쩔 수 없이 바벨론을 섬기게 된다. 3년을 그렇게 섬기다가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으로 돌아서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게 된다. 결국 유다는 큰 피해를 입고 만다. 


이와 같은 사건을 성경기자는 하나님이 유다에게 내린 재앙이며 예언하신 바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 평가했다. 특히, 므낫세의 죄가 너무 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를 사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국제 정세적으로는 이때부터 애굽의 영향력은 크게 축소되었다. 


여호야김이 죽자 유다는 그의 아들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왕으로 세운다. 여호야긴은 석달 밖에는 다스리지 못한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유다의 왕인 여호야긴과 그의 어머지 그리고 신하들, 용사와 장인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다. 그리고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인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운다. 그리고 이름을 시드기야라고 바꾼다. 이로 인해 엘리트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유다 땅에는 비천한 자만이 남겨졌다.


시드기야는 11년간을 통치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선을 행하지 못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신함으로 바벨론의 미움을 받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도 한계를 느끼셨다.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4절)


우리 하나님도 한계(?)가 있으시다는 말이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인내가 무궁하시지만, 그럼에도 그분의 용서에도 한계가 있음이 분명히 언급되었다. 하나님의 용서와 인내와 사랑의 크기는 우리의 모든 죄를 넘어서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없이 끝없이 그리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방종으로 치닿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참으심을 무시하듯 행할 때, 하나님은 그 용납의 한계를 정하시고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신다. 유다의 상황이 그랬다. 그리고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과 내일 살펴보게 될 왕하 25장의 내용이다. 


하나님은 자비하시지만 방종을 방관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용납하시지만 무시를 받거나 조롱을 받는 분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지만, 쉬운 분은 아니신 것이다. 그분의 자비를 개선의 기회로 잡지 못하고 방종으로 행하고, 그 분의 선하심을 은혜와 감사로 알지 못하고 쉽게 여길 때 하나님은 모든 자비와 용납과 선하심을 거두시고 그들의 오만 방자함에 진노의 잔을 쏟으신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으로 한계를 느끼게 끔 하지 말라. 하나님이 한계를 느끼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참담한 죄를 지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선하심을 무시하셨는가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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