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프 선교회는 중세 시대 '종교개혁의 샛별'로 인정된 위클리프(John Wycliffe)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위클리프는 당시 라틴어 성경(벌게이트)만 공인되던 시대에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인물이다.

그는 1320년대 잉글랜드 북부에서 태어났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과 자연과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탁월한 학생이자 연사였던 그는 교사가 되었다가 나중에 설교자가 되었고, 결국에는 애국자요 개혁가로서 정치에 관여하기에 이르렀다. 위클리프는 교회가 권력과 풍요로움에 의해 타락하게 된 경위를 생각할 수록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팸플릿과 책자를 쓰기 시작했다.

위클리프는 중세 교회의 개혁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주장했다. 위클리프는 롤라드(Lollard)라고 불리우는 순회 설교자들을 파송했다. 이들은 길고 검은 예복을 입고 맨발로 둘씩 짝지어 다니면서 복음과 경건한 삶과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전하곤 했다. 교회는 롤라드를 이단으로 천명하고 화형을 가하기도 했다.

위클리프는 자신의 모국어로 된 성경을 보기를 원했고, 라틴어 신양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완수했다.(이미 당시 프랑스에서는 귀족들 사이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성경을 보고 있었다)

itistory-photo-1

위클리프는 뇌졸증으로 쓰러져서 1384년 12월 31일에 죽었다. 1415년에 열린 콘스탄스 공의회는 그를 '목이 곧은 이단'으로 선포하면서 그의 책을 불태우라고 포고를 내렸고, 그로부터 13년 후에는 교황 마르틴 5세의 명령에 따라 위클리프의 뼈를 파내 불에 태우고 그 재를 잉글랜드의 스위프트 강에 뿌리는 일이 있었다.

1408년에는 켄터베리에서 대주교 아룬델의 이름으로 이런 포고문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권위로 성경의 어느 텍스트든지 영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존 위클리프의 시대나 그 후에 만든 그런 책이나 팸플릿이나 책자를 읽어서도 안된다 ... 그럴 경우에는 전술한 번역판이 감독의 승인을 받기까지는 더 큰 출교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당시 영어는 야만적인 언어라서 문법적인 구조도 제대로 갖춰 있지 않아 성경의 심오하고 미묘한 진리를 표현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1408년에는 위클리프 번역판을 읽으면 출교를 당한다는 포고문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널리 유포되었고 '위클리프 성경책들'의 사본이나 일부가 지금도 수백 권이나 남아 있다. 이 책들은 규모와 모양과 체제가 각양각색이다.

....

위클리프 성경에 속한 책들이 모두 정교한 것은 아니다. 한 칼럼에다 텍스트를 기록한 경우도 많은데, 이는 위클리프파에 속한 순회 설교자들이 휴대하기 쉽게 만든 것들이다. 가령, 미국 성서공회의 도서관에 있는 한 사본은 12.5cm x 18.4cm 정도이다. 포켓용으로 만든 이런 책에는 요한복음,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서신, 유다서, 계시록의 1-4장과 1/2장밖에 들어 있지 않다. ...

14세기의 한 역사가는 성경을 통속적인 언어로 번역한 것을 경멸하면서 위클리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성직자와 학자들에게 주신 복음서를 번역하여... 이로 말미암아 성경이 저속하게 되었고, 유식하고 지성적인 성직자보다 오히려 글을 읽을 줄 아는 평신도 남녀가 더 접근하기 쉽게 되었다. 그리하여 복음의 진주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돼지의 발밑에 짓밟히고 말았다."

(성경 번역의 역사, 래리스톤 저, 포이에마, p109~111,122)

[생각]

1. 성경은 그 형태(번역)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형태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 언어의 체계가 정교함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최대한 번역하여 누구나가 성경의 내용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따라서 성경 번역 사역의 중요성은 선교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2. 당시 영어는 라틴어에 비해서는 미개한 언어였다.

미개하다는 것은 그 표현에 있어서 정교하고 정확하지 못하는 제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번역되어야 하며, 그런 제한성을 가지고 번역된 성경을 통해서라도 복음은 분명하게 증거된다. 복음은 명확하고 단순하여 믿는 모든 자에게 생명을 준다.

작은 오류를 두려워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루터도 독일어로 번역할 때 발생할 문제를 알았겠지만, 그것보다는 성경의 명료성을 믿고 그것을 통해 복음을 정확하게 들을 사람이 더 많다고 확신했기에 모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번역의 역사, 래리스톤 저, 포이에마, p83-84.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향력이 컸던 성경 번역판은 바로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70인역이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5세기 초에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옮긴, 벌게이트('백성의 언어' 혹은 '대중적인 판' 이란 뜻)라고 불리는 번역판이다. 이는 로마 교회가 1500년도 넘게 사용했던 공식 번역판으로서 중세는 물론이고 그후에도 한동안 예술과 문화와 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546년에 열린 트렌트 공의회는 오직 '벌게이트'만을 진정한 라틴어 성경 텍스트로 선언했다. 당시는 이미 라틴어가 더 이상 일상어로 사용되지 않던 시기이긴 했지만 말이다.

 

AD 4세기에는 구약성경과 신약에 속한 27권이 그리스어와 라틴어 등 여러 언어의 형태로 교회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었다. 라틴어 사본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었고, 번역의 문체와 질이 각양각색이었으며, 필사될 때에 텍스트가 변형되기도 했다. 그래서 382년에 이르러 교황 다마수스는 그의 비서이자 언어학자인 제롬에게 네 복음서의 옛 라틴어 번역판들을 개정하도록 요청했다.

제롬은 2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다마수스가 384년에 죽은 뒤에는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성경 전체를 그 프로젝트에 포함시켰다. 제롬은 70인역을 활용하긴 했지만, 그리스어가 아닌 히브리어에서 구약 39권을 번역하는 일을 모두 완수했다.

그는 서문에서 외경은 유익한 책이긴 하지만 정경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성경 번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외경이 훗날에 만든 벌게이트 번역판들에는 포함되었지만, 이것들은 제롬의 작품이 아니었다.

 

itistory-photo-1

제롬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지 400년이 지난 AD 846년, 그는 대머리 왕 찰스에게 바친 화려한 그림으로 장식된 성경 첫 페이지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맨 위의 패널은 제롬이 로마에서 베들레헴으로 항해하여 작품에 대한 대가를 받는 장면이다. 중간 패널은 그가 성경을 번역하고 그것을 추종자들에게 설명하는 장면과 그들이 성경의 사본을 만드는 장면이다. 맨 아래 패널은 제롬이 라틴어 성경을 수도사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이 그것을 교회로 가져가는 장면이다. 찰스 왕에게 바친 비비안 성경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위의 책, p72,73. 책에 있는 그림을 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1.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사해사본(1947에 발견됨)이 있기 전까지 가장 권위있는 구약 성경은 70인경(히브리어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이었다.

2. 70인경(주전 3세기 경에 번역됨)보다 더 오래된 구약 사본이 없다.

3. 그래서 지난 2천년 동안 그리스어 번역판인 70인경에 크게 의존했는데, 문제는 그 70인역이 주전 3세기 히브리어의 정확한 번역인지를 알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발견된 히브리어 사본은 주후 850년 이후의 것이었기 때문에 약 천년의 격차를 가진 이 사본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구약 성경, 특히 이사야서는 완벽하게 남아 있는 히브리어로 된 사해사본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 의구심이 해결되게 되었다. (주전 1세기 경에 만들어진 사본으로 확정됨)

5. 70인경의 번역과 사해 사본을 비교해 보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되었다.

  1)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히브리어 사본은 구약 성경이 완성된 시점으로부터 적어도 1000년이라는 큰 격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이 사본이 원본으로부터 얼마나 일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컸다.

  2) 그런데 사해 사본 중에서 이사야서는 66장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을 주후 850년 이후에 발굴한 사본 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에 있는 이사야 텍스트와 비교했을 때 동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 동안 구약의 텍스트가 얼마나 충실하게 전수되어 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극적인 증거물이다.

  3)70인역(구약)과 사해 사본을 검토해 볼 때, 70인역은 번역가들이 히브리어 텍스트를 충실히 번역한 것으로 드러났다.

6.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구약성경이 주전 2세기경에 읽힌 성경과 사실상 똑같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 성경번역의 역사, p43-47.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70인역>

1.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구약 번역판은 70인역이라고 불리는 그리스어 판이다.

2. 이는 이집트의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주전 3세기에 시작된 작업이었다.

3. 이 작업을 지시한 왕은 프톨레미 필라델푸스인데, 그는 예루살렘에서 72명의 유대인 학자를 알렉산드리아로 데려와서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게 했다.

  1) 프톨레미 왕은 세상에 알려져있는 모든 책을 자기 도서실에 비치하기를 원했는데 그 중에 히브리 성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2) 또한 구약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데 유대민족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등의 영향을 받고 주전 3세기 초에 이르면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실종되기 시작했다.

  3) 그래서 유대인들이 성경을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번역했다.

  4) 그 번역본 중에서 가장 권위있는 번역이 70인역이다.

  5) 설에 의하면, 모세오경의 번역이 72일만에 완료되었다고 전해진다.

4. 70인역이 중요한 이유는

  1)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고

  2) 과거 2천년 동안 구약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경우에 권위있는 그리스어 출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3) 사해 사본이 발굴되기 전만 해도 가장 초기의 구약 사본은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된 70인역의 사본들이었다.

  4) 70인역은 초기 기독교회의 성경이었고,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는 보통 70인역을 인용하곤 했다.

  5) 심지어 오늘까지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2300년이나 된 70인역을 구약의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타르굼 targum> 구약의 히브리어를 아람어로 번역한 역본

1. 이 번역은 문자적인 번역이 아니라 성경의 해석에 가까운 것이다.

2. 그래서 동일한 단락이라도 타르굼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3. 타르굼은 정책적으로 해석의 성격을 갖고 작업한 것이라고 본다.

4. 그래서 해석이나 의역의 테두리를 훨씬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구약 히브리어를 시리아어로 번역한 역본>

1. 옛 시리아어는 이스라엘 동부에 사는 사람들이 쓰던 아람어의 방언이었다.

2. 선교사들은 그 언어를 저 멀리 인도까지 가져갔다.

3. 그리스도의 시대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뒤에 구약이 시리아어로 번역되었다.

4. 이 번역은 다른 번역과 달리, 그리스어로 된 70인역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에서 직접 번역한 것이라는 특징을 가졌다.

 

<구약 히브리어를 콥트어로 번역한 역본>

1. 이집트 사람들이 사용하던 콥트어로 옮긴 초기 번역판도 있다.

 

- 성경번역의 역사, 래리 스톤, 포이에마, p36-38.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