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logoMadison Gro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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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1절.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절.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절.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절.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셨다. 배에서 나오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다. 

2. 그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여러차례 쇠사슬로도 매고 고랑으로 매였음에도 불구하고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려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었다. 

3. 그 귀신들린 사람은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 늘 소리 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다. 그러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이전에도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셨다. (막 1:21-28, 막3:11-12) 이 사건도 같은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전 이야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차이가 보여주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1) 이전 이야기는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봤다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2)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만난 귀신들린 자는 그 귀신들린 자의 형편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1) 무덤 사이에 거처한다.

(2)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다.(고랑과 쇠사슬로도 제어할 수 없었다)

(3)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하고 있었다.


3)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만나 귀신들린 자는 귀신들린 것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형편이 얼마나 어렵게 되었나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무덤 사이에 거쳐가 있었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강제적인 수단(고랑과 쇠사슬)을 동원했지만 그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는 밤낮 쉬지 못하고 소리 지리고 자신의 몸을 돌로 해하는 상태였다. 


[묵상하기]

1. 오늘 본문은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만난 귀신들린 자의 이야기 중 일부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귀신들린 자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의 통제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상태였다.(그래서 무덤 사이에 거쳐를 두고 짐승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몸도 돌로 해하고 있었다. 밤낮 소리지르며 제대로된 안식을 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 

2. 그는 사람이었으나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상태였다. 타인의 삶을 해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몸도 해하는 상황이었다. 밤낮 소리지르면서 고통스러워했으며 안식을 누릴 수 없었다. 자기 스스로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귀신들린 것이기에) 누구도 이 고통에서 자신을 구해줄 수 없었고, 구하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는 무덤 사이에 거하면서 죽음만이 친구요 죽음만이 안식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3. 그랬던 그 사람의 인생 속에서 예수님이 등장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런 설레임으로 이 이야기의 본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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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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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28편] "주께서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자와 같습니다."라는 표현 속에서 기도하는 성도의 절박함을 봅니다. 그러나 이 기도의 핵심은 절박함이 아닙니다. 악인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혹은 악인들과 의인들을 함께 심판하신다면(분별력없는 심판), 하나님의 편에 서서 의인의 길을 가려고 했던 성도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의 의미일것입니다. 기독교인은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판단을 하신다는 것과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1]


1. 의인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의 심정


1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을 내려자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2절)


2. 악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소서. 우리와 구별하소서.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3절)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4절)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5절)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6절)


3. 여호와는 의인들의 힘과 방패시며 요새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7절)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8절)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9절)


[정리1]


1. 여호와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무덤을 내려가는 자 같습니다.


2. 악인들과 우리를 같이 취급해서는 안됩니다.(그들은 심판하시되 우리는 구원해 주소서!)


3. 악인들은 정말 악한 사람들입니다. 

   :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지만, 마음에는 악독이 있고 그들의 행위가 악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은 것을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4. 우리는 여호와를 의지합니다. 여호와는 힘과 방패와 요새이십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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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0장] 여호와의 성전 총감독 제사장 바스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친구에게조차 조롱당하는 예레미야가 될 것인가? 그것은 내가 여호와의 입을 막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여호와의 입의 통로가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하나님의 입을 막고, 자기 이야기를 즐겨하는 자 바스훌의 운명과 같이 될지어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의 총감독 제사장 바스훌과의 갈등

  1) 임멜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다. 

  2)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풀어주매, 예레미야가 바스훌에게 예언을 한다. 

  3)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고, 마골밋사빕(사방으로 두려움)이라 하신다. 

  4) 너와 네 친구들이 두려움에 떨게 되고,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5) 유다가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지고, 이 성읍의 모든 부와 왕궁의 보물도 탈취되리라.

  6) 바스훌,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며 너도 거기서 죽게 되리라. 너와 너의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그와 같으리라.


2.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 감당해야 할 고통에 대한 호소

  1) 여호와께서 권유하심으로 권유를 받고, 당신께서 강하사 나를 이기셨다. 

  2)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3)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했지만,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답답하여 견딜 수 없어 다시 하게 됩니다. 

  4) 내 친한 벗들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립니다. 잠깐이라도 유혹을 받게 되면, 금새 일어나 나를 치려고 합니다. 주여, 이들이 큰 치욕을 당하게 하소서.

  5)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하나님, 나의 사정이 여호와께 아뢰어졌으니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아게 보게 하옵소서.


3. 자기 자신이 태어난 것에 대한 원망

  1)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라면

  2)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에 복이 없었더라면

  3)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4) 내가 어찌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나가 이해한 방식으로 풀어쓰기]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던 예레미야가 결국 성전의 총감독인 제사장 바스훌에 의해서 잡혀가게 된다. 그에 의해서 매를 맞고 목에 씌우는 나무고랑으로 채워지게 된다. 예레미야를 겁주어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다음날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목에서 나무고랑을 풀어준다. 그 때 예레미야는 바스훌을 향해서 멸망의 예언을 한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며, 또한 바스훌가 그 가족이 모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그곳에서 죽을 것을 예언한다. 또한 그를 따르던 모든 친구들의 운명도 그와 같이 될 것을 말한다. 예레미야의 입은 바스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상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선지자직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입을 열때마다 파멸과 멸망을 말하는 것으로 인해 많은 고통이 있었다. 우선 주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고, 심지어는 친구들조차도 그를 꺼렸으며, 혹 작은 실수 하나에도 벌떼처럼 몰려들어 예레미야를 넘어뜨리려고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주신 말씀과 열정 때문에 말하지 않고는 답답하여 그것도 견딜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오히러 자신의 태어남을 한탄한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인데, 태어남으로 인해 져야할 어쩔수 없는 고통을 지게 된 것이 예레미야의 운명이다. 



[정리3.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메시지와 진전시켜야 할 생각들]


1. 하나님의 메시지를 막을 수 없다.


성전의 총감독이었던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겁주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수가 없었다. 예레미야를 풀어주는 순간, 예레미야는 또 다시 유다의 파멸과 멸망을 말하고 더 나아가 바스훌과 그 가족의 멸망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말한다.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싫어했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싫었던 것이고, 그것은 진리가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막으려고 했고, 말하지 못하도록 겁을 주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럴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일 수는 없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그에게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는 우리의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을 막을 수 없다.


2. 참된 선지자란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다. 


바스훌과 그의 친구들은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거짓 예언을 들었고, 거짓 예언을 전한 사람들이다.(6절) 이들이 잘 못된 정보를 들었던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으나, 이들은 옳은 정보에 대해서는 귀를 닫았기에 그릇된 정보, 듣기 좋은 메시지에만 귀를 기울였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또한 다른 이들에게 전했던 것이다. 


반면, 예레미야는 참된 메시지로 인하여 고통 당하는 선지자였다. 그 스스로 그 메시지를 피하고 싶었다. 친한 벗들에게조차 조롱을 받아야 하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태어남에 대해서도 후회가 막심했을 정도로 이 일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 하나의 고통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때, 감추고 있을 때, 입을 닫고 있을 때의 고통이 더욱 컸던 것이다. 참을수 없는 답답함으로 자기도 모르게, 참을수 없어서 터져 나온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메시지였던 것이다. 


거짓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 사람들이다. 목사 중에도 얼마든지 거짓 선지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과 야합하는 사람들, 성도들에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아닌 할 수 조차 없을만큼 도덕적으로 타락한 목사들... 이들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릇된 메시지를 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는 바스훌인가? 예레미야야인가? 자신있게 예레미야라고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스훌은 아닌가 돌아보고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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