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는 주공을 그리워하는 복고주의자, 노예제 옹호론자로 비판됩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당시에는 진보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경험한 것 중에서 보다 나은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진보 개념도 다르지 않습니다. 중세의 신학과 계몽주의 관념에서 가져온 것 입니다. 


 * 92쪽. 공자의 제자 자공이 정치를 물었다. 정치란 '식'과 '병'과 '신'의 세 가지라고 했다. 자공은 물었다. 이 세가지 중 부득이해서 없앤다면 뭘 없애야 하는가? '병'을 없애라. 또 한 개를 없애야 한다면? '식'을 없애라.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무無신信불不립立'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국경 개념이 없어서 이동이 자유롭다. 임금이 신망이 있으면 몰려온다. 


공자는 인이란 '근자近者 원遠' 라고 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인이라고 했다. 


* 공자의 논어는 인간에 대한 주목이었고, 인간관계의 발견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구간이 불탔는데 공자가 돌아와서 사람이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습니다. 이 일화를 두고 '공자가 인간적이다' 또는 '생명 관념이 편협하다'고 찬반이 엇갈리지만 당시에는 말 한 마리 값이 노비 세 사람 값이었습니다. 비싼 말은 묻지 않고 값싼 사람을 물었습니다. '논어'는 인간의 발견이었습니다.(97쪽)


 * 내용과 형식에 대한 담론 : 질이 문보다 승하면 야하고(질승문즉야), 문이 질보다 승하면 사하다(문승질즉사)

'질'은 내용을 말하고, '문'은 그것을 드러내는 형식을 말한다. 내용의 정당성만 강조하고, 그것의 수사에 무심한 경우에는 야(거칠다)하다. 그러나 형식만 있고 내용이 약하면 그것은 사치스럽다. 

문질빈빈 연후군자. 문과 질이 빈빈(잘 조화되어야야)해야 가히 군자라 할 수 있다. 


 * 나카지마 아쓰시의 중편 '제자'라는 소설. '공구'라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가 되는 과정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신하가 없으면 임금은 올바름을 잃게 되고, 선비에게 배움의 벗이 없으면 선비는 들을 귀를 잃게 된다네. 나무도 새끼줄을 매어 둠으로써 비로소 곧게 자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에는 채찍이, 활에는 도지개가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도 방자한 성격을 바로잡기 위한 가르침이 꼭 필요한 것이라네. 틀을 바로 잡고 갈고 딲으면 그제야 비로소 유용한 재목이 되는 법이라네."


공구의 말. " 그렇지만.... 남산의 대나무는 쉽게 휘어지지 않고 저절로 곧게 자라서, 이를 잘라 사용했더니 무소의 가죽을 꿰뚫었다고 들었고. 천성이 뛰어난 사람에게 무슨 배움이 필요하겠소?"


공자의 답 "그대가 말하는 그 남산의 대나무에 살깃과 살촉을 달고 그것을 잘 갈고 닦으면 단지 무소 가죽을 꿰뚫을 뿐만이 아니라네."


  - 사람은 배움을 통해서 방자한 성격을 바로 잡으면 매우 유익한 자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침.


*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자로라는 제자는 노하여 묻는 것에 대해 공자는 의외로 조용하게 답한다.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 '소인은 궁하면 흐트러지는 법이지'. 공자의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압축한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공자의 제자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함께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102쪽)


 * "용사의 괴력이나 지자의 신기에 비하면 공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가장 상식적인 완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지정의 의 하나하나에서부터 육체적인 여러 가지 능력에 이르기까지 실로 평범하고 구김살 없이 발달한 완전함이었다. 하나하나 능력의 뛰어남이 전혀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균형이 잘 잡힌 넉넉함은 자로로서는 실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100쪽, 공자의 면목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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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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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다리오 왕 4년 아홉째 달,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였다.


2. 그 때에 있었던 한 사건에 대해서 말씀한다. 

 

  1)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물었다.

  2) 여러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할까요?


3. 그 때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였다. 


  1)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말하라. 

  2) 지난 70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한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느냐?

  3)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해 먹고 마시던 것이 아니었느냐?

  4) 너희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던 시절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느냐?


  * 일상적으로 있었던 한 사건을 기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벧엘 사람이 매년 하는 금식과 관련하여 올 해도 그것을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성전을 찾았을 때, 하나님은 다른 때와 달리 스가랴를 통해서 말씀을 주시는데, 이들의 이와 같은 물음에 지난 70년간의 금식이 나를 위한 금식이었는가! 반문하신다. 너희들이 먹고 마실 때는 너희 자신을 위해 그리 하였는데, 금식할 때는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묻는 것 같다.

  너희가 평온 시절을 살 때, 너희 옛 선지자들이 어떤 말씀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4.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1)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

  2)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3) 그러나 너희들은 듣기를 싫어하고, 등을 돌리며 귀를 막았고 마음은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않았다.

  4) 그래서 너희들에게 큰 진노가 임하지 않았는가!


  5) 내가 불러도 너희가 듣지 않았으므로, 너희가 나를 불러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는 곳으로 흩어버렸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 옛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내용들이다. 진실한 재판과 인애와 긍휼 그리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는 말씀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외면했고 마음은 금강석처럼 단단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옛 조상들을 향해서 진노하사 그 땅이 황폐하게 된 것이다. 



[묵상 한 모금]


1. 종교적인 열심과 노력에 사람들이 집착할 때(어떻게 보면 누가보더라도 가장 신앙이 정점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시점인데) 하나님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외식과 한계를 지적하신다. 금식에 대해 묻는 신실한(?) 백성을 계기로 해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잊고 있는 헛점을 지적하신다. 먹고 마실 때는 나를 위해서 그리하였는가! 이 말은 먹고 마시던 시절, 일년의 열 달은 네 마음대로 살면서 금식하기로 정해진 두 달만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 말씀이다. 


2. 하나님은 다시 옛날의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신다. 이미 옛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 이스라엘이 평온한 시절에 해야할 것을 하지 않아 이것에 대해서 선지자들이 지적했던 것을 다시 끄집어 올리신다. 그것은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과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대한 긍휼과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다. 그것을 듣지 않았기에 이스라엘은 큰 고난을 겪은 것임을 다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옛 역사를 잊고 다시 옛 날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을 하나님은 우려하며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종교적을 가장 열심과 희생을 많이 들이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가장 종교적인 시간에 신앙은 변질을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신앙도 그렇고, 한 국가의 종교도 마찬가지다. 주류가 되고 행하는 것이 많고 드리는 것이 많을 때, 우리는 껍데기에 속아 내용의 진실성을 잃어 버린다. 모든 것이 무어졌을 때, 우리는 신앙의 겉 모양을 세워야 한다. 성전을 세우고, 제사를 세우고 형식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이 세워진 이후에는 다시 내용으로 가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의와 공의, 긍휼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주력하는 것이다. 이 주기를 볼 수 있는 종교 지도자가 늘 있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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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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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일곱째 달 곧 그달 2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였다. 


  * 학개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한 날은 다리오 2년 6월 1일이다. 그리고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한 것은 그 달 24일이었다. 그리고 약 한 달후(7월 21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였다. 


2.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남은 백성들에게 말하여라. 


  1) 너희 가운데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있지 않는냐? 너희들이 볼 때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않느냐?


  * 에스라 3:12에 이와 같은 사건을 언급함. 성전 기초를 놓을 때 이전 성전을 본 자들은 대성통곡을 했다고 했다. 과거의 영광에 비해 너무 초라하였기 때문에.


  2)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남은 백성들을 언급하면서 모두 스스로 굳세게 할 것을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할 것을 약속하신다. 


   (1)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2) 나의 영이 계속해서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3)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3) 조금있으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다. 

  4)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이 성전에 영광을 충만하게 하리라. 

  5)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 것이요.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성전의 기초도 초라하였겠지만, 성전의 내면이 가지고 있어야 할 물질적 컨텐츠의 결핍에 대한 안타까움을 사람들은 슬퍼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성전을 이전의 성전보다 더 풍요롭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은과 금으로 채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유대인들이 성전을 지으면서 애통해 하고 부끄러워했던 것은 껍데기 뿐 아니라 그 겉모습에 합당한 내용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껍데기만 있고 내용이 없는 신앙, 건물의 화려함은 있으나 기독교의 제자도는 잃어버린 교회, 많은 사역은 존재하나, 성품은 격없이 떨어진 기독교에 대한 인식... 우리가 울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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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리오 왕 제2년 아홉째 달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였다. 


  * 다리오 왕 2년 6월 1일, 6월 24일(성전 재시공), 7월 21일(내용없는 성전으로 인해 낙심한 자들을 위한 격려), 9월 24일(세번째 말씀)


  1) 선지자 학개로 하여금 제사장들에게 묻게 하는 질문을 던지심(과거 이 백성들의 행위가 미움이 된 이유 설명인듯)


   (1) 질문: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 자락이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성물이 되겠느냐?

   답: 아니닙다. 

   (2) 질문: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답: 부정합니다. 


  2) 학개의 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라도 다른 것을 거룩하게 하지 못한다. 부정하게 된 손으로 만진것은 모두 부정하게 된다. 즉, 너희 한 두 사람이 거룩하다고 해서 전체를 거룩하게 할 수 없고, 이미 부정하게 된 자로서 오히려 부정하게 할 뿐이다.(심지어 그 손으로 거룩한 제사의 제물을 드린다 할지라도)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던 여러가지 것 심지어 제사까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것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부정한 것으로 밖에는 인식되지 못했다. 


  3) 그래서 그 때에는 50을 심어도 20만 얻었고, 너희 손으로 한 모든 일에 곡식이 마르게 했다.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다. 그럼에도 너희들은 돌이키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 성전이 돌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파괴된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마라.


  4)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성전지대를 쌓기 전까지의 생활을 생각해 보라.(열매가 없지 않았는가!)


  5) 그러나 오늘 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 이전에 열매 없던 시대를 기억하라.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신다. 제물이 문제가 아니라, 제물을 드린 사람의 문제였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그래서 재앙이 임했고, 너희들이 노력한 것에 비해 열매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성전 지대를 쌓고 성전을 재건함과 동시에 너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 성전을 지었기 때문이 아니다. 성전을 짓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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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달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였다. 


  1)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다. 

 

   (1)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며

   (2)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며

   (3) 그 병거와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4) 그 날에 스룹바벨아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라. 내가 너를 택하였다.



[묵상 한 모금]


1. 학개 선지자의 시대에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성전을 재건할 때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변 민족들의 견제와 바사제국의 지침으로 인해 성전 재건은 지지부진한 상태였고 그저 개인적인 삶에 대한 고민으로만 살아가는 상황이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용기를 내어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지만, 그것은 이전만 못한 초라한 성전이라는 것이다. 이전 영광을 모른 사람들은 덜 하겠지만,(그렇지만도 않을 듯... 타 민족 신전과 비교가 되었을 것이다.) 이전의 솔로몬 성전을 본 사람들에게는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이는 성전회복인 것이다. 겉 모습도 그렇겠지만, 내용이 없는 성전을 봐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초라했을 것이다. 


2. 학개 선지자는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성전을 다시 짓도록 이들을 질책하고 도전했다. 더불어 성전을 짓는 과정 속에서 나오게 된 이들의 낙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후자의 경우, 지금은 초라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더욱 풍성하게 채워질 것을 말씀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내용들을 채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은도 금도 모두 그 분의 것이며, 만물을 진동케 하시여 열방의 것으로 하나님의 전을 채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현재의 불충분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힘을 내라는 것이다. 


3. 여기서 우리는 이시대의 아픔을 본다. 이 시대는 껍데기만 있고, 내용이 없는 혹은 부실한 시대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고, 종교적인 열심이 있고, 화려한 교회를 자랑하지만 그 내용이 없음으로 인해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겉은 번지르한데, 인격과 성품이 되어 있지 못한 인간을 만났을때의 분노를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학개 시대의 사람들은 겉도 충분하지 못했지만, 그 내용을 채울 수 없는 것으로 인해 낙심하고 부끄러워했다. 그런 그들을 격려하느라고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보내시고, 더욱 풍성하게 채워질 것이라고 격려하시고 독려하셨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겉의 화려함에 내용까지 풍성한 줄 알고 오만을 떤다. 때로 겉 모습이 이전이 비해 초라하다고 당황해하며 겉을 새로 꾸미는데 온갖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내용인데 말이다. 


우리는 겉이 멀쩡해도 내용이 없는 인간을 우습게 여긴다. 겉은 볼품없어 보여도 내용이 꽉찬 사람을 우리는 함부로 하지 못한다. 겉 보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내용을 부족함을 위해 울 때, 하나님은 더 좋은 내용의 때가 올 것을 약속하신다. 그러나 겉의 화려함을 구하거나, 겉의 화려함에 안주하려고 할 때, 이스라엘의 성전을 깨뜨려버리듯 그 껍데기를 부셔버리신다. 내용이 없는 껍데기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악한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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