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자는 근본주의자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_ 그래서 자신을 보수주의 복음주의자라고 말한다.(ㅠㅠ) 
- 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105쪽),


극보수적인 사람도
극진보적인 사람도
자신이 '균형잡혀있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견해는 모두 치우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좌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 '불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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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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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관한 한 나는 현실주의자이지만 선생에 순결주의 같은 든든한 의지 처가있어야 현실주의도 용을 쓴다. 선생이 깊은 지식과 열정은 우리말에 소금이다. 이 소금이 너무 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쳐 생각한다. 소금이 짜지 않으면 그것을 어찌 소금이라 하겠는가.

_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248쪽

이 글은 엄격한 한글 사용을 주장하는 이수열 선생에 대한 황현산 작가의 글이다. 작가도 이수열 선생의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나 법에 엄격한 그의 비평에 다 공감하지 않고 입장도 다른 것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수열 선생과 같은 분이 있으므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돕는다고 보는듯 하다.

근본주의 신학을 보는 우리 입장도 이와 같아야 함을 생각했다. 너무 엄격하며 너무 융통성이 없으며 문자적이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우리를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보수적 신앙의 끈이다. 답답하다고 끊어버려서는 안될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너무 엄격하고 너무 짜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금은 짜야 소금이다.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의 문제지, 소금이 문제일 수는 없는 것이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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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 인격자의 발언이기 때문에(지,정,의)


1. 하나님은 감정을 가지고 표현하시는 분이시다.(흑백이 아닌 칼라의 측면으로 이해해야 함)

  이 부분을 지성과 의지의 차원으로만 본다면 하나님은 변덕쟁이가 되고 만다.


2. 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죄가 없는 욥이나 요셉같은 인물이 고난을 거치도록 하신다. 그것은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서 '인간은 그 속이 변하지 않는 이상은 외적으로는 무슨 방법과 조건을 제시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필연성을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적 변화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요 중생이다.

  따라서 신약에서는 중생을 결과시키는 작업으로 오시지 더 이상 설득하고 설명하고 잡아끄는 것으로는 오시지 않는다고 본다.


3. 영적인 계시의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 중 하나 <비유>

  1) 비유(parable)와 알레고리(allegory)의 차이: 

   (1) 비유는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잘 아는 일상생활에서의 한 장면을 도입하는 것.

예1) 빠른 사람을 <제트기>라고 표현함. 그러나 알레고리는 <제트기>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함(비싸다)

비유는 1차 개념만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모든 의미를 등장시키는 것이다.(삿 9장의 알레고리)


예2)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비유를 들어주시는 목적인 무엇인가? 이웃이 누구인가를 알려주시기 위한 것(따라서 언급된 세부적인 내용들은 무대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 하나에 의미를 둘것이 아니라 목적과 방향을 파악)

  :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자! 라고 결론 맺으면 올바른 해석이 못된다. 


예3) 씨 뿌리는 비유: 우리도 옥토가 됩시다(?)

 하나님의 사역이 이 땅에서 방해를 받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밭에 떨어진 것이 큰 결실을 얻게 될 것.

 천국이 방해 받을 수 있는 형태의 모습으로 왔으나, 천국은 확장되어 완성될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4. 조직 신학을 통한 성경해석

  1) 역사적 흐름


조직신학이라는 것은 마치 자동차 광고를 위해서 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전면과 측면)을 중심으로 표여주듯이 하는 신학이다. 어떤 주제를 부각하여 드러내는 신학.


사람들은 처음부터 조직신학적 접근을 했다.(주제별로, 논리적으로) 이 때는 성경구절을 주로 신학에 대한 증거구절로 사용했다. 그런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에 대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오면서(성경을 증거구절식으로 가지고 옴) 사람들 사이에 그 구절의 원래의 의미를 추적해 보니까 그것이 그런 뜻이 아니더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성경의 문맥을 중시하는 것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성경신학은 문맥을 중시해서 원래의 의미를 추적하는 신학이다. 


사실 성경신학은 조직신학이 교조주의적으로 성경을 얼토당토 않게 인용해서 쓴 것이 사실은 성경이 하나의 통일된 문서가 아니라 편집자에 의해서 (여러문서가)짜집기 된 것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한 문서설에 대한 대답으로 나온 신학이다. 성경이 여러문서를 짜집기 해서 된 것이 아니라, 문맥을 통해서 보면 이런 의도고 이런 뜻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등장한 신학이다.(단어가 갖는 뜻이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해석에서는 결국 단어가 갖는 뜻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도록 안되어있다.)


문서설과 비평적인 여러 사조 때문에 성경 신학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대두되어, 20세기에는 매우 인기있는 사조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마가복음 16:15과 같은 곳을 해석하는데는 성경신학도 한계를 가진다.(뱀을 집고 독을 마시는 것) 그래서 최근에는 성경신학적 접근이 선행된 위에 조직신학이 서야 한다는 것이 최근 성경신학의 답이다. 막 16:15은 단순히 문맥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조직신학적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는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시고 말 것이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예) 요 3:16 만인구원설? / 성경의 다른 본문 내 양은 나를 안다. ..(다양한 측면에서의 사진을 찍어야 한다.)


5. 성경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두가지 올무

  1) 성경을 많은 정보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올무


  2) 가난한 성경신학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는 올무

예) 북한군에게 국군 2명을 숨겨준 목사 / 거짓말 하지 않음.(문자적으로만 생각 / 거짓말_하나님 편들지 않은 것) / 풍성한 성경신학적 방법의 예_초대 교회 시대에 십자가를 밟고 온 교부(주님의 십자가 말고 강도의 십자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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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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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해석해야 하는 이유_ 계시의 초월적 내용이 인간의 이성에 인식가능하기 위해서는 변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1.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 부작용은 계시된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2. 계시의 내용은 초월적이다. 그러나 계시가 드러난 방식은 초자연으로 계시될수도 있고, 자연으로 계시될 수 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계시가 내용적으로 가지고 있는 초월을 계시 방식의 초월성으로만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비 자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예) 마리아 -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를 신비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결과적으로 중보자)

  개혁주의는 마리아가 가지는 신앙과 그 자세에 초점을 맞추게 됨


  예)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 그 은사가 어떤 메시지를 가지느냐로 가야 하는데, 은사 자체의 신비 쪽으로만 갔다.(은사가 가지는 의미를 해석하지 않고, 그 현상의 신비만을 추구함)

: 고전 12-14장에서 은사에 대한 이야기 / 한 몸이라는 비유 / 불완전한 지금

  - 밤중에 손전등이 필요한 것은 사람의 시력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 내가 손전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빛과 더 가깝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리해서 읽을 것] 113쪽 7줄부터~


3.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종들은 그 말씀을 단순히 그대로 전하는 자가 아니라, 먼저 내가 그 말씀에 의해서 항복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언어의 수단이나 논리성의 수단 등을 이용하신다.) _ 단순히 제스쳐로 단어 맞추는 게임식 전달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초월성)가 우리의 인식 가능한 형태로 변형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원형을 찾기 위해서 해석해야 한다.(A를 전달하기 위해서 A'로 왔는데, 이미 이 땅에는 A'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존의 A'와 하나님이 보여주신 A'는 완전히 같은 내용을 가진 것이 아니다. 기존의 A'이 개념을 빌려서 원래의 A 개념의 일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해석자는 계시된 A'를 시작으로 해서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의 내용까지 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4. 해석을 하지 않게 되면, 초월이라는 계시된 형식자체를 내용으로 받아 초월주의로 빠지게 되거나 혹은 계시된 것(A')을 원래 인간들이 가지고 있던 개념(A')와 동일시 해 버리게 되고 만다(자연주의).

  예) 자유주의 신학은 <부활>을 <부활적인 개념>으로 바꾸어 버린다. 


5. 성경의 특징: 구약은 사건적이고 신약은 설명적이다. 

  영화를 예로 든다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막이 있는 편이 낫다. 화면만으로는 그 뜻을 명확하게 알아내기 어렵다.(법정영화)_그래서 신약이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영상이 없으면, 잃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스케일이다. 구약은 그와 같은 스케일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구약은 사건과 스케일을 통해서 단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한다. 

예) 죄의 값은 사망이다. - 문둥병으로 죽는다, 지진으로 죽는다.... 그 죽음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십자가 사건, 우상숭배하면 질투하시는 하나님

  구약의 사건들을 통해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단어들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내용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6. 국어를 공부하는 방식

  1) 초등학교 때에는 문자를 가르친다. 단어를 정확하게 아는 것에 주안점을 맞춘다. 

  2) 중학교 국어교육: 그 단어들을 엮어서 문장을 만들어 문장 안에 사상을 담기 시작한다. 글자가 연결되어 사상을 담는 그릇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우리 말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사상을 배운다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민족사상교육>이 되는 것이다.  

  3)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개념과 이유와 목적을 알아야 한다)

일상: 네 마음대로 해!    집에 들어오지 마!!

성경: 내가 이 백성을 다 진멸해 버리겠다. 그러다가 다음 장에선 내 백성 치는 자는 죽는 줄 알아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따라서 성경의 내용들을 일차적으로 그 단어가 성경상에 어떤 뜻을 가지는가를 알아야 제대로 해석되는데, 그걸 알기 위해서는 많은 사건들을 알아야 된다. 왜냐하면 사건들이 그 단어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7. 성경에 기록된 제일 중요한 계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접하시느냐 하는 것이다. 

  1) 그런데 우리는 실존주의 영향으로 우리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진 주제로 성경을 이해하도록 했다.


8. 근본주의란?

근본주의라는 것은 성경이 초월의 내용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형태와 모습으로 계시했을 때(A'), 그 내용(A)은 꼭 그 모습(A')만을 가져야 된다고 하는 것.

  1) 정당한 근본주의: 자유주의를 대항 할 때는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 예수의 유일성,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예수, 하나님의 아들, 부활 등.


      곤란한 근본주의(율법주의적 근본주의)


  2) 이혼 증서: 이혼증서를 써주어 내보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해서 이혼하면 적법하다.

그러나 이혼에 합당한 이유없이 아내를 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절차를 두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함. 더 나아가 부부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함.


  3) 침례에 대해서.

어느게 맞느냐 하면, 물속에 집어 넣는 게 옳다. 그러면 왜 물을 뿌리냐? 그것은 의미가 같기 때문이다. 

  4) 유아세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땅함.

  5)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주의적 사고방식:

   (1) 6일 창조 / 6세대 창조(날: 욤 에 대한 해석문제) 

  6)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는 의미지, 간음한 자는 돌로쳐서 죽여도 좋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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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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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신학이란 이성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에 이성이 동원되는 것은 이성이 신학의 내용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이성을 통해서만 신적 계시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계시의 내용을 우리에게 인식 가능한 형태(합리적으로 인식 가능한 형태)로 드러내신다.(그래야 우리가 인식할 수 있기에) 그러나 사람의 이성은 보통 그것을 체계화하려는 경향, 폐쇄적 경향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실 때,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계시하시면서도 초월적인 내용들을 보이심(시공간적 초월, 기적과 같은)으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닫힌 시스템으로가 아니라, 열린 시스템으로 하도록 하신다. 



[내용 정리]


1. 지난시간: 계시란 하나님의 자기 진열이 아니라,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시고 주도권을 갖는 것이 계시다. 


  예 1) 하박국의 질문: 왜 의인이 불의한 자들에게 횡포를 당하는데 가만히 계십니까? 

           하나님의 답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의 답변을 주시지 않는다)

  예 2) 시편 96편. 하나님에 대한 증명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송축을 다룬 내용

           * 작자가 불분명: 선지자나 제사장 혹은 기름부음 받은 자가 썼다면, 저절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택되어 성경으로 구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편은 저자가 누군지 모르는데,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 내용이 정경에 포함될 만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초월적이기 형태의 모습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성경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포함된 것이다.(간적적이고 완곡한 방식으로 자기를 증명하신다.)


2. 오늘 본론: 신학이 하나님의 계시로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성까지 포함되어야 하는가? 


  1) 신학의 방법론은 이성이 아니라, 계시일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확인했다. 

  2) 이성은 분명히 신학의 주제와 내용에서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확인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와 이성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은 계시는 그 첫번째 목적이 초월적인 것을 인간에게 알리려는 것인데,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는 방법과 기능이 이성적이지 않으면 안되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 이 말은 인간은 하나의 내용을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합리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합리적인 방식으로 계시되어야 만 인간은 인식하게 된다는 것)


   (1) 교리와 사상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폐쇄된 체계를 이해해 보자.

   (2) 교리는 우리가 신앙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체계화하고 지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상은 한 개인이 자기가 믿는 것을 자기의 지적체계, 자기의 이해의 어떤 인식체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데 서로 같을 수도 있고, 서로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3) 개인의 신앙 체계인 사상은 그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을 더욱 부각시키는 개인적인 경험과 신앙의 칼라에 따라서 재편집된 모양을 가진다. (진보적이다 혹은 보수적이다)

      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느냐에 따라 사상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4) 그래서 인간이 가지는 정신 체계는 언제나 단원론적이요, 페쇄된 체계가 되기 쉽다.(닫힌 시스템)

      예]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고 본 것을 더욱 확대하는 경향으로 해석하려고 한다.(경험과 환경)

      예]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한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해석하려고 할 때, 폐쇄성 체계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지고만 성경 전체를 확대 해석하면 알미니안주의가 되고, 하나님의 주권만을 이야기하면 칼빈주의가 된다. 서로 문호를 개방하지 않으면 한 부분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5) 인간은 합리석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예) 돈을 잃어 버렸을 경우

     예) 방언 문제, 구원의 확신 문제_단원론적인 체계로만 가지고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들.


3. 왜 자꾸 계시의 문제에 이성이 끼어들게 되는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1) 이성이 없이는 계시가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이라는 것이 마치 내용인것처럼 끼어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내용인 것처럼 자신을 주장하게 된다. 

  2) 하나님은 초월적인 어떤 내용을 인간에게 알게 하시려 할 때, 이성이라는 틀로 이해 가능한 형식을 취하셔서 전해 주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이성의 틀에 맞춰서 보여 주셨기 때문에, 이성의 틀에서 벗어난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내용이 아니라고 역으로 주장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3) 그래서 자신의 이성적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체계로 변형시키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렇다고 받은 것을 그대로 전하면 될 것이 아니냐? 말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할 수없다. 우리가 받는 것이 물건이 아니라, 사상과 내용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해해야 하고 해석해야만 한다. 그래야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예] 모션으로 단어 맞추기 게임과는 다르다.


  4)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해야만 한다.(이성을 통하여 계시된 내용을 가공하는 것이 필연적인데, 잘 해야한다.) 그리고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성이 가지는 한계, 합리성과 폐쇄성과 단원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개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5) 개방성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을 모두 인정)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_ <계시의존 사색>이라고 말한다. 


4. 인간의 이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며,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다. 

  1) 순수이성비판

  2) 성경은 활자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글자가 아닌 우리의 문자로. 우리의 활자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찾아 내야 한다. 이것이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학문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성령의 조명 가운데서 이루어 져야 한다 

  3) 우리의 이성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을 펼쳐 보이심으로 자신이 초월자라는 것을 나타내신다. 그래서 성경 기적은 두 가지 유형을 갖는다. 하나는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예, 죽은 자를 살리심, 바다 위를 걸으심, 홍해를 가르심, 문둥병을 고치심(공간 초월) // 예언(시간 초월)) 이런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개방 체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신다. 

  4) 성경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 졌다.그러나 그 내용들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기적이 점철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로 오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는 것으로 오신다. 

  5) 이성은 계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면서, 그것을 가공(제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5. 신학을 하다보면 가장 무서운 것

  1) 근본주의: 해석을 금하는 것. 이성은 운반만 해라. 나타난 대로만 보자고 말하는 것이다.(편협하게 됨) A로 나타난 것은 A로만 나타나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함. 


  2) 자유주의: 이성이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판단해서 선택권을 가지려고 함. 이성에 합하지 않은 내용들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받아들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버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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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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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 로저올슨 저, 죠이선교회,p 17.

내용을 제가 이해한 용어로 옮긴다면 이정도 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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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그리고 복음주의가 잘 구분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국 근본주의의 대표 주자가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말하고, 언론과 미디어는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서 진짜 복음 주의자들로 하여금 <복음 주의자>라는 표현 쓰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복음 주의>라는 집에 이미 <근본주의자>들이 들어와서 자기 집처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복음 주의>라는 푯말을 붙인 집에 살고 있는 근본주의자들을 보면서 저들이 복음주의자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근본주의와 복음 주의를 같은 것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진정한 복음주의자들이 설 곳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자유주의>라는 집에 머물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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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상황이 복음주의자들의 불편한 진실이다. 자기 집을 빼앗겼고, 근본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라는 행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참된 복음 주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자유주의자란 이름을 빌려 쓸수는 없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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