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속한 자와 잠자는 자 사이에는 차이점과 공통점이 공존합니다.

둘다 현상적으로는 비슷합니다. 사랑과 선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이 없습니다. 거룩을 향한 열심과 열정이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생명이 없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선을 위한 행위를 영원히 기대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 오늘 죽은 자와 방불한, 자고 있는 자는 생명이 있기에 또 잠자고 있는 것이기에  어느 순간 홀연히 기지개를 펴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선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살전 5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도둑같이 오기도 하고, 도둑같이 오지 않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어둠에 속한 자에게는 도둑같이 옵니다. 그래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때가 되면 교회를 나가고 예수를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본인의 의지와 힘으로는 그와 같으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어둠에 있는 자요, 생명이 없는 자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알수도 없고, 확신할 수도 없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와 같은 기회가 온다면 다행이고 감사하겠지만, 그것은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반면에 낮에 속해 있고,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당황스러운 순간에 만나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결혼을 앞둔 신부가 잘 준비되고 단장된 상태에서 신랑을 맞듯이 우리도 우리 신랑되신 예수님을 그와 같은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많은 사전 현상들을 알려주고 있고, 이런 현상들은 생명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인식가능한 형태의 현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낮에 속해 있지만, 잠자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생명은 있지만, 사랑과 선한 활동을 하지는 않는(아직 못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실망하고 절망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자신이 생명이 없는 자는 아닌가 의심하게 되어 더욱 절망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겨 놓으므로서 잠자는 자들에게 담력을 줍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5:10)

더불어 이와 같은 말씀도 주십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5:24)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는 로마서에서만 언급되는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끝을 이루실 것을 전제로 우리를 시작하게 하신 것입니다.(빌 1;6)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에 흔들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바울의 가르침이 끝난다면 바울을 반대하며 우려한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교회는 매우 위험해 질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를 더 하고 그것인 바울이 쓴 서신서의 중요한 핵심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개인적 교훈으로는 잠자는 성도들은 깨라는 것이고, 교회적 교훈으로는 서로 잠자는 성도들을 깨우도록 하라>는 것으로 말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화목하라, 게으른 자를 권곌하라, 마음이 약한 자를 격려하라, 힘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성령이나 예언을 무시하지 말고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되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나님은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주의 강림하실 때 흠없이 보전되기를 원하신다.

 

이와 같은 권면을 신랑을 위해 단장해야 할 신부를 향한 권면으로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혼하기로 마음 먹은 여인이 신부 화장을 충분히 못했다고 해서 결혼하려는 마음을 취소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신부가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좀 더 기다려 주고, 도울 일이 있다면 도와서 아름다운 예식으로 만나고자 하는 신랑의 마음이라고 할까? 주님의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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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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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총선 투표를 위해서 아내와 저 그리고 둘째 딸과 함께 인근 초등학교 투표소를 찾아 갔습니다. 아내와 제가 교실 안에서 투표를 하는 동안 둘째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투표를 마친 후 저희들은 인증샷을 찍고, 일이 있어 교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아내와 딸이 나눈 대화입니다.

 

 

딸: 엄마는 어느 당 찍었어요?

엄마: 엄마는 여당을 좋아하지 않아.

딸: 아니, 엄마는 여자인데 왜 여당을 싫어해...

 

정치의 기본적 지식에 대해서 자녀들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반성했습니다. 저는 저희 딸이 농담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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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3절)

바울은 권면을 목적으로 데살로니가 전서를 쓴거 같지 않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그래도 쓴 김에 한 두가지 권면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듯 하다. (1절) 그러나 그 권면은 매우 직접적이면서 강력하여 인상적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은 분명한데, 거룩하라는 것이다. 음란을 버리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대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음란을 버리시고, 색욕을 따르지 마세요. 이제 그만...

둘째는 일에 분수를 넘어 형제를 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도를 넘어 형제를 해하는데까지 가지 마세요. 하나님은 모든 일에 신원하여 주시는 분입니다. 형제에게 의도적으로 도에 넘는 악을 행했다면, 오늘 용서를 비세요.  나중에 하나님이 복수하십니다.

셋째는 형제 사랑인데,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는 잘하고 있으니 하던 대로 더 잘하라고 격려한다. 그러나 우리는 잘 못하고 있다면 형제를 사랑하세요.

넷째는 조용히 자기 일을 성실히하여 자기 앞가림은 하라고 합니다. 헛된 꿈만 쫓지 마시고 부지런히 일하세요. 어떤 일이든 하셔서 자기 앞가림은 해야 합니다. 거룩한 백수로 살지 마시고, 작 앞가림을 하세요.

다섯째는 주님의 다시 오실 때 순교한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고 서로에게 위로해 주세요. (지금 환난가운데 사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괜한 핑계대지 마시고 우리, 순종합시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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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의 내용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걱정하여 다시 방문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싶었지만, 상황적으로 불가능했다. 급한 마음에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냅니다. 환난 가운데 있는 교회의 형편을 살펴보고, 자신을 대신해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믿음에 굳게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디모데는 바울에게 돌아왔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디모데의 설명은 바울을 감격스럽게 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켰고, 바울에 대한 숫한 거짓 선동과 같은 말에 흔들리지 않았고, 크게 오해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바울을 보고 싶어했고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디모데를 통해 들은 바울은 가슴이 벅찼습니다.(제 생각)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일었고 감사가 이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염려되고 보고자 할 때마다 주야로 심히 간구(10절)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감격스러운 소식을 들은 그제서야 마음에 큰 시름을 놓고 고백합니다.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바울의 고백이 바로 부모의 고백이라는 것을 알것입니다. 자녀를 놓고 씨름하고 싸워본 부모, 자기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간절하면 간절할 수록 기도만 하게 되는 부모, 다가 갈려고 해도 다가갈 수 없었던 부모, 자식의 위태로움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그 자식이 이제 큰 어려움의 고비를 넘어 위태로운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 고백.

네가 괜찮다니, 내가 이제야 살겠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이라면, 바울은 부모요 위태로움에 처한 교회는 바울이 낳은 자식인 것입니다.

 

목회를 생각하고, 사역을 생각합니다. 자식이 건강하고 잘 나가고 좋은 곳에 취업하여 탄탄한 길을 간다면 부모는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하는 일이 잘 안풀리고, 하는 일마다 꼬이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는 더욱 더 그 자식에게 집착하고 마음에 담아 기도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사역, 우리의 목회는 자식의 잘됨 속에서는 잘 반영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잘 나가지 못하는 자식을 통해서 반영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역(목회)는 힘들지만, 보람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간절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옆에 있기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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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4절)

감찰이 사찰로 보인 건 최근에 떠들석 했던 뉴스 때문이다. 하나님도 사찰하시나? 아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신다. 그렇다면 무엇을 감찰하시는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좀 더 명백하게 밝혀 지는 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여행을 하며 교회를 세울 때, 외적으로 적극적인 박해도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바울의 의욕을 꺽는 거짓 소문도 난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바울이 사명으로 받은 복음 증거에 대한 흠집내기며 사람들로 하여금 바울을 편향된 각도에서 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외부의 대적과 싸워야 했고, 내부적으로는 거짓 소문과 성도들의 편향된 시선과 싸워야 했다.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할때도 바울은 그와 같은 심리적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도와 같은 사도권을 가졌지만,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교회가 주는 비용으로 생활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면서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_ 교회를 이용해 자신의 생계와 이익을 추구하는 자라는 소문을 의식한 결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바울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데살로니가에서 일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유순한(무력한으로 들리는) 유모가 자기 자식을 키우듯 부드럽고 온유하게 나갔으면, 아버지의 심정으로 자식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다.

바울의 이와 같은 복음의 열정과 진심을 데살로니가 교회는 충분히 이해해 주었다. 바울이 약한 모습과 권위없는 모습으로 나아갔음에도 그들은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들었다.(13절)

진심이 통하게 된 것이다. 바울도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 진심과 전심으로 섬겼고(오해와 거짓 소문과 싸우지 않고, 스스로 제약을 감수하면서 더 순수하게 섬겼다) 감사하게도 데살로니가 교회도 그 진심을 그대로 받아 주었다.

게다가 그 이후에 소식을 들어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동족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믿음과 신앙에 흔들리지 않고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아 견고히 서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14절)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얼마나 다시 보고 싶은 교회였을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17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영광이요 기쁨인 것이다.

 

하나님의 감찰이란 이런 것이다. 복음을 위해 맘조리며, 아무도 모르게 희생하며 교회를 세워왔던 바울의 수고와 고민과 눈물에 대한 감찰인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사역자들이 주를 위해 섬기면서 받은 어려움에 대해 감찰하시고 기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오늘 다시 기억해야 한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사찰하게 되었는가도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형편을 돌아보시며 긴급하게 도울일이 있는가 살펴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성도들을 향한 사찰이라면, 감사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불이익을 주기 위한 불법적 사찰이라면 이것은 아니 아니 아니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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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훈련학교 로마서 강의 중 음성화일입니다.

에버노트로 녹음해서 올려봅니다. 테스트 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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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과 함께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 되었습니다. ^^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모범적인 교회라고 소문난 교회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세가지로 묘사한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3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중에 들렸던 곳으로 세 안식일만 말씀을 전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방해가 있어서 급히 베뢰아로 도피했던 지역이다. 3주라는 짧은 시간에도 말씀과 복음의 권세가 있어서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주께 돌아왔다고 사도행전 17장은 언급하고 있다. 그래도 바울이 있었던 시간은 3주간에 불과했다. 복음의 내용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체계적인 가르침과 돌봄을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복음적 야성을 가진 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란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바울의 전도팀과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었다.(6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이런 모습에 상당히 고무되어 교회를 칭찬한다. 특히 과거는 우상으로부터 돌아서게 된 것과 현재는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바울은 만족해 하고 있다.

[묵상]
1.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면서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칭찬받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생각났다.(계 3:8)

하나님의 능력은 공들인 만큼의 열매만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때로는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지 못하고, 공들이지 못하고 한참이나 부족한데도 하나님 당신이, 또 당신의 말씀이 그 사람들을 키우고 세운다는 것을 본다.
바울이 충분히 채워줄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 데사로니가 교회를 보면서 바울은 더욱 감사하게 되고 이 사역이 정말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2. 복음 스스로가 가지는 놀라운 역사를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서 볼 때 2가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9-10절)

첫째는 과거적으로는 <우상을 버렸는가>이다. 이전에 헛된 믿음과 생활을 버렸는가가 중요하다. 과거와의 결정적 단절이 복음으로 변화되었는가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둘째는 현재적으로 <강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가?>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현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며 살았다. 그들이 어떻게 주를 기다렸는가에 대해서 바울은 놀라고 있다.

 
데살로니가 전서가 앞으로 어떻게 전게 될지 좀 더 흥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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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사기열전은 사마천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한 무제가 궁형과 사형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을 때 궁형을 선택하여 살아서 쓴 역사서다.

   * 궁형이란 남성의 경우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이다.

이 책은 70개의 열전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이야기가 장편이 아닌 여러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이다. 이 책은 많은 양의 역사정보를 담고 있으며 여러 가지 역사에 대해 얽힌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초한지 같은 이야기들이 있으며 초나라, 제나라, 위나라, 한나라 등 여러 나라의 이야기들도 나온다. 환관조고가 진시황이 죽은 후 호해를 왕으로 세운 것과 같은 중요한 역사정보도 많았다. 그러나 초한지와 같이 책으로 나온 이야기들과 사기열전의 내용이 조금 달랐는데 아마 관점의 차이나 허구 같은 것이 섞여있을 수 도 있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한 점은 많은 나라들의 많은 역사를 책으로 기록한 점과 치욕스러운 궁형을 선택하면서 까지도 역사를 기록하려는 사마천의 열정이었다. 아마 그렇게까지 역사를 기록하려는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주려고 할뿐 아니라 역사책을 토대로 좋은 점을 본받고 나쁜 점은 개선하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이런 사마천의 열의와 열정을 본받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자성어는 토사구팽 이었다. 토사구팽이란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는 뜻이다.

작성: 김현빈(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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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는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비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 안에 모든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비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많은 부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내가 볼 때, 골로새서에서 그 주제와 관련하여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금욕주의>는 더 이상 발 디딜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그 분이 하신 일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의 초등학문의 지지를 받아 종교성을 드러내기 위한 열심에 불과하지 그것은 오히려 십자가의 복음을 훼손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금욕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게 주신 놀라운 복음이다. 수천년의 시간 동안 유대인들은 율법주의 아래 살아왔다. 또 모든 인류는 인과응보라는 심판사상 속에서 절대자(신)을 두려움 가운데 섬겨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고 보여주심으로 우리의 신앙에 자유를 허락하셨고, 이것은 분명 세상에는 없는 풍요다.  

금욕주의로부터 자유를 선언했다고 해서, 악한 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쾌락주의>가 교회 안으로 들어 올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쾌락주의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성도들에게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질서가 없는, 전통적인 관계와 틀을 파괴하는 무질서와는 전혀 상관없는 종교가 기독교다. 부부의 관계는 더욱 견고하며,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전과 종의 사회적 질서에 대한 변화를 우선적으로 촉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신비인 것이다. 전통과 구습에 매이지도 않으면서, 질서와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자유할 수 있는 종교.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비밀이요 하나님의 풍요의 진리다.

우리가 이와 같은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있는 이와 같은 신앙을 정당하게 누리면서도 책임을 잃지 않는 성도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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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2절)

골로새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결론에 와서 마지막 권면은 기도로 모아집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의 설교 결론과 유사하지요? 저를 포함한.

바울도 그렇게 말합니다.


두가지 측면에서 기도를 말하는데, 

하나는 기도로 깨어있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파하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보통 말하는 중보기도지요.


올해는 잘 못하지만, 작년 전임으로 1년 교회를 섬기면서
저 자신에게 좋은 훈련이 되었던 것은 새벽기도였습니다.

피곤하고 졸린 상태로 중얼거리면서 시작한 기도가
어느 순간 용사의 기도가 되고, 영웅의 기도가 되어
매일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았던 것은 모두 새벽의 기도 덕이었습니다.

이번 한주간 고난주간 특새로 다시 새벽을 깨워보았습니다.
다시 시작해야 겠다는 소망과 용기를 얻습니다.

이제 저는 매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핵심을 잃어버린 채 하루를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중심에 견고하게 서서 하루를 시작할 것인지 말이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깨어있겠지만,
우리가 깨어있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단순한 지혜를 놓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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