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4절)

감찰이 사찰로 보인 건 최근에 떠들석 했던 뉴스 때문이다. 하나님도 사찰하시나? 아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신다. 그렇다면 무엇을 감찰하시는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좀 더 명백하게 밝혀 지는 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여행을 하며 교회를 세울 때, 외적으로 적극적인 박해도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바울의 의욕을 꺽는 거짓 소문도 난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바울이 사명으로 받은 복음 증거에 대한 흠집내기며 사람들로 하여금 바울을 편향된 각도에서 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외부의 대적과 싸워야 했고, 내부적으로는 거짓 소문과 성도들의 편향된 시선과 싸워야 했다.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할때도 바울은 그와 같은 심리적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도와 같은 사도권을 가졌지만,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교회가 주는 비용으로 생활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면서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_ 교회를 이용해 자신의 생계와 이익을 추구하는 자라는 소문을 의식한 결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바울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데살로니가에서 일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유순한(무력한으로 들리는) 유모가 자기 자식을 키우듯 부드럽고 온유하게 나갔으면, 아버지의 심정으로 자식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다.

바울의 이와 같은 복음의 열정과 진심을 데살로니가 교회는 충분히 이해해 주었다. 바울이 약한 모습과 권위없는 모습으로 나아갔음에도 그들은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들었다.(13절)

진심이 통하게 된 것이다. 바울도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 진심과 전심으로 섬겼고(오해와 거짓 소문과 싸우지 않고, 스스로 제약을 감수하면서 더 순수하게 섬겼다) 감사하게도 데살로니가 교회도 그 진심을 그대로 받아 주었다.

게다가 그 이후에 소식을 들어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동족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믿음과 신앙에 흔들리지 않고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아 견고히 서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14절)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얼마나 다시 보고 싶은 교회였을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17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영광이요 기쁨인 것이다.

 

하나님의 감찰이란 이런 것이다. 복음을 위해 맘조리며, 아무도 모르게 희생하며 교회를 세워왔던 바울의 수고와 고민과 눈물에 대한 감찰인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사역자들이 주를 위해 섬기면서 받은 어려움에 대해 감찰하시고 기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오늘 다시 기억해야 한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사찰하게 되었는가도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형편을 돌아보시며 긴급하게 도울일이 있는가 살펴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성도들을 향한 사찰이라면, 감사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불이익을 주기 위한 불법적 사찰이라면 이것은 아니 아니 아니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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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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