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장별요약_신영복] 2장. 사실과 진실


  1. '' 다루는 것은 우리의 인식의 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함이다.

 

  1. 시인이 구상하는 언어는 언어의 일반적 의미를 살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어는 언어의 개념적 의미를 뛰어 넘는다. 따라서 시는 기존의 인식틀을 깨는 언어이며,  우리는 시를 통해 고정적인 인식틀을 깨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갈 있다. 

 ) 연탄재(안도현)_ 연탄재의 의미가 아니라, 자기를 아낌없이 불태운 사람의 초상

     간장 게장에 관한 '스며드는 ' 알을 품은 게가 간장이 쏫아디는 안에서 더이상 자식을 지킬 없는 상황이 되었을 마지막 알들에게 하는 '저녁이야. 불끄고 시간이야'  간장 게장은 더이상 간장 게장이 아니다.

 

  1. 시경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사실성'이다.

세계 인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진실'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경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사실인가 보다는…) 예를 들어 맹강녀 전설을 통해서 (만리장성 축조에 강제 동원된 남편을 찾아온 여인에 대한 슬픈 사연) 전설이 사실은 아니겠지만(30)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가를 묻는다면 전설쪽이 가깝다고 봐야 한다. 사실이라는 것은 '레고 조각' 불과하고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있다.

시는 언어를 뛰어 넘고,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인 셈이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러해야 한다.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

 _ '진실' '사실'이라는 것으로 발가벗겨버리면 진실은 매우 초라해지고 부끄러운 것이 수도 있다. (최근 '사실'(팩트) 강조하든 시대와 정보 제공능력은 '진실' 나아갈 있는 경우를 제한한다.) 사실의 이름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시대는 건강한 것인가?

 

  1. 자신의 인생을 각색하는 일흔 넘은 노인의 이야기

자신의 인생을 점점 각색하며 신입 죄수에게 말해주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사실의 삶이 아니라 진실(약간은 미화되고 각색된) 삶으로 그를 읽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진실의 삶에는 소망과 반성이 있는 주인공으로서 그를 이해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_ 사실과 진실, 각색된 사실로서의 진실(소망과 반성이 담긴) 담았다는 관점(성경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으로도 참고하는 것에 대한 검토)

 

  1. 시란 본질적으로 세계 인식의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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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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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여행


  1. 강의의 상한선은 '공감'이다.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 ,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것이 우리 감정과 생각이 이런 것이었구나(일반성) 대한 안도감을 있는 것이 공감이다. 공감은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며 약속으로 이어진다. (우정도 같은 맥락에서 있다.)

 

  1. 함께는 '지혜'이다.

영국의 과학자이자 우생학의 창시자인 골턴이 여행 시골의 가축 품평회 행사를 보게 된다. 소의 무게를 알아맞추는 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표를 사서 자기가 생각하는 소의 무게를 적어서 투표함에 넣는 것이다.  나중에 소의 무게를 재서 가장 근접한 사람에게 소를 상품으로 주는 행사다. .. 놀라운 것은 800개의 표중 알아볼 없는 13장을 제외한 787개의 표에 적인 무게를 평균했더니 1,197파운드였다. 실제 소의 무게는 1,198파운드였다. 군중을 사람으로 보면 완벽한 판단력이다.

집단의 지적 능력과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1. 공부란,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창조다.  고전 공부는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실천이다.  따라서 모든 고전 텍스트는 3 읽어야 한다. 텍스트를 읽고 다음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는 삼독이어야 한다.

니체는 '철학은 망치로 한다' 했다. 우리가 갇혀 있는 완고한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라는 뜻이다.

 

  1.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사고가 아니라 잊지 못하는 마음으로서의 생각을 말한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해 하는 생각을 말한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애정과 공감이다.(포용이다.) - 생각은 객관성이 아니라 관계성에 근거한 생각이다.

가슴에서 발로 내려가야 참된 공부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는 사람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렇게 억척스럽게 어리석은 사람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되어 왔다.

 

  1. 변화와 창조는 언제나 변방부에서 이루어진다.  세계 역사는 변방국가들로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의 변방 영국이 그랬고, 식민지였던 미국이 그렇다. 그러나 변방으로부터의 변화는 공간적 변방만이 아닌데(중국의 경우. 변반성의 유입) 변방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 변방은 사회적 약자라고도 있는데,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통해서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가늠할 있다.  변방을 인정하고, 변방을 인정한다는 것을 사회의 요소로 받아들일 있다면 사회는 변화를 이룰 있다.

 

변방이 창조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랙스' 없어야 한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랙스가 청산되지 않는 변방은 결코 창조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중심부보다 완고한 교조적 공간이 뿐입니다.(섹트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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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기

이사야가 소명을 받은 시기는 웃시야 왕이 죽는 해인 주전 739년경이다. 이사야의 예언 사역은 적어도 히스기야 시대까지 적어도 주전 701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뒤까지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1. 역사적 정황

시기는 후에 북왕국의 침입, 사마리아의 몰락 그리고 유다의 엄청난 파괴를 주도산 신앗수르 제국의 발흥과 패권을 경험한 격동의 세기였다.

이사야의 소명 시기는 공교롭게도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주전 740-738년에 1 서부 원정을 지휘하면서 앗수르가 새로운 위협의 대상으로 등장한 일치한다. (성경배경주석, 구약 841, IVP)

 

  1. 역사적 분기점

(1) 1:1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를 걸쳐 이사야가 받은 예언

(2)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3) 7:1 아하스 때에 아람의 르신과 이스라엘 베가가 올라와 예루살렘을 공격

  - 아하스 왕과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림(7:2)

  -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말씀을 전함(지지 않을 것이니 견고할 것을 격려)

  - 아하스는 믿지 못하고 여전히 두려워 (흔들림)

  - 이사야의 예언: 열국의 심판 /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신다.(열방을 심판할)

     바벨론도 마찬가지, 모압, 암몬, 블레셋… 애굽도 마찬가지다.(애굽을 의지 말라)

(4) 36:1-37 히스기야 14 앗수르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함

  -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앗수르로부터 구원받음(앗수르의 심판)

(5) 38:1-39:8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 / 바벨론의 사자들의 방문(바벨론 포로 예언)

(6) 40-66 희망과 회복의 약속(구원자의 약속) /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회복

  - 고레스를 도구로 쓰시겠다.(페르시아. 45)

  - 바벨론을 심판하시겠다.( 47)

  - 이스라엘의 회복(49)

  - 고난 받는 종을 통한 회복(53)

  - 회복으로의 초청(55)

 

  1. 이사야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정리

이사야는 웃시야 말렵부터 히스기야 왕까지 사역했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 대한 내용이다. 유대 왕조가운데 그래도 인정받았던 웃시야 왕의 죽음을 통해서 역사적 흐름이 꺾였다고 인식한 이사야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말씀을 받는다. (당시 유다의 상황은 암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는 소명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영적 상황과 맞물려 국가적 상황도 위태롭게 되었다. 그것은 아하스 때에 아람(르신) 북이스라엘(베가) 유다를 공격한 것이다.  아하스는 정신을 못차리고 두려워할 오히려 이사야 선지자는 , 하나님의 전적 구원을 선포하고 믿을 것을 요구했으나 아하스는 믿지 못한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증거를 선포하지만, 여전히 아하스 왕은 믿기를 어려워 한다.

 

이런 정황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10-35)

앗수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분노를 표출하신다. 사용하신후 앗수르도 심판하신다.  바벨론도 심판하신다.  블레셋을 심판하신다. 모압을 심판하신다.  에브라임과 다메섹을 심판하신다. 구스와 애굽도 심판하신다. 두마와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 셉나에 대한 경고, 두로와 시돈에 대한 경고, 모압… 에브라임의 밟힘. // 애굽과의 맹약은 헛되다.(애굽의 도움을 의지하지 말라)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도 앗수르의 위협이 있었다.(36) (아하스 때에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위협이었으나, 때는 앗수르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았다.(왕하 16) 이제 앗수르에 의해서 유다가 멸망의 위협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아하스 왕처럼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 앗수르로부터 유다를 보호하시고, 앗수르를 크게 심판하셨다.

 

그러나 하나의 잠재적 위험이 히스기야 때에 있었다.(38) 그것은 히스기야가 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바벨론의 신하들의 방문을 받았고, 그가 바벨론의 신하들에게 궁중 소유를 전부 보여주었다.(바벨론을 우방국으로 성급히 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펼쳐지게 바벨론에 의한 침략의 전조와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이사야 40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의 회복(바벨론 포로의 상황을 염두해 ) 대한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구원자(하나님의 사자) 등장한다. 오히려 사건을 통해서 이전의 백성으로서의 회복이 일어날 것이고 완전한 통치자(구원자) 것을 예고한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돌이켜 앞에 나오기를 요청한다.( 55)



[참고: 이사야서의 저자와 목적 문제]

이사야서 40-66장이 8세기의 이사야에 의해서  쓰여졌든지 아니면 후대에 그의 통찰력을 적용한 다른 저자에 의해 쓰여졌든지 간에 장들은 주로 포로시대의 공동체에게 말해진 것임이 분명하다.(독자의 상황) (E. J. Young 1958,71) 지적한 바와 같이 1-39장은 '앗시리아 시대에서 갈대아 시대로 다가가는 계단을 제공해 준다. 양자는 함께 속해 있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의 준비이며, 후자는 전자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 최신구약개론, 레이모든 딜러드 /트럼퍼 롱맨 공저(박철현 번역), 크리스찬 다이제스트(414)

 

  * 신명기의 34장을 모세가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오경에 대한 모세의 저작을 받아들이는 것에 문제가 없듯이, 40-66장을 후대의 사람이 이사야의 통찰을 적용하여 작성했다고 본다고 하더라도 이사야의 저작을 인정하는 것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40-66장의 영감에 있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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