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한국 2016대회 홍보 영상 인터뷰


조직위원장: 김수억


저는 선교한국 2016 대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수억 목사라고 합니다. 현재 죠이선교회 대표로 섬기고 있습니다. 죠이선교회가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선교대회인 선교한국 대회를 2016년에 주관하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선교한국 대회는 저희 단체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교대회입니다. 제 1회 대회인 선교한국 88대회가 있던 1988년은 죠이선교회 창립 30주년 기념 선교대회를 기획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학생선교단체와 해외파송단체 그리고 교회가 함께 연합하여 진행한 선교한국 88대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선교한국 88대회는 죠이선교회에서 주관해서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선교한국 대회가 한국 교회의 “청년대학생들을 선교자원”으로 이끌어 내고, 한국 교회에 “선교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선교한국 대회는 선교한국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선교한국 2016 대회는 이제 28년의 역사를 지나 이제 15회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선교한국 대회에는 6만명 가까운 인원이 참석했고, 그 중에 3만5천여명이 세계 선교를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지 헌신하겠다는 결단을 했습니다. 선교전략가인 ‘랄프 윈터’(1992년)는 선교한국 대회를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선교대회’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선교한국 대회가 참석자들의 규모 뿐 아니라 42개 단체(교회(5)와 파송단체(26) 그리고 학생선교단체(11))의 성공적인 연합운동이란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선교한국 대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인 ‘선교’를 궁극적으로 지향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성취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연합’의 정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스피릿으로 지난 28년간 진행해온 선교한국 대회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선교한국 대회는 한국 교회의 자랑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선교한국 2016년 대회에 대해서 3가지만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이번 대회는 2000년 대회 이후 16년만에 다시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가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장소의 제약으로 인해 참석하시는데 불편함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한국 2016 대회는 장소 면에서 이전 대회에서 있었던 많은 불편함을 어느 정도 해소해 드릴 것입니다. 둘째는 선교한국 2016대회의 주제입니다. 대회의 주제는 히브리서 13:13에 있는 구절 ‘그런즉 우리도’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본받음’입니다. 선교적 삶을 살았던 예수님을 본받고, 선교적 제자로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의 치욕을 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선교한국 2016 대회의 주관단체가 죠이선교회라는 것입니다. 제가 죠이선교회에서 경험한 것은 ‘즐거운 헌신’이었습니다. 죠이선교회에서 주관한 대회인 만큼, 즐겁고 유쾌한 헌신이 풍성한 선교대회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런즉 우리도’ 여러분을 선교한국 2016 대회에 기쁨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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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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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순화 시켜서 정리해 본다면,

종교 개혁당시 로마 카톨릭은 성경의 권위를 넘어 교회의 전통에 선 기독교고, 
재세례파는 교회의 역사적 성취(전통)보다는 성경, 좀 더 엄밀하게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선 기독교라고 볼 수 있겠다.


개혁주의자들은 사실 이 둘 사이에 신학적인 둥지를 틀었다고 볼 수 있는데
가장 극단적인 두 입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편의대로 때로는 성경의 잣대를 가져다 쓰고, 때로는 전통의 잣대를 가져다 썼기에 이중 잣대를 자신의 입맛에 따라 쓴다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지금의 개혁주의에 두가지 큰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데


하나는 로마 카톨릭이나 재세례파(메노나이트)가 무리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한 잣대를 꾸준히 사용하면서 나름 그 '진정성'을 인정받아가는 것 같은데, 개혁주의 교회는 이중 잣대를 일관성이 아닌(자기 희생의 관점이 아닌) 자기의 편의대로 사용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줌으로 그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하나는 로마 카톨릭은 그 교황의 영향력(전통 해석의 결정권자?)이 크고, 재세례파(메노나이트)는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영향력이 크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혁신적인 행보(예수의 삶과 닮은)는 세속 세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향한 교황의 말과 행동이 삶의 현장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재세례파(메노나이트)의 가르침도 급진적이다. 삶에 있어서 예수의 가르침을 문자적을 실천하려는 결단이 진보적 진영에서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개혁주의들의 태도는 애매하다.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는 미온적이면서 이사람 저사람들을 판단하는데는 능숙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교리로 이 신앙, 저 신앙을 칼질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관념만 남고 실천과 삶에서는 격리된 기독교로 전락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는 지점이다.


나는 개혁주의 입장의 신학을 공부했고, 지금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개혁주의가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전통과 성경을 모두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이 가지는 이런 귀한 장점을 살려내지 못하고, 위에서 우려하는 바 이중 잣대를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양 진영과의 치열하게 싸워오면서 몸에 밴 '싸움꾼'적 기질을 극복하지 못하면 개혁주의의 칼은 망나니의 그것일뿐 요리사의 그것이 되지는 못한다.


_ 메노나이트 신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의 책(급진적 제자도, 죠이)을 읽다가 괜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급히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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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모여서 반갑기도 하지만 괜한 긴장과 갈등이 유발되기도 하지요. 추석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지만 추석 즈음에서 있었던 일이라 잠시 나누어 봅니다.


몇 일전 아내가 잠자리에서 저에게 '꿈'이야기를 해주더라구요. 이상한 꿈(악몽)을 꿨다고... 백화점 같은 곳에서 상점 옷을 입어보기 위해서 간이 탈의실에 들어갔는데.. 그 탈의실은 좁고 길더라는 것입니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왠 남자가 우산으로 자기를 막 찌르더라는 것입니다. 듣고 있는데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그러면서 제게 묻는 말이 그 사람이 누군지 아냐고 하더군요. 저는 '그게 나야?'하고 답했죠. 직감적으로 저라는 것을 알았죠.


사실 그 몇 일전 사소한 일로 아내를 향해 소리를 높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의자 위에 올라가있는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의자 위에서 아내를 향해 좀 큰 소리로 말했는데, 아내의 말로는 그 때 제 입에서 '화살'이 나와서 자신에게 박히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적지않게 큰 상처가 되었나 봅니다. 사실 저도 그 상황을 기억하고는 있지만, 아내가 먼저 그릇된 책임추궁을 해서 순간 억울한 마음에 큰 소리를 낸 것이라 아내의 잘못도 없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몇 일 좀 어색한 시간을 보내면서 제가 몇 차례 관계를 풀어보려고 시도하면, 그 때마다 차갑게 대했기 때문에 저도 오기가 나서 먼저 풀려고 하지 않은채로 몇 일을 지내온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내가 '꿈'을 꾼것입니다. 아내가 그 꿈이야기를 할 때, 저는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내가 무릎을 꿇어야 용서해 준다고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 때, 큰 소리를 낸 것에 대해서는 잘한 것은 아니지만 아내가 먼저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잘못이 있다면 반반의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무릎까지 꿇고 사과한 것은 아내로 하여금 심적 정서적 상처를 받게 만든 원인이 내게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빨리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은 아닐지 모릅니다.(저는 지금도 그렇게 큰 소리는 내지는 않았다고 기억됩니다. 어쩌면 그 당시 아내의 마음 상태가 약했기 때문에 평소보도 더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도, 제가 의자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아내는 저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었기 그것을 풀어주어야 할 사람은 저였습니다. 제 생각보다 아내는 더 큰 충격을 받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할 거라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은 상처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듯 합니다. 상대방이 문제인지 아니면 상처를 입은 우리 자신이 심약해서 인지는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알려주지 않으면 상대방은 모릅니다. 저처럼 말이지요) 공교롭게도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에게 대해서 진지한 사과를 해야 합니다. 객관적인 잘못을 했다기보다는 '나의 부주의와 무심함'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가져야 합니다.


가족은 너무 익숙하고 친해서 모르고 지나가는게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체를 모를 뿐 없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가족 구성원 중 약한 사람에게 가장 심적으로 불안정한 순간에 분노와 함께 드러나게 되곤 합니다. 그 아픔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그 상황을 옳고 그름의 장이 아니라 화해의 장으로 이끌어야 함을 깨달은 누군가가 '무릎'을 꿇어주는 마음이 없이는 '평화'란 없습니다. 가족 안에서 조차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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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장별요약_신영복] 4장. 손때 묻은 그릇


  1. 구조주의와 역사(아날학파의 창시자. 브로델)

피라미드의 가장 하층부를 구조사,  피라미드의 중간부를 국면사, 위의 상층부를 사건사로 비유했다.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사건이나 국면을 넘어 구조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1. 자리와 권위

자리와 관련해서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권력의 자리에 앉아서 자리의 권능을 자기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그것을 구분해야 한다. 알튀세르의 비유가 신랄하다. "히말라야 높은 설산에 사는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동상이 아니었다. "평지에 사는 코끼리보다 자기가 크다고 착각하지 않는 "이다. 다른 사람을 부려서 하는 일이 자기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사람과 자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움 속에서 형성된 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은 없다.

 

  1. 주역: 독법의 관계론(64 384. 주역은 무수한 관계속에서 의미를 읽는 )

 (1) 남자 명과 여자 명이 동행하는 경우 누가 결정권을 행사할 같은가? 반대로 여자 명과 남자 명이 함께 일하거나 여행하는 경우 단연 마이너리티 우선이다. 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존재성을 변화시키는 '주역' 관계론이라 있다.

 

 (2) 주역은 세계에 대한 인식틀이다. 윤리적인 교훈이 아니다.  실제로 완성 괘는 미완성 앞에 배치되어 있다. 완성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어떤 국면의 완성일 궁극적인 완성이란 있을 없습니다.

 

  1. 감옥에서의 경험: 이름을 묻는 고암 선생

신입에게 이르을 묻고, '응일'이라고 답하자. 고암 선생은 ' 아들이 징역 있구먼'하고 혼자말로 말하다. 이름에 ''자가 들어가면 대게 맏아들이다.

동안 죄수는 자신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부모님과 누이 생각으로 잠을 이룰 없었다. 누이 동생 시계를 훔쳐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각성을 일으킨다.)

 

  1. 주역의 역할

뜨는 그릇 비유: 바닷물을 그릇으로 뜨면 그릇에 담긴 물은 바닷물이지만, 바다는 아니다. 그렇지만 물은 어차피 그릇으로 밖에 없다. 주역이 비록 부족하고 작은 그릇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세계를 뜨기 위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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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장별요약_신영복] 3장. 방랑하는 예술가


  1. 이상과 현실의 관계

이상과 현실은 대립의 관계가 아니다. 현실과 이상은 반드시 함께 있다. 그래서 '이상' '현실의 존재 형식'이라고 있다. 현실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이상화되고 반대로 이상은 끊임없이 현실화되고 있다. 엄마와 , 현실과 이상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이나 상황이 그렇다. 개체는 전체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분리할 없다. …

 

  1. 이론과 실천의 관계

이론과 실천은 함께 갑니다. 실천의 경험을 정리하면 이론이 됩니다. 이론은 다음 실천의 지침이 되고 동시에 진리성이 검증되면서 이론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이론과 실천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좌와 우도 마찬가지다.

 

비전향 장기수: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

 

  1. 게바라의 평전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이룰 없는 이상은 반드시 하나씩 가져라" 현실을 존중하되 이룰 없는 , 그걸 놓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현실의 조각 그림을 뛰어 넘어  진실을 창조하려고 하는 고민이 바로 이상과 현실을 결합하려는 노력 아닐까 생각한다.

 

  1.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근대적 패러다임 중에서 가장 완고한 것이 '인과론'입니다. 사물을 원인과 결과 관계로 질서화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과관계가 현실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단선적이고 기계적인 사고방식이 환원론이며 인과론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는 생명체가 자리가 없다. 동양적인 사유에는 이런 인과론이나 환원론이 없다.

  - 근대적 이론과 논리로만 생각하지 말라. 이상과 현실이 대립이 아닌, 건강한 긴장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성해 과는 요소로서 생각해야 한다.

 

  1. 상상력(논리성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세상을 보라/ 작은 것에서 것을 찾으라)

작은 , 사소한 문제 속에 담겨있는 엄청난 의미를 읽어 내는 것이 상상력이다.  작은 것은 것이 다만 작게 나타났을 뿐입니다.  빙산의 몸체를 있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세상에 사소한 것이란 없다. 다만 사소하게 나타났을 뿐이다.

  - 마리의 제비를 보면,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공부란 이와 같은 능력을 키우는 훈련이어야 한다. (문사철과 시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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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장별요약_신영복] 2장. 사실과 진실


  1. '' 다루는 것은 우리의 인식의 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함이다.

 

  1. 시인이 구상하는 언어는 언어의 일반적 의미를 살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어는 언어의 개념적 의미를 뛰어 넘는다. 따라서 시는 기존의 인식틀을 깨는 언어이며,  우리는 시를 통해 고정적인 인식틀을 깨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갈 있다. 

 ) 연탄재(안도현)_ 연탄재의 의미가 아니라, 자기를 아낌없이 불태운 사람의 초상

     간장 게장에 관한 '스며드는 ' 알을 품은 게가 간장이 쏫아디는 안에서 더이상 자식을 지킬 없는 상황이 되었을 마지막 알들에게 하는 '저녁이야. 불끄고 시간이야'  간장 게장은 더이상 간장 게장이 아니다.

 

  1. 시경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사실성'이다.

세계 인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진실'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경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사실인가 보다는…) 예를 들어 맹강녀 전설을 통해서 (만리장성 축조에 강제 동원된 남편을 찾아온 여인에 대한 슬픈 사연) 전설이 사실은 아니겠지만(30)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가를 묻는다면 전설쪽이 가깝다고 봐야 한다. 사실이라는 것은 '레고 조각' 불과하고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있다.

시는 언어를 뛰어 넘고,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인 셈이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러해야 한다.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

 _ '진실' '사실'이라는 것으로 발가벗겨버리면 진실은 매우 초라해지고 부끄러운 것이 수도 있다. (최근 '사실'(팩트) 강조하든 시대와 정보 제공능력은 '진실' 나아갈 있는 경우를 제한한다.) 사실의 이름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시대는 건강한 것인가?

 

  1. 자신의 인생을 각색하는 일흔 넘은 노인의 이야기

자신의 인생을 점점 각색하며 신입 죄수에게 말해주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사실의 삶이 아니라 진실(약간은 미화되고 각색된) 삶으로 그를 읽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진실의 삶에는 소망과 반성이 있는 주인공으로서 그를 이해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_ 사실과 진실, 각색된 사실로서의 진실(소망과 반성이 담긴) 담았다는 관점(성경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으로도 참고하는 것에 대한 검토)

 

  1. 시란 본질적으로 세계 인식의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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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여행


  1. 강의의 상한선은 '공감'이다.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 ,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것이 우리 감정과 생각이 이런 것이었구나(일반성) 대한 안도감을 있는 것이 공감이다. 공감은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며 약속으로 이어진다. (우정도 같은 맥락에서 있다.)

 

  1. 함께는 '지혜'이다.

영국의 과학자이자 우생학의 창시자인 골턴이 여행 시골의 가축 품평회 행사를 보게 된다. 소의 무게를 알아맞추는 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표를 사서 자기가 생각하는 소의 무게를 적어서 투표함에 넣는 것이다.  나중에 소의 무게를 재서 가장 근접한 사람에게 소를 상품으로 주는 행사다. .. 놀라운 것은 800개의 표중 알아볼 없는 13장을 제외한 787개의 표에 적인 무게를 평균했더니 1,197파운드였다. 실제 소의 무게는 1,198파운드였다. 군중을 사람으로 보면 완벽한 판단력이다.

집단의 지적 능력과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1. 공부란,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창조다.  고전 공부는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실천이다.  따라서 모든 고전 텍스트는 3 읽어야 한다. 텍스트를 읽고 다음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는 삼독이어야 한다.

니체는 '철학은 망치로 한다' 했다. 우리가 갇혀 있는 완고한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라는 뜻이다.

 

  1.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사고가 아니라 잊지 못하는 마음으로서의 생각을 말한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해 하는 생각을 말한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애정과 공감이다.(포용이다.) - 생각은 객관성이 아니라 관계성에 근거한 생각이다.

가슴에서 발로 내려가야 참된 공부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는 사람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렇게 억척스럽게 어리석은 사람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되어 왔다.

 

  1. 변화와 창조는 언제나 변방부에서 이루어진다.  세계 역사는 변방국가들로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의 변방 영국이 그랬고, 식민지였던 미국이 그렇다. 그러나 변방으로부터의 변화는 공간적 변방만이 아닌데(중국의 경우. 변반성의 유입) 변방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 변방은 사회적 약자라고도 있는데,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통해서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가늠할 있다.  변방을 인정하고, 변방을 인정한다는 것을 사회의 요소로 받아들일 있다면 사회는 변화를 이룰 있다.

 

변방이 창조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랙스' 없어야 한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랙스가 청산되지 않는 변방은 결코 창조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중심부보다 완고한 교조적 공간이 뿐입니다.(섹트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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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기

이사야가 소명을 받은 시기는 웃시야 왕이 죽는 해인 주전 739년경이다. 이사야의 예언 사역은 적어도 히스기야 시대까지 적어도 주전 701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뒤까지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1. 역사적 정황

시기는 후에 북왕국의 침입, 사마리아의 몰락 그리고 유다의 엄청난 파괴를 주도산 신앗수르 제국의 발흥과 패권을 경험한 격동의 세기였다.

이사야의 소명 시기는 공교롭게도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주전 740-738년에 1 서부 원정을 지휘하면서 앗수르가 새로운 위협의 대상으로 등장한 일치한다. (성경배경주석, 구약 841, IVP)

 

  1. 역사적 분기점

(1) 1:1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를 걸쳐 이사야가 받은 예언

(2)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3) 7:1 아하스 때에 아람의 르신과 이스라엘 베가가 올라와 예루살렘을 공격

  - 아하스 왕과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림(7:2)

  -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말씀을 전함(지지 않을 것이니 견고할 것을 격려)

  - 아하스는 믿지 못하고 여전히 두려워 (흔들림)

  - 이사야의 예언: 열국의 심판 /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신다.(열방을 심판할)

     바벨론도 마찬가지, 모압, 암몬, 블레셋… 애굽도 마찬가지다.(애굽을 의지 말라)

(4) 36:1-37 히스기야 14 앗수르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함

  -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앗수르로부터 구원받음(앗수르의 심판)

(5) 38:1-39:8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 / 바벨론의 사자들의 방문(바벨론 포로 예언)

(6) 40-66 희망과 회복의 약속(구원자의 약속) /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회복

  - 고레스를 도구로 쓰시겠다.(페르시아. 45)

  - 바벨론을 심판하시겠다.( 47)

  - 이스라엘의 회복(49)

  - 고난 받는 종을 통한 회복(53)

  - 회복으로의 초청(55)

 

  1. 이사야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정리

이사야는 웃시야 말렵부터 히스기야 왕까지 사역했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 대한 내용이다. 유대 왕조가운데 그래도 인정받았던 웃시야 왕의 죽음을 통해서 역사적 흐름이 꺾였다고 인식한 이사야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말씀을 받는다. (당시 유다의 상황은 암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는 소명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영적 상황과 맞물려 국가적 상황도 위태롭게 되었다. 그것은 아하스 때에 아람(르신) 북이스라엘(베가) 유다를 공격한 것이다.  아하스는 정신을 못차리고 두려워할 오히려 이사야 선지자는 , 하나님의 전적 구원을 선포하고 믿을 것을 요구했으나 아하스는 믿지 못한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증거를 선포하지만, 여전히 아하스 왕은 믿기를 어려워 한다.

 

이런 정황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10-35)

앗수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분노를 표출하신다. 사용하신후 앗수르도 심판하신다.  바벨론도 심판하신다.  블레셋을 심판하신다. 모압을 심판하신다.  에브라임과 다메섹을 심판하신다. 구스와 애굽도 심판하신다. 두마와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 셉나에 대한 경고, 두로와 시돈에 대한 경고, 모압… 에브라임의 밟힘. // 애굽과의 맹약은 헛되다.(애굽의 도움을 의지하지 말라)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도 앗수르의 위협이 있었다.(36) (아하스 때에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위협이었으나, 때는 앗수르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았다.(왕하 16) 이제 앗수르에 의해서 유다가 멸망의 위협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아하스 왕처럼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 앗수르로부터 유다를 보호하시고, 앗수르를 크게 심판하셨다.

 

그러나 하나의 잠재적 위험이 히스기야 때에 있었다.(38) 그것은 히스기야가 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바벨론의 신하들의 방문을 받았고, 그가 바벨론의 신하들에게 궁중 소유를 전부 보여주었다.(바벨론을 우방국으로 성급히 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펼쳐지게 바벨론에 의한 침략의 전조와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이사야 40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의 회복(바벨론 포로의 상황을 염두해 ) 대한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구원자(하나님의 사자) 등장한다. 오히려 사건을 통해서 이전의 백성으로서의 회복이 일어날 것이고 완전한 통치자(구원자) 것을 예고한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돌이켜 앞에 나오기를 요청한다.( 55)



[참고: 이사야서의 저자와 목적 문제]

이사야서 40-66장이 8세기의 이사야에 의해서  쓰여졌든지 아니면 후대에 그의 통찰력을 적용한 다른 저자에 의해 쓰여졌든지 간에 장들은 주로 포로시대의 공동체에게 말해진 것임이 분명하다.(독자의 상황) (E. J. Young 1958,71) 지적한 바와 같이 1-39장은 '앗시리아 시대에서 갈대아 시대로 다가가는 계단을 제공해 준다. 양자는 함께 속해 있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의 준비이며, 후자는 전자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 최신구약개론, 레이모든 딜러드 /트럼퍼 롱맨 공저(박철현 번역), 크리스찬 다이제스트(414)

 

  * 신명기의 34장을 모세가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오경에 대한 모세의 저작을 받아들이는 것에 문제가 없듯이, 40-66장을 후대의 사람이 이사야의 통찰을 적용하여 작성했다고 본다고 하더라도 이사야의 저작을 인정하는 것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40-66장의 영감에 있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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