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훔 1:9-15 대적자의 용도와 최후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니느웨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악한 계획을 세운 것을 지적하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유다에 대한 회복을 이어서 말씀하심으로서 니느웨의 심판과 유다의 회복이 상호 연관관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제압하시니, 유다는 절기를 지키고 하니님께 맹세한 것들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절별 해설

1:9 <<너희가 여호와를 대적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니느웨가 여호와를 직접적으로 대적하려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여호와의 백성인 유다 백성들을 위협함으로서 여호와를 대적하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니느웨를 오히려 하나님이 먼저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을 말씀하신다.


1:10 <<그들은 ... 포도주에 취한 사람 같다>> 술에 만취한 사람을 물리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듯이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을 대적 하여 멸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듯 쉬운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말라 버린 지푸라기처럼 이내 타 버릴 존재에 불과하다.


1:12 <<유다야, 내가 너를 심판했지만 다시는 너를 심판하지 않겠다>> 유다도 하나님 앞에서 잘못이 없지 않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잘못에 대해서 니느웨 라는 막대기를 사용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니느웨라는 심판의 막대를 꺾으시기로 작정하셨다. 니느웨를 다시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기로 한 것이다. 


1:14 <<네가 악하므로 네 무덤을 파겠다>> 하나님은 니느웨가 악함으로 그들의 자손을 끊고, 신전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겠다고 하신다. 이들은 민족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끊어 버리시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멸절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바벨론에 의해서 니느웨는 멸망한다. 


1:15 <<유다 백성아, 너희 절기를 지키고>> 나훔서가 니느웨 백성들의 멸망을 예언하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이 예언의 말씀은 유다 백성들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실테니, 이제 너희들은 절기를 지키고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현재 유다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 


기도

주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주를 위해 당하는 고난 앞에서 이것은 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임을 믿음으로 보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악에 대해 두가지 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공격할 때, 사단은 우리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하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하시고, 그와 싸울 준비를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라면 그 싸움이 하나님의 승리가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그들이 성도들에게 악을 행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악이 얼마나 큰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성도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화가 가득한 피의 성에 대한 묘사(니느웨의 멸망 모습)


  1) 무수한 시체들이 시체들에 걸려 넘어진다. 

  2)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 그가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였다. 


* 니느웨는 여러 민족을 미혹하고 넘어뜨렸음을 묘사한다.


  3)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가 치마가 들려 얼굴에 이르는 수치를 당하듯 이 나라를 벌거벗겨 이 나라의 부끄러움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다. 

  4) 니느웨를 곁에서 지켜보던 모든 자들이 도망치며, 니느웨의 황폐함을 애곡할 것이다. 


   (1) 노아몬은 강들 사이에 있어서 그 강과 바다가 그의 방어벽이 되었고

   (2) 구스와 애굽은 그 힘이 강하여 끝이 없고, 붓과 루빔이 그를 돕는 자가 되었으나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들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가고 말았다. 자녀들은 죽임을 당하고 존귀한 자들은 나뉘어졌고, 모든 권세자들은 사슬에 결박되었다. 

   (4) 그러니 너도 자랑하지 말고, 술에 취하여 숨으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5)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고 대비하라. 메뚜기처럼 네 숫자를 많게 하라. 

  6) 그러나 그 많은 병사들도 메뚜기의 날아감같이 한 순간에 사라져갈 것이다. 

  7)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는 자고 네 귀족들은 누워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자가 없도다.

  8)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다. 

  9) 네가 고통을 당하여도, 너를 돕는자는커녕 너로 인해 고통 당했던 자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묵상 한 모금]


1. 니느웨(앗수르)의 멸망을 다룬다.그 멸망을 안타깝게 다룬다기 보다는 고소하다고 여겨지도록 다룬다. 그 동안 니느웨가 힘과 능력으로 많은 주변 사람들을 능멸했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니느웨의 멸망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민족들은 니느웨를 조롱한다. 전쟁이 임할 것이니, 성을 쌓고 병사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병사들은 메뚜기 떼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니느웨의 멸망을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이 들때에라야 할 수 있는 말들을 쏟아낸다.  그 만큼 니느웨의 멸망은 확실한 것이라고 나훔은 보았다. 


2. 마지막 종말의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악인의 멸망을 많은 의인들이 기뻐하며 고소해할 것이다. 그것은 이전까지 악인들의 행태가 얼마나 악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고한 자를 죽이고 모함했다. 약한자를 두 번 죽이는 행태를 자행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때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악과 거짓증언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악인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은 의인을 이스라엘로 보고, 심판받아야 할 악인은 앗수르였다. 신약 시대로 와서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다. 반면 심판받아야 할 악인은 특정 대상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사단과 그 세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반드시 망할 것이다. 이 확신과 내용이 없다면, 오늘은 사는 하나님의 의지하는 약자들은 절망적이다. 사망이 끝이 아니라 부활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시편 24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과 보좌가 산위에 있는 이미지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은 몸과 마음이 깨끗하며 정결한 자들이며 충성된 자들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의를 얻게 될, 축복받을 사람들이다. 이제 그 영광의 왕이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위해서 그 성으로 향하여 들어가고 모든 문들은 열린다. 곧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살았던 충성된 자들이 복을 얻게 될 시상식 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정리1]


1. 만물의 창조주가 바다 위에 그의 터를 세우고 건설하셨도다.


  1절.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셨다.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2절)

: 하나님의 나라는 바다 혹은 강 위에 땅을 펼치시고 그 위에 흙과 돌을 쌓아(비유적으로) 산을 세우시고 그곳에 하나님의 성(보좌)을 세우셨다는 것을 의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성과 보좌가 모든 만물 위에 권위로서 존재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2. 누가 그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겠는가? 


  3절.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며

누가 그의 거룩한 곳에 설자인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4절)


: 따라서 그 여호와의 산에 함부로 오를 수 없다. 또한 아무나 오를 수도 없다. 정결하며 깨끗한 자만이 오르며, 충성된 자만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 여호와의 전에 오를 수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의를 얻는다. 이미 그 보좌 앞으로 나아 왔다는 것이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자격을 갖추지 않는자는 그의 산에 오를 수 없고, 그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복을 얻고 의를 얻는 자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이스라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3.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광의 왕이 들어가신다.

   7절. 문들아, 머리를 들지어다.영광의 왕, 전쟁에 능한 여호와가 들어가신다. 

   8절. 영광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 이 장면은 왕이신 여호와께서 그의 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닫혔던 모든 문들이 열리며 왕을 환영하고 왕의 오심을 준비한다. 왕의 영광스러운 입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봐야 한다.


[정리2]


1. 여호와의 보좌(성)은 모든 만물 위에 높고 만물은 그 아래에 있다.


2. 아무나 그 보좌 앞에 이를 수는 없고, 몸과 마음이 깨끗하며 충성된 자만이 그 앞에 이를 수 있게 된다. 


3. 주 앞에 오는 자는 복을 얻으며 의를 얻게 된다. 


4. 그와 같은 만군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이제 그 성으로 들어가시니, 문을 열고 맞이하라. 


5. 그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몸과 마음이 깨끗한 자들과 충성된 자들을 복주고 의롭다라고 인정해 주시기 위해서 등장하시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다.(결국 정결하며 충성된 자들은 영광의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받을 것임을 말하는 내용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시편 4편] 하나님은 어떻게 증거되는가? 고양이가 개가 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고양이가 개 앞에서 여유롭고 넉넉한 태도를 가지고 아량을 베풀어 주는 삶을 통해서다. 하나님의 위대함은 고양이를 개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개보다 더 위대한 고양이를 만드심으로 증명된다. 고양이들이여, 개의 인생을 두려워하지 말라.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기]


1. 서언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본론


<시편기자가 인생들을 향해서 주는 경고>


  1)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2)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을 너희가 알지어다.

   (1) 내가(시편 기자와 그의 백성) 그를(여호와 하나님)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3) 너희는 

   (1)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2)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지어다.

   (3)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3. 결론: 여러 사람들이 주의 백성에게 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우리 안의 확신


  1)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 누구뇨 하오니

   (1)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2)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3)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정리2. 본문의 정황과 시편기자의 심중으로 들어가기]


시편 기자는 현재 하나님을 부르고 찾는 중에 있다. 그리고 주의 얼굴을 들어 자신에게 비추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것은 시편 기자의 상황이 문제가 해결된 상황이 아닌, 현재 문제가 지속되는 상황이며, 가시적인 해결의 실마리고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여러 사람들(인생들, 너희들)은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가 누가 있느냐? 하면서 거들먹 거리고 있다. 그들이 득세하는 것 같고, 하나님의 백성인 시편 기자는 아무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증명해 낼 만한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당연 위축되어 있어야 할 이 사람이, 그들을 향해서 당당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떨며 두려워하라고, 그 앞에서 잠잠하라고, 빨리 의의 제사를 드려 여호와를 의지하는 백성이 되라고 말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들의 입장에서보면 적반하장인 상황인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인생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보다 더 풍성하고 여유있는 태도를 가진다.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여호와께서 마침내 그의 얼굴을 우리 자신에게 비추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노래하고 찬양한 시다. 


[정리3. 본문에서 시편기자가 전해 주고 싶었던 메시지]


1.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셔서 찬양을 받지 않으신다 


시편 기자의 소원은 인생들을 향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는 이방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보란듯이 자신을 증명해 주시길 바랬을 것이다. 힘으로 그들을 정복하고,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을 일으켜 세워서 보란듯이 그들의 교만을 누르시는 방식으로 일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조롱은 더욱 컸고,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에 흔들림은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지금은 아니었지만, 반드시 자신의 손을 들어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확신하고 나니, 그와 같은 하나님을 시편 기자는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찬양이 결과(긍정적)에 대한 찬양이었다는 것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찬양이며, 이방인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자가 믿음이 적은 자도 자연스럽게 하는 찬양이다. 그러나 참된 찬양은 신학적인 확신과 믿음 속에서 나오는 찬양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눈물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찬양이 참된 깊이 있는 찬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백성)의 승리를 믿는 자는 불리한 중에도 여유와 평안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백성들은 지금 패배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기쁨이 충만(7절)하고 평안이 눕고 자기도 한다(8절) 오히려 자신보다 유리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당당하게 권면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의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우리는 전도를 하려고 해도 내가 잘되고, 내가 성공해야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며 살아계신 전능한 하나님이심이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면, 풍부하지 못하면 간증도 전도도 불가능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증명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시지 않는다. 또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옳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가 보여주는 여유과 평온함이 그들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불안정한 기반 속에서도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는 자의 그 삶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방식이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그렇게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여호수아 11장] 북쪽 연합군을 여호수아가 이겨 결국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는 이야깁니다. 여호수아의 모습 속에서 성취하시고 승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마지막 날, 악한 자는 오히려 심판을 자초하는 자리로 자신을 몰고가서 생각보다 신속한 심판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도 갑자기, 심판도 홀연히 오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하솔 왕 야빈이 가나안 북방 왕들을 결집시키고 이스라엘과 전쟁하다.
  1) 하솔 왕 야빈이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및 북쪽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 그들이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다.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고, 말과 병거도 많았다.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내일 이맘 때에 그들을 이맘 때에 넘겨주어 몰살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심.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사르게 하시겠다고 함.
  3) 여호수아와 모든 군대가 메롬 물가로 가서 갑자기 급습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승리함.
  4) 이스라엘은 그 연합군의 머리인 하솔을 취하고 왕을 칼날로 쳐죽였다. 더불어 모든 왕들과 모든 성읍을 진멸하였으되 하솔만 그리하고 산 위에 세운 성읍들은 불사르지는 않았다.
  5)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이 탈취하되 나머지는 멸하였다.
  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한대로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2. 가나안 전쟁에 대한 간략한 정리
  1) 그 땅 산지와 온 네겝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 산지와 평지를 점령함.
  2) 그 땅에 있는 모든 왕들을 잡아 죽였다. 오로지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만 살아남았다.
  3) 그 땅의 왕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나온 것을 통해 그들을 진멸하게 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여 그들을 멸하려고 한 것이다.
  4) 이스라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다. 이스라엘 땅에는 아낙 자손이 하나도 없었다. 오직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아 있었다.
  5)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온 땅을 점령하고,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

 


[구글에서 검색한 이미지 자료]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기브온을 공격하기 위해 연합한 가나안 남부 5왕의 연합군을 이스라엘이 이기자, 이제는 북방에 있는 왕들이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모여 메롬에서 이스라엘 대적하려고 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약속하셨고,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다. 여호수아는 이들이 기대하지 못하는 순간에 급습하여 이들을 공격한다. 당황한 이들은 제대로된 싸움을 해보지도 못한 채 패하고 만다. 하솔 왕을 비롯한 모든 왕이 죽임을 당하고, 모든 성읍의 재물과 가축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에 의해 멸절 당하게 된다.
이와 같은 여호수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된다.


결국 가나안 전쟁을 통해 화친을 맺은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외에는 모든 족속을 이스라엘이 싸워서 점령했고, 그들은 스스로 이스라엘을 대적함으로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한대로 온 땅을 점령했고,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을 주어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


참고로, 그 땅 전역의 아낙 자손들은 다 멸절되었는데 오직 가사와 가드, 아스돗에는 남아 있었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

 

1. 가나안 땅의 북쪽 연합군들은 은혜를 입을 수 없도록 먼저 대적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남쪽 연합군의 기브온 공격으로 시작된 본격적인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은 북쪽 연합군에 의해서도 계속 되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성읍들을 하나씩 격파해 나간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꺼번에 대적함으로서 한꺼번에 승리를 거두게 되는 형식이었다. 물론 전쟁이 시간이 짧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전쟁은 먼저 공격하는 형식이 아닌, 대적하기 때문에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는 형식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이고, 이스라엘은 그 선전포고에 대한 대응을 한 것이다.

 

이런 모양새는 북쪽 연합군들이 먼저 대적자의 자리에 섬으로서 은혜를 스스로 거부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기브온 백성들의 행동과 대조적인 차이를 보인다. 기브온 백성들은 은혜를 얻기 위해 이스라엘 속이기까지 했으니까...

 

이것은 역으로 가나안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마지막 날까지 은혜를 거절하고 대적하여 싸우기를 원한다면 이들에게 남는 것이란 멸망 밖에는 없는 것임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기브온처럼 겸손히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길이다.

 

2. 모세에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성취하는 여호수아

 

본 장에서는 중간 중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여호수아가 모두 이루었다고 강조하고 있다.(15,23절) 이는 약속을 받은 자와 약속을 성취한 자로서의 모세와 여호수아를 말하는 것인데, 신학적으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합친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온전히 성취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세가 구약을 상징하고, 여호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구약은 약속을 받고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약속의 성취로서 오셨다는 측면에서 여호수아와 대응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여호수아게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지도자와 승리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수아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3. 여호수아의 전략은 갑자기 습격하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주무기는 급습이다. 밤에 급습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순간에 갑자기 습격한다. 여호수아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전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그 전술을 활용하여 아이 성도 이겼고, 남쪽 연합군과 북쪽 연합군도 모두 이겼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전투만 빼고 이 전술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략을 극대화했던 지도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아합 왕의 아들 여호람이 여호사밧 왕과 함께,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을 공격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호람이 아버지 아합 보다는 괜찮은 왕이었다는 것이 인상적이고, 이스라엘 연합군이 당한 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그것으로 인해 모압을 쉽게 제압하게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정리1. 내용의 정리]

1.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1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지만,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않았다.
  2)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다.
  3) 그러나 여로보암의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했다.

2. 이스라엘과 유다의 연합군이 모압과의 전쟁을 준비하다. 
  1) 모압 왕 메사가 아합이 죽은 후에 그 동안 바치던 것을 바치지 않고 배반했다.
  2) 여호람은 유다 왕 여호사밧을 청해 모압과 전쟁할 것을 제안했고, 여호사밧은 승낙했다.
  3) 여호사밧의 제안으로 에돔 길을 통해서 가는 중에 가축 물이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됨.
  4) 이스라엘의 왕이 이 일로 인해 난처해 하자, 여호사밧이 여호와께 물을 선지자를 찾게 됨
  5)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이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알린다.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 내려갔다.

3. 엘리사를 찾아간 왕들.
  1) 엘리사는 찾아 온 이스라엘 왕에게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선지자에게로 가라고 비아냥.
  2) 이스라엘 왕이 위급함을 호소하자,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을 위해서는 하지 않겠지만, 유다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예언함.
  3) 엘리사가 받은 예언의 말씀
   (1)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바람도 비도 보이지 않겠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우리라.
   (2) 이 일은 작은 일이고 여호와께서 모압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라. 모압이 완전히 파괴됨
   (3) 아침이 되어 소제드릴 때에 물이 에돔쪽에서 흘러와 그 땅을 가득하였더라.

4. 모압 사람들의 그릇된 판단
  1) 모압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이 보이자, 연합군(이스라엘,유다,에돔)이 분열하여 서로 죽여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하게 됨
  2) 모압의 군인들이 비무장으로 노략하기 위해 달려들다가, 오히려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모압이 완전히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됨
  3) 모압의 전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안 모압 왕이 에돔 진영 쪽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돌파하지 못하게 되자, 자기의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성 위에서 번제로 드렸다.
  4) 이스라엘은 이를 보고 크게 격노함이 있하여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

[정리2. 내용을 나의 말로 재구성하여 정리]

본 장은 이스엘와 모압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 대한 배경과 진행과정이다. 아합 왕이 죽고 난 후 모압은 독립을 하려 했다. 이를 괴씸하게 생각한 이스라엘 왕(여호람)은 유다의 여호사밧을 설득하여 연합으로 전쟁을 치고자 했다. 당시에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도 함께 참전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의 제안으로 에돔의 길로 가서 모압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7일 만에 가축 먹일 물이 떨어지는 위기에 봉착했고 이는 전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이때 여호사밧은 선지자를 찾고,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게 된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왕에게는 반감이 있었지만, 유다 왕 여호사밧을 보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 준다.


이 골짜기에 개천을 파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지는 않겠지만, 물이 찰 것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모압과의 전쟁에서도 완전한 승리를 할 것으로 예언한다.


다음 날 아침 소제드릴 때 쯤 되어서, 모압에서는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모압의 병사들이 이스라엘 연합군이 있는 곳에 햇볕에 반사된 물을 보고는 피라고 오해하고는 연합군이 서로 싸우고 죽인 줄 알고, 전리품을 얻기 위해 무방비로 그들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무방비로 달려드는 모압의 군대를 쳐죽이고는 모압을 점령한다. 완전한 점령을 할 때 즈음에 모압 왕이 도망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다음을 이을 아들을 자신으 신에게 성 위에서 번제로 드린다. 이를 본 이스라엘은 크게 격노하고는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신앙이란 참 역설적이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심각하게 준비되고 진행되던 전쟁이 생각지 못한 문제(물 부족)로 인해 전쟁을 해보지도 못하고 패할 뻔 했다는 것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그 물이 아침 태양에 비취어 <피>처럼 보였기 때문에 모압의 병사들이 착각하고 이로 말미암아 오히려 쉽게 모압이 제압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이 전혀 없던 곳에 물이 생겼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다. 그곳에 물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그곳이 물이 없었기 때문에 모압은 다음 날 아침 물에 비친 태양을 보고는 그것이 <피>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피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곳은 물이 없었던 곳이기에 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물이 없었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위기라고 생각했지만, 물이 없었던 장소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은 반전이 있을 것이다. 물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다고 아우성을 친다. 왜 이런 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하나님께 따진다. 그런데 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하고, 물이 없었기 때문에 복을 누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설적이다. 복음의 적용도 역설적이다. 물이 없어 죽어가던 곳에서 오히려 승리와 생명이 잉태되니 말이다. 역설적이다.

 

2. 이스라엘 왕의 얼굴을 봐서는 아니고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

위기의 순간에 엘리사를 찾아 온 왕들을 향해서 한 엘리사의 고백이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여호사밧은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선지자를 찾았던 왕이다.(왕상 22장. 아합 왕과도 함께) 엘리사는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얼굴마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다. 당신 때문에는 아니지만, 이 사람 때문에 내가 당신을 돕겠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이 바로 나라면 우리는 얼마나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인가? 선한 사람에게만 유익한 자가 아니라, 심지어 악인에게까지도 유익한 자, 악인이라도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인정인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엘리사에게 아무 것도 얻어 낼 수 없었다. 위기의 순간이었음에도.. 그런데 그와 함께 있던 여호사밧으로 인해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여호사밧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여호사밧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여호사밧은 위기의 순간에 두려워 당황하지 않았고, 겸비하여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랬던 여호사밧은 위기의 순간을 구원의 순간으로 바꾼 존재가 되었다.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그 분의 뜻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나는 여호사밧 같은 사람이요, 거룩한 얼굴마담인 것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