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중 자주 언급되는 <나아만 장군>이야기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쳐주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람의 신보다 크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그 고백을 나아만이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더 인상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껏 드러나야 하는 상황에서 <물질>을 탐하므로 여호와의 영광을 물질로 대치할 뻔 했던 게하시의 어리석음도 드러납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1.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에 대한 소개
  1) 하나님께서 아람을 나아만 장군을 통해서 구하게 하신적이 있음.
  2)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가 되었던 나아만.
  3) 이스라엘 출신 종이 이스라엘의 선지자(엘리사)가 나아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함.
  4) 아람의 왕은 그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서신과 예물을 보내어 나아만 장군을 보낼테니 낫게 해달라고 나아만을 위해서 직접 부탁함.

2. 아람 왕의 편지를 받고 이스라엘 왕이 당황하다.
  1)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이 일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걱정함.
  2)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왕을 진정시키고,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말한다.

3.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와 병을 고치기까지
  1) 엘리사는 사자를 보내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함. 낫게 되리라.
  2) 나아만은 자기의 기대와 다름(내게로 와서 서서 그의 신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생각함)으로 인하여 분노하고 떠나갔다.
  3)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을 설득하여 요단강에 씻게 하였고, 일곱 번 몸을 잠그니 나았다.

4. 엘리사에게 예물을 바치려고 하는 나아만 장군
  1) 병을 고침 받은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와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고백하고, 예물을 받아 달라고 요청함.
  2) 엘리사가 예물 받기를 거절하자, 나아만은 다시 받으라고 강권하나 엘리사는 거절함.
  3) 오히려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하는 나아만.(이제부터 번제물과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않겠다고 고백함)
  4) 다만 양해를 구하는 것은 아람 왕을 위해 그가 림몬 신전에 들어가서 경배할 때, 자신의 손을 잡고 하기 때문에 자신이 림몬의 신당에서 어쩔 수 없이 몸을 굽히는 것을 용서해 달라.
  5) 엘리사가 나아만을 평안이 가라고 허락함.

5. 재물을 탐내는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1) 게하시는 자기 주인 엘리사가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신이 직접 엘리사 몰래 나아만의 일행을 쫓아갔다.
  2) 게하시는 엘리사의 요청이라고 하면서, 선지자의 제자 중 두 사람이 왔으니, 이들에게 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고 말함.
  3) 나아만은 은 두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주고, 옷 두 벌을 두 사환에게 지워서 보냈다.
  4) 집에 다 와서는 사환에게 짐을 받아 가지고 들어와서는 집에 감추었다.
  5) 이를 눈치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어디 다녀왔는가하고 물었지만, 게하시는 거짓말을 함.
  6) 엘리사는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하고는 게하시를 책망함.
  7) 나아만의 나병이 너와 네 자손에게 미칠 것임을 말씀하시자, 게하시가 나병이 발하였다.

[정리2. 내가 이해한 내용을 내 머리 속의 언어로 표현하기]

본장은 아람보다도 큰 이스라엘, 아람의 신보다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아람에 군대 장관 나아만이 있었단. 그는 혁역한 공을 세운 대표적인 장수였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나라에서는 그 병울 고칠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여종이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 선지자는 고칠 수 있다고 자랑을 했고, 이를 들은 나아만을 왕의 추천서를 받아 이스라엘로 향했다.


한편 아람 왕의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의 왕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것은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 어떻게 알았는지 엘리사는 그 소식을 듣고 왕에게 사신을 보내 나아만 장군이 오면 자신에게 보내라고 요청했다.


엘리사를 찾아 온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기를 맞아 들이고 손을 위에 대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해 줄줄 알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얼굴도 비치지 않은 채, 종을 보내서는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만 하고 만다. 엘리사의 대우에 기분이 상한 나아만이었지만, 그 종의 지혜로운 답변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물 속에 들었갔다. 일곱 번을 몸을 담그고 나서는 몸이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나았다.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바로 엘리사를 찾아와 준비해 온 예물을 드리려고 했으나, 엘리사는 절대로 받지를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했다. 그 흙을 쌓아 단을 만들고 거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번제와 희생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여호와만을 믿겠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직책상 왕과 함께 림몬 신전에는 가서 경배해야 하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하자 엘리사는 인정해 준다.


그렇게 마치는 듯 한 이야기가 사환 게하시의 돌출행동으로 이어진다.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게하시는 다시 나아만을 찾아가 거짓말을 하고 는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오고, 이로 인해 저주를 받아 나병이 걸리게 되었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엘리사의 도도함, 여호와 하나님의 도도함.

나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온 나아만을 대하는 엘리사의 모습이 매우 도도하다. 엘리사는 나아만을 맞아 주지도 않았고, 만저 주지도 않았다. 종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만 대언하고 요단강에 가서 씻으면 날 것이라고 했다.

이 장면에서 엘리사의 친절함이 없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아람보다 높고, 나아만 보다 엘리사가 높으면, 아람의 신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월등히 강력한 분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계시다. 실제로 병을 고침받고 나서 다시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은 병을 고쳐준 대가로 예물을 받으라고 하지만, 엘리사는 받지를 않는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다. 강한자가 약한 자에게 베푸는 은혜로운 사건이기 때문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강하심이 더욱 돋보이도록 해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아만은 오히려 이스라엘 땅에 흙을 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은 이제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번제와 희생 제물을 드리겠다고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라는 고백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엘리사의 도도함은 하나님의 도도함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게하시가 나중에 다시 예물을 받으러 나아만을 찾아간 것은 하나님의 위상을 떨어뜨린 사건이 되고 만다. 게하시는 자신이 먹고 마시려고 챙긴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서 봤듯이 선지자들의 생도들은 늘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부족하였다. 게하시는 이런 기회에 그들을 위해 굴러들어온 예물을 받아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리의 향유옥합을 돈으로만 환산하려고 했던 유다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하시는 잘못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었고, 결국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2. 양해를 구하는 나아만, 그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주는 엘리사.

나아만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이 지금까지 섬겨왔던 신보다 더 크고 절대적인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진심이었다. 그는 엘리사의 요청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기로 한 것이 아니다. 그가 병을 고치면서 그 마음 속에 든 확신 가운데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는 엘리사에게 흙을 달라고 했고, 그것을 제단을 쌓고 번제와 희생제사는 여호와만을 위해 드리겠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그런데 한가지 양해를 구한다. 그것은 자신이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인데,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길 원하지만, 아람 왕이 림몬 신전에 가서 경배할 때, 자신이 군대 장관으로서 왕을 수행하고 또 그와 함께 경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런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타협적인 신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고 답함으로서 이해한다고 인정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만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이방의 문화와 종교로 가득한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방신을 섬기는 왕을 섬겨야 했고, 왕이 아람의 신전에서 의식을 행할 때, 함께 동행해야 하는 자신의 업무가 여전히 있는 것이다. 엘리사는 그와 같은 나아만의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했던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면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아만은 이방인으로서 방금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봤을 때, 나아만의 신앙은 진심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을 수 없는 삶과 패턴의 연속선이 있었다. 엘리사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는 시간을 인정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앙은 결정적인 것에서의 단절이 불가피하지만, 갑자기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을 이룰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고 양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을 향해서 엘리사처럼 <평안히 가라>고 여유있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를 믿었으니, 모든 것으로부터 당장 끊어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압박에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제사문제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을 명백하게 믿으면서도, 아직 아버지가 믿지 않기 때문에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어쩌면 절을 해야 하기도 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으니까...) 회심하고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당장에 끊어버리지 않으면 정죄의식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오늘 나아만을 보고, 엘리사의 <평안히 가라>는 말씀 속에서는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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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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