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제 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었다.(1년 반만에 함락됨)


  * 바벨론의 공격에 1년 반을 견디던 예루살렘이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 오래 버티면 버틸수록 패하게 되었을 때에 더욱 잔혹하게 멸망을 당하게 된다. 


2.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대가 도망함. 

  1) 왕과 군대가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도망감.

  2) 갈대아 군대가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잡아 립나에 있는 느부갓네살에게 올라감.

  3) 느부갓네살은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아들들을 죽였고, 유다의 모든 귀족들을 죽였다.

  4)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했다. 

  5) 예루살렘 성벽을 헐고, 왕궁과 백성들의 집은 불살랐다. 

  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에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다. 

  7)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다. 


  * 시드기야는 성이 무너지자, 샛문으로 도망치는 비겁함을 보였다. 시드기야가 왕으로서 얼마나 자격이 부족한 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국 시드기야는 잡히게 되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앞에 잡혀가서는 자식과 신하들이 죽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눈마져 빼았기고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만다. 시드기야 왕의 비참한 최후를 보여주고 있다.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결과임을 보여준다.


  * 왕궁과 백성들의 가옥은 불타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빈천한 자들만 남겨두어 포도원과 밭을 주었다. 


3.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예레미야에게 대해서는 선대해 줄 것을 지시했다. 

  1) 사령관 느부사라단과 내시장 느부사스반과 궁중 장관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예레미야를 옥에서 꺼내어 주고,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 어떻게 예레미야에 대해서 알았는지 바벨론 왕은 예레미야에게 선대해 줄 것을 지시했다. 예레미야는 유다에 있으면서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바벨론 입장에서는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소문에 바벨론에게까지 흘러가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레미야는 옥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 


4.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1)내가 이 성에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말을 네 앞에서 이루리라고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라 하심.

  2)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라, 네가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하리라. 네가 칼에 죽지 않고 네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 성경은 예레미야가 감옥에서 나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것을 실현한 것으로 말씀한다. 세상에서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다행히 예레미야가 살아나게 되어 마치 바베론의 왕이 예레미야에게는 해방군으로 묘사될 수 있으나, 성경은 그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임을 늘 상기시키며 심지어 바베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하나님의 뜻 가우데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묵상 한모금]


1. 결국, 유다의 멸망이 왔다. 줄기차게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되었던 유다의 멸망이 왔다. 참 선지자의 구분은 그의 말이 실현되었는가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데, 예레미야가 예언했던대로 역사가 이루어짐으로 인해 예레미야는 참 선지자임이 확인되었다. 


2. 그렇다고 해서 예레미야가 유다의 멸망을 앞당기려 한것은 없다. 바벨론의 첩자 노릇을 한 것도 아니고, 유다 안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워 내적 붕괴를 이루고자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이런 역사적 흐름 안에서 지혜로운 결정을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벨론과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 아니라, 항복하고 일정기간 그들의 통치를 받아들이면서 때를 기다리자였다는 것이다. 


3. 이런 판단과 메시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통치를 영원히 받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 매를 드신 것이기 때문에 유다의 죄에 대한 징계가 충분하다 싶으면 다시 회복시키실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70년으로 정해져있음을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통해 알고 있었다. 


4. 결국 유다는 멸망했다. 우리의 낙관적 소망과 기대와는 상관없이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때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도 이와 같은 기대하지 않은 순간 찾아온 멸망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나와 우리 그리고 이땅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듣고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1)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그를 유다 왕으로 세운 것이다.

  2)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아니했다. 


2. 시드기야는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요청함.


3. 그러자 애굽의 군대가 나왔고, 그로 인해 예루살렘을 둘러쌓고 있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떠났다.


  * 기도의 결과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암튼, 시드기야는 하나님께 기도를 부탁했고, 그로 인한 결과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떠났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키시며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1) 너희를 구하러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2) 그리고 갈대아 인들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다. 

  3) 너희가 갈대아인들을 쳐서 부상자만 남는다 해도, 그 부상자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다. 


  * 시드기야와 백성들이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셨다. 잠시 애굽의 도움으로 바벨론이 떠나간듯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마음이 너희에게로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라. 곧 애굽의 군대는 떠나고 바벨론에 의해서 성이 불사름을 당할 것이다. 

  * 하나님은 유다가 하고 있는 헛된 기대마져도 없애신다. 끝났다는 말씀을 이런 상황을 통해서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완전하게 이들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확인하신다.(작은 미련에 대해서 매몰차게 거절함으로 끝난 관계를 확인시키심)


5. 바로의 군대로 인해 갈대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날 때

  

  1) 예레미야도 자신의 분깃을 얻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땅으로 갔다. 

  2) 베냐민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예레미야를 붙잡아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러 가려고 한다는 누명을 씌운다.

  3) 예레미야는 부인했지만, 그들은 예레미야를 잡아다가 고관들에게 넘기고 그들은 예레미야를 때려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다. 그들은 이 집을 옥으로 삼았다. 


  * 예레미야는 자신이 전한 메시지 때문에 사람들로부터도 친바벨론적 인물이라고 오해를 받은 듯하다. 그래서 애굽의 군대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떠날 때 예레미야도 함께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착각을 했을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 왕이 그의 메시지를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의 메시지는 싫어했으면서도,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내 삶이 어떤가에 따라서 권력자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예레미야처럼.


6.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 비밀리에 예레미야를 옥에서 꺼내 불러들였다. (뚜껑 씌운 웅덩이가 감옥이었다.)


  1) 시드기야는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는가를 물었다. 

  2) 예레미야는 '왕이 바베론의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는 말을 한다. 

  3) 그리고 더불어,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자신을 옥에 가두었는지를 따진다. 

  4) 그리고 왜, 바벨론의 왕이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5) 예레미야는 자신을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지 말아 줄 것을 요청한다.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한다. 

  6)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매일 떡 한개씩 그에게 주었다.  


  * 예레미야는 공적인 메시지를 전함에 있어서는 한치의 두려움도 없다. 유다의 멸망과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잡혀갈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개선해 줄 것을 요청한다.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말아 줄 것.... 그곳에서는 죽을까봐 두렵다는 입장을 표현한다. 

  * 공적 메시지가 변경되어서는 안되겠지만, 공적 메시지를 전한다고 해서 개인적인 필요를 말하는 것까지 부정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둘사이에 깊이 연관되어 있긴 하겠지만, 사적 필요로 인해 공적 메시지를 변경하지 않을 확고한 마음이 있다면, 공적 일을 하면서도 사적인 상황들을 나누는 것과 그에 대한 도움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 같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냉정하다. 


마치 시드기야의 기도부탁을 들어 주어 바벨론이 떠나간것 같은 상황이 되자, 하나님의 뜻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예레미야에게 즉각적으로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입장을 공식 표명하신다. 지금 이 상황으로 인해서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유다를 향한 심판의 마음을 바꾼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참 냉정하다. 좀 오해하게 두셔도 좋을텐데.

하나님은 희망 고문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중병이 든 환자의 상태를 직면시키는 의사처럼,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는다. 대수술이 될 것이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거의 죽음의 순간까지 가는 일임을 말한다. 환자에게 괜한 낭망적 기대를 주지 않는다. 


2. 예레미야는 공적으론 사역자지만, 사적으로는 사람일 뿐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때, 그는 개인이 아니고 일반적인 사람도 아니다. 생명의 위협이 있고 회유가 있어도 신적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한치의 타협도 없다.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한 명의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 생명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고, 배고픔을 느끼며 공포로 부터 벗어나고 싶은 한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이 둘을 섞지 말아야 하겠다. 공적 영역에서의 사역과 사역 영역에서 한 인간을 구분해서 판단해주어야 한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따졌고, 두려움을 고했으며 개선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것은 받아들여졌다. 


예레미야는 참으로 인간적인 사역자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 4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했다. 


  * 여호야김 4년은 주전 605년으로 갈그미스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이김으로 세계 역사의 흐름이 바벨론으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해이다. 


2.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르마리 책을 가져다가 요시야 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해서 한 말을 기록하라고 지시하신다. 그렇게 해서 유다의 가문들이 그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3. 그래서 예레미야는 바룩을 불러 예레미야가 부르는대로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도록 했다. 


4. 예레미야는 자신이 붙잡혀 있으므로, 바룩에게 명하여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들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라고 명한다. 그들이 기도하면 악한 길에서 떠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향한 분노가 크시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지시를 따라 성전에서 낭독한다.(여호야김 5년에)


5. 하나님의 성전에서 바룩이 낭독한 것을 들은 사반의 손자 미가야가 그 내용을 왕궁에 있는 서기관과 고관들 중 일부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바룩을 불러오게 하고 그 글을 읽어 낭독하게 하여 듣는다. 놀란 서기관과 고관들이 그 글이 어떻게 쓰여진 것인지를 묻자, 바룩은 예레미야가 불러준 것을 쓴 것이라고 한다. 고관들은 바룩에게 가서 예레미야야와 함께 숨고 있는 곳을 알리지 말것을 말한다. 


  * 서기관들과 고관들은 바룩이 읽은 이 글이 여호야김 왕의 마음에 걸림이 될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 글을 읽도록 유도했고(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지 않은가!) 더불어 이 내용을 제공하고 작성한 예레미야와 바룩으로 하여금은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한다. 


  * 그래.. 우리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이들처럼 권력작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도피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만큼의 태도는 잃지 말자. 


6. 이 두루마리를 왕 앞에서 낭독하자, 여호야김은 여후디가 서너 쪽을 읽으면 그것을 칼로 잘라내어 화로에 태웠다. 신하들이 그렇게 하지 말도록 말렸지만, 왕은 듣지 아니했다. 그리고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다. 


  * 여호야김은 아니다 다를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마음이 없었다. 불경건하게도 그 말씀을 잘라 불에 태워버리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호야김 왕이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고집스럽고 완악한 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7. 왕이 두루마리를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다른 두르마리를 가지고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라고 지시하신다. 더불어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한 말, 바벨론 왕이 이 땅을 정복하고 황폐하게 할 것에 대해서 듣기를 거부했는데, 오히려 그에게 말한다.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라.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예레미야는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이전에 불사른 책에 쓴 내용을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 하였다. 


  * 여호야김 왕이 바룩의 두루마리를 태워버린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고집스럽게 다시 쓰도록 하시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변경이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라 보인다. 하나님은 말씀은 우리가 무시한다고, 불태워 버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 예레미야가 예레미야서를 썼다는 증거로 사용되는 구절이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예레미야서를 기록했음을 알게 된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은 그 말씀을 기록하도록 하셨다. 기록이란 장기적인 보존을 위한 것이며,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위한 방식이다. 그것이 이것이 명확하며,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더불어 여호야김 왕이 그 두루마리를 불태워 버리자, 다시 쓰도록 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의지와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 여호야김 왕이 얼마나 완악한 왕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의 주신 말씀임을 알고도 그것을 태움으로 그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 글을 작성한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도록 함으로 적극적인 그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여호야김은 돌이킬 수 없는 왕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며, 질책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왕이며 그 통로 자체를 막아 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3. 바룩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두루마리를 받아 여호야김 왕에게 읽도록 주선을 했던 관리들의 모습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예레미야나 바룩과 같은 생명을 걸고 싸우는 전사는 아니다. 그들은 권력 아래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바룩의 두루마리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이야기는 반드시 왕에게 들려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왕이 그 두루마리를 읽을 수 있도록 주선했고, 왕이 그 내용을 싫어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예레미야'와 '바룩'을 지켜주기를 원했다. 


우리 대부분은 예레미야도, 바룩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숨겨주면서도, 그들의 메시지는 왕에게 전달되도록 했던 중간 관리의 역할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와 같은 중간 관리자가 있는 것 만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번째로 임하였다. 


  * 시드기야 왕 10년 때의 일이다. 첫번째 말씀은 친척의 밭을 사라는 것이었고, 이번이 두번째 주어진 말씀이다. 


2. 일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크고 은밀한 비밀(회복될 멸망)을 알려주신다. 


  * 곧 멸망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되지 않은 것이고 다시 회복할 것이 확실함만큼 크고 은밀한 비밀이 무엇이 있겠는가!


3.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비밀


  1)무리가 갈대아 인을 상대로 싸우려하나, 하나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시체로 성을 채울 것이다. 

  2)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시고, 성을 돌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3)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할 것이다.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다. 

  4) 내가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고, 처음과 같이 그들을 세울 것이다. 

  5) 그들이 내게 범한 죄에서 그들을 정하게 하고, 그들이 내게 범한 죄악을 사할 것이다. 

  6)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 임박한 멸망, 돌이킬 수 없는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이기에 그 멸망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 이 성읍을 치유하시고 낫게 하실 것이다. 처음처럼 회복하고 그들을 정케 하며 그들의 죄를 사하실 것이다. 이들의 회복은 주변 민족들을 두렵게 할만큼 큰 회복임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4. 이 땅은 황페하게 되었다가 역동적이고 활기찬, 거룩한 자들의 성읍으로 회복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찬양할 것이다. 


5.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다.(14,15절)


6. 다윗에게 영원히 왕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제사를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않으리라.(17,18절)


7.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그것을 잃게 할 수 있다면,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릴 수 있고, 레위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 하나님께서 다윗 왕의 왕위가 끊어지지 않을 것과 레위 제사장이 끊어지지 않을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신다. 주야의 순환과 같은 하나님의 언약이 깨어질 수 없는 것이듯, 다윗과 맺은 언약도 깨어질 수 없는 것임을 명확하게 하셨다. 


8.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묵상 한 모금]


1. 크고 비밀한 계획은, 멸망을 앞둔 유다에게 주신 말씀이다. 


  1) 곧 멸망할 것이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이기에.

  2) 그러나 곧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래서 성읍을 회복하게 하시고 다시 예루살렘은 활기차고 거룩한 성읍이 될 것이다. 

  3) 그 나라를 다스릴 왕도 이어질 것인데,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다윗의 혈통이 될 것이다. 제사장도 마찬가지다. 레위 출신 제사장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다. 

  4) 이 계획은 확실하게 이루어 진다. 주야의 법칙과 천지의 법칙을 변개할 수 없는 것처럼, 다윗에게 주신 약속과 레위 제사장이 끊어지지 않을 것에 대한 약속은 분명하다. 



2. 끊어지지 않을 다윗의 왕권과 제사장의 역할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혈통임을 마태복음 1장은 족보를 통해서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사역과 십자가 죽음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사장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포로가 되어 잡혀갈 죄인된 유다와 오늘날 죄인되어 사단의 포로가 된 우리들에게 크고 놀라운 비밀, 복음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곧 멸망할 것이지만,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롬 1:18)를 일으켰지만,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이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약속하신 언약으로 인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는 다윗의 왕권을 이어 받은 자이며, 끊어지지 않는 제사장으로서 이 땅에서 사역하셨다. 


예레미야서는 수천년전 그들에게 준 이야기이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살아있는 말씀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유다의 왕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곧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다. 


  * 유다가 시드기야 11년에 완전한 멸망을 하게 되니, 시드기야 10년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있는 풍전등화의 상황이다. 


2. 그 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혀있었다. 왜내하면 예레미야가 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메시지 내용은


  1) 예루살렘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라.

  2)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 하나님이 돌보실 때까지 거기 있으리라. 

  3) 바벨론과 싸워도 이기지 못하리라 하기에 시드기야가 이것을 문제삼아 가둠.


  * 풍전등화의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는 궁전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다. 왜냐하면 갈대아에 의해서 유다가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시드기야까지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3. 여호와의 말씀에 예레미야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아나돗에 있는 자신의 밭을 사라고 요청할 것을 말씀해 주셨고, 예레미야가 기업 무를 자라는 이유를 댈 것이라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있으므로 예레미야가 그 밭을 샀다. 


4. 그 밭에 대한 매매 계약서를 작성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봉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가지를 바룩을 통해 토기에 담아 보관하도록 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다시 집과 밭을 사게 될 것이라 하셨다. 


  *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으면서도 숙부의 아들이 제안한 밭을 구입하게 되는 사건은 하나님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멸망을 앞둔 나라의 땅을 매입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5. 예레미야의 눈물어린 기도

  1)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당신은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십니다. 천만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죄악에 대해서는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니 .. 만군의 여호와시다. 

  2) 주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셨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을 주셨다. 그러나 이 백성들이 거기에 들어가서 주의 목소리에 청종하지 못했음으로 이 모든 재앙을 내리셨다. 

  3) 지금 우리의 처지가 그 재앙입니다. 

  4) 주님이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지만,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겨진 바 되었습니다.


  * 예레미야는 돌이킬 수 없는 자기 백성의 운명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다. 그 모든 재앙의 원인은 그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알기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없다. 다만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밭을 사라고 했지만 이 땅은 이미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간 상태라는 것이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하는 기도다. 예레미야라고 항상 모든 희망을 본 것은 아니다. 그도 보지 못한 <희망> 때문에 절망하고 애통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6.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1)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가 할 수 없는일이 있겠느냐?

  2) 이 성을 갈대아인에게 줄 것이다. 그들이 성에 불을 지르고, 우상을 만들어 나를 격노케 한 집들을 모두 불태울 것이다. 사실 이 성이 건설될 때부터 오늘가지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켰나니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한다.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이 악을 행하였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우상을 섬기며 자신의 자녀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했다. 

  3)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

  4)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쫓아 보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다시 이곳으로 모여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5)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6)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않으리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7)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8) 네가 정식으로 밭을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내가 그들을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 크지만, 그만큼 하나님께서 복을 줄 것임을 약속하신다. 이제 복을 주기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 땅에 심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반드시 그들을 돌아오게 할 것을 의지를 담아 약속하신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멸망을 코앞에 둔 역사적 상황에서, 시위대 뜰에 갇혀있는 예레미야에게 친척의 밭을 살 것을 요청하시면서 그것을 통해 유다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2.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그런 행동은 의미없는 행동처럼 여겨졌다. 조상들의 죄가 너무크고, 완악함으로 돌이키지 않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돌이킬 기회조차 없음을 예레미야는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힘들고 괴로웠다.


3. 그러나 예레미야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 유다를 바벨론을 통해서 멸망시키는 이유와 그 이후 하나님 유다에게 주신 큰 복에 대한 그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3-1. 유다의 멸망은 단순하게 유다의 잘못에 대한 심판 뿐 아니라, 유다의 환경 전체를 바꾸는 작업이었다.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는 과정이었고, 유다 백성들의 의식속에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불결을 제거하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심판과는 별개로 다시 유다 백성들을 돌아오게 했을 때, 다시 죄악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지작업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보지 못했다. 


  3-2 예레미야가 보지 못한 또 하나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이었다. 전에는 유다 백성들이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찾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찾아가는, 그래서 그과 함께 있고 떠나지 않는 방식으로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40절) 그 안에 경건한 마음을 두어 그들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더 큰 복을 주기 위함임을 말하는 것이다. 재앙이 큰 것만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한 복을 모두 주시겠다는 것이다.(41-42절)


4.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계획을 알지 못한다. 예레미야조차도 말이다. 예레미야가 임박한 멸망의 상황에 대해서는 예언하여 전했고 그 이후의 회복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속 마음까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래서 결과를 알고, 회복을 알면서도 그 안에 절망과 슬픔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그 의미를 밝히시고, 그 유익을 알려주셨다. 성도의 재앙은 우리의 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새로워지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수준으로 자라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5.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초의 인간 아담의 타락은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만은 아니다. 물론 아담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로 인한 고통이 적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서 뭔가 새롭고 풍성한 일이 진행되었다는 것도 우리는 눈치챌 수 있어야 한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장]


1.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2.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 지금 이 내용이 문서로 남겨둘만큼 중요하며 확실한 내용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적힌 하나님의 말씀은 바벨론에 있는 유대 백성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고,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3.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할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2)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남자들이 해산하는 여인처럼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3) 그러나 또한 그날에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을 것이다.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고 포박을 끊으리라. 

  4)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5)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이 잡혀가 있는 곳에서 구원하리라. 

  6) 그리고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7)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1) 유다의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부상은 중하다. 약도 없고 처방도 없다. 

  2) 너를 사랑하던 자가 너를 잊은 것은 네 죄가 많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잔인한 징계를 내린 것이다. 

  3) 네가 네 상처와 고통 때문에 부르짖는데, 그것은 네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에게 내린 것 것이다. 

  4) 그런데, 너의 것을 빼앗고 탈취한 자들에 대해서 내가 노략하고 탈취할 것이다.

  5) 그리고 네 상처에 새 살이 나게 할 것이다. 


  * 하나님은 유다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그들이 하나님에게 잘못하고 죄를 많이 지었음으로 당하게 된 것임을 지적한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데, 그 고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유다의 죄와 기도의 모순됨을 말함)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사랑, 자기 백성을 혼내시고 책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탈취하고 노략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심판하실 것을 명백히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늘 의로운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악한 도구를 자기 백성을 위해서 그들의 악을 허용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따지신다. 


5. 하나님의 말씀

  1)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2)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출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3) 그들의 수가 줄지 아니하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해지지 아니하리라. 

  4) 그들은 예전과 같고,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5) 그 영도자를 너희 중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6)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고 성읍을 회복하게 할 것, 다시 백성들을 번성케 하사 줄어들지 않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들 중에 영도자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임을 약속하신다. 


6. 여호와의 노여움은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 위에 임하고, 진노는 그 마음의 뜻 한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 돌이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 하나님의 언약도 신실하지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기로 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도 매우 신실하심을 보여준다. 마음에 뜻한바를 이루기까지 돌이키지 아니한다. 여자 한을 품으면 5-6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다. 하나님은 참, 무섭다. 


  *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무서우심을 끝날에야 깨닫게 되니, 안타깝다. 깨닫게 된 그 순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말과 심판은 불현듯 올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불현듯이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묵상 한모금]


내용을 정리해 보면


1. 유다가 지금 환난과 곤경 중에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2.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를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들어서 멸망시키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셨다. 

3.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에게 영원한 멸망을 예정하신 것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수치를 회복시키시며 다시 약속의 땅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4.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수탈하고 노략했던 자들에게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심판을 하실 것이다. 그들이 죄를 징벌하는 도구가 되었다고 해서, 의로운 자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보다는 의로운 자를 해롭게 했으니, 그것에 대한 벌도 받아야 할 형편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5. 그날은 불현듯 다가올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속대로 구원을 받고 회복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자들에게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다. 

6.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 것은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다. 따라서 그것을 깨닫고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전에 먼저 하나님의 품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는 자만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장 정리]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1)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2) 아내를 맞이하고 자녀를 낳아 자녀들로 결혼하게 하여 너희가 줄어들지 않게 하라.

  3) 사로잡혀간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그 성읍의 평안함으로 너희 도 평안할 것이다. 

  4)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라.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않았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5)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너희를 돌보아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6)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다. 재앙이 아니다.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다. 너희가 내게로 와서 기도하고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너희가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도리 것이라. 


  * 이 때는 시드기야 왕의 때로 1,2차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이 있고 아직 완전한 멸망(시드기야 9년)은 이루어지지 않는 시기이다.


  *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그 올무를 벗어나려고 하는 일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곳으로 보내신 것이고 70년이면 마치고 돌아오게 될 것이니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가정을 이루며 번성할 것을 말씀하신다. 70년 이후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국적인 발언이며 비신앙적 발언이었을 것이다. 마치 예레미야가 친바벨론적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는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 당시에 느헤미야의 이 발언을 그렇게 믿어 줄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2. 너희는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우리를 위해 선지자를 일으키셨구나 말하게 될 것이다.


  * 바벨론에 있는 포로를 위해서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시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선지자이면서도 동시에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동포들의 선지자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들에게도 예루살렘의 운명(완전히 멸망한 상황은 아직 아니기에)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했다. 예레미야는 그 역할까지 했다. 


  1) 너희와 함께 포로되어 가지 아닌한 너희 형제(유다에 남은 형제)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2) 하나님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고 쓸모없는 무화과 같게 하셨다. 

  3) 하나님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여 여러 나라 가운데서 학대를 받게 하겠다. 그들은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 

  4)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오히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자에게(자신들은 재앙으로부터 피해갔다고 생각했을텐데) 완전히 멸절될 수 밖에 없는 재앙을 내리고, 오히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에게는 희망을 선포하며 70년간 그 땅에서 잘 살아 남아서 번성하라고 말씀하신다. 

가나안에 있는 야곱의 가족들이 요셉을 따라 애굽의 고센 땅에 머물면서 400여년간 번성하였던 것처럼, 바벨론에서도 그와 같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3. 바벨론에 살고 있던 스마야가 예레미야에 있는 제사장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내어 예레미야의 활동에 대해서 질책함


  1) 스마야가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냈다. 

  2) 여호와께서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해서 너를 성전의 감독자로 세운 것은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하는 자들을 목에 나무 고랑과 쇠 고랑을 채우게 하기 위함이거늘 어찌하여 예레미야에게 그와 같이 하지 않는냐?

  3)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여 '너희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고 선동하고 있다. 

  4)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가 쓴 글'을 예레미야에게 읽어 주었다. 


  *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을 넘어 바벨론에까지 유대인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스마야는 반대한다. 오히려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스바냐가 자신의 책무를 다하고 있지 못함을 질책했다. 예레미야처럼 거짓된 말을 하여 유대인들의 마음을 흐트러놓는 자를 막도록 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인데 왜 예레미야를 방치함으로 여기에서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냐는 책망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도, 포로로 잡혀간 바베론 현지에서도 모두 인정받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그랬다. 그 당시 누구에게나 불편함을 주는 메시지였다. 심지어 애국적 인사들에게도,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 인사들에게도 또한 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도 그의 메시지는 불편함이 되었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4.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임하셨다. 


  1)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구나'

  2) 그래서 내가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라. 그의 자손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복된 일을 보지 못하리라. 

  3) 여호와의 말이니라. 


  *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손을 들어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누가 그것을 믿어 주었을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따라 소신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묵상 한모금]


1. 이 시대는 유다의 운명이 이미 확정되었다. 멸망이다. 아직 완전한 멸망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례미야는 헛된 희망을 불어넣지 않는다. 회개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바벨론으로 가서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열매를 거두어 먹고 살 것을 말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길러서 번성할 것을 말한다. 그곳에 정착하라는 것이다. 이런 냉정한 메시지는 유다의 멸망이 확정된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기회가 있지는 않는다. 일생의 대부분은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기회가 없는 시기가 온다. 회개할 수조차 없는 기회가 오고야 만다. 그 때는 운명을 돌이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 돌이킬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털퍼덕...


2. 유다의 멸망을 전하는 그리고 유다를 정복하는 바벨론에 들어가서 그들의 평안을 빌면서 그들 안에서 일상적인 삶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라고 말하는 예레미야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유다에 남겨진 자들에게도 거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유다에 남은 자들도 안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재앙이 따라와서 흩어질 것이라는 선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바벨론에 잡혀가 수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자들에게, 그 삶을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그들의 평안을 빌며 살아가라는 것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메시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나라를 등지고, 하나님을 등진 채 그곳에서 평안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 같으니, 누가 예레미야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예레미야와 비슷하다. 누구에게도 인정받거나 환영받지 못하셨다. 친로마적인 사두개파에게도, 민족적 독립을 꿈꾸던 열심당원들에게도... 종교적 근본주의작인 바리새인들에게도...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셨다. 모든 그리스도이들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늘 이런 오해를 삶의 한 부분처럼 여기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말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장 정리]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 26장의 때와 같은 시대로 보이나, 성경의 각주에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여호야김>은 시드기야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27장은 계속해서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3절, 12절, 20절)


2.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시드기야 왕을 보기 위해서 온 사신들의 손에 그것을 주어 그들의 왕에게 전해주도록 한다.(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의 왕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전한다. 


3. 하나님은 큰 능력으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자에게 그것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했다.(5-6절) 그래서 정한 기한까지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바벨론이 이지역을 점령하고 다스리게 될 것임을 예언하는 것인데, 그것을 마치 창세기 1-3장에서 아담에게 에덴을 주었다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것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하셨다. 이 땅도 원래 하나님께서 옳은 사람들에게 주셨는데, (그들이 죄악을 행함으로 그들에게서 빼앗아 자기 백성을 징벌하기 위한 또 다른 종 바벨론) 지금은 바벨론에게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정한 기한까지는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이다.


4. 만약, 바벨론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할 것이다. 그리니 선지자나 복술가들이 바벨론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을 믿지 말라. 그들이 정작 너희들을 멸망하게 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지금 역사를 주관하시되, 그 힘을 바벨론에게 일정 기간 주셨음을 말한다. 따라서 그 앞에 굴복하게 하신다. 그렇지 않다면 그 민족과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괜한 민족주의나 막연한 소망을 주는 정치인들과 선지자의 말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5.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이 말을 전하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면 살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 것을 당부한다. (14절) 


6. 하나님은 거짓 예언을 하는 선지자들 멸망시킬 것임을 말하신다. 왜냐하면 이들은 바벨론에 빼앗겼던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가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그런식의 예언을 했다. 이런 예언을 믿는 것은 이 성을 황무지로 만드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이 참 선지자라면, 빼앗긴 것이 돌아올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이 빼앗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옳을 것이다.(바벨론의 2차 침략기에 빼앗긴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주전 598년 / 여고니야(여호야긴) 20절)


7.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돌보시는 날까지 그곳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2절)



[묵상 한 모금]


시드기야 왕 시대에 정치적 분위기는 바벨론을 대적하고 기회만 온다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선지자들은 오래지 않아 바벨론에 빼앗겼던 성전 물건들을 도로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처럼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고, 정치적으로 반 바벨론적 여론이 컸다.(물론 물리적으로는 바벨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종교적 희망주의, 정치적으로는 반바벨론 주의.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시대적 흐름과 다른 메시지를 전하신다. 유다에게 준 땅을 빼앗아 바벨론에게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바벨론을 섬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비관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빼앗겼던 성전 기물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남아 있는 것들이 보존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 당시 예레미야는 종교적으로 회의주의자였을 것이고, 정서적으로는 반민족주의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자의 태도였다. 


물론 바벨론의 지배는 제한적이다. 정한 시기가 있다. 그 때까지 그렇게 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다르게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종교적 낙관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반민족주의적 메시지를 전하면서, 본인이 혜택을 입었다면 그것은 권력에 아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인이 오히려 고난과 질타를 받았다면 그의 메시지는 주의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선지자적 메시지가 될 수 있으니...)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한 장 정리]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 주전 609년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죽고, 애굽의 영향력 하에서 여호야김이 왕으로 세워진다. 국제 정세의 급변하는 환경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특히 애굽과 바벨론 누구의 편에 설것인가가 나라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결정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여호야김 시대는 그랬다. 


2.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성전 뜰에서 가감없이 외치라고 명하신다. 이들이 듣고 혹시라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던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예레미야는 유다를 향한 마지막 회심의 기회라고 보았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듣을 돌이킬 것이다. 니느웨의 죄에 대해서도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께서(요나서) 유다의 회개에 대해서 충분히 뜻을 돌이키실 의향이 있으신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

  1) 너희는 나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내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 

  2)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에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순종하지 않았다. 

  3) 그래서 내가 이 성전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 하나님은 언제나 한 번의 죄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두번이나 세번... 횟수의 문제가 아니다. 태도의 문제다. 그 죄를 지적하고 시정하도록 일깨워주고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의향이 없는 자에 대해서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반역의 의지를 가진자에게 심판을 행하신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

  1)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고 한다.

  2) 이 성전을 실로같이 될 것이라고 저주하고, 이 성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예레미야에게 모여듬

  3) 유다의 고관들은 예레미야가 한 말을 근거로 예레미야가 죽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결함.


  * 이 장면에서는 예수님이 생각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무리들. 예수님의 죄 명도 성전을 허물어 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예레미야와 예수님은 유사성을 가진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으로 죽음에 위협을 당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심으로 죽음에 이른다. 


5. 백성들의 반응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 성전과 이 성을 향하여 한 예언을 청종할 것을 다시 촉구한다. 그리하면 지금이라도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해 하나님은 뜻을 돌이킬 것이라고 말한다. 괜히 나를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그 댓가를 이 성과 성에 사는 주민에게 돌리지 말게 하라.


6. 고관과 모든 백성들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말한다. 

  1)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다. 

7.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1)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에 대해 예언하기를 시온은 밭가는 경작지가 되고,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되며,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했으나, 유다 왕 히스기야가 그를 죽였느냐?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지 않으셨는냐! 

  2) 우리가 예레미야를 죽인다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다. 


  * 흥분하며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닌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여전히 영적으로 민감하려고 하고 역사적인 판단을 고려하여 하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고관과 백성들 중에 일부가 그랬고,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그랬다. 예레미야를 죽일 죄목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대 히스기야 왕 때도 그와 같은 선지자가 예레미야와 동일한 메시지를 전했지만, 히스기야는 오히려 겸비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예레미야의 경우도 그와 같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하나님은 무리 중에도 고관과 장로들 중에도 정상적이고 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두어 그들로 하여금 충동적 마귀적 행동에 대해서 제지하도록 역사하신다.(그런데 왜 예수님에게 대해서 만큼은 그리 침묵하셨는지.. 예수님에게는 왜 그와 같은 대변자가 없었는지...)

 

8. 또 여호야김 왕은 전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우리야라는 사람이 예레미야와 같은 메시지로 경고하여 예언하자, 그를 죽이려 했고 그가 애굽으로 도망하자 사람을 보내 끝까지 그를 잡아와 칼로 그를 죽이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지 않았느냐...


  * 여호야김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선지자를 얼마나 잔혹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죽였는지를 그 당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최근 그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함을 지적한다. 


9.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도와주어 백성들의 손에 그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죽지 않았다. 


  * 다행히도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살아난다. 죽을 위협으로부터 건짐을 받은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움 상황임을 확인하다. 오히려 예레미야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다. 




[묵상 한 모금]


하나님의 심판은 갑작스럽게 한 두 번의 실수와 그릇된 판단으로 임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심판의 근거는 죄의 행위가 아니라 죄를 알고도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마음이다. 그것이 우리를 심판과 지옥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26장의 사건은 그 당시 정치와 종교계가 얼마나 죄 가운데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왕부터 제사장과 고관들 그리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 무고하게 십자가 형벌을 받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도 우리는 같은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그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죄 가운데 있었는지를 보게 된다. 


다행히 예레미야는 그의 역할이 남아있었기에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시고 살려주신다. 그러나 예수의 역할은 십자가를 향하는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정작 당신의 독생자에게 살 길을 열어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살리기 위해서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을 동원하셨지만, 당신의 독생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예수)에 대해서는 왜 이리 모지셨는가!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하나님은 누구의 죄가 더욱 크냐로 심판의 우선권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먼저 고칠 것인가로 징계의 우선권을 두신다. 



[성경한장:예레미야 25장.]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1)


  *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째는 주전 605년을 말한다. 요시야가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그 때가 609년이다. 그 이후로 4년이 지났으니 605년이다. 주전 605년에는 세계사 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쟁이 있었다. 그것은 애굽과 바벨론과의 전쟁인 '갈그미스 전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의 판도는 변화되기 시작했다.애굽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바벨론의 영향력이 근동지역에서 극대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유다는 그로 인한 위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2. 내가 요시야 왕 13년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해서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았다.

3.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고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다. 

  -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그 땅에서 살 것이다. 우상을 버려 하나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하였으나 듣지 않음.


  * 유다가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요시야 13년부터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유다가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한 길에서 우상 숭배에서 돌아오도록 요청했으나 네가 듣지 않았다. 


4. 그래서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을 쳐서 진멸하여 놀림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게 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5.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다. 70년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길 것이다.


  * 그래서(완악하게 듣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보내 유다를 쳐서 진멸하고 놀림거리와 웃음거리를 만들어 버리시겠다고 하신다. 유다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로 살게 될 것이다. 


6. 여호와의 말이다. 70년이 마치면,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리라.


  * 그러나 70년의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고 나면, 너희들은 돌아올 것이고 너희를 압제한 바벨론 제국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바벨론도 죄악이 크기 때문이다. 바벨론이 이전에는 유다를 치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그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도 반드시 받게 됨을 잊지 않는다. 


7. 그래서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그들의 행위와 손이 행한대로 그들에게 갚으리라. 


  1) 내 손에서 진노의 술잔을 받아 가지고 너를 보내는 바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2) 먼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18절)

  3) 애굽의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고관들과 .... 블레셋, 아스글론, 가사, 에글론, 아스돗...

  4) 에돔과 모압과 암몬

  5) 두로, 시돈

  6) 드단, 데마, 부스, 아라비아, 시므리, 엘람, 메대 모든 왕, 북쪽 원근의 모든 왕, 세삭 왕

  7) 내가 너희 가운데 보내는 칼 앞에서 마시며, 취하여 토하고 엎드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라 하셨다.  

  8) 잔을 받기를 거절하거든... 반드시 마셔야 하리라. 


8.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



[묵상 한모금]


본문의 이야기는 국제정세가 애굽에서 바벨론으로 기울고 있는 시점에 결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하고 정복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힘의 결과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간섭이 있는 것임을 본문은 지적한다. 


유다의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악한 길을 가고, 우상을 숭배함) 이들을 벌하기 위해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벨론이 옳고 느부갓네살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시기의 문제다. 지금 하나님은 유다를 징계하시기를 원했고, 그 곁에 바벨론이라는 회초리(몽둥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이 자랑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유다보다 더 옳아서가 아니라, 지금 유다가 매를 통해서 변화되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개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물론 유다를 개선하시고 나서는 바벨론을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더욱 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자간의 죄의 경중만으로 심판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다의 죄보다 바벨론의 죄가 더욱 컸지만, 하나님은 지금 바벨론이 아닌 유다를 심판하셨다. 이는 바벨론을 심판하지 않는다거나, 바벨론이 의롭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바벨론의 심판보다는 유다의 회복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유다는 이로 인해 오해하지 말아야 하며(하박국은 오해했다.), 바벨론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교만)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