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박국 1:10-17 현실과 더 가까운 하박국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바벨로니아는 강력한 군사력을 성을 무너뜨리고, 왕들을 조롱할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힘을 경배할만큼 강력한 나라다. 하박국은 왜 이런 악한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침략하도록 냅두시는지 다시 한 번 항변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낚시에 걸린 고기처럼 무력한데 왜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잠잠히 보기만 하는지 하박국은 질문한다.


절별 해설

1:11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경배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바벨로니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바벨로니아는 왕과 통치자를 우습게 알고, 성벽을 정복하는 일을 쉬운 일처럼 행한다. 그 만큼 강력한 힘이 이들에게는 경배의 대상이 된다.


1:12 <<주는 백성을 심판하시려고 바벨로니아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시기 위한 도구로 바벨로니아 사람을 택하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하나님의 선택임을 말하는 것이다. 


1:13 <<악한 백성이 의로운 백성을 쳐서 이겨도 잠잠히 보기만 하십니까?>> 하박국의 항변에 핵심이 되는 질문이다.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악인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의로운 백성을 멸망시키려 하는데, 그것을 묵인하실 수 있는가에 대한 하박국의 항변이다. 


1:16 <<그물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워 올리며 제사를 지냅니다>> 많은 고기를 잡아준 그물을 마치 우상처럼 여기며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바벨로니아가 자신들의 힘을 경배한다(11절)고 한 구절을 염두한다면 이 비유는 바벨로니아가 많은 열방을 제압할 수 있는 자신들의 힘을 과신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1:17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도록 할 생각이십니까?>> 하박국이 하나님을 향해서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따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신속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오히려 권고하고 있는 표현이다. 하박국의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이 묻어나오는 항변이다.  


기도

하나님, 저희들도 하박국처럼 하나님의 행하심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어 하나님을 향해 따지고 싶을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들의 답답함을 용납하시고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맺는 이야기

하박국의 항변 속에 우리들의 고민이 고스란이 녹아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길은 인정하시고 악인의 길을 망할 것(시 1:6)임을 말씀하면서도 실제의 삶의 현장으로 와서 볼 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은 그와 같은 원리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세상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다 인식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역행하여 세상은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의인이 망하는 것 같고 오히려 악인의 의인을 밟고 일어서 더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현실과 더 밀착되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편 73편을 기록한 시편기자도 그와 같은 현실을 말한다. 하박국의 고백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하박국은 우리의 고민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성경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1. 하박국 1:1-9 소통되는 하나님의 권위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박국은 하박국 선지자가 받은 경고의 계시를 말한다. 계시의 형식은 하박국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박국은 그렇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는지, 왜 악과 불의가 일어나고 있는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지 묻는다. 하나님의 답변이 이어지지만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다. 


절별 해설

1:2 <<언제까지 들어 주지 않으시렵니까?>> 하박국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첫 번째 내용이다. 그토록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음에도 오랫동안 묵묵부답이신 하나님에게 따지듯이 항변하고 있는 것이며, 선지자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답답함으로 가득하다.               


1:3,4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까?>> 악한 자가 활개를 치고 불의와 폭력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이와 같은 악에 대해새 아무런 심판을 행하지 않는가에 대한 항변이다. 이런 이유로 하박국은 욥과 함께 성경에서 <신정론> 문제를 제기한 본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1:5 <<내가 놀라운 일을 하겠다>> 하나님게서 하박국에게 말하는 놀라운 일이란, 유다를 구원하기 위한 놀라운 일을 말함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악인들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는 놀라운 일을 말함이다.


1:6 <<내가 바벨로니아 사람을 시켜>> 당시 바벨로니아는 앗시리아의 니느웨를 멸망시키고, 갈그미스에서 애굽이 주도하는 연합군을 대파함으로 신바벨로니아 제국을 건설하는 강대국이다. 하나님은 장차 바벨로니아 제국을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1:9 <<그들은 모두 싸우러 온다>> 바벨로니아가 전쟁을 할 때, 전력을 다하여 싸운다는 것을 말한다. 바벨로니아는 잔인하며(7절) 날쌔고 사납다.(8절) 그 군대는 빠르게 행군하여서 적을 무찌르며 많은 포로를 잡아가는 전쟁에 강한 민족이다. 


기도

하나님, 하박국이 하나님을 향해 외쳤던 항변이 저의 항변이기도 합니다. 불의하며 악한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답답함이기도 합니다. 하박국 묵상을 통해 마음의 답을 얻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하박국은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께 무례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지에 대해서 따진다. 특히, 악과 불의 폭력이 횡행하는데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는가 힐난하는 듯 하기도 하다. 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해서 이런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경건한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낯설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답답함에서 나오는 울분과 억울함의 항변을 막으시거나 책망하지 않으셨다. 선지자의 입을 막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읽도록 하셨다. 그런 측면에서 성경의 하나님은 권위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권위는 우리의 억울함에 대한 호소를 품어 안으시는 권위임을 잊지 말자.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다.


--------


2. 하박국의 호소와 토로


  1)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기를 어느때까지 하겠습니까?

: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십니까?


  2)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고,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 지금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3) 여호와께서 악에 대해서 심판하지 아니하시니까.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진것 아닙니까!


  * 세상에 하나님에게 이와 같이 따져 묻다니. 간략하게 하면, 하나님이 할일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지금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닙니까! 라고 따져 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박국의 도발적인 표현까지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안에 포함시키셨다.


3. 하나님의 답변


  1) 너희의 생전에 한 가지 놀라고 믿지 못한 일을 내가 하겠다. 

  2) 사납고 성급한 백성이 넓은 땅을 다니며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약탈할텐데 그들은 갈대아인(신바벨론)들이다.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강하다. 

  3)그들은 파죽지세로 이 땅을 점령해 갈 것이다. 

  4)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신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다. 그들은 급하고 빠르게 죄를 행할 것이다. 


  * 하박국의 역사적 배경은 신바벨론이 앗수르를 멸망시킨 주전 612년으로 보는데, 이는 갈대아인들이 강력하게 약탈할 것에 대한 언급(6절)에 기초한 생각이다. 


4. 하박국이 다시 호소하다. 


  1) 하나님이여,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두신 것이 아닙니까?

  2)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고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3) 그런데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4) 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은 바다의 고기처럼, 벌레처럼 이방이들에게 잡히도록 방치하셨습니까? 그들이 우리를 잡고 기뻐하도록 왜 놔 두셨습니까? 

  5) 그들은 투망한 그물 앞에서 분향하고, 자신의 능력을 신격화하며 떨고 있는 또 다른 고기들을 잡아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려 하는데, 이것이 옳습니까?


  * 바벨론의 어부가 고기잡듯 정복한 나라의 백성들을 잡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너무나 무력한 나라들을 보고 너무 악하지만 강력하여 막을 수 없는 바벨론에 대해서, 도대체 저런 괴물을 왜 통제하지 않고 막지 않으시는지 하나님께 따지고 있다. 하나님의 옳으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하박국


하박국 1장을 읽어보면, 하박국 선지자의 토로가 쏟아진다. 단적으로 말하면, 도대체 하나님은 뭘하고 계시냐는 힐난이다. 바벨론이라는 괴물이 주변의 약한 나라를 쑥대밭을 만들고 심지어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인 이스라엘까지 능욕하는데, 하나님은 도대체 뭘하고 계시냐며 하나님의 존재감에 대해서 질책(?)하고 있는 하박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읽고 있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록 하박국이 좀 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내용은 옳다 치더라도 표현에 문제가 있어보인다. 불경죄로 고소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싶다. 


2. 하박국의 고소까지 성경 안에 집어 넣으시는 하나님.


불경하기까지 한 하박국의 하나님에 대한 힐난이 고스란히 성경에 들어가 있다.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의 정책이 문제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쉽지 않은 법인데, 게다가 어떻게 보면 국정을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묻고 있는 건방진 질문인데, 그 내용이 고스란히 성경 안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대대로 읽도록, 아니 영원히 읽혀지도록 정경 안에 집어 넣으셨다. 


도대체 하나님이란 통치자는 어떤 분이란 말인가! 자신을 향한 적대적인 글이라도, 단순한 비아냥거림이 아니라면 기꺼이 수용하고 듣고 답해주고 있는 전 우주의 창조자는 그 크기가 얼마인가! 하박국의 입을 틀어 막거나, 고소하지 않고 혹은 그를 제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대로 떠들도록 허락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난 저절로 존경으로 무릎을 꿇게 된다. 


3. 하나님도 건강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일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 뿐이겠는가? 한 집안을 꾸려가야하는 가장도 모든 일을 아이들에게 다 나눌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것은 설명할 수 없지만, 해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나 왕은 말못할 사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 말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보면 오해를 사기도 하고, 억지같은 말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입을 틀어 막지는 말아야 한다. 하나님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부정적인 피드백일지언정, 때로는 조롱에 가득한 말일지언정 말이다. 대통령도 사람인지라 불편한 심정을 신중하게 토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법과 제도로, 검찰을 동원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렘 12장]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의로움에 대한 항변을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질문이 하나님께는 무례하며 난처한 질문일 수 있을 텐데, 하나님은 정치인처럼 답하지 않으면서도 답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말입니다.(묵상 내용만 참고하세요)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예레미야의 항변(악한자의 형통이 어찜입니까?)

  1) 주께서는 의로우신데, 악한 자가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평안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2) 주께서 그들을 심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닙니까? 

  3) 그들의 입술은 주께 가까운 듯해도, 그들의 마음은 머니, 죽일 날을 위해 그들을 구별하소서.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여호와의 답변] 네가 보행자와 걸어도 이렇게 피곤해 하면 어떻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네 형제와 네 부모가 너를 속일지라도 너는 믿지 말라.(악한 자가 형통하고, 결코 평온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삼판받지 아니하리라...와 같은 말을 할찌라도 믿지말고,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라.)


2.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것을 원수들의 손에 넘기시다.

  1) 여호와께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다. 

  2) 내 백성이 나를 향해 소리지르고, 원수들이 그것을 에워쌈을 보고도 내버려 두었다. 

  3) 온 땅이 황무지가 되어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다.(버린바 된 모습)

  4)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고, 수고해도 소득이 없은 즉 수치를 당하게 되었는데 이는 여호와의 분노로 말미암은 것이다. 


3.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해하는 악한 이웃에 대해서

  1)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 내겠다. 

  2) 내가 그들을 뽑아 낸 후에 돌이켜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들의 기업으로 다시 인도하리라. 

  3)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여호와께 맹세하기를 바알에게 하는 것처럼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 세움을 입을 것이다. 

  4)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아 멸하리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내 말로 풀어쓰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신정론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며 묻는다. 하나님은 의로우신데 어찌 악한 자가 형통하며 반역자가 평안한가? 그들이 장성하여 열매를 맺고 그 힘으로 악을 행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들은 입은 주께 가까운듯 해도 그들의 마음은 멀다는 것은 주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그들을 내버려 두십니까?


탄식하는 예레미야를 향해서 하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로 낙심하고 힘들어하면 더 큰 일은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라는 말씀으로 답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자기 사랑하는 것을 원수들에게 넘겨주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들이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원수들이 에워쌈을 보고도 내버려 두신다. 하나님이 자기 사랑하는 것을 심판하시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부르짖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웃 나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다 뽑아 버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들도 영원히 뽑으시려는 것은 아니고,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를 배우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알을 섬기는 정도로 섬기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세우실 것이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를 여원히 뽑으실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하나님은 의로우신가에 대한 신정론의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피하신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의로우신가?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나온다. 하나니의 의로움을 의심해서라기 보다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행하셨는지에 대한 항변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욥의 주제가 그렇고,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도 그랬다. 오늘 본문 속 예레미야도 그런 항변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의 항변에 직접적인 답을 하시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다른 식으로 답하신다. 욥에게는 그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많은 질문을 던지신다.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으신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으로 대신하신다. 예레미야의 항변에도 하나님의 대답은 다르지 않다. 네가 이 정도로 힘들어 하면, 어찌 더 어려운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로 답하신다. 


하나님은 의로우신가? 여기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의롭지 않은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믿고 섬긴단 말인가! 사실 질문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의롭고, 의인의 편이신데 왜 현실에서는 악인이 의인보다 더 형통합니까? 어찌 악인이 의인을 이깁니까? 라는 질문이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언제나, 나를 믿고 기다려 봐라. 신앙은 믿고 기다림이다. 하나님을 의로우심을.

덧붙여 말한다면, 믿고 기다림이란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의 자리에 서는 것을 말한다. 


2. 다시 얻기 위해서,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내 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


유다와 예루살렘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 내가 끌어 안고 사랑한다는 것 만으로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 이제 의사의 손에 맡겨야 한다. 그를 통해 수술대로 보내야 한다. 의사의 손에 들린 칼을 무서워하여 비명을 지르고 살려 달라고 잘못했다고 외치지만,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눈을 감아야 한다. 그 병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지금은 보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의 마음은 이와 같다. 사람을 만들고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는 떠나 보내야 한다. 광야로 보내야 하고, 고통의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정의롭지 않아서도 아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잠시 악한 자의 손에 맡기신 것이다. 잠시 동안이지만, 잘 견디어주고, 버텨주기를 바라면서.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