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서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룻기서를 시작하는 글 (http://hunmill.tistory.com/1230) 을 참조해주세요. 왜 룻기인지? 설화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02_룻1:6-14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본문: 룻 1:6-14]

본문 구절은 성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든 구절을 반복해서 넣을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다만, 본문을 읽고 본인이 스스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 훈련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요약할 수 있을 때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결국 자신의 고향인 유대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나오미는 돌아오면서 두 며느리에게 자신을 따라오지 말고, 본인들의 고향에 남아 재혼하여 살아갈 것을 권유하지만 두 며느리 모두 그러기를 원치 않아한다. 나오미는 다시 한번 두 며느리를 설득하는데, 현실적으로 자신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음을 인식시키고 결국 오르바는 설득이 되어 돌아갔으나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쫓기로 한다.  



[문장요약]

1. 룻기의 저자는 지난 10년간에 일어났던 일을 5절(1:1-5)로 정리했다. 그러나 나오미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짧은 시간 며느리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은 자세히 길게 다루고 있다. 이는 이 대화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독자로 하여금 대화의 내용을 주목하여 보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2. 이와 같은 스토리 속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강조점들이 있다. 

 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가 고향으로 갈 것을 결심한다는 것(6절)

  -> 흉년으로 고통당하던 땅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회복되어 양식을 얻게 된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시대를 기대하게 된다. 

 2) 나오미를 쫓으려는 두 며느리의 마음이 진심으로 보인다는 것(어떤 가식적인 표현이 없이 진정어린 태도로 나오미를 대하고 있다는 것)(9-10절, 14절)

  -> 이방여인이지만 나오미에대해 진정성있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통해 이방여인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3) 나오미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불편하게 보시고 치셨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13절)

  -> 개인사를 고려할 때 나오미의 하나님 인식은 부정적이다. 고통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나오미의 처지를 본다면 그와 같은 나오미의 입장에 공감할 것이다. 


3. 두 며느리의 진정성있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오미를 쫓아온 사람과 떠난 사람으로 구분된다. 오르바는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쫓아 하나님의 땅으로 들어오게 된다. 


4. 이제 룻기의 중심 이야기 속에서 나오미와 룻이 중심인물로 남는다. 오르바는 자신의 결정에 따라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배제되게 되었다. 

 1. 룻기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나오미는 하나님의 땅을 떠났다가 실패하고 다시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오는 유대인의 모습으로서 신앙이 있지만 고난 속에서 흔들리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야곱처럼 자신의 지혜를 따라 살다가 결국 빈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 신앙인의 모습)


3. 룻은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의 스토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운명의 여인이다. 오늘날로 보면 교회 밖 사람이고, 신앙이 없는 자이거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오미와의 관계 속에서 결국 하나님의 땅 안으로 들어오게 된 사람이다.(비로 충분한 신앙이 아직은 없겠지만) 그러나 누구나 룻과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르바는 동일한 상황에서 나오미를 따르지 않고 떠났기 때문이다. 룻은 나오미와 연결되지 않고서는 유대 땅에 올 일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미를 통해 유대 땅까지 오게된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신자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는 '신앙'으로 시작하지 않는 통로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4. 나오미가 겪은 불행한 일이 결국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불행한 일이 불행한 결과만 낳지는 안는다. 아직은 반감이 더 많지만 결국 나오미는 고난을 통해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더 나아가 룻까지 그 은혜 안으로 인도하게 된다. 현재의 고난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5.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오늘 본문은 오르바와 룻의 선택이 결국 그의 운명을 갈라놓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이 땅에서 겪는 고통과 불행은 부정적이기만 한것인가? 어떤 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는가? 

  - 나오미에게는 어떤 기회가 되었는가? 


2. 나오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룻이라는 여인을 하나님의 역사 속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떤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인가? 

  - 나도 모르는 중에 선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나도 알지 못하는 중에 생각지 못하는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결과는 알수 없지만, 매 순간 정직하고, 순수하려고 하는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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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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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룻기서를 시작하는 글 (http://hunmill.tistory.com/1230) 을 참조해주세요. 왜 룻기인지? 설화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습니다. 



[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01_룻1:1-5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본문: 룻 1:1-5]

본문 구절은 성경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모든 구절을 반복해서 넣을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5절 분량이니 성경을 찾아 읽으시면 될듯 합니다. 


다만, 본문을 읽고 본인이 스스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 훈련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요약할 수 있을 때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

룻기는 시기적으로는 사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지역적으로는 베들레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베들레헴에 엘리멜렉 집안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엘리멜렉의 아내는 나오미고 그에게는 말론과 기룐 두 아들이 있었다. 엘리멜렉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었다.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 살다가 그 땅에 흉년이 들자 모압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모압으로 이주한 후 얼마 지나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다. 두 아들은 모압 여인 오르바와 룻과 결혼했고 그 땅에 10여년쯤 거주했을 때 두 아들마져 죽자 나오미는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문장요약]

1. 룻기에 어떤 신학적인 메시지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미리 연구할 필요는 없다. 첫 독자가 룻기의 이야기를 접할 때의 느낌으로 접근하면 좋다. 이야기의 특징은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청자의 마음 속에 남는 것이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2. 룻기의 시작은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의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1) 사사시대라는 것, 베들레헴이라는 것, 그 땅에 흉년이 왔다는 것 등이 룻기 이야기의 배경을 설정한다. 

  2) 엘리멜렉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야기로 시작했으나, 엘리멜렉이 죽고, 후에 두 아들도 죽고 남는 것은 이제 '나오미' 뿐이다. 그리고 두 아들의 아내인 오르바와 룻 뿐이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이 세 여인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임을 알게 된다.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 모두 엑스트라다. 룻기에서는)


3. 첫 도입 이야기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이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혹은 더 잘 살만한 곳으로 찾기위해서) 모압으로 이주했는데 오히려 모압에 살면서 더 큰 어려움(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을 직면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기 때문이다. 


4. 첫 독자가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엘리멜렉 가족이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주했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땅을 떠나 이방땅에 거주한다는 것은 신앙적인 태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안에서 이주에 대한 어떤 긴장이나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당시의 시대가 <사사시대>라는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듯 하다. 

 1. 룻기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룻기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성도)를 향한 이야기로 들어도 무방할 것이다.


3. 특히 사사시대(왕이 없어 자신이 왕 노릇하던 시대)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교회의 성도로서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할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가치관이나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오늘날의 교회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4. 따라서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흉년)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신앙>대신 <세속적인 지식, 판단>으로 행동한 엘리멜렉의 가정은 오늘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성도의 가정의 모습으로 봐도 무방하다 하겠다.(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입장에서 우리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5. 어려움을 지혜롭게(?) 잘 피해 보려고 했던 가정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말았다.(나오미 가정) 우리도 어려움에 봉착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고, 과연 나오미 이야기의 결론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이 이야기를 통해서 성경은 교훈을 주고자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사사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가?  오늘날과 사사시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 사사 시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시기를 읽어야 보는 것이 필요하다. 

  - 단순하게 말하면 왕이 없던 시대였고, 스스로가 왕처럼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였음을 말한다. 

  - 흉년을 대하는 엘리멜렉의 판단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2. 나오미의 입장에서 지난 10년간의 삶이 어떻게 평가될 수 있겠는가? 

  -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왔더니 오히려 모압에서는 더 큰 고난을 당하는구나.

  - 왜 여호와 하나님은 나에게만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내가 뭔 잘못을 했는가? 

  - 모든 것을 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감이 들 수 있었을 것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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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설화체_룻기 오리엔테이션


빌레몬서에 이어 오늘 부터는 룻기를 해보려고 한다. 룻기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짧기 때문이다. 하나의 스토리가 길지 않아서 샘플로 다루기가 좋다. 더불어 길지 않은 스토리 속에 문학적인 장치가 다양해서 읽는 재미가 있고 룻기와 같은 설화체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훈련도 된다. 또한 구속사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 해석, 구속사적인 해석까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성경이다. 


설화체는 강화체를 관찰하듯 한 문장 한 단어에 집중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흐름과 문학적인 장치들을 통한 '강조점'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교훈'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주 단순화 시켜서 말하면 잘 쓰여진 소설(스토리)을 읽듯이 본문의 스토리와 장치에 내 생각을 맡기는 것이 좋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생각들을 발전시키고 또한 문학적인 장치를 통한 치밀한 메시지를 발견해가는 것은 설화체 성경읽기의 재미 중 핵심이다. 


따라서 설화체를 묵상하기 위한 적절한 분량은 전체 이야기 중 작은 하나의 이야기로 나누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훈련차원에서 하는 것이기에 한 번에 너무 많은 분량을 다루지 않고 쪼개서 하거나 한 본문을 이야기 중심, 문학적 장치 중심 등으로 나눠서 해보도록 하겠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와같은 성경해석 방법은 평신도들이 성경공부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그 방법을 이해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지 완벽함을 추구하는데 있지 않다. 성경해석의 점수로 본다면 60-70점 정도를 받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전문적인 신학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경해석에 있어서 낙제하지 않는 선에서의 자신감을 얻게 하는 훈련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쉽고 편하고 짧게'를 목적으로 하는 방식임을 잊지 말자. 

1. 관찰(1차독자의 입장): 룻기가 쓰였을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혔을까 하는 관점으로 성경읽기(1차 독자)

  - 적어도 '다윗'왕으로 아는 사람으로 '다윗 왕' 이후의 사람으로서 다윗 왕의 메시야적 정통성을 확신하는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룻 4:22)

  - 사사시대의 나오미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다윗 왕의 혈통이 어떻게 준비되었는가를 확인해 줌으로서 다윗 왕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왕임을 확인시켜 준다. 


2. 해석(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다윗 왕을 통해 이어졌다면, 다윗 왕을 통한 메시야적 약속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었다.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교회인 우리에게 룻기의 말씀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3. 적용(지금, 나에게): 해석된 룻기의 말씀이 지금 나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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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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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8장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읽을 때 저자의 진행속도에 우리 자신도 맞춰야 합니다. 저자가 빨리 지나가면 전체적인 큰 흐름만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매우 천천히 이것 저것 꼼꼼히 보고 지나간다면 우리도 그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자는 할 말이 있어서 빨리 감기를 하기도 하고 더디게 감기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저자의 의도를 알고 그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기만 하면 된다.

 

[1차. 본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라]

1.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람들의 계보(1-14절)

2. 모인 백성 중에서 레위인이 없음을 발견하고 레위인을 특별히 찾아 냄(15절)

1)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서 3일간 머무르며 백성과 제사장을 살핌(레위인이 한 사람도 없음)

2) 에스라가 느디님 사람들을 통해 레위인들을 찾아 오라고 요청. 레위인을 찾아 옴

3. 에스라가 출발 전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겸비하여 기도함(21절)

1) 에스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왕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22)

2) 그러나 막상 출발하려고 하니, 평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3) 에스라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그 응답을 받았다.

4. 성전에 바칠 예물은 책임자를 정해서 따로 운반하도록 임무를 맡기다.

1)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 중 12명을 따로 세워서 성전을 위해 드린 은과 금과 그릇을 달아서 맡김

2) 예루살렘 성전의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5. 하나님께서 에스라와 귀환 유다인들을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셨다.(31-36)

1)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와 무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셨다.

2) 예루살렘의 제사장에게 금, 은 그리고 그릇을 무게를 달아보고 건네주었다.

3)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4) 에스라가 왕의 조서를 유다 총독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주자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다.

 

[2차. 본문의 내용을 내가 정리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재정리] 이 때, 내용은 더욱 간단 명료해져야 하고, 강조점은 좀 더 선명해 져야 한다.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과 지원받고 예루살렘에서 오기 전 준비와 도착해서 제사드리는 모습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출발하기 전 세 가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첫째는 레위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레위인을 찾아오도록 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에스라는 성전 제사에 필요한 필수적인 사람을 꼼꼼히 체크했고,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들을 채워서 귀환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성전에 드려진 은과 금, 그리고 그릇들을 잘 운반하기위해 제사장 중 12명을 따로 뽑아서 그들에게는 특수한 임무를 주었다는 것이다. 귀환하면서 에스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성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셋째는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에스라의 인식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이다. 물론 에스라가 왕에게 자신들을 호위해 줄 말과 마병을 요구했다면 왕은 허락해 주었을 것이다. 그라나 에스라는 하나님의 백성이 왕의 호위병을 의지해야지만 안전할 수 있다고 말하기를 부끄러워했다. 그는 왕의 호위병을 거절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웠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금식하고 간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대적과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다.

도착하자 주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성전을 돕는 역할을 했다.

 

[3차. 묵상 및 적용]

 1. 이방 땅에서 귀환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과 성전 기물 그리고 제사(또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중요성이 매우 대두된다.

   : 성전, 제사, 제사장, 레위인... 귀환 공동체를 생각할 때 이 요소들에 대해 잘 관찰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면서 잃어버린 결정적인 것은 나라 이전에 <하나님을 위한 성전 제사>다.

2. 에스라라는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자가 귀환하여 돌아오는 과정을 잘 진행한다.

  1) 돌아오는 사람의 계보를 파악해서, 레위인이 부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레위인을 채워서 데려갔다.

  2) 성전을 위해 드린 금은 그릇은 또 따로 제사장을 세워 책임지도록 했다.

  3) 안전을 위해서 왕의 힘을 빌리는 것을 부끄러워 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유다 백성을 건저낸 지도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모세와 비견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도움을 받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케 하심이라고 생각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 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 권세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그들의 도움을 거절할 수 있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 아브람이 소돔 왕의 재물을 거절했던 것처럼(당신의 준 것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우리는 세상의 유익을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에스라와 귀환 백성들을 대적과  매복자들의 손에서 보호해 주시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형통하게 해주셨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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