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1. 내용의 정리]

1. 예후가 아합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도록 하다.
  1) 예후가 사마리아에 있는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다.
  2) 너희 주의 아들 중 왕으로 세우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전쟁을 준비하라고 알림.
  3) 그들은 예후를 두려워하여, 오히려 예후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4) 예후는 왕자들의 목을 내일 이맘때까지 이스르엘로 가지고 오라고 하고, 장로와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은 왕자 70명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서 이스르엘로 보냄.
  5) 예후는 왕자들의 머리를 이스르엘 성 어귀에 두 무더기로 쌓아 놓아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합 집을 심판하시는 것으로 삼았다.
  6) 예후는 아합의 집에 속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귀족들과 신뢰받는 자,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죽였다.

2. 아하시야 왕의 형제들을 예후가 살해하다.
  1) 예후가 이스르엘에서 사마리아로 가다가 도중에 목자가 양털깎는 집에 이르렀다.
  2)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난다. 이들은 (이스라엘) 왕자들에게 문안하고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는 사람들이었다.
  3) 예후는 이들 모두를 잡아 죽이니, 42명이었다.

3. 예후에게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함께 하다.
  1)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예후를 만나기 위해서 찾아 옴
  2) 예후와 여호나답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는 서로 함께 하기로 하고 예후를 따름.
  3) 예후는 여호나답과 함께 사마리아에게 가서 아합에게 속한 자를 죽여 진멸함으로서 여호와를 위한 자신의 열심을 여호나답에게 보여주었다.

4. 예후가 바알의 제사장들과 바알의 신전을 제거하다.
  1) 예후는 사마리아에 와서 바알을 위한 큰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고는 모든 바알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지지 않게 불러모았다.
  2) 예후는 예복을 준비해 바알 선지자는 모두 예복을 입혀 쉽게 구분되게 하였다.
  3) 예후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에게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밖으로 내보냈다.
  4) 예후는 제사가 진행되는 때에 따로 80명을 밖에 두어 바알 섬기는 자를 모두 죽이도록 명령하였다.
  5) 바알을 위한 제사가 마친 후 바알 섬기는 자들을 모두 죽이고, 바알 신당으로 가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다. 그것이 오늘까지 이르렀다.

5. 예후에 대한 평가
  1) 예후가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섬기는 죄에 대해서는 떠나지 않음.(여로보암의 죄)
  2) 여호와는 예후가 아합의 집을 심판한 것에 대해서 칭찬하며 왕 위를 4대를 지내도록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예후는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았다.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영토를 잘나내셨다. 아람 왕 하사엘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요단 동편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을 빼앗김.(영토의 축소)
  4) 예후는 28년을 다스리고 죽었다. 그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다.  

[정리2. 내용을 내 말로 재 구성하여 정리]

본 장은 예후가 요람왕과 아하시야 왕을 죽이고, 더불어 이세벨 여왕까지 심판하고 나서 아합 집의 아들들을 포함한 그의 신하와 바알의 제사장들을 모두 심판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예후는 먼저 사마리아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자신을 대항하여 왕의 아들 중 왕을 세워 전쟁을 준비하라고 대담하게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사마리아에 있는 신하들은 요람 왕과 아하시야 왕을 동시에 죽인 아합을 대항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예후의 지시에 따라 아합의 70명의 아들의 목을 예후에게 바친다. 예후는 간단하게 왕의 아들들을 제거하고, 사마리아에 있는 신하들의 포섭한다.


예후가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도중에서 아하시야(남 유다)의 형제들 중에서 여전히 북이스라엘의 왕자들을 문안하러 오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모두 죽인다. 그렇게 이스라엘 왕가와 연관사람들을 심판한다. 한편 예후와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는 힘을 모은다. 이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사마리아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모두 제거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함으로서 예후는 아합의 일가들을 모두 제거함과 동시에 바알을 섬기던 사람들 그리고 바알의 신전의 우상을 제거했으며, 바알의 신전은 변소를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했던 예언처럼, 아합의 집안을 완전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예후를 통해서 실행하셨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하나님은 예후에게 4대에 걸쳐 왕 위가 이어지는 복을 주셨다. 그러나 예후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는 못했고, 전심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는 않았다.


여로보암 때에 아람으로 인해 요단 동편과 같은 영토를 잃고 이스라엘의 영토는 많이 축소되었다. 예후는 28년 간의 통치를 마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예후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으나, 선과 의의 도구는 되지 못했다.

예후는 분명하게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아합의 아들, 요람과 70명의 아들들을 심판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심판했고 아합과 연관되는 주변 인물들, 아하시야 왕과 아하시야의 형제들도 심판했다. 더불어 바알의 제사장을 모두 제거했으며, 바알의 우상과 성전도 훼손했다. 그는 철저하게 아합의 집안을 심판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행한 예후에게 그 보답으로 왕위를 4대에 이어갈 것을 약속해 주셨다.(30절) 예후는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러나 예후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의의 도구는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못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는 못했다.(31절)

악을 심판하는 도구라고 해서 선한 도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하나님께는 이 두 과정이 서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는 악을 심판하는 자는 의로운 자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악을 심판하면서도 여전히 악한 자가 있다. 악인이면서도 악을 제지하는 자인 것이다.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킨, 앗수르와 바벨론이 그렇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심판한 자들이지만, 이스라엘과 유다보다 더 큰 죄인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고 교정하시기 위해 앗수르와 바벨론이란 악한 도구를 사용하신 것이다.

악을 심판한다고 정의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악을 심판하는 사람들, 경찰이나 검사나 판사와 같은 사람들 혹은 공권력을 가지고 사회의 악을 제지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어쩌면 악을 심판하는 자신의 역할을 정당할 수 있겠지만, 자기 자신은 그 보다 더 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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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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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엘리야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인 <갈멜산의 대결>입니다. 아마, 성경 전체에서도 가장 통쾌한 이야기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 이야기 속으로 가봅니다.

[정리1. 내용 정리]

1. 비가 오지 않은 지 삼년이 지난 후에
  1)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을 만나라고 하셨다. 이제 비를 내릴 내리시려 하셨다.
  2) 그 때 사마리아에는 기근이 너무 심해서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와 함께 물의 근원과 시내를 찾아 꼴을 얻어 가축들의 죽음을 막으려고 했다. 사마리아 전역을 다님.
  3) 그러는 중에 <오바댜>가 엘리야를 만났고, 엘리야는 아합를 만나겠다고 함.
  4) 오바댜는 확실히 만날 것인가를 확인하고, 아합을 불러 엘리야와 만나도록 한다.
  5) 오바댜는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선지자들을 이세벨로부터 구한 적이 있었다.(50명씩 100명을 굴에 숨겨서 먹을 것을 주었다.)

2.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다.
  1) 아합은 엘리야를 향해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말한다.
  2)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는 내가 아니라, 아합과 당신의 아버지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아합과 아합의 아버지가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3) 엘리야는 아합에게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모으게 하라고 요청하고 아합은 이에 응한다.

3. 갈멜산에서의 대결
  1) 엘리야는 갈멜산에 모인 백성들을 향해 어느 때까지 둘 사이를 머뭇거릴 것인가? 하고 책망한다.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고 결단을 촉구한다.
  2) 송아지 둘을 가져오게 하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 서로 자신의 신의 이름을 부를 때 불로 응답하는 신이 그가 하나님임을 확인하자는 제안을 하고 백성들은 옳다고 화답한다.
  3) 먼저 바알의 제사장들이 그들의 신을 불렀다. 정오가 되도록 답이 없자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향해 약을 올린다.(묵상하는지 혹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길을 행하는지 혹은 잠이 들었을 수도 있으니 큰 소리로 부르라고 말한다.)
  4) 바알의 선지자는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자, 자신의 몸에 피를 흐르게 하면서까지 부르지만 저녁 때까지 응답이 없었다.
  5) 이제 엘리야가 나선다. 백성들을 가까이 부르고, 제단을 수축하게 하고 열두개의 돌을 취하였다. 그 돌로 제단을 쌓게 하고 제단 주변에 도랑을 파게 했다.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통 넷에 물을 채워 번제물과 나무에 붓기를 세 번이나 했다.
  6) 엘리야가 여호와께 내게 응답하소서 외친다.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을 태움.
  7) 백성들이 보고 엎드리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을 하고,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명하여 바알의 제사장들을 모두 잡아 죽이도록 했다.

4. 갈멜산 이후
  1) 엘리야는 아합에게 올라가서 먹고 마시라고 권면한다. 이제 큰 비가 올 것을 알린다.
  2)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한다. 사환을 일곱 번을 보내 바다 쪽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3) 바다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난다는 것을 사환에게 듣고는 아합에게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고 알린다. 곧 큰 비가 내리게 된다.
  4)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해 그가 이스르엘로 가는 동안 아합 앞에서 달려갔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

본장에서는 여호와께서 비를 막으신 후 3년 만에 다시 사마리아 땅에 비를 내리시는 이야기다.


3년간의 가뭄은 너무 심한 것이어서 왕의 가축들마져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이 되고 만다. 이에 다급한 아합은 친히 오바댜를 데리고 나와서 물 근원과 시내 주변을 찾아 다닌다. 혹시나 가축들을 먹일 꼴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이 때, 3년간 숨어지내던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아합을 만나고자 먼저 오바댜에게 나타난다.(오바댜의 역할은 그 동안 아합이 엘리야를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와 아합의 통치 아래에서도 오바댜와 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엘리야를 만나 아합은 다짜고짜 이스라엘의 가뭄이 엘리야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엘리야는 나 때문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집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고는 바알을 제사장을 불러 모으라고 제안한다. 아합은 이에 응하여 모든 백성들에게 공지하고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불러 모은다. 많은 백성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궁금하여 함께 모인다.


엘리야의 제안에 따라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시합을 한다.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이 오전 오후 바알을 불렀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 엘리야가 제단을 수축하고 제물을 얹고 물을 붓는다. 그리하고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른다. 그러자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고 사람들은 두려워 여호와를 경외한다. 엘리야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을 모두 죽이도록 한다. 완전하게 여호와 하나님과 엘리야의 승리로 끝난다.


그 이후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가 올 것을 알리고 먼저 성으로 마차를 타고 가도록 한다. 정말 많은 비가 와서 엘리야가 마차를 타고 간 아합보다 앞서서 갈 정도였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엑스트라로 보이는 <오바댜>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본장에서 중요한 인물은 엘리야와 아합이다. 갈멜산의 대결도 결국은 이 둘간의 대결로 보여진다. 그런데 등장하지 않아도 될듯한 <오바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이름도 낯설고  본장이후로  등장하지 않는것 같다. 그런데 잠깐이기는 하지만, 오바댜는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고 엘리야를 아합과 만나도록 주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바댜의 등장은 당시 아합의 통치 속에서도 하나니믈 경외하는 신실한 백성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합의 신하로 있으면서도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일 때, 죽음을 무릅쓰고 선지자들을 50명씩 굴에 숨겨서 살려주었던 인물이다.

경건한 사람은 모두 순교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합의 편이되어 하나님을 등진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세속의 정부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은 살아있다. 사단의 가장 가까운 곳에 그 사단을 대적하여 굳건하게 서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같지만 사살이다.

아합과 이세벨의 악한 권력 속에서도 오바댜는 생존했고, 그로 말미암아 더 많은 주의 백성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하만의 계략이지만) 때 유대인들은 다 전멸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을 때, 에스더는 왕의 부인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하나님은 오물 속에서도 꽃을 피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한, 완전한 어둠은 없고 완전한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빛과 생명,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생존하여 때를 기다린다.

 

2. 성도의 싸움은 박빙의 싸움이 아니라 넉넉한 싸움이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의 싸움의 관전 포인트는 누가 이기고 졌느냐에만 있지는 않다. 그 과정이다. 바알의 선지자가 어떻게 졌고, 하나님의 선지자인 아합이 어떻게 이겼는지의 과정을 봐야 한다.

바알의 선지자는 450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시간을 썼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여 피를 흘렸는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열심이나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야는 달랐다.

엘리야는 먼저 제단을 수축했다. 그리고 그 수축하는 과정에서 12개의 돌을 가지고 올 것을 말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메시지화 하는 것이다. 또한 제물과 나무 위에 물을 부으라고 한다. 넉넉히 부어 완전히 젖도록 했다. 인간적인 노력과 잔기술로는 불이 붙을 수 없도록 했다. 하나님의 불이 아니고서는 불이 타오를 수도 없게 한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의 짧은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바로 응답하셨다. 이것이 세상의 싸움과 다른 싸움이다.

넉넉한 싸움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좀 더 관대할 수 있지 않을까?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조기 축구 하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 넉넉한 마음으로 하지 않을까? 상대팀이 사람이 많아도, 아니 점수를 몇 점 주어도, 작은 파울에도 관대해 지지 않을까? 왜? 실력이 다르니까? 수준이 다르니까?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대해서 좀 더 여유로울 수는 없는지...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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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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