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순간에 한 두 사람이 아니라, 10-20명이 아니라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는 것은 특별하다.


2. 그중 다수가 고등학교 2학년(자녀)이었다는 것이 특별하다. 만약 다수가 자녀가 아닌 어른이었다면 전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좀 달랐을 것이라고 본다. 단순히 많은 수가 아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다수 희생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3. 대형 여객선이고 먼 바다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희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단 한 명도 산채로 구조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가는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 충격이 크다. 개인적인 죽음에 대한 충격도 충격이지만, 국가의 무력함을 보는 충격(보호막으로 생각했던 국가가 아무런 보호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인식)도 그에 못지 않은 충격이었다. 


4. 그 배의 선장은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고, 학생들은 그 소리에 순응했고 그래서 더 큰 피해를 일으켰다. 학생들을 배신한 어른을 보여준다.  또 한 배의 리더인 선장이 무지하여 순응적일 수 밖에 없는 승객을 속였다. 이것은 우리가 어른을 믿을 수 없고, 리더를 믿을 수 없는(전문가를 믿을 수 없는) 사회임을 보여준 것이다. 거기다 이 사태를 정리하고 조정해야 할 국가 지도자와 책임자들의 무능과 무책임함에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5. 우리는 언론의 무능을 봤다. 정부의 하수인이 되어 정부를 보호하고, 옹호하고자 하는 언론을 본 것이다. 그 오랜 시간동아 축적된 부패의 관행을 언론이 못 짚어낸 것도 문제다. 알지 못했는지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는지... 어떤 것도 문제가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를 감시하고, 사각지대를 비춰주어야 할 언론이 권력을 옹호하고 홍보하는 역할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6. 우리 나라는 마치 말기암 환자와 같은 상황이다. 암 덩어리가 커지고 커저서 진도 앞 바다에서 터졌다. 그러나 그곳은 드러난 것일 뿐, 실제는 온 몸에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다. 이 나라가 이러한 지경이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감기나 두통 배탈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근원적인 치료보다는 드러난 증상만 잡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는 과정 중에 병을 키운 것이다. 그 병은 크고 커서 '암'이 되었고, 암은 이 나라 구석 구석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7. 이제 암이 내부적으로만 자라기 않고 밖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나라는 진도 앞 바다에서 쓰러진 것이다. 응급실로 들어온 이 나라는 '암 말기'라는 것을 알았다. 전국민이 알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대로 두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나라가 죽는다. 먼저 '암'을 도려내야 한다. 최대한 눈에 보이는 모든 덩어리들은 제거해야 한다. 크든 작든 도려내야 한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는대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항암 치료는 암이 있는 부위만 치료하기 위한 약물이 아니다. 몸 전체에 퍼져있는 암세포를 치료하는 약물이다. 알듯이 암 세포도 제거하지만, 건강한 세포도 상하게 만드는 것이 항암치료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몸 전체가 몸살을 앓듯 고생해야 한다. 


8.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 소망이 있다. 누가 해야 할까? 주치의가 해야 한다. 사태의 위험함을 인식하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주치의가 해야 한다. 주치의가 누군가? 대통령이다. 지금은 실력과 상관없이 대통령이 주치의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이 세월호 사태의 심각함을 인식해야 한다. 감추고 숨기려고 하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고통스럽고 제 살을 깎는 고통이 있겠지만,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도려내야 한다. 그 작업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지금 현재로는 대통령 뿐이다. 


9. 이 나라의 주치의가 수술과 치료를 다 완성할 수 없다. 임기제니까. 그러나 자신이 역할을 맡는 만큼 시도해야 한다. 자꾸 덮으려고 하고 감추려고 하고, 암 덩어리 몇 개를 떼어내고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의 이 사태는 우리가 암 말기로 암 세포가 온 몸으로 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참사를 계기로 이 나라의 고질적 질병을 고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되며, 어쩌면 다음에는 더 큰 희생을 치려야 할지도 모른다. 왜? 이와 같은 경고에도 우리는 완악하게 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변해야 한다. 죽기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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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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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전체에 대한 중요 포인트


<내용의 흐름>


1. 나오미의 운명이 바뀜(부하게 나갔다 -> 비어 돌아왔다 -> 다시 자식을 얻음)

2. 이방여인 룻이 하나님의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기업을 잇는 여성이 되었다.

  - 룻과 오르바의 대조: 룻이 하나님의 기업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근거

3. 보아스라는 인물은 이방여인인 룻을 따듯하게 대해주었고, 기업무를 자로서 신실하게 책임을 졌다. 

4. 하나님은 룻과 보아스의 결혼과 가정에 복을 주셨다. 

5. 그 복의 결실은 다윗에게까지 이어졌다. (사사 시대 왕이 없던 시대 -> 이스라엘의 참된 왕 다윗)

6. 이 일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섭리하심)이 있었다. 


<상징성>


1. 나오미: 현실에 대한 계산이 빠르면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있는 백성 / 이스라엘

2. 룻: 이방인, 여인, 과부.... 무력한 자로서 복이 없는 인생, 적극적으로 기업의 은혜를 얻기 원함 / 약자, 이방인(언약 밖의 백성), 오늘날 우리들

3. 보아스: 은혜롭고 자비로운 인물로 등장, 언약에 대한 실실한 책임성 / 구원자, 은혜를 베풀어주는 자


<적용적인 메시지>


1. 이스라엘 전체가 사사 시대의 어두움이 팽배했지만,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는 작은 빛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작은 빛 하나가(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일이지만), 이스라엘 전체를 밝히는 다윗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윗이 빛은 전 우주를 밝히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극대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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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장을 읽고 정리하면서 디모데후서 전체를 정리해도 좋을듯 하다. 전체적인 강조점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디모데후서는 목회자인 디모데를 위해서 쓴 책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목회서신은 아니다. 목회 사역으로 낙심한 디모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쓴 목회서신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 있는 목회자들 혹은 말씀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분들에게 더 직접적인 내용인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몇 가지 핵심 메시지만 집중해서 다룬다.

1.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 다른 헛된 이야기와 변론에 주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이념이든, 철학이든, 교육이든, 사회선교든, 문학과 예술이든... 그런 분야들이 강단의 전면에 나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수 목회(교회)라는 것도 잘 생각해 볼필요가 있다. 요즘처럼 교회가 많은 곳에서 어떤 특성(차별화)을 가지지 못하는 교회는 메리트가 없기 때문에 색깔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특성을 강조하는 교회들이 많아진다. 그와 같은 것은 '선교회'(파라처치)라고 봐야 더 맞을지 모르겠다. 그런 특성을 가졌다고 해서 설교를 안하는 것도, 성경공부를 안하는 것도 아니겠지만 결국 그 차별화된 특성이 교회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역으로 '성경 중심'인 교회라는 차별화를 가지는 교회가 있다는 것은 지금의 교회가 얼마나 성경과 멀리 떨어지게 했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교회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세상을 향해 주시는 말씀을 깨닫고 그 뜻가운데 순종하도록 하기 위한 곳이다.  기능을 강조하다가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라 본다.

2. 목회자는 하나님이 맡기신 일(사명)에 흔들리지 말고 충성할 것을 강조한다.

  : 자신의 부족을 발견했다손 치더라도 나약한 모습으로 자기 연민에 빠져있거나 해서는 안된다. 우리를 행위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뜻가운데 부르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충성이고, 성실함이다.

    부족함을 고수한 채 일만 열심히 하라는 것이 아니다. 부족함을 발견할 때, 그 부족함 때문에 그만두어야 한다는 근거로 삼지 말고, 그 부족함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노력하고 수고하라는 의미다. 그래서 자신의 성장을 온 교회로 보이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교회는 소망이 있고, 기대가 있는 것이다.

   부족해 보이는 목회자를 향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믿고) 기다려주고, 인내할 때 목회자는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연마하며 노력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성장을 교회 앞에 드러내도록 노력해야 교회는 성숙해 지는 것이다.

3. 목회자는 복음(목회)을 위해서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

  : 많은 인간적인 갈등과 실망 더 나아가 배신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참고 사랑으로 목회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했던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상급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주는 상급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라는 것을 잊지는 말자.

   그러나 사람이 모두 어려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바울에게 디모데와 같은 사람도 있었고, 누가처럼 어려움중에 함게 해준 사람도 있다.(9,11절) 또 바울이 볼 때 믿고 사역의 현장으로 보낼만한 두기고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12절) 많은 사람들은 바울은 다 버리는 것같았고(16절) 알렉산더와 같은 사람은 아무리 주님의 사랑으로 품으려고 해도 품을 수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14,15절)

   그러나 이 모든 어려운 일에서 바울은 건져주시고, 끝까지 힘이 되어주셨던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셨다.(17,18절) 목회자의 마지막 보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위로와 힘인 것이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보내야 할 사람은 보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불러야 할 사람은 부르고 곁에 두어야 할 사람은 두어야 한다.

목회 현장에서 어려움 중에도 모든 악에서 건져주시고 힘을 주시는 분은 역시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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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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