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21편] 성도의 기도는 응답되고, 응답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더 큰 믿음을 가진다. 그래서 또 어려움을 만나면 다시 기도하게 되고, 그 믿음의 기도는 응답을 이루고, 다시 또 큰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기도와 믿음의 선순환이다.  그런데 기억해야할 것은, 여기서의 기도는 자신의 것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다. 선을 위해서, 의를 위해서 살려고 할 때 직면하게 되는 대적자들의 위협과 고난으로 인해 당하는 억울한 상황 속에서 터져 나오는 기도다. 의를 위해 살다가 당한 고난이 없는 자의 기도가 늘 믿음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리1]


1. 왕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크게 기뻐함.

  1절.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셀라) 2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 


그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5절)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그래서]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 여호와께서 왕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기에 왕은 더욱 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의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기도가 응답되고, 그러면 또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고 다시 응답받아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기도와 믿음의 순환고리...


2. 왕을 해하려는 대적자들을 모두 심판하시는 하나님


  8절. 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왕의 오른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

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10절)


: 왕의 대적들을 반드시 찾아내고, 찾아낸 자들을 반드시 소멸시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원수들에게 대해서 그와 같은 심판을 행하신다. 


비록 그들이 왕을 해하려 하여 음모를 꾸몄으나 이루지 못하도다.(11절)

: 왕의 대적자들은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왕이 그들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12절)


3. 여호와는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13절)


[정리2]


1. 하나님께 드려진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는다.(원수들에게 당하는 고난으로 인한 신원)


2.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했던 자들은 모두 찾아지고, 결국 심판으로 소멸되어 진다.


3. 이것이 기도의 선순환이다. 기도-응답-믿음-기도-응답-믿음....


4. 여기서의 기도자의 상황은 자신의 것을 확대하고자 하는 기도가 아니다. 선을 행하다가 만나는 억울함이다. 의를 행하다가 당하는 핍박이다.(일상적인 간구와는 상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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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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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편]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에게 복이 있도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며,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지금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면, 성경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보세요. 그리고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기]


1. 기자의 고민: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습니다. 

   대적자의 말: 너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2. 기자의 고백과 확신

  1)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2)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3)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4)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5)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3. 기자의 격정

  1)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2)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3)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정리2.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 보기]


시편 기자는 자신을 대적하는 자가 많음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집요한 말은, 너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로서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으며, 너는 회복될 수 없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편 기자가 직면한 문제는 영적인 문제로까지 확대하여 생각하여야 함을 알 수 있다 .


그런 상황에서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와 영광이요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와 같은 확신에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성산에서 응답해 주신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았고, 확고하게 붙잡고 계심을 알게 된다. 그러자 지금보다 더 많은 대적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그에게 물리적인 힘이 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더 큰 확신과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시편 기자는 구원을 소망하지만,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시간적 모순을 통해서 구원의 확실성을 더욱 강조한다. (구원하소서.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따라서 시편 기자가 소망하는 기도는 불확실한 소망이 아니라, 너무나 확실하지만 다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확신이다.  



[정리3. 본문에서 주고 있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우리의 근본적인 대적은 구원에 있어서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는 죄를 짓는 것에서 뿐만 아니라 어떤 어려움과 고독에 직면하게 될 때 그곳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근원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결핍이요 생명의 결핍이다. 곧 구원에 대한 결핍인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대적은 우리가 구원받지 못할 것을 말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결핍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돈을 주지만, 그 돈으로는 충분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을 주지만 그 사람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끊임없이 <더> 추구하게 된다. 더 없다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결국은 돈이든, 사람이든 그것의 종이 되도록 하고 만다. 

사람은 구원에 배고픈 상태다. 세상과 마귀는 다른 이름이지만, 구원이 없다고 말함으로 우리로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를 조정할 목적으로 그 미끼를 던진다. 우리는 늘 구원에 있어서 불안하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실존이다. 


2. 의지할 여호와 하나님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삶은 천지차이다.


그와 같은 인생에게 믿고 구원을 의탁할 대상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너무 큰 삶의 차이를 가져온다. 시편 기자는 그 의지할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임을 알고 그를 의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며, 나의 머리를 들수 있도록 하시는(부끄럽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의 인생은 어떤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든가? 아니면 스스로 그 두려움과 싸우든가 아니면 그 두려움을 제거해 주는 담보로 자신의 영혼을 마귀에게 파는 것인데, 그것은 더 큰 두려움으로 가는 미끼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할 바위시다. 믿고 의지할 만하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인생이란, 결국 두려움의 종으로 사는 인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땅에서 온갖 충만을 가진다고 한들 그것이 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것들이라면, 거기에 무슨 풍요가 있을 수 있겠는가? 두려움의 껍데기만 존재할 뿐인 것이다. 행복은 없는 것이다. 


3.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은 미래적이지만, 현재적이다. 그래서 오늘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확신이 클 때, 가장 확실한 어떤 대상을 걸고 맹세를 하곤 한다. 너무 큰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자는 너무 큰 확신이 있을 때, 그 확신이 내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제적인 것일 때 마치 이미 이루어진것처럼 과거형으로 말해 버린다.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 질 것이라는 확신이 클 경우에 말이다. 


구원은 받은 것이나, 이루어 질 것이라는 로마서 5장의 말씀도 그와 같은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안에서 시제의 문법을 벗어나는 삶을 산다. 없는데 있는 것처럼 살때가 있고,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살때도 있는 것이다. 지금 구원이 없는 것 같은데, 구원이 있는 자처럼 여유를 가지고 산다. 지금 이 땅의 모든 풍요를 다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두 없어지는 것임을 알아 없는자처럼 검소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해 지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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