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죠이선교회 간사 세미나


정리: 김수억



1.  특별은총의 영역 뿐 아니라 일반은총의 영역에 대해서 이해가 있어야 한다. 


2. 인간은 구원과 관련하여서는 특별은총의 영역에 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일반은총의 영역이 적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3. 구원(협의의 구원: 칭의)과 관련된 부분이 아닌 영역에서는 일반은총의 원리를 인정하고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4. 한국교회는 성도들을 향해서 일반은총적인 영역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충분하지 못했다. 오히려 일반은총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까지 모두 특별은총의 영역으로 환원시키는 우려를 범한다. 


5.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아브라함, 요셉, 다윗과 같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원리는 특별한 케이스이지 일반적인 원리로 봐서는 안된다. 있을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원리로 보편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면 안된다. 


6. [개인적 의문1] 하나님은 인간 세상 안에서 나타난 '왜곡현상'(억압과 같은)까지도 '선'한 것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 아닌가? '왜곡 현상'이 일반은총적인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이 크지만, 신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선'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 의문2]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하나님은 그 불완전함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 아닌가? 이와 같은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부정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그 논리를 일반화하여 불완전함을 정당화해서는 안되겠지만.)

  - 김 진 선생님의 강조점은 일반은총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강조라고 볼수 있고, 특별한 것을 일반화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측면으로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함. 



7.  우리 안에 있는(무의식의 세계: 닫힌 세계) 것에 대한 이해와 해결: 일반은총적 방법_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1) 억압과 분노: 그리스도인들은 분노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급히 해결해 버리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주로 억압하게 된다.(문제가 축적됨) -> 오히려 분노가 정당한가를 살피고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의 억압이 아닌, 관계안에서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2) 분노를 건강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억압했다가 나중에 터지게 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 하나를 따로 따로 풀어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노가 폭발할 때 가장 약자에게 드러나게 되어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낸다. 





8. 탈억압: 술을 즐긴다는 것은 술을 통해 억업을 ON 상태에서 OFF 상태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자유함을 느끼는 것이다. 

  1) 깊은 신뢰가을 주는 사람에게는 탈억압을 할 수 있는 자

  2) 인간 정신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에게

   예) 포르노사이트에 빠진 사람: 본인도 타인도 깊은 죄의식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그 행위에 대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석해서 설명해 준다.(강력한 억압의 탈출구로서 포르노사이트를 삼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라도 없었다면 그 사람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자살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분석... 이런식으로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다면 내담자에게 과도한 정죄의식에서부터 가벼워 짐. 가볍다고 여겨지면 오히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3) 공감을 깊이 해주는 사람에게 탈억압함. 자신을 잘 아는 사람에게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9. 억압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한 치유적인 만남을 위해

  1) 그릇된 예상, 근거없는 예상에서부터 객관화하려고 해야 한다. 

  2) 억압의 강도를 약하게 표현해 봄으로서 상대를 확인해본다... 그래서 상대를 향한 정확한 예상을 한다.(긍정적으로 받아 줄만한 사람으로부터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


10. 전치

  본질적으로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데, 과거의 감정적 태도에 대해 유사성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을 그래도 옮겨 적용하는 것.

  : 인간 정신의 불합리함과 불완전함이 반영됨.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왜곡.


 이유가 없는데, 좋아하거나 미워하게 되는 경우 뭔가 전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1) 과거의 경험으로 지금의 사람 혹은 대상을 왜곡하게 된다. 

  2) 현재를 살아야지, 과거의 매여서는 안된다. 



강의의 핵심은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왜곡되게 적용되도록 하는 것
부분의 경험을 전체라고 왜곡되게 적용되도록 하는 것

나 자신과 사람간의 관계에 있어서
이 부분을 경계하고 객관적으로 살펴서
공정한 영향을 받고 주는 것.



11. 투사: 사람에 대한 이해의 고급적 차원차원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던져진 것.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냥 돌리는 것을 투사라고 한다. 

  1) 과거 실재하지 않는 '용왕'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우상숭배는 투사(?)



[질문] 억압, 전치, 투사와 같은 왜곡된 인식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결과인가? 아니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보는가? 


  2) 우리의 신앙=순수한 신앙 + 투사적 신앙(인간이 만들어낸 신앙)

      하나님의 상=순수한 하나님 + 투사적 하나님(인간이 만들어낸 하나님)


---------

 




<구원 이후의 여정에 대해>


1. 살인하지 말라라는 요청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 중 어느것이 더 부담스러운 요청인가?


2.영역오류: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지킬 수 있는 요구이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지킬 수 없는 요구인데 이 두 영역에 대해서 혼돈이 있는 것을 봐야 하지 않을까?


  1) 5리를 가자고 했는데, 2리를 가는 사람은 죄를 짓는것일까요? 아닐까요?

  - 죄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지킬 수 없는 요구를 하신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북극성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가야할 방향성으로서의 목적을 가진다. 


  2) 살인하지 말라는 도덕률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당장 지켜야 할 도덕률이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북극성과 같은 것이다. 


3.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지향적 목적을 보여주고 있지, 그 과정적 단계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너무 일찍 지향적 목적에 노출됨으로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낮은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 


4.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같지만, 각 사람의 성숙도가 다르기 때문에 현재적 목표점은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5. 과정적 목표와 지향적 목표를 혼돈함으로 발생하는 문제


  1) 위선: 목표에 이르지 못한 자기 자신을 숨기며 산다. 위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

 

  2) 과정속의 나를 존재화. 고착화시킨다: 나는 이런 존재구나라고 좌절하고 그 자리에 고착시켜 버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수준 밖에 되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멈춰버림.

   - 우리는 조금의 변화를 이루어가는 자기 자신을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3) 죄책감: 적절한 죄책감과 부적절한 죄책감.

   2-3리 가는 것은 죄는 아닌데,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부적절한 죄책감이라고 본다. 


   예) 시효가 지난 죄책감: 분명히 죄인것을 알고 회개했으면 죄책감도 없어져야 한다. 그 이후에 그 죄에 대한 죄책감은 시효가 지난 죄책감이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현재의 자기에 대해서 정직하지 못하다. 지향적 목표, 당위적 자기에만 집중하기 쉬운데, 현재적 자기를 잘 파악하면 좋겠다.  


  [참고] 본인은 협의의 구원(칭의)에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간의 행위와 선함이 근거가 되지 못하는)라고 믿는다. 그러나 광의의 구원(영화의 단계)까지의 성화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인간의 책임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인간의 책임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본주의적이라고 본인을 보는 사람들이 여전이 있지만, 요즘은 그래도 전보다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잉의존: 본인이 해야 할 책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할 부분임에도 너무 빠르고 쉽게 '은혜'를 구하는 것을 봉니은 과잉의존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매우 신앙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부족한 모습이다.  


6. 성경적인 근거를 봅시다.


  1) 히 5:12-6:2 시간이 지났음에도 성인이 되지 못하고 유아기적 상태에 있는 것을 지적하는 본문. 

   <성숙한 자는>

    - 자신의 지각을 사용함

    - 연단을 받아

    -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


   <그리스도의 초보>  

    - 죽은 행실을 회개함

    -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

    -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


   이런 것을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2) 빌 2:12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 여기서의 구원은 협의의 구원이 아니라, 광의의 구원을 말한다. 

    - 광의의 구원에는 우리가 해야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3) 벧전 2:2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라.



7. 과정성을 적용하는 방법

 1) 언어습관을 바꾸라: 언어에 '과정성'을 담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나는 1리 가는 사람이다 -> 나는 '지금'(아직은, 현재는)은 1리 가는 사람이다. 


  2) 사랑: 가장 완전한 조건 속에서 하는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한 조건의 사랑이 사랑만이 아니라 내 수준에서 하는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3) 정상성: 저 사람이 저렇게 한 것은 '정상적'이지...라고 인정하면서 받아들인 경우가 얼마나 있나요? 

   당위적인 자기, 지향적 자기에만 관심이 몰려있지 현재적 자기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니... 늘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판단한다. 

    예) 이기심 -> (정상적) 이기심 / 분노 -> (정상적) 분노


   모든 이기심이 죄가 아니다. 이기심 안에는 정상적인 이기심이 있고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4) 분수개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임. 한계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요구하는 것. 만용이 위험.


  5) 강적: 나의 모든 것을 다 해도 할 수 없는 사람을 강적이라고 한다. 적절한 대응은 피하는 것이다. 


   예) 강적에 대해서 적절한 NO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YES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질문] 개인에게 있어서는 분수에 맞는 기꺼움으로 해야 하도록 해야 하지만, 만약 공동체로서 안에서 맡겨진 책임이 있는 것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인가?

   (1) 나의 역할에 대한 우선순위 설정. 가장 중요한 역할부터 순위를 맺어야 한다. 

   (2)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라도, 가장 적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도록 한다.


마무리-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이 책은 구원의 시작과 최종적 성화 사이의 상태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에 대해서 다룬다. 저자는 그것을 과정적 존재, 지향적 존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지향적 존재를 현재의 목표로 여기고 살아가고, 그렇다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성도는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무리한 요구라는 것이다. 오히려 과정적인 존재로서 시작점과 목표점 사이의 다양하고 폭넓은 과정 중의 한 지점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과정적 존재라는 것,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것이 정상이라는 것만을 알게 해줘도 많은 성도들은 자신의 상태를 안심하고 받아들이고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적인 존재임을 무시하고 성급히 지향적 목표만을 강요한다면 성도들은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질 것이고 신앙적 열등감 속에서 불행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 교회 안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다른 말로하면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인간론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신학교를 통해서 인간론을 배운 분들(목회자)에게서는 잘 다루어주지 못한 부분 혹은 그 분들에게 잘못 다루어진 부분을 잘 끄집어내어 다루어주고 있다. 


저자는 정신과의사로서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하신 분이고 신학도 하신 분이다. 이 둘을 다 했다고 균형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김 진 선생님은 신학이라는 토대위에서 인간의 이해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고 보인다. 지금까지 상담을 전공한 목회자들로부터 들어왔던 내용에 있어서 확연히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다. 특히 구원이후의 성도들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구원여정을 안내한다. 


한국교회에 더 많은 성도들이 읽어야할 책이라고 본다. 또한 성도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반드시 먼저 읽고 이해해야 할 책이라고 본다. 적극 추천한다. 


 * 추가: 다 읽고나서 다시 정리한 글.


이 책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우왕자왕하는 지점을

잘 끄집어내서 설명하고 있다. 신학이나 구원론적 용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전문가(신학도 공부한)가

잘 풀어설명했다. 지향성과 과정성이라는 개념으로 

과정을 살고 있기에 많은 한계과 고민 불안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당신은 정상>이라는 진단을 해주고 평안과 자유를 준다.

그리고 지향적 존재로서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해 목표를 향하게 한다.

의무와 당위로서가 아니라.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민했던 지점이 많았던 분들에게는

저자가 주는 중간 중간의 개념정리들 속에서 '복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본다.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전문가에게서 듣는 '성화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지금까지도 계속 추천했지만

더 격렬하게 이 책을 추천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페북에 올렸던 짧은 글들을 모아서.


1. 최종적인 정리


사람에 대한 이해란,
먼저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숨겨져있던 나에 대한 이해까지. 이것은 왜곡될 수 있는 내 안의 안경을 바르게 교정하는 일이다.

다음은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해란 판단하기 전에 관찰하는 것이다. 평가해서 구분하기 전에 그 배경을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으로 이해해 보려고 해 보는 것이다. 

나에게도 문제가 있고
타인에게도 문제가 있으니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우선 표현을 참고 시간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의 이해라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알고, 알수 없는 요인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서 겸손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더, 사람은 과정을 거치는 존재라는 것도 잊지 말자.



2.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표현이 되게 되어 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들어온 것들은 [닫힌 세계]에 있다가 최초의 원인자가 아닌, 훗날 그 비슷한 것의 그림자를 보여준 사람들에게 불현듯 뛰쳐 나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래서 자기 마음으로 무엇이 들어가 자리 잡고 있는 지를 잘 살펴야 하고, 그렇게까지 힘들면, 숨을 고르며 행동을 조절하는 훈련이라도 해야 한다. 

- 책 읽으며 생각 정리 중.


3.

마귀는 죄를 짓게끔 유혹하지만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짓는 것은 바로 인간인 나인 것입니다. 바로 그 인간을 정확히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 사이만 오고 가서는 안된다. 그 사이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그리스도인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김진)


4.

기도가 통하지 않는 영역들.

1. 영어에는 기도가 통하지 않는다.(미국으로 유학간 학생)

2. 신혼의 부인의 음식솜씨 역시 기도가 통하지 않는다.

3. 시험 성적은 기도가 통하지 않는다. (예수 천당으로 유명한 최권능 목사님이 시험을 거의 백지로 내고 나오시면서 하신 말씀, 성령님도 시험에는 꼼짝 못하시네...)

- 책 읽다가. ㅋㅋ


5. 

성경은 선을 명확하게 해서 구분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 선 안으로 많은 인생을 담으시려고 어느 정도 그 선을 불명확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또한 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주하지 않고, 늘 내가 선 안에 있는가 살피도록 하기 위해서... 그 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6.
정신분석학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죄라는 개념이 없다. '사람들이 죄라고 하는 것'에 대한 심리를 또는 감정을 다루는 것이다.

- 김진.

7.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성경의 지향적 목표에 너무 빨리 노출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아직은 어린 아이에게 어른처럼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자신의 내적 상태는 어린아이인데 어른처럼 행동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성한다. 이런 사람에게 두 가지 면에서 갈등이 오는데, 다른 어린이들을 보면서 자기 처럼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정죄하고(그러나 교회는 누구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을 정죄하니, 결국 정죄하는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만다)또는 겉으로는 어른처럼 흉내내는데 속은 어리고 유치한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이와같이 교회가 성도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지향적 목표를, 현재적 목표로 가르칠때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와서 겸손한 성도가 아닌 기죽은 성도가 되고 만다.

그리스도인은 <과정적이고 지향적인 존재>라는 한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

--- 책 읽으며 생각 정리 중.

8.
한 사람의 오늘을 형성하게 되는 의식은 
[닫힌 의식]+[열린 의식]

닫힌 의식은 자신도 모르는 의식의 영역(무의식)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면 나 자신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만다. 나도 그런데, 다른 사람의 [닫힌 의식]까지 어찌 알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게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가 보다.

- 그리스도인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김진)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

9.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김진, 그리스도인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말씀사, 




투사: 내 잘못의 원인을 나도 모르게[닫힌 의식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찾게 되는 것. (예, 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해 당했던 수치 때문에 자녀가 공부를 하지 못할 때, 과도하게 화를 내게 되는 것)


억압: 열린 의식 속에서 받아 들일 수 없는 일들을 닫힌 의식 속으로 밀어넣으려는 것(예, 어릴적 아버지가 술먹고 엄마에게 욕을 하고 구타한 것에 대한 기억을 닫힌 세계 속에 밀어넣으려 하지만 결국 어느 부분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남편이 술을 먹는 것에 대해서 매우 냉냉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온다.)


합리화: 자신의 언행이 밖으로 내보이기에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원인 대신에 열린의식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는 것.(예, 자신이 운동을 잘 못하니까 오히려 공부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고, 공부가 취미라고 말한다.)


전위 또는 전치: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가 그것과 감정적으로 연관이 있는 다른 것으로 대치가 되고 또는 전체가 부분에 의해 표현되거나 그 역으로 표현되는 것을 전위 또는 전치라 한다.(예, 어릴적 병원에서 고생한 친구 중 어떤 친구는 흰색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신도 모르게 흰색을 싫어하게 됨)



프로이드의 이와 같은 분석의 한계는

타락한 인간에 대한 철저한 관찰에 대한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방어기제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상위의 인간관(타락 이전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새 사람의 인간관이 있다는 것도 견지해야 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