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아 모이라(돌아서라)


  1) 명령이 시행되어 너희들이 겨같이 지나가기 전에

  2)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에,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4)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 다가올 심판, 광역으로 임할 진노에 대해서 지금 당장 돌아서라고 말한다. 왜? 곧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임하게 될 것이니까? 지금 이 시간이 마지막 순간이니까! 전체가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전체는 다수가 심판과 진노에 이르게 될 것이다. 돌이키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작은 소망이라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여호와의 규례를 붙잡고 지키려했던 자들이여 무리가운데서 돌아서서 나오라. 여호와를 찾으라.



2. 이스라엘 이웃 나라들에게 임할 재앙


  1) 가사, 아스굴론, 아스돗, 에그론 그렛 족속,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 버림당하고 쫓겨날 것이다. 

  2) 그들 중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가라. 그기서 쉼을 얻을 것이니 여호와가 그들을 보살피리라. 


  * 주변 나라도 함께 심판과 벌을 받는다. 유다와 다른 운명은 아니다. 더불어 그들 중 유다로 피하는 자(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유다의 남은 자가 구원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쉼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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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모압과 암몬이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 교만하여 조롱하고 비방하였다. 

  4) 하나님은 모압은 소돔 같게, 암몬은 고모라 같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5) 그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할 것이요.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기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게 될 것이다. 


  * 유다를 조롱했던 모압과 암몬에 대해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비견되는 큰 재앙이 따르게 됨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던(이들은 자신들은 견고하리라 생각했기에) 모압과 암몬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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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구스 사람들도 하나님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앗수르의 니느웨도 황폐하게 하고 사막처럼 될 것이다. 

  7) 기쁜 성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말하던 앗수르의 신은 황폐하게 되어 들짐승이 다니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 구스와 앗수르와 같은 큰 나라도 황폐하게 되고 만다. 특히, 앗수르는 세상에 자신만이 유일하다고 말하는 신을 믿고 있었는데, 앗수르의 멸망으로 그것은 웃음거리와 조롱이 되고 만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실 때는 그 백성만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백성들의 대적자들은 기뻐할 것이 아니라 슬퍼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기 백성의 잘못에 대해서 책망하시고 혼내시는 것은 죄에 대한 형벌도 있지만, 그 가운데 정화하여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자기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 대해서는 다르다. 오히려 심판과 형벌이 우선이다. 혹 그 중에 돌이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있다면, 혹 그들에게 은혜가 있을지 모르지만.


2. 하나님의 구원은 진노 중의 구원, 심판 중에 행하시는 구원이시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고 모두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다. 다수는 심판과 진노아래 있다. 그 중에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판 전에 하나님의 진노 전에 하나님을 찾고 그 분의 은혜와 긍휼을 기대하고 소망한다. 하나니은 그와 같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신다. 


종말 즉 주님의 재림의 때가 오기전 우리는 그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것이다. 시간의 길이로 보자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을 시간이 충분하지만, 기회로 본다면 일생에 한 두번 올지 않올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3. 스바냐 1장은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따른 심판을 말씀하신다. 스바냐 2장은 유다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대적자들에게 대한 심판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중에 구원이 있다. 유다 백성 중에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 이방인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오는 자들은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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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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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장]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다.


2. 하나님, 하나님의 큰 일을 속히 이루시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2절)



  * 하박국은 1장과 2장의 분위기와 달리 갑자기 겸비해졌다. 악한 바벨론에 대해서 고소하다가 그 문제가 바벨론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진노와 심판에서 긍휼과 자비쪽으로 돌아셨다. 심판이 우리의 대적을 향하는 것이라고 믿으면 왜 빨리 심판하지 않는가 따지지만, 심판이 나를 향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 일이 더디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지금 하박국의 심정이 그와 같은 심정이다. 


3.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면 얼마나 두려운가에 대한 묘사다.

  

  1)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고, 불덩이가 그의 발밑에서 나오는 도다.

  2)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고,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엎드려진다.

  3) 주께서 활을 쏘시고, 강들로 땅을 쪼개셨다. 

  4)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고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셧다. 


4.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모습


  1) 주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에 드러내셨다. 

  2) 대적들이 나를 흩으려 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다. 


  * 바벨론(대적)이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겠지만,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여 그들을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말씀이다. 미래적인 표현으로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승리와 그 백성의 승리로 마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5. 지금 현재의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하박국의 고백


  1) 대적자들이 우리를 처들어 오는 것으로 인해 입술이 떨리고, 내 몸이 떨었다. 

  2) 그래서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3)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왜?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으므로 인해서 현재의 두려움과 환난을 극복하며 오히려 소망 가우데 지날 수 있는 것이다. 


  4)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리로다. 


  * 여호와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상황을 뛰어넘는 즐거움과 기쁨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세상의 환경을 뛰어넘게 하시어(극복했다기 보다는 극복할 수 있는 신앙과 소망 중 인내를 주심으로)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셨기 때문이다. 



[묵상 한 모금]


1. 하박국의 태도 변화(우리도 마찬가지)


하박국 1,2장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바벨론의 죄악을 고발하고, 이 극악 무도한 죄인을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로 의인(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시는 것이 의로운 일인지 하나님께 따집니다. 참고 말씀을 아끼시던 하나님은 결국 악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는데, 그 악은 바벨론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역시 그와 같은 죄로부터 자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박국은 바벨론을 고발하다가 우리 자신도 같은 죄를 지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자 하박국은 돌연, 바벨론에 대한 고발을 멈추고 정신을 차린다. 자신이 고발한 것으로 자기 백성들이 심판을 받을 상황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하박국은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기다리게 된다. 정죄하는 자리에서 긍휼을 구하는 자리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바리새인의 자리에서 세리와 죄인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자리에 있는가! 심판하는 자리에 있기 원한다면, 심판을 받을 것이고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자리에 있다면 긍휼과 자비를 얻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행하실 심판을 기대함


하박국의 초기 기대는 바벨론의 신속한 심판이었다. 바베론이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그리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긍휼과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하박국은 신속한 심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그래서 지금이 아니라도, 어쩌면 우리가 바벨론에게 능욕을 당하고나서라도 하나님은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하박국의 기도는 바뀐다. 오히려 찬양으로. 지금 당장 두렵고 떨리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섭리) 그래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겠습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범죄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3. 나를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현재의 상황(기쁨이든 고통이든)에 좌우되지 않는 곳으로 인도하시니 마치 사슴이 높은 곳을 다니듯 세상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란, 만사형통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어떤 장애물도 그의 신념과 믿음을 굽히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왜 우리는 이런 사람을 키워내지 못했는가! 장애물을 극복할 때 얻게 되는 배움도 크지만, 장애물 앞에 멈춰서야만 할 때 배우는 교훈도 적지 않은데 말이다. 우리가 높은 곳을 다니지 못하고, 낮은 곳에 머물고 있으니... 우리를 낮게 보는 것 같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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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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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가 읽은 모세의 말씀을 읽고는 백성들은 울고 말았지요. 그러나 충분히 회개하고 울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날은 성일 이었고, 즐거운 날이어야 했으니까요. 먹고 마시며 즐기는 날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초막절의 7일을 보냈습니다. 초막절이 끝난 것이 일곱째 날 22일(15일부터 일주일을 초막절로 지키니)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일곱째 날 24일이 되었습니다. 절기는 마쳤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회개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일곱째달 24일에 사람들은 다시 모여 온 민족적인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이후에 새로운 언약 체결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다시 구하게 되지요.

 

[1차 정리. 내용정리]

1. 귀환한 유다 백성들의 이스라엘 역사관

  1) 일곱째 달 24일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모여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씀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함.

   (1) 낮의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함

   (2) 낮의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3)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같은 사람들은 단 위에 올라가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2. 여호와 하나님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함.(5- 37)

  1)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원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합니다.

  2) 옛적에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심(7,8절)

  3) 애굽의 고난받는 것을 감찰하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적과 기사로 애굽을 치셨다.

   :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심

  4) 시내산에서 강림하셔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셨다. 안식일 알리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셨다. (11-15) 그 땅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여 주셨다.

  5)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않고 거역했으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사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17절)

  6)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들의 것을 차지하게 하셨으나, 이스라엘이 순종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거역하여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다.(18-26)

  7) 그래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셨다가 그들이 환란때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크신 긍휼로 다시 구원하였으나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 이러기를 계속 반복하는 역사를 보냈다. 그래서 결국은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신 긍휼로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시지는 않았다.(27-31)

  8) 앗수르 이후부터 지금까지 당한 고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소서. 우리는 악을 행하였으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고, 그들이 우리의 소산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심히 곤란하게 되었습니다.(32-37)

3. 재 언약을 약속하는 귀환한 백성들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였나이다.

 

[2차 정리. 성경 내용을 내 것으로 재정리]

에스라가 읽어 준 말씀에 순종하여 귀환한 백성들은 회개했고, 일곱째 날 15일에 7일간 초막절의 절기를 온 마음을 다해서 지켰다.

그리고 초막절이 끝나고 이틀 후 그 달 24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였다. 아마 에스라가 처음 말씀을 읽었을 때, 사람들이 회개의 마음으로 울려고 했던 것(8:8-10)을 성회이기에 즐거워하라고 했었던 것에 대해서 절기를 지나 따로 회개의 날을 잡아 진행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백성들은 우선 이방인과의 절교를 하고, 죄를 회개했다. 한 낮의 사분의 일은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여 듣고, 또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께 경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때 예수아를 중심으로 한 레위인들은 이전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며 자신들의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분인데, 그 분의 언약 속에서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는데.. 그리고 그 분은 성실하게 우리의 필요들을 채우며 인도해주셨는데, 우리 조상 이스라엘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큰 긍휼로 다시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이스라엘은 돌아오도록 보낸 선지자마저 듣지 않았다. 이런 악순환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결국은 하나님은 앗수르에 손에 이스라엘을 붙였다. 그러나 아주 멸하게 하시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가 충분히 고난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니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다시 견고한 언약을 다시 세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오니 하나님이여 돌이키시사 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3차 정리. 묵상과 적용]

 1. 반드시 죄의 문제는 퉁치고 가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에스라를 통해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을 때, 이들은 이들이 직면한 이 모든 고난의 역사가 하나님의 징계며, 조상들과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인 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성일이요 기쁨의 날이었다. 이들은 이들의 감정조차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에 맞춰 순종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감정이 상하거나, 감정이 흥분되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요즘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감정적으로 아팠고 슬펐지만, 이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을 초막절로 지켰다.

그리고 초막절이 끝났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았던 자신의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갈 수는 없었다. 지도자들도 그것을 알았다.  초막절을 마치고 이틀만에 다시 모였다. 본격적인 회개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종종 회개의 감정을 갖는다. 그러나 그 감정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무뎌진다. 잠시 회개의 내용들을 말한 후, 아니면 그 감정의 때를 놓치고 나면 회개에 대한 의식조차 잊어 버린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는 회개의 무게가 가볍기 때문이다. 통회, 통증있는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의 파장이며, 느낌이었지 우리의 심비에 새겨질만한 아픔이 없는 죄책감이기 때문이다. 귀환한 이들은 그런 회개는 아니었다. 이들이 말씀을 들었을 때 깨달았던 본인들의 죄는 거대한 파도같아서 자신을 덮쳐왔고, 그 충격과 감정은 우리의 이성에 새겨지는 아픔이었다.

절기를 마친후 이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모인 것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쉽게 죄를 잊는 것이 아니라, 쉽게 죄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 아픔과 파장과 파멸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복음이 복음으로 우리 안에 계속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죄의 아픔과 크기를 잊게 하는 복음이 우리를 방종으로, 무례함으로 교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크신 긍휼로 인하여

긍휼이란 단어 만으로도 호의가 느껴진다. 그런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긍휼에 <크신>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긍휼>이란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크신 긍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긍휼을 베푸셨는지... 얼마나 많은 거절과 완고함과 교만에 대해서 다시 긍휼을 베푸셨는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너무나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긍휼하시다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의 긍휼은 참으로 크다라고 놀라고 감탄하고 경배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은 긍휼하시다는 말씀에 그나마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의 큰 죄를 덮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는 큰 긍휼을 성경은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할 수 있겠다.

우리의 큰 죄 <<<<< 하나님의 크신 긍휼

믿는 자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아멘.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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