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근동학적 발견이 우리의 복음주의적 성경관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1. 오늘날의 복음주의적 성경관은 반드시 구약성경을 고대근동의 문서로서 설명해야 한다. 

   : 이와 같은 사실을 인식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성경관을 조정하는 것까지 필요하다. 


2. 성육신적 차원에서 형성된 성경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함의를 가져야 한다. 

   : 이스라엘의 삶의 규범을 단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삶의 규범으로도 적용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고대근동 세계의 관습을 우리는 더 이상 공유하지 않는다.(문자주의적 해석에 경계해야 함을 말하는 듯:개인적 생각)


3. 성경의 성육신적 요소는 오늘까지 지속된다. 물론 정경은 완성되었지만, 복음이 문화적 측면과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음이 문화적 시류에 따라서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 세대가 살고 있는 세계와 복음이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고민하면서 복음의 메시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경은 완성되었지만, 성경의 해석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개인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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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는가?]



1. 자유주의-보수주의 논쟁가 교착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은 고고학적 발견이 성경을 어떻게 입증하느냐 혹은 반증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있다. 즉, 우리의 선이해(믿음)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그 증거자료를 가지고 다른 입장으로 설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2. 저자가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전제하는 두가지 

  1) 고고학 또는 문헌학의 성경 외적인 증거들이 우리의 성경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2) 성경의 본질을 진술하려는 모든 신학적 시도는 기꺼이 검증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성경과 성령은 교회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오셨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인도하심으로 이끄신다고 본다. 

  * 박영선 목사님이 말한, 실천신학의 개념을 말하는 것 같다. 성경 해석은 현장에서 피드백 되는 것을 통해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실천신학이듯, 완전한 해석을 위해서 지금도 그와 같은 과정으로 인도하신다고 저자가 말하는 것 같다. 


3. 창세기는 신화인가 아니면 역사인가?(그룹1에 대해서)


  1) 창세기 1-10장과 에누마 엘리쉬, 아트라하시스, 길가메쉬를 비교해보면, 구약성경에도 신화가 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다. 

  2) 저자는 창세기가 신화인가 역사인가 양자택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구분은 근대에 와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분은 근대기준으로 역사는 신화보다 더 가치있고 하나님의 성품과 부합하지만, 신화는 그렇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3) 저자는 오히려 반문한다. 하나님이 고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가 신화라고 부르는 장르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가? 우리는 신화를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할수만 있다면 신화라는 용어 말고 다른 말을 사용하면 좋겠다.(그러나 할 수없다.)

  4) 신화는 인간과 우주의 기원, 그리고 그것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 고대인들의 대답 방식이다. 가령,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등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고대인들이 이야기 형식으로 대답한 것이다. 따라서 그 이야기에는 고대인의 세계관, 즉 근대적인 사유나 과학적인 사고가 생겨나기 이전의 세계 인식을 반영한다. 


   (1) 이스라엘의 문화는 고대근동 세계에서 늦둥이에 속한다. 

   (2) 이스라엘 족장들의 문화는 구전문화였다. (구전문학 형태로 만들어졌고 후대에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추청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3)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족장시대였던 주전 2000-1000년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히브리어의 전신격인 언어는 있었지만(셈어, 우가릿어)

   (4) 셈어의 알파벳은 주전 1700년경에 이르러서야 아주 원시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함.(이 알파벳은 히브리어의 기초뿐 아니라 다른 셈어, 아람어, 모압어, 에돔어, 암몬어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성경의 이야기는 애초에 구전문학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후대에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고 봐야 한다. 

   (5) 히브리어가 존재했다는 성경 외적인 증거는 주전 1000년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문서는 게제르 달력이다.(주전 10세기로 추정, 페니키아 어인지 히브리어인지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음. 19개의 단어가 전부) 가장 오래된 성경 필사본은 사해문서로 그 중에서도 빠른 것은 주전 2세기 정도다. 

   (6) 현재의 고고학적 자료만 가지고 설명한다면, 창세기는 처음에 구전문학의 형태로 존재했으나, 주전 1000년 이후 어떤 시점에 오늘날의 형태와 같은 문자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창세기는 고대 근동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이전부터 문화를 이루고 있었던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수백년동안 창조신화도 없이 단지 히브리 노예들의 창조신화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4. 그렇다면 창세기가 왜 그토록 다른 고대근동의 문헌과 유사한가? 


  1) 창 11장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사람이고 그는 수메르 문화의 사람이었다.(여호수아 24:2) 아브라함이 들어갔던 가나안 땅도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들이 풍성한 곳이었다. 

  2) 하나님은 처음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으로서의 아브라함이었다. 

  3)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은 고대 근동의 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 이것이 이방인의 신화를 너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 당시에 이런 메시지는 매우 급진적인 것이라는 것이다.(바벨론의 신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

  4) 정리하면, 하나님은 당시 고대 세계의 신화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였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고대인의 신화를 변화시키셔서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참된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도록 했다.


5. 고대근동 사람들의 세계인식


  1) 74쪽에 있는 그림(고대근동의 세계관)

  2) 그렇다고 창세기가 에쉬마 엘리쉬를 그대로 옮겨다고 볼 필요는 없다. 차이가 많다고 보는 학자들도 적지 않으니까. 저자가 말하는 것은 자료 사이의 상관성이 아니라, 개념적 상관관계다. 즉,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이웃 민족들과 공유했던 세계관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3) 창세기의 세계 인식은 현대 과학의 방식이 아니라, 고대 신화의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세계관과 신관은 당시 세계관의 입장에서 보면 급진적.

  5) 중요한 것은 창세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의 기원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가에 있지 않다. 

      예) 천지 창조의 <날> 문제, 홍수가 전 세계적인가? 국지적인가? 

     창세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위한 답을 주기 위해 기록됨.


 [정리]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세계로 들어가신다. 그분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말씀하신다고 할 때의 의 미다. 또한 하나님은 낮아지셔서 인간의 문화를 수용하시고, 인간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신다는 것의 의미다. 


6. 계시인 성경은 독특해야 하는가? (그룹2에 대해서)


  1) 그룹 2의 문서들을 통해서 볼 때도 성경에 언급되는 율법이나 관습 등이 그 당시 주변 나라들과 독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2) 독특한 것은 성경은 그 율법을 지킴으로써 이스라엘이 선적인 공동체로 만들어져 가기 때문이다. 십계명의 1,2 계명은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인데, 그 이외의 내용에 대해서는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상식적인 법들이라는 것이다. 

  3) 이스라엘에게 율법과 잠언이 있다는 것은 모든 법과 지혜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한 민족으로 만드시기 위해 일련의 행위 기준을 이스라엘에게 부과했다는 것이다. 


7. 좋은 역사서술은 반드시 객관적인가, 아니면 주관적일 수 있는가?(그룹3에 대해서)


  1) 텔 단 비문(다윗의 집)과 실로암 터널 비문(히스기야 왕)은 역사서술이 아니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중요한 증거일 뿐이다. 

  2) 메사 비문은 다르다. 이 비문에 오므리 왕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언급한 것도 있지만, 이 비문은 메사가 위대한 왕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고대 근동의 전형적인 역사서술 방식)

  3) 성경에서도 열왕기의 역사서술과 역대기의 역사서술이 상당한 차이가 있다. 

  4) 역사적 사건 - 사건의 기록(문서전승 혹은 구두전승) - 사건을 기록하는 목적 / 상호연관성

  5) 역사서술은 해석작업이다. 역사 기록이 하나의 문학 작품처럼 보이는 이유는  역사가가 특수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기 때문이다. 

  6)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 역사 기록이 거짓이 도는 것은 아니다. 사무엘-열왕기서는 '우리는 무엇때문에 유배당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기록된 역사서술이다. (우상숭배)

  7) 역대서에 대해서(히브리성경은 구약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 사무엘-열왕기서의 보충 자료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단독적인 목적을 가진 역사 서술로 봐야 한다. 역대기는 바베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조망한 역사서술이다. 

  8) 사무엘서와 역대기의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대해서

   (1) 복음주의자: 두 번의 사건이 있었다고 가정. 자유주의자: 문서의 오류

   (2) 어느 것이 진짜 나단이 한 말이냐? 저자의 답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기록된 것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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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다루어졌는가?]


1. 19세기까지 근대 성서학의 주요 쟁점은 대개 성경의 본문과 관련된 것으로 주로 성경 본문의 일차적 형태인 원문을 복원하려는데 있었다. 


2. 그러다가 고대근동 문헌의 영향으로 성경 본문이 기록될 당시의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혹은 사회적 배경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대두되면서 "원래의 본문은 어떤 모습이었는가"에서 "이 본문은 원래의 문맥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로 질문이 바뀌었다. 


3. 그러나 이런 고대 근동의 자료들이 성경의 유일성이라는 오랜 전통적인 개념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4. 19세기 몇 몇 학자들은 성경을 공격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였고, 이에 대해서 보수주의적 반응은 성경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로 자신들의 입장에서 완고했다. 서로 전선이 형성되었고, 그 이후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5. 이런 과정속에서 내려진 우려스러운 결론(자유주의자들의 결론)

  1) 자유주의자: 현대 성서학자들은 고대 근동의 문헌을 증거로 삼아 성경은 순수하게 인간의 책이라고 결론 내버림.


  2) 보수주의자: 근본적으로 성경이 특별해야 하고 독특행햐 한다는 전제(자유주의자들의 전제와 같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지해 주는 자료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고, 반대된다고 여겨지는 자료에 대해서는 후퇴해 버리곤 했다. 


  3) 구 자유주의자들도 새로운 이론이 나오고, 복음주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성경이 고대 문맥 안에서 나온 책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가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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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인가?]


1. 이와 같은 고대근동 문헌들이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제기한다.


  1) 성경, 그 중에서도 특히 창세기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것인가? 아니면 고대근동 문헌을 짜집기 한 것인가?

  2)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면 성경의 독특성이 무엇인가? 

  3) 고대근동 문헌이 발굴되기 이전의 교회 역사는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흘러온 것이 아닌가?


   : 성경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2. 지금까지 발굴된 문헌들을 정리해 보면


  1) 창조와 홍수: <에누마 엘리쉬>, <아트라하시스>, <길가메쉬>

  2) 관습, 율법, 잠언: 누지 문서, <함무라비 법전>, 히타이트 조약 문서, <아메네모페의 교훈>

  3) 이스라엘과 왕들: 텔 단 비문, 실로암 터널 비문, 메사 비문


3. 각 그룹별로 제기될 수 있는 질문들

 

  1) 그룹1_ 창조와 홍수: 창세기는 신화인가 역사인가? 

     (1)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대근동의 창조와 홍수 이야기를 신화라고 생각한다. 

     (2) 그렇다면 고대근동의 창조와 홍수 이야기와 유사한 성경 이야기도 신화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3) 저자의 제안

: 신화에 대한 정의에 따라 달라질 것인데, 편견없는 정의는 '신화는 인간과 우주의 기원, 그리고 그것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 고대인들의 대답 방식'이다.  당연히 고대인들의 세계관, 즉 근대적인 사유나 과학적인 사고가 생겨나기 이전의 세계 인식을 반영하게 된다. 


고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으로 설명하는 방식(특히 이야기 형식으로)


  2) 그룹2_관습, 율법, 그리고 잠언: 계시인 성경은 독특한가?


    (1) 누지 문서를 통해서 보면 구약의 족장 이야기는 주전 1500년까지 올라간다.(물론 기록은 주전 1000년 이후라고 본다.)

    (2) 하나님이 족장들에게 따르라고 요구했던 도덕적인 기준은 독자적인 명령이 아니라 주변 문화의 관습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됨.(당시 사회적 규범이 고스란히 적용된 결과)

    (3) 당혹스러운 것은 적어도 전통적인 입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하나님이 직적계시한 것이기 때문에 고유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4) 이 문제는 <계시란 무엇인가>라는 더욱 핵심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5) 성경의 내용과 고대 근동의 문헌 사이에 유사성과 연관성을 부정할 수 없다. 


  3) 그룹3_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왕들: 좋은 역사서술은 받드시 객관적인가, 아니면 주관적일 수 있는가?


    (1) 텔 단 비문, 실로암 터널에 나타난 자료들은 오히려 성경의 역사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2) 그러나 이것이 고대 족장의 역사적 신빙성까지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는 상대적으로국가적으로 평온했던 시기였기에 자료들을 남길 수 있었다.(어찌보면 근대 역사 기록과 유사한 상황이라 볼 수도 있다.)


    (3) 열왕기를 보면 왕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을 이루는 것을 볼 때, 그래도 미화시킨 역사라기 보다는 정확한 역사서술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4)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역사서술이 가능한 것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5) 메사 비문에서 메사 왕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함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역사 기록은 사실 그대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메사 비문에 거짓말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사실적인 내용들이 들어가지만, 거기에는 왕이 위대함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들어가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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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고대근동 문헌들]


1. 신명기와 히타이트 종주조약


  1) 성경에는 있었지만, 고고학적으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던 문명이 히타이트 문명이었다. 

  2) 20세기 동안 수차례의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빛을 보게 되었다.(터키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문명)

  3) 발굴품 중에 종주국과 종속국 사이에 맺은 조약문서가 있는데 이 조약문서가 신명기 전체 구조와 비교가 되며, 또한 십계명의 구조와도 비교가 된다. 

  4) 그 유사성에 대해서는 책 45쪽 참조

    (1) 조약문서는 먼저 종주국 왕의 이름을 밝히고, 그가 종속국을 위해 베푼 업적을 나열하는 것으로 서언이 시작된다.

    (2) 히타이트 조약문서는 역사적 서언에 이어 몇 가지 법조항들을 제시한다. 종속국들이 지켜야 할 규정들...

    (3) 더불어 종속국이 그 충성을 파기했을 때 신들에 의해 응징받을 것을 명시함.

    (4) 그 다음으로 축복과 저주가 나열된다.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을, 불순종하는 자에게 저주를 .

    (5) 두 개의 돌판에 새겨졌다. 십계명도 두개의 돌판에 있었던 것과 유사함.

    (6) 신명기의 구조는 히타이트의 구조와 유사하다.(46쪽 참고)


[저자 정리]

신명기나 십계명이 히타이트 조약문서 구조를 반영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서로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십계명이나 신명기가 당시 고대근동의 문서양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 


                                                                   히타이트 상형문자



2. 다윗과 텔 단 비문


  1) 아람어로 쓰여진 텔 단 비문의 발견(주전 9세기 혹은 8세기의 것으로 추정)

  2) 이 비문에 <다윗의 집>이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서의 다윗이 주전 10세기 경에 살았던 이스라엘의 왕 다윗 왕을 가리치는 것인가 하는 논쟁이 일었다. 많은 학자들은 다윗과 그 자손들이 그 당시에도 유명했던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되었다. 


3. 히스기야와 실로암 터널 비문


  1) 1880년 예루살렘에 있는 한 터널에서 비문이 발견되었다.  그 터널은 기혼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통과하게 되었다. 

  2) 터널은 양쪽에서 인부들이 뚫어 가다가 중간에 만나서 뚫은 터널이다. 비문은 그들이 마추친 순간을 기록한다.(참고. 48쪽)

  3) 이 터널에 히스기야나 산헤립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왕하 20:20절에 기록된 터널공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4) 특히 이 비문에 눈에 잘 띄는 곳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터날 안쪽에 들어가 잘 안보이는 곳에 있는데 이는 이 비문이 왕의 업적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그 당시 일했던 사람들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4. 오므리와 메사 비문


  1) 메사는 고대 모압의 왕으로서 주전 830년 인물이다.(역사적) 그는 자신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2) 메사는 구약 성경에도 언급된 왕이다.(왕하 3:4-5)

  3) 메사 비문이 중요한 것은 비문이 모압 왕 메사의 역사성을 증거해 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조. 50쪽)

  4) 이 비문을 통해서 오므리 왕이 얼마나 메사를 괴롭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확인시켜주고 보충해 주는 중요한 성경 외적인 자료임에 틀림이 없다. 






5. 잠언과 아메네모페의 교훈


  1) 구약성경의 잠언에는 <아메네모페의 교훈>이라 불리는 이집트의 지혜서와 매우 유사한 부분이 나온다. (참고. 51쪽)

  2)  잠언 22:17-24:22까지와 <아메네모페의 교훈>은 분명히 서로 연관돼 있고, 그들의 유사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3) 아메네모페의 교훈은 잠언에 비해 더 오래된 것(주전 1200년)인데, 이것은 잠언의 기록자가 아메네모페의 교훈을 미리 알았고, 참고했을 수 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집트 문자_파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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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요한 발견


  1) 앗수르바니팔 왕(주전 668-627)의 도서관에서 고고학자들의 발굴 작업(주후1848~1876년)

   (1) 초기에는 해독을 못해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지만, 해독되면서 이 토판들이 성서학 연구에 중요함을 알게 됨.

   (2) 그 안에는 천지 창조나 홍수에 관한 고대인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3) 이들은 이스라엘과 이웃 문화권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다. 

   (4) 조지 스미스가 이 토판을 번역하여 출판하고서 성경을 보는 방법이 혁명적으로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5) 이 언어는 아카드어(주전 3000년)라고 하는데, 고대근동 사회들의 주요 언어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앗시리아와 바벨론 제국의 언어가 바로 아카드어였다. 

   (6) 아카드어 토판들에는 법률문서, 경제문서, 역사문서, 서신문서 등이 포함되었다. 3000-4000년 전 고대근동 지역의 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2) 그중에서 종교문서들에서 발견된 것들

  (1) 구약성경과 매우 유사한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다. 

  (2) 전통적인 성경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발견이 충격적이다. 

  (3)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당시 고대 종교 문헌에도 나온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았다. 


2. 구체적인 예들


  1) 천지 창조 이야기: 에누마 엘리쉬

   (1) 에누마 엘리쉬는 바벨론의 창세기로 알려져 왔다.

   (2) 그 문서의 작성 연대는 주전 7세기 경으로 보지만, 그 내용의 이야기는 주전 2000-1000 사이 추정한다. 

   (3) 그러나 그 이야기가 기록되기 전에 구전되어 오는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2) 창세기와 에누마 엘리쉬의 유사성과 그 유사성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 창조의 순서가 유사하다. 

   (2) 창조 전의 상태가 흑암으로 표현된다.

   (3) 물의 분할과 구획이 이루어진다.

   (4) 태양, 달, 별 등이 창조되기 이전에 빛이 존재한다. 


  [주의] 

   - 창세기가 에누마 엘리쉬의 모방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창세기와 에누마 엘리쉬가 유사성 뿐 아니라 동시에 분명한 차이도 존재한다.(차이. 35쪽 참고)


3. 이러한 증거들이 말하고 있는 것들

  1)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이 유사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창세기와 에누마 엘리쉬를 쓴 사람은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호 공통점만 강조해도 문제지만, 차이점만 강조해도 문제다.(창세기의 고대근동적 문맥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2) 또 하나의 견해: 창세기가 에누마 엘리쉬와 같은 고대 근동의 유사 이야기들을 반박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창세기는 바벨론의 마르둑이 우주의 주인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된 신임을 밝히려는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4. 홍수 이야기: 아트라하시스와 길가메쉬 _ 재앙적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아트라하시스: 엘릴 이라는 신은 인간이 시끄럽다는 이유로 홍수로 멸망시키려한다. 주인공 아트라하시스는 에아의 도움으로 방주를 만들어 엔릴이 보낸 홍수에서 살아남는다. 


  2) 길가메쉬(38쪽 참조)


  3) 창세기 6-8장의 홍수 이야기와 아트라하시스 / 길가메쉬의 유사성이 얼마나 큰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한 쪽이 다른 쪽에게 영향을 주었든지 아니면 두 이야기의 공동의 뿌리가 되는 보다 오래된 제 3의 원작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아카드어로 기록된 홍수 이야기와 성경의 홍수 이야기보다 더 오래된 수메르어로 된 홍수 이야기가 존재함으로 후자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있다. 


5. 이스라엘의 족장들: 누지 문서


  1) 누지(NUZI)는 주전 1500-1300년대에 오늘날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번성했던 고대 도시의 이름이다. 

  2) 1920년대 중반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토판: 문학, 법률, 행정, 경제 문서들을 담고 있다. 

  3) 주전 14세기에서 15세기의 것으로 추정: 당시 생활상을 보여줌(아브라함, 사라,이삭, 야곱의 시대상)

  4) 창세기에 나온 이스라엘 족장들의 이야기와 누지 문서 사이의 몇 몇 중요한 유사성( 참고, 41쪽)

    - 족장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풍습이 실제 그 당시의 풍습과 일치하는 역사성을 확인시켜 준다.


6. 율법: 함무라비 법전


  1) 함무라비는 주전 18세기에 바벨론의 왕. 그는 통치 기간 중에 법전을 집대성했다. 

  2) 1901년과 1902년에 걸쳐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3) 함무라비 법전은 약 300개에 가까운 법 조항을 가진 상당히 긴 문서인데 이 법전과 구약 성경의 율법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존재한다. (참고. 42-43쪽)


  4) 질문: 출애굽기를 보면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직접 계시하신 것이 아닌가? 

   (1) 함무라비 법전은 시대적으로 시내산 율법보다 훨씬 앞선다. 

   (2) 모세의 율법을 함무라비 법전및 다른 고대 근동의 법전들과 비교했을 때, 모세의 율법이 그다지 특별한 법은 아니다. 



[정리]


1. 최근 학자들은 구약 성경을 고대 근동의 틀(역사적인 문맥) 안에서 연구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2. 문제는 고대근동 문화의 영향권 아래서 성경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 성경이 그리 독특하거나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자료를 보면서 성경은 고대근동의 종교문헌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결론 짓는다. 한편 보주주의자들은 구약성경과 고대근동의 문헌 사이의 상관관계를 과소평가하려는 입장을 취해왔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성경관을 위협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 저자는 자유주의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이나 모두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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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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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리]


1. 이 책이 지향하는 목표


  1) 복음주의적 성경관과 현대 성서학 사이에 대화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2) 저자가 볼 때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생각: 현대 성서학을 공부하면 복음적인 신앙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3) 저자의 목적: 성경을 생동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현대 성서학적 연구가 주는 도전들 때문에 고민하며, 기존의 교회에서 주는 대답들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 나는 이들을 주된 독자로 하여 이 책을 썼다. 


  4) 저자가 기존의 성경관에 대해서 가지는 확신과 새로운 제안

   (1) 성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2)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선물이다. _ 복음주의적 통찰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3) 그러나 교리화한 것에 대해서는 항상 잠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새로운 증거들이 나오면 그것들을 반영해야 하며 교리적인 언어도 조정해야 한다.(?)

예) 코페르니쿠스.(1473-1543) 당시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과학적 사실을 잘못알고 있었음으로 인해)


[추가논지] 이런 의식은 특별계시(성경)과 일반계시(피조세계)와의 관계라는 고전적인 문제다. 특별계시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일반계시(특별계시와 다르게 보이는)에 대해서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대표적인 사건은 20세기에 초에 있었던 스코프 원숭이 재판(고등학교 생물 교사가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법정에 선 사건) / 자유주의대 근본주의의 싸움이 되었고 주류론자와 복음주의자, 진보주의자와 전통주의자의 충돌을 의미.


  5) 저자가 하려고 하는 작업은 타협점을 찾거나 난해구절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성경관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성경 외적인 증거와 자료들을 설명해내기에 보다 적합한 패러다임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복음주의자들이 현대 성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대해서 충분하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오히려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6) 저자가 제안하는 전제


  "성경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는 문제들은 성경 자체와 관련이 있기보다는 성경에 대한 우리의 선이해와 관련이 있다."


   (1) 우리의 선이해를 일단 보류하고,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어떻게 말하는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매우 유익하다. 


   (2) 복음주의 신학에서 잘 다루지 않는 세 가지 주제

주제1. 구약 성경과 고대근동 문학: 왜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이스라엘 주변 국가의 문학 작품들과 유사한가? 구약성경은 정말 독특하고 고유한 것인가? 아니면 구약성경도 고대근동 문학의 하나에 불과한 것인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왜 그렇게도 고대근동 문학과 잘 어울리는가?(유일성 문제_내 정리)


주제2.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신학적 다양성: 왜 구약성경은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구약성경은 마치 모순들로 가득 찬 것 같다. (일관성 문제_내 정리)


주제3. 신약성경 저자들의 구약성경 인용 방식: 신약성경 저자들은 왜 그렇게도 기묘한 방식으로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는가? 그들은 구약성경을 문맥과 관계없이 자의적으로 인용하는 것처럼 보인다.(해석의 문제_내 정리)


[추가적 설명] 주제2,3에 대해서는 성경 자체에서 제기되는 문제다. 주제1에 대해서는 최근 150년 사이에 활발하게 발견되고 있는 것인데, 전통적인 성경관은 그 전에 이미 확립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내용들이 반영되지 못한 상태에서 확립된 성경관이다.(저자의 입장은 최근 발견된 이 고고학적 발견을 반영한 개정된 성경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3) 이 세가지 주제를 잡은 이유: 전통적인 복음주의 성경관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1: 성경의 유일성에 대한 도전 / 성경은 정말 특별한 책인가?(신적 계시인가 인간적인 산물인가?)

주제2: 성경의 일관성에 대한 도전 / 성경은 정말 믿을만한 책인가?

주제3: 성경의 바른 해석에 대한 도전 / 신약의 저자는 구약을 인용할 때 본래 문맥적 의미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이것은 성경을 문맥과 상관없이 해석해도 된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2. 문제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 성육신 유비


 1) 성육신 유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신 것처럼, 성경도 그렇다."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신이 살았던 세계의 문화적 옷을 완전히 갖추어 입고 계셨다. 

 2) 성경도 하나님의 책인 동시에 인간의 책이다. 성경도 고대근동의 문화 가운데서 생산된 책이다. 성경은 고대근동의 문화와 연결점을 가지면서, 바로 그 문화에 호소하는 책이다. 즉, 성경도 역사적 산물이다. 

 3) 초대교회 가현설을 주장(완전한 신이지만, 인간처럼 보였다.)했던 이단처럼, 성경에 대해서도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지만, 단지 인간의 책처럼 보일 뿐이다.(복음주의자들의 속내(?)_저자의 지적)

 4) 성경의 인간적인 특징은 성경을 성경되게 하는 것이다.(성경의 인간적 측면을 강조하게 될 것임을 알수있는 문구이다.)


 5) 성경이 인간적인 옷을 입었다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증거들


  (1) 성경에 사용된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하늘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언어학적 발견을 통해서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히브리어는 고대 셈어 중 하나며, 신약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이전에 알려진 그리스 문학에서 사용하던 언어와 많이 달랐는제, 고고학적 문헌들이 발견되면서 평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이 훗날 알려지게 되었다.)


  (2)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성전, 제사장, 그리고 제사는 이스라엘 만의 것은 아니고,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3)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주변 국가에도 있었던 존재들이다. 


  (4) 이스라엘의 왕정 또한 주변 국들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주변 국가들보다 늦었다. 

  (5) 이스라엘의 법률체제는 주변 국가의 법률체제와 현저하게 유사하다. 이스라엘의 율법을 바벨론의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주변 법전과 비교하면 그 둘 사이에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 이와 같은 것들은 19세기 중반부터 꽃 피운 언어학, 역사학, 고고학적 연구에 의해서 밝혀진 것들이다. 이전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얻게 된 것이다. 


6) 저자의 이해

  (1) 성경이 곳곳에서 주변 세계의 문화와 종교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성육신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결과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사람들은 시대에 제한된 존재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 시대의 특성을 채용하시어 자신을 계시하신다. 


  (2) 좀 더 강경한 표현을 쓰면 이렇다. 

   "성경이 주변 국가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다지 특별하지 않는 것은 계시의 성격상 필연적인 결과이다. 성경의 인간적 특징은 성경을 성경이 되게 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3) 이와 같은 논리를 그릇되게 이끌어가는 결론들

       ㅁ. 자유주의자: 성경이 고대 근동 문학의 하나에 불과하다.

ㅁ. 보수주의자: 성경에 있는 인간적 특징들의 중요성을 평가 절하하면서, 성경만의 독특한 점만 찾으려 함 


* 저자가 보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의 공통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 어떤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성경과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인간적인 특징만 부각시키고, 그것이 전부인양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의 인간적 특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 정리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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