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장의 내용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걱정하여 다시 방문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싶었지만, 상황적으로 불가능했다. 급한 마음에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냅니다. 환난 가운데 있는 교회의 형편을 살펴보고, 자신을 대신해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믿음에 굳게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디모데는 바울에게 돌아왔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디모데의 설명은 바울을 감격스럽게 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켰고, 바울에 대한 숫한 거짓 선동과 같은 말에 흔들리지 않았고, 크게 오해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바울을 보고 싶어했고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디모데를 통해 들은 바울은 가슴이 벅찼습니다.(제 생각)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일었고 감사가 이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염려되고 보고자 할 때마다 주야로 심히 간구(10절)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감격스러운 소식을 들은 그제서야 마음에 큰 시름을 놓고 고백합니다.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바울의 고백이 바로 부모의 고백이라는 것을 알것입니다. 자녀를 놓고 씨름하고 싸워본 부모, 자기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간절하면 간절할 수록 기도만 하게 되는 부모, 다가 갈려고 해도 다가갈 수 없었던 부모, 자식의 위태로움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그 자식이 이제 큰 어려움의 고비를 넘어 위태로운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 고백.

네가 괜찮다니, 내가 이제야 살겠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이라면, 바울은 부모요 위태로움에 처한 교회는 바울이 낳은 자식인 것입니다.

 

목회를 생각하고, 사역을 생각합니다. 자식이 건강하고 잘 나가고 좋은 곳에 취업하여 탄탄한 길을 간다면 부모는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하는 일이 잘 안풀리고, 하는 일마다 꼬이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는 더욱 더 그 자식에게 집착하고 마음에 담아 기도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사역, 우리의 목회는 자식의 잘됨 속에서는 잘 반영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잘 나가지 못하는 자식을 통해서 반영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역(목회)는 힘들지만, 보람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간절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옆에 있기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4절)

감찰이 사찰로 보인 건 최근에 떠들석 했던 뉴스 때문이다. 하나님도 사찰하시나? 아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신다. 그렇다면 무엇을 감찰하시는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좀 더 명백하게 밝혀 지는 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여행을 하며 교회를 세울 때, 외적으로 적극적인 박해도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바울의 의욕을 꺽는 거짓 소문도 난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바울이 사명으로 받은 복음 증거에 대한 흠집내기며 사람들로 하여금 바울을 편향된 각도에서 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외부의 대적과 싸워야 했고, 내부적으로는 거짓 소문과 성도들의 편향된 시선과 싸워야 했다.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할때도 바울은 그와 같은 심리적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도와 같은 사도권을 가졌지만,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교회가 주는 비용으로 생활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면서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_ 교회를 이용해 자신의 생계와 이익을 추구하는 자라는 소문을 의식한 결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바울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데살로니가에서 일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유순한(무력한으로 들리는) 유모가 자기 자식을 키우듯 부드럽고 온유하게 나갔으면, 아버지의 심정으로 자식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다.

바울의 이와 같은 복음의 열정과 진심을 데살로니가 교회는 충분히 이해해 주었다. 바울이 약한 모습과 권위없는 모습으로 나아갔음에도 그들은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들었다.(13절)

진심이 통하게 된 것이다. 바울도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 진심과 전심으로 섬겼고(오해와 거짓 소문과 싸우지 않고, 스스로 제약을 감수하면서 더 순수하게 섬겼다) 감사하게도 데살로니가 교회도 그 진심을 그대로 받아 주었다.

게다가 그 이후에 소식을 들어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동족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믿음과 신앙에 흔들리지 않고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아 견고히 서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14절)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얼마나 다시 보고 싶은 교회였을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17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영광이요 기쁨인 것이다.

 

하나님의 감찰이란 이런 것이다. 복음을 위해 맘조리며, 아무도 모르게 희생하며 교회를 세워왔던 바울의 수고와 고민과 눈물에 대한 감찰인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사역자들이 주를 위해 섬기면서 받은 어려움에 대해 감찰하시고 기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오늘 다시 기억해야 한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사찰하게 되었는가도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형편을 돌아보시며 긴급하게 도울일이 있는가 살펴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성도들을 향한 사찰이라면, 감사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불이익을 주기 위한 불법적 사찰이라면 이것은 아니 아니 아니되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부활절과 함께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 되었습니다. ^^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모범적인 교회라고 소문난 교회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세가지로 묘사한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3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중에 들렸던 곳으로 세 안식일만 말씀을 전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방해가 있어서 급히 베뢰아로 도피했던 지역이다. 3주라는 짧은 시간에도 말씀과 복음의 권세가 있어서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주께 돌아왔다고 사도행전 17장은 언급하고 있다. 그래도 바울이 있었던 시간은 3주간에 불과했다. 복음의 내용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체계적인 가르침과 돌봄을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복음적 야성을 가진 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란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바울의 전도팀과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었다.(6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이런 모습에 상당히 고무되어 교회를 칭찬한다. 특히 과거는 우상으로부터 돌아서게 된 것과 현재는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바울은 만족해 하고 있다.

[묵상]
1.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면서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칭찬받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생각났다.(계 3:8)

하나님의 능력은 공들인 만큼의 열매만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때로는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지 못하고, 공들이지 못하고 한참이나 부족한데도 하나님 당신이, 또 당신의 말씀이 그 사람들을 키우고 세운다는 것을 본다.
바울이 충분히 채워줄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 데사로니가 교회를 보면서 바울은 더욱 감사하게 되고 이 사역이 정말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2. 복음 스스로가 가지는 놀라운 역사를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서 볼 때 2가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9-10절)

첫째는 과거적으로는 <우상을 버렸는가>이다. 이전에 헛된 믿음과 생활을 버렸는가가 중요하다. 과거와의 결정적 단절이 복음으로 변화되었는가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둘째는 현재적으로 <강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가?>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현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며 살았다. 그들이 어떻게 주를 기다렸는가에 대해서 바울은 놀라고 있다.

 
데살로니가 전서가 앞으로 어떻게 전게 될지 좀 더 흥미가 생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골로새서는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비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 안에 모든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비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많은 부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내가 볼 때, 골로새서에서 그 주제와 관련하여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금욕주의>는 더 이상 발 디딜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그 분이 하신 일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의 초등학문의 지지를 받아 종교성을 드러내기 위한 열심에 불과하지 그것은 오히려 십자가의 복음을 훼손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금욕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게 주신 놀라운 복음이다. 수천년의 시간 동안 유대인들은 율법주의 아래 살아왔다. 또 모든 인류는 인과응보라는 심판사상 속에서 절대자(신)을 두려움 가운데 섬겨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고 보여주심으로 우리의 신앙에 자유를 허락하셨고, 이것은 분명 세상에는 없는 풍요다.  

금욕주의로부터 자유를 선언했다고 해서, 악한 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쾌락주의>가 교회 안으로 들어 올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쾌락주의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성도들에게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질서가 없는, 전통적인 관계와 틀을 파괴하는 무질서와는 전혀 상관없는 종교가 기독교다. 부부의 관계는 더욱 견고하며,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전과 종의 사회적 질서에 대한 변화를 우선적으로 촉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신비인 것이다. 전통과 구습에 매이지도 않으면서, 질서와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자유할 수 있는 종교.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비밀이요 하나님의 풍요의 진리다.

우리가 이와 같은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있는 이와 같은 신앙을 정당하게 누리면서도 책임을 잃지 않는 성도는 얼마나 될까?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2절)

골로새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결론에 와서 마지막 권면은 기도로 모아집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의 설교 결론과 유사하지요? 저를 포함한.

바울도 그렇게 말합니다.


두가지 측면에서 기도를 말하는데, 

하나는 기도로 깨어있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파하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보통 말하는 중보기도지요.


올해는 잘 못하지만, 작년 전임으로 1년 교회를 섬기면서
저 자신에게 좋은 훈련이 되었던 것은 새벽기도였습니다.

피곤하고 졸린 상태로 중얼거리면서 시작한 기도가
어느 순간 용사의 기도가 되고, 영웅의 기도가 되어
매일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았던 것은 모두 새벽의 기도 덕이었습니다.

이번 한주간 고난주간 특새로 다시 새벽을 깨워보았습니다.
다시 시작해야 겠다는 소망과 용기를 얻습니다.

이제 저는 매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핵심을 잃어버린 채 하루를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중심에 견고하게 서서 하루를 시작할 것인지 말이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깨어있겠지만,
우리가 깨어있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단순한 지혜를 놓치지 맙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을 풀어가는 것도 좋지만, 글이 너무 길면 페북에서는 살아남기 힘들죠? 그래서 오늘은 짧게 가보렵니다. 보통 서신서의 반은 이론이고, 나머지 반은 실천과 적용이라고 봅니다만, 제가 보니 조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골 3장에 실천적 요구(땅의 행실을 버리고, 위의 행실을 행하는)에 대해 많이 언급되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오늘 보게 되는 것은 골 2장에서 <금욕주의>에 대해서 세상 학문의 영향이지 참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식은 아니라고 본것이라면, 


골 3장은 <쾌락주의>에 대한 경계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금욕주의(율법주의자)도 아니지만 쾌락주의(율법폐기론자)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하나되기를 힘쓰는 자들이면서
부부 안에서는 복종과 사랑,
부모 자식 간에는 순종과 인격적 대우
종과 상전 사이에서는 성실과 의와 공평
(에베소서도 동일한 구조, 동일한 메시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금욕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쾌락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능하게 보이기도 하고(순종,복종해야 하니)
무력하게 보이기도 하고(사랑하고 용서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려고 하니)
무지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요령이 없고, 사람 다룰줄 모른다고 여겨지니)

그 모든 오해를 감내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선언한다.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2,3절)


그 비밀은 뭐고 그 보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갈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세워져 가는 것이다.


우선 그 당시 골로새 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혼란은 과도한 금욕에 대한 것인 듯 하다. (23절. 몸을 괴롭게 하는 것) 먹고 마시는 것, 절기나 초하루, 안식일을 지키는 것(16절)을 골자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였다.

골 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더 엄격하게, 더 철저하게, 더 행함으로 신앙을 표현하자는 것이 나쁘게 보일리 없다. 그래야 더 헌신적인듯 하고, 더 열심인것 같기도 하다. 또 그래야 뭔가 보상을 기대해도 될듯 하다. 부담스럽지만 금욕을 행하는 자의 이성에도 만족이 있고, 누가보더라도 종교인 다운 냄새가 나는 효과가 있다.


바울이 이런 가르침을 묵인만 했더라도 유대인들에게, 세상의 종교인들에게 비난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과도한 금욕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자유와 풍요를 갈취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본체되신(그림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불완전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골로새 교회와 주변 교회(라오디게아 등과 같은) 사이에서는 그런  가르침이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인지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럴듯한(육체로 뭔가를 행하여 자신의 헌신을 보여 줌으로) 가르침에 넘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나 보다. (이런 가르침을 바울은 세상의 초등학문이라 했다.20절)

골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과 더불어 육체로 행해야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율법적 가르침을 폐하셨다. 세례받은 성도란, 그런 가르침에 대해서는 육체적으로 죽은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르침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금욕주의자가 아니다.
금욕주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뭔가 행위로서 보여줄 수 있는 그럴듯한 행위를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금욕주의자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발적 절제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경건이라고 부른다. 절제는 고도로 성숙한 자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폭식하거나 단식하는 것은 극단적 모습이다. 그러나 즐기되 절제할 수 있는 모습은 아름답고 성숙한 모습이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부족한 것은


금욕이 아니라 절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빌립보서를 지나 골로새서로 들어가봅니다. 1장 내용을 정리해보면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입니다.
     같은 의미지만,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는 것, 그것은 그 아들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은 사건입니다.(13,14절) 이것은 전에는 원수였던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 앞에 흠없는 자로 세우시려는 것임을 바울은 말합니다. (20-22절)

2.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에 대한 설명
  첫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으로 만물은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 만물이 창조되었으며 그는 만물 안에 함께 섰음을 말합니다. (15-17절)
   둘째는 그는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며 근본이며, 만물의 의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3. 바울의 사명에 대한 설명인데
   이와 같은 내용은 만세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려졌으니, 그것을 성도 특히  이방인들에게 알게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요를 가르침으로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한다는 것이 바울의 사명입니다.(24-29절)


[적용]

아직 그 비밀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포인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19절)는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신다.

"예수 그리스도"

이것을 좀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신약 분야를 '기독론'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오랬동안 신앙생활하고, 성경도 보아왔지만 여전히 미숙한 신앙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은 모든 풍요의 충만으로 가득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만 그리고 단편적으로만 알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묵상하고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을까요?

제가 얼마나 잘 찾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지요?^^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빌립보서의 핵심적 내용과 흐름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서로 대립되어 갈등하지 말고 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2:1-11,4:2-3)

   1)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자기는 낮추고, 남은 낫게 여기라.

   2) 각각 자기의 일을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라.

 

2. 서로 견해가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또 달리 인도하시리라 믿고 오직 기도하는데 힘쓰면서 서로 용납하기를 힘쓰라.(3:15, 4:5-7)

 

3. 자기도 감옥에 갇혀보니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데, 오히려 그것이 감사한 제목이 되더라.(1:12-30)

 

4. 갈등가운데 있을 때, 너희들은 우선 기도하고 너 개인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해라.(4:8,9)

 

더불어 중간 중간 바울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많은 성경이라, 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성경이었다. 

1) 2:19-30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이야기

 

2) 4:10-20 빌립보 교회의 지원에 대한 축복, 자족하는 삶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빌립보서의 마지막 장인 4장에 왔다.

3장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4장은 1장과 2장에서 권면했던 내용들에 대한 재차 반복적인(강조하기 위한, 잔소리 같은) 내용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1.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특히 유오디아와 순두게)

2.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3. (너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대립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싸워이기려고 하지 말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라.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다면 알려주시리라. 믿고 기도와 간구로 풀어가라.(5,6,7절, 3:15)

4. 너는 너가 해야 할 일만 생각하고 그 일에 힘써라.

  예를 들면,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나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8,9절)

 

그리고 4장의 나머지는 바울과 빌립보 교회 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한다. 다시 나를 기억해 주어 고맙다는 것과 사실 나는 가난에도 풍부에 사는 법을 터득했기에 너희들의 도움에 의존된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너희들의 섬김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희들의 쓸 것을 채우실 것이다.(10-20절)

 

[묵상]

1. 바울은 교회 안의 분열을 매우 경계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에베소서뿐 아니라 빌립보서도 서로 다투지 말고 한 마음을 가지라고 요청하는 것이 메시지의 핵심이다. 생각해보니 고린도 전후서도 그랬고, 로마서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의 교훈이 다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교회 안에서의 분열과 나눔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경계해야 할 주제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2. 서로 합할 수 없는 견해를 가진 두 부류(혹은 그 이상의 부류)가 교회 안에 있을 때 지혜로운 대처 방법은, 자신 만이 옳다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기다려 보는 것이다. 다른 뜻이 있으시다면 다른 것을 보게 해 주실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서로 자신의 견해에서 한 발 물러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3. 그리고 이것을 인위적인 일치를 만들어 속히 진행하기 보다는 각자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일치가 있을 때 그 일이 진행되도록 하실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의견의 일치를 위해 힘쓰기 전에 자신의 견해를 먼저 관철 시키는데 발빠른가? 왜 다른 견해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평가하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지를 못하는가? 왜 주님의 일을 하면서 나와 너의 대결로 가려했던가?

조금만 용납하고, 조금만 더디 가면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면.. 우리가 원하는 때에 답이 없었다면 그저 각자의 일을 하면서 상황의 추이를 살피고 조금씩만 더디 갔더라면... 지금 후회하지 않았을 일이 참 많았을 텐데.

 

지금이라고 그렇게 하려고 해야겠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