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4:1)

바울은 3장을 시작하면서 '잔소리'를 하겠다고 미리 언급합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전에 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재차 강조해서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잔소리'와 같은 인상을 줍니다.

바울이 가르칠 내용이 부족했거나, 다룰 주제가 부족했기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립보 교인들의 안전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 안전이란 신앙에 있어서 안전이지요.

바울은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다가 다시 돌아서고, 말을 마치는가 싶다가 다시 말하는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방식이지만, 가볍게 지나갈 수 없어서 재차 강조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중요한 정보에 밑줄을 긋고 현광펜으로 덧칠하고 별을 그려넣듯... 꼭 잊지말고 기억하라고 바울은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느 예화에서 한 목사님이 같은 설교를 똑같이 매주 반복해서 하니까 성도들이 왜 같은 설교를 매주 하느냐고 물었다지요. 목사님 왈, 왜 매주 반복해서 하는 설교를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겁니까?

그러나 다시 같은 내용의 권면(1,2장에 했던)이 바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4장에 가서 다시 언급됩니다. 3장에서는 두 가지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하나는 육체를 자랑하지 말라. 우리가 얻은 의는 육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육체의 자랑을 모두 버렸다. 나는 계속해서 이 길로 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육체를 자랑하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땅의 있는 육체의 자랑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의 것을 바라보라. 우리는 결국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 아니냐? 우리의 불완전한 육체는 그 날에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뀔 것이 아니냐?

이 땅에서 심지어 교회에서 연합하지 못하고, 원망과 시비가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이 땅에서 내가 가진 조건(육체)에 대한 자랑 때문이 아닐까? 그것으로 인해 서로 비교하고, 얻기 위해 경쟁하고 그러는 와중에 편법과 조작이 난무하고... 이 땅의 자랑에 집착할 때 우리는 영원히 일치할수 없다. 세속 세상에서 win-win 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육체의 자랑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었을 때
땅의 시민권에 속하지 않고 하늘의 시민권에 초점을 맞추어 살 때

그런 성도들을 통해서 교회는 하나되며,  원망과 시비에서 자유로워짐으로 세상의 원수들에게조차 흠잡힐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이 세상의 빛된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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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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