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인격을 넘어서, 또는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

  1. 신학적인 교리에 대한 필요성
        1) 교리는 마치 지도 속 대서양과 같은 느낌(실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2)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대서양을 경험하면서 만든 것(개인의 경험을 충분히 넘어서는 것)
        3) 해변을 걷기 원하는 사람에게는 지도가 불필요해 보이지만, 해변을 건너 가려면 지도가 필요하다.
  1. 신학에 무지하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그것은 오히려 잘못된 개념(여러가지가 뒤섞인)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오늘날 유행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옛날에 폐기된 이야기들에 불과하다.(이단이나 왜곡된 사상에 대해)

성경에서 말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

  1.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2.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3.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원했다.
  4. 우리가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이것은 또한 무슨 의미인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신 것이 아니라, 나셨다.

  1. 개념 정리: 낳다는 것은 아버지가 된 다는 것이고, 그것은 같은 종류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창조한다는 것은 다른 종류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을 낳는다. 사람이 사람을 낳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3.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은 조각한 상이나 초상화에 가깝다.)
  4.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닮은 속성이 있지만, 하나님과 같지는 않다. 그 중에서 가장 하나님과 닮은 존재가 있다면 바로 사람이다. 그럼에도 차이가 있는데 결정적인 차이 중 하나는 영적인 생명이다.

        1) 자연적인 생명은 바이오스(Bios)
        2)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는 영적인 생명, 자연 세계를 만들어 낸 생명은 조에(Zoe)
        3) 따라서 사람이 바이오스를 가졌다가, 조에를 갖게 된다는 것은 석상이 진짜 사람으로 변하는 것 만큼이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4) 기독교는 이 세상이 조각가의 작업실이고, 우리는 그 조각가가 만든 조상이다. 그런데 이 작업실에서 우리 중 일부가 언젠가 생명을 얻으리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것이다.

[4-2 삼위이신 하나님]

  1.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

  1. 1차원에서는 선 만을 그릴 수 있고, 2차원에서는 도형을 그릴 수 있다. 3차원에서는 입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차원이 높을 수록 실제와 더 가까워진다.
  2. 1차원에서는 선 밖에는 그릴 수 없지만, 2차원이 되면 선과 더불어 면도 그릴 수 있게 된다. 높은 차원으로 간다고 해서 이전 것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3. 정육면체는 6개의 정사각형이 모여서 이루어 진다.
  4.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의 설명도 이와 같다.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한 인격은 한 존재이다. 두 인격은 두 존재이다. 그러나 신적인 차원에서도 인격체들이 있다. 이 인격체들은 그 차원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정육면체가 하나의 정육면체인 동시에 여섯 개의 정사각형인 것처럼 말이다.
  5. 세 인격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존재인 하나님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적용] 하나님은 기도할 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그는 기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기도를 돕는 자이며 기도의 주체, 즉 원동력이기도 하시다.

  1. 신학이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신학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실제로 경험 된 것을 정리하여 정의한 것이다.
  2.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바위를 연구하고, 동물을 연구하고, 사람을 연구하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이다. 주도권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다.(계시)
  3. 만약 기독교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기독교는 사실을 다룬다.

[4-3 시간과 시간 너머]


* 이 장은 건너 뛰어도 좋다.

1. 하나님께서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어떻게 동시에 들으시는가?
 1) 한 사람씩이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아무리 많아도), 동시에 수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시는가?

 2) 루이스의 설명
  (1)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삶이 한 순간씩 다가온다. 한 순간이 지나야 다음 순간이 온다. 모든 사물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방식으로 존재한다.
  (2) 그러나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는 그렇게 적용할 수 없다.
  (3) 하나님의 삶은 연속되는 순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4) 하나님은 10시 30분에 100만 명의 기도를 들으실 여유가 영원무궁하다.
      예) 작가가 '메리는 책을 내려 놓았다. 그 순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동시에 일어난 사건이다.)
            작가가 실제로 이 글을 쓸 때는 두 순간 사이에 상당히 긴 시간이 존재했을 수 있다.
      예) 맥 컴퓨터에서 익스포즈 효과(동시에 하던 작업이 펼쳐지는 효과)
  (5)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충분히 돌보실 여유가 무한이 있으신 분이다.(순간적 위험 속에서도)
  (6)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가 만든 유일한 존재인 양, 각 사람과 함께 하시고 그리스도는 여러분 하나 하나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간인 양 그 각각의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2. 하나님이 우리의 앞 일을 알고 계시다면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1) 하나님이 우리의 행동을 예견하신다면, 우리에게 행동의 자유가 있다고 보기는 대단히 힘들 것이다.
 2)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내일이라고 부르는 날이, 오늘처럼 보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은 모든 날이 지금이다.
 3) 하나님은 당신이 내일 할 일을 예견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내일이 아직 안 왔지만, 하나님에게는 이미 왔기 때문이다.
 4)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해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 하나님은 내가 내일 무엇을 하실지 이미 다 알고 있다가 아니라, 하나님은 내일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지금 알고 있는 것이다.(우리의 자유로운 행동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루이스에게는 이 개념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고, 이 개념은 기독교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잊어버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4-4 좋은 전염]


1. 책 상 위에 두 권의 책이 있다. 위에 있는 책은 B, 아래 있는 책은 A라고 하자.
2. 이 두 책은 원래부터 있었다고 생각하고, A의 위치는 B의 위치에 원인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B의 위치는 언제나 A의 위치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그러나 B가 이런 위치가 되기 위해서 A가 먼저 이런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원인이 먼저 있고, 결과가 다음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4.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정육면체가 하나의 입체인 동시에 6개의 정사각형이란 것과 유사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삼위가 서로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마치 선후 관계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다.
5. 첫째 위를 성부, 둘째 위를 성자라고 부른다. 첫째 위가 둘째 위를 낳는다.(만드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 위가 생산하는 것이 그 자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부라는 말로 성경은 쓰고 있는 것이다.
6. 그러나 이 말은 성자보다 성부가 먼저 존재했다고 생각하기 쉽게 한다.(자식보다 부모가 먼저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부와 성자 사이에는 선후 관계가 없다. 어떻게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그 원인이나 기원이 될 수 있는가?(성부가 있기 때문에 성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성자를 낳기 전 성부가 계셨던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다.)
7. 처음 두 책에 대한 상상을 해보라고 했다. 상상하는 행위는 원인이고, 머리 속 그림은 결과이다. 그렇다고 상상하는 행위가 먼저 있었고, 그림이 나중에 그려진 것이 아니다. 상상하는 순간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상상과 그림은 같이 시작해서 같이 끝나게 마련이다.)
 추가적인 설명) 등불에서 빛이 남, 난로에서 열이 남, 정신에서 생각이 흘러나옴, 성부의 자기표현이 성자인데, 성부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_ 이 비유도 한계가 있다.(두 존재를 연상시킨다.)
8.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인데, 이는 처음부터 함께하는 인격체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부와 성자는 서로 기뻐하고 공경한다. 이 인격적인 관계는 역동하며 약동하는 활동, 생명, 일종의 드라마에 가까운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9. 셋째 위인 성령에 대해서 살펴보자. 성부가 여러분 앞 '저기'에 계시는 분이고, 성자가 여러분 옆에서 기도를 도우시며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바꾸시는 분이라면, 성령은 여러분 안 또는 뒤에 계시는 분이다. 성령은 가족이나 클럽, 노동조합과 같은 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공동 인격>과 같은 것이다.(좀 더 선명한 이해가 필요함)

10. 이와 같은 것이 왜 중요한가?
이 삼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생명이 우리 안에서도 재현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이 영원히 살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이 어떻게 시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연합하며, 어떻게 삼위 하나님의 생명 속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기독교가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뜻대로 하시도록 자신을 그분께 맡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가진 이 생명을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적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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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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