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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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호와께서 말씀하심: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이스라엘의 답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여호와: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다.(이스라엘을 택하심)

         에서는 내가 미워하였다.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다. 

에돔이 무너뜨림을 당해도 황폐된 곳을 다시 쌓겠다고 하나, 나는 헐 것이다.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할 것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셨음에도 이스라엘은 그 특별한 사랑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에돔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판단하시고 심판하셔서 그들이 회복하려고 해도 그들을 헐어 버리시지만,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치시고 징계하셨지만, 다시 세우고 회복하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밖에서는 크다 인정을 받고 경배를 받으신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사랑하여 공들인 자기 백성에게는 인정받지 못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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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1)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는데 

  2) 내가 너희의 아버지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없고, 네가 너희의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없다. 멸시하였다. 

  3) 너희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는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한다.

  4) 너희가 눈 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5) 너희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도 이와 같이 행하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는가?

  6) 오히려 내 제단이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누가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7)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온 땅에,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향해서 말씀하신다. 이들이 드리는 제사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거룩하지 못한 떡과 온전하지 못한 제물을 가져오면서도 문제 의식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이방 세계에서는 인정을 받고, 오히려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께 경배를 하기 위해서 오지만,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소홀이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더욱 마음 아프게 한다. 아버지이고 주인이데 공경함도 두려워함도 없는 자기 백성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한탄하시며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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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너희들은 말한다. 


  1)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다. 

  2)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가 하며 코웃음치고는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다. 

  3)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서 받겠는가?

  4) 짐승 중에 흠 있는 것으로 내게 속여서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5)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단이 더러워졌다고 말하고, 제물을 드리는 기준이 너무 번거롭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봉헌물을 가지고 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이런 대우에 낙심하신다. 그렇게 많은 기다림과 용서와 사랑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자히 행동하는 이들에게 실망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큰 임금, 이방인들이 두려워하는 분이 되었으나 그의 자녀인 이스라엘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묵상 한 모금]


1. 구약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과 모든 열방의 하나님이심이 분명하게 드러나셨다. 바벨론 포로 이후 고레스 칙령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한할 수 있게 되고, 성전과 성벽을 제건하면서 모든 제국의 왕을 다스리시는 만군의 하나님으로 위상이 입증되게 된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낳으시고 사랑과 인내와 헌신으로 키우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도 모른다. 동물도 주인을 알아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이름으로만 부르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방자히 행한다. 이들의 이런 태도에 하나님은 말라기서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문제를 들춰내신다.


2. 말 1장은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결별할 수 밖에 없으셨는지에 대해 쓴 것 같다. 말라기 이후 400년간의 침묵이 있기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을 보여주고 있는 것같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이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고발하신다고 할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서 이런 수모와 대우를 받고도 계속해서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 같다.


3.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인내하심이 크고 인자와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시지, 마냥 착해빠진 분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자한 분이라고 해서 쉬운 분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쉬운 상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용납하심이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나 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내하심이 그렇게 평가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성전 문을 닫으시려 한다. 외부에 의해서 파괴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영업을 정지하시려고 하는 것이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왜곡하는 경향을 가진다. 은혜가 풍성한 것을 쉬운 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은혜를 왜곡하는 것으로 금새 나타난다. 은혜를 베푼 사람을 우습게 알거나, 왜 또 그런 은혜를 주지 않느냐고 따진다. 은혜를 강요하고 은혜를 주지 않으면 화를 낸다. 마치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요구한다. 이 정도되면 이제 하나님은 알라딘의 램프 요정이 되고만다. 이런 왜곡이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은혜를 거두고, 관계를 접는다... 은혜가 이렇게 되지 않도록 늘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늘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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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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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중 자주 언급되는 <나아만 장군>이야기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쳐주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람의 신보다 크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그 고백을 나아만이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더 인상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껏 드러나야 하는 상황에서 <물질>을 탐하므로 여호와의 영광을 물질로 대치할 뻔 했던 게하시의 어리석음도 드러납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1.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에 대한 소개
  1) 하나님께서 아람을 나아만 장군을 통해서 구하게 하신적이 있음.
  2)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가 되었던 나아만.
  3) 이스라엘 출신 종이 이스라엘의 선지자(엘리사)가 나아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함.
  4) 아람의 왕은 그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서신과 예물을 보내어 나아만 장군을 보낼테니 낫게 해달라고 나아만을 위해서 직접 부탁함.

2. 아람 왕의 편지를 받고 이스라엘 왕이 당황하다.
  1)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이 일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걱정함.
  2)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왕을 진정시키고,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말한다.

3.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와 병을 고치기까지
  1) 엘리사는 사자를 보내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함. 낫게 되리라.
  2) 나아만은 자기의 기대와 다름(내게로 와서 서서 그의 신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생각함)으로 인하여 분노하고 떠나갔다.
  3)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을 설득하여 요단강에 씻게 하였고, 일곱 번 몸을 잠그니 나았다.

4. 엘리사에게 예물을 바치려고 하는 나아만 장군
  1) 병을 고침 받은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와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고백하고, 예물을 받아 달라고 요청함.
  2) 엘리사가 예물 받기를 거절하자, 나아만은 다시 받으라고 강권하나 엘리사는 거절함.
  3) 오히려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하는 나아만.(이제부터 번제물과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않겠다고 고백함)
  4) 다만 양해를 구하는 것은 아람 왕을 위해 그가 림몬 신전에 들어가서 경배할 때, 자신의 손을 잡고 하기 때문에 자신이 림몬의 신당에서 어쩔 수 없이 몸을 굽히는 것을 용서해 달라.
  5) 엘리사가 나아만을 평안이 가라고 허락함.

5. 재물을 탐내는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1) 게하시는 자기 주인 엘리사가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신이 직접 엘리사 몰래 나아만의 일행을 쫓아갔다.
  2) 게하시는 엘리사의 요청이라고 하면서, 선지자의 제자 중 두 사람이 왔으니, 이들에게 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고 말함.
  3) 나아만은 은 두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주고, 옷 두 벌을 두 사환에게 지워서 보냈다.
  4) 집에 다 와서는 사환에게 짐을 받아 가지고 들어와서는 집에 감추었다.
  5) 이를 눈치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어디 다녀왔는가하고 물었지만, 게하시는 거짓말을 함.
  6) 엘리사는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하고는 게하시를 책망함.
  7) 나아만의 나병이 너와 네 자손에게 미칠 것임을 말씀하시자, 게하시가 나병이 발하였다.

[정리2. 내가 이해한 내용을 내 머리 속의 언어로 표현하기]

본장은 아람보다도 큰 이스라엘, 아람의 신보다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아람에 군대 장관 나아만이 있었단. 그는 혁역한 공을 세운 대표적인 장수였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나라에서는 그 병울 고칠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여종이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 선지자는 고칠 수 있다고 자랑을 했고, 이를 들은 나아만을 왕의 추천서를 받아 이스라엘로 향했다.


한편 아람 왕의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의 왕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것은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 어떻게 알았는지 엘리사는 그 소식을 듣고 왕에게 사신을 보내 나아만 장군이 오면 자신에게 보내라고 요청했다.


엘리사를 찾아 온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기를 맞아 들이고 손을 위에 대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해 줄줄 알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얼굴도 비치지 않은 채, 종을 보내서는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만 하고 만다. 엘리사의 대우에 기분이 상한 나아만이었지만, 그 종의 지혜로운 답변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물 속에 들었갔다. 일곱 번을 몸을 담그고 나서는 몸이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나았다.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바로 엘리사를 찾아와 준비해 온 예물을 드리려고 했으나, 엘리사는 절대로 받지를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했다. 그 흙을 쌓아 단을 만들고 거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번제와 희생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여호와만을 믿겠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직책상 왕과 함께 림몬 신전에는 가서 경배해야 하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하자 엘리사는 인정해 준다.


그렇게 마치는 듯 한 이야기가 사환 게하시의 돌출행동으로 이어진다.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게하시는 다시 나아만을 찾아가 거짓말을 하고 는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오고, 이로 인해 저주를 받아 나병이 걸리게 되었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엘리사의 도도함, 여호와 하나님의 도도함.

나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온 나아만을 대하는 엘리사의 모습이 매우 도도하다. 엘리사는 나아만을 맞아 주지도 않았고, 만저 주지도 않았다. 종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만 대언하고 요단강에 가서 씻으면 날 것이라고 했다.

이 장면에서 엘리사의 친절함이 없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아람보다 높고, 나아만 보다 엘리사가 높으면, 아람의 신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월등히 강력한 분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계시다. 실제로 병을 고침받고 나서 다시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은 병을 고쳐준 대가로 예물을 받으라고 하지만, 엘리사는 받지를 않는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다. 강한자가 약한 자에게 베푸는 은혜로운 사건이기 때문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강하심이 더욱 돋보이도록 해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아만은 오히려 이스라엘 땅에 흙을 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은 이제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번제와 희생 제물을 드리겠다고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라는 고백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엘리사의 도도함은 하나님의 도도함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게하시가 나중에 다시 예물을 받으러 나아만을 찾아간 것은 하나님의 위상을 떨어뜨린 사건이 되고 만다. 게하시는 자신이 먹고 마시려고 챙긴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서 봤듯이 선지자들의 생도들은 늘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부족하였다. 게하시는 이런 기회에 그들을 위해 굴러들어온 예물을 받아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리의 향유옥합을 돈으로만 환산하려고 했던 유다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하시는 잘못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었고, 결국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2. 양해를 구하는 나아만, 그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주는 엘리사.

나아만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이 지금까지 섬겨왔던 신보다 더 크고 절대적인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진심이었다. 그는 엘리사의 요청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기로 한 것이 아니다. 그가 병을 고치면서 그 마음 속에 든 확신 가운데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는 엘리사에게 흙을 달라고 했고, 그것을 제단을 쌓고 번제와 희생제사는 여호와만을 위해 드리겠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그런데 한가지 양해를 구한다. 그것은 자신이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인데,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길 원하지만, 아람 왕이 림몬 신전에 가서 경배할 때, 자신이 군대 장관으로서 왕을 수행하고 또 그와 함께 경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런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타협적인 신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고 답함으로서 이해한다고 인정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만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이방의 문화와 종교로 가득한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방신을 섬기는 왕을 섬겨야 했고, 왕이 아람의 신전에서 의식을 행할 때, 함께 동행해야 하는 자신의 업무가 여전히 있는 것이다. 엘리사는 그와 같은 나아만의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했던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면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아만은 이방인으로서 방금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봤을 때, 나아만의 신앙은 진심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을 수 없는 삶과 패턴의 연속선이 있었다. 엘리사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는 시간을 인정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앙은 결정적인 것에서의 단절이 불가피하지만, 갑자기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을 이룰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고 양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을 향해서 엘리사처럼 <평안히 가라>고 여유있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를 믿었으니, 모든 것으로부터 당장 끊어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압박에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제사문제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을 명백하게 믿으면서도, 아직 아버지가 믿지 않기 때문에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어쩌면 절을 해야 하기도 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으니까...) 회심하고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당장에 끊어버리지 않으면 정죄의식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오늘 나아만을 보고, 엘리사의 <평안히 가라>는 말씀 속에서는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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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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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7장입니다. 성전 재건에 대한 이야기가 6장까지 나오고, 이제 그 이후로 약 58년의 시간이 지난 아닥사스다 왕 때의 이야기 이면서 동시에 성전 재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구현해줄 에스라의 출현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1차. 성경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정리]

성전건축(주전 516년)으로부터 약 58년이 지난 후의 에스라 이야기(아닥사스다 왕,주전 458년)

1. 성전 건축 후 약 58년 후,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후손인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5절)

1)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2) 여호와의 도우심을 얻어,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을 정도의 사람이었다.

3) 아닥사스다 왕 제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사람, 노래하는 자, 문지기,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에스라도 함께 올라왔다.

4) 넉달이 걸리는 거리를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심으로 안전하게 도착했다.

5)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함.

2.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초본 내용(11절)

1)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에스라와 함께 가라.

2) 목적: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다.

3)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성심으로 은금의 예물을 드리게 함.

4)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은 모든 은금과 백성들과 제사장들의 예물을 가져다가 신속히 제물로 사서 하나님의 제단위에 드리고, 남은 것은 좋게 여기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쓰라.

5) 그 외에도 부족한 것이 있으면, 궁정 창고에서 내다가 쓰도록 해라.

6) 왕의 명으로 강 건너편 창고지기에게 명하니, 은은 백달란트, 밀은 백 고르, 포도주는 백 밧,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주라고 명함.

7) 귀환하는 유다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지 않도록 하라.

8) 너희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에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9) 네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죄를 정하여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두라.

10)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삼가 행해서 그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지 않도록 하라.

3. 여호와를 찬양하는 에스라

1) 왕의 마음으로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다.

2) 나로 하여금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모든 방백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다.

3)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다.

 

[2차. 1차 정리한 내용과 이전의 흐름, 더 나아가 작성자가 가지는 기초 정보를 기반으로해서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정리한다]

 

1.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약 58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이야기다. 아닥사스다 왕 때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어떻게 왕의 은혜를 얻고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묘사한다. 특히,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한 자임과 하나님의 율법으로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보여준다.

2. 이와 같은 그림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으로 이스라엘 통치하시려고 했던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기억나게 하고 에스라의 역할이 모세의 역할임을 연상케 한다. 또한 아닥사스다 왕이 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에스라의 귀환을 돕고,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제사 회복을 지원하는 모습은 출애굽 당시 바로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물론 바로는 자발적인 지원이 아니었다. 아닥사스 왕도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모 종의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다. 23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라는 왕의 고백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내쫓은 것이 재앙을 피하기 위한 것인 것처럼, 아닥사스다 왕도 크게 다르지 않는 이유 속에서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명하는 것 같다.

(딴 이야기지만, 에스더서를 보면 모르드개가 애굽에서의 요셉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

3. 에스라가 아론의 16대 후손이라는 것과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자라는 것은 성전 제사와 모세 율법 통치의 회복을 위해, 약 60여년 전에 다시 세워진 성전을 근거로 그 토대를 온전케 하고 확대를 목적으로 한 귀환 공동체를 위한 2차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차, 묵상 및 적용]

1. 에스라서는 지금 아닥사스다 왕 때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과거 출애굽 역사와 유사한 패턴으로 해석해 내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과거 출애굽 역사를 기억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지금과 그 때를 비교해서 보도록 하고, 그것은 지금 이시대가 그 때와 같은 하나님의 때로 전에는 실패한 공동체(제사와 말씀 중심)의 회복의 때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따라서 제사장이면서 율법 학자인 에스라의 귀환은 마치 모세의 등장, 그러면서도 모세보다도 어느 면에서 뛰어난(모세는 예루살렘에 들어오지는 못했고, 모세는 제사장은 아니었으니...) 존재로서의 에스라를 보여준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사람으로 기대된다.

3. 하나님은 이 일을 주도적으로 역사하고 있고, 아닥사스다 왕은 그 일의 종처럼 일한다. 하나님은 아닥사스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가지게 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그 위협을 피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이 땅의 권세도 사용하시고, 그들의 두려움도 사용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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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의 마지막 장인 13장까지 왔다.^^

히브리서 13장은 12장의 후반부부터 시작된 여러가지 권면들이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그 항목을 정리하고, 필요한 부분에서 간단한 코멘트를 하는 방식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이어지는 권면들>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 지금까지 하고 있었겠지만, 형제 사랑은 계속해서 신경써서 해야 할 항목임.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 손님 대접을 꾸준히 하다보면 생각지 못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다.

3) 너희도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라

4)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과거의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것은 지금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고 도우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것이 고난과 아픔을 겪고 나온 자의 사명이다.

5)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심판하심.

    : 모든 사람이 결혼을 귀히 여겨야 한다. 결혼을 소홀히 혹은 가벼이 여기면서 결혼 외의 관계 속에서 성적인 필요를 채우려고 해서는 안된다. 음행을 행하는 자들이나 간음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잊지 말아야 한다.

6)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 여기서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돈을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고하는 욕심을 말한다. 즉 자족하는 마음이 없이 끊임없이 돈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얻으려고 하는 자는 경건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아는 것이 경건이다.

*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6절)

    : 이와 같은 내용의 믿음이 있어야 하며, 고백이 동반되어야 한다. 사람이 내게 어찌하라... 아멘!!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의 행실의 결말을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음.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 말씀을 가르치고 인도하던 사람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가 살펴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도우시는지 불가능한 것 같은 일이 어떻게 현실로 나타나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동일하시니까...^^

8)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해야지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다.

    : 음식 문제는 여전히 초대교회의 중요한 이슈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정결한 음식을 먹는다고 사람이 정결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은혜로서 굳게 해야 하는 것이다.

9)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제물의 육체가 영문밖에서 불살라지듯이, 예 수 그리스도가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듯이 우리도 그리하자.

    : 우리도 주님처럼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고난의 현장으로 들어가자.

10)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이다.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 신약에서의 제사는 입술로 드리는 찬송의 제사와 선을 행하고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은 선의 제사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11)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의 일처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행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 말씀으로 섬겨주고 인도하는 영적 리더에게 순종하라. 왜냐하면 그는 부모처럼 너의 일을 자신 일처럼 생각하고 행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즐거움으로 행하고 근심으로 하지 않도록 하라.

12)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 확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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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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