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스바냐 3:11-20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

 

찬송가:

 

여는 이야기

스바냐의 마지막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예루살렘 안에 있는 교만한 자들을 모두 없애실 것이기에 남아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고 평안한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제 원수를 쫓아버리고 이스라엘의 왕이신 여호와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할 것을 약속하신다.

 

절별 해설

3:11 <<다시는 예루살렘에 있는 내 거룩한 산에 교만한 사람이 없게 하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큰 일을 이루실 날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교만한 사람이 없도록 함으로 정결하게 하실 것임을 말한다. 교만한 사람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함이다.

 

3:12 <<나는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내 성에 남겨 놓을 것이다>> 가난하고 겸손하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이고 성품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고 겸손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들만을 하나님의 성에 남겨 놓을 것이란 말이다.

 

3:15 <<여호와께서 너에 대한 심판을 그치셨고>> 하나님께서 그 동안 시온의 딸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행하셨던 모든 심판이 그쳐지게 되었음을 말씀하신다. 이 심판은 이스라엘에게는 힘들과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그로 인해 정결하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있게 되었다.

 

3:16 <<그 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가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스라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백성을 향해서 부러워하듯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낙심할 필요도 없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편히 쉬고 노래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만큼 회복된 이스라엘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아름다운 곳이 된다.

 

3:20 <<그 때에 내가 너희를 모으겠다>> 약속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흩어진 자기 백성들을 다시 모아들이시고, 자기 백성을 해친 자들을 모두 벌하실 것임을 약속하신다. 마치 한편의 역전 드라마를 방불케 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의 수치는 회복시켜주시고, 대적자들은 부끄럽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기도

하나님, 저희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지금의 고난이 연단의 과정이며 정결케 되는 과정임을 믿게 하시고, 내 안에 남아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간임을 알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성경의 역사는 단순히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전의 승리를 말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긴장감이 있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약속을 가진 자들에게는 절망의 순간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게 한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날의 역전을 말한다. 사단의 권세가 세상을 장악하는 것 같지만, 결국 다시 오실 주님으로 인해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도행전도 마찬가지다. 복음을 전하려는 성도들을 박해하자 복음은 오히려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달된다. 예수는 죽음을 당하는 실패를 끝나는 것 같았지만, 부활로 역전하셨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자들은 배신자로 끝나는 줄 알았지만, 오히려 순교자가 되었다. 구약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멸망한 듯하지만, 약속대로 70년 만에 다시 회복되는 역사를 가진다. 에스더 이야기, 룻기의 이야기...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 성도는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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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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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바냐 3:1-10 심판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이유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하나님을 섬기지도 의지하지도 않고, 관리와 예언자와 제사장들까지도 모두 타락했다. 하나님께서 주변의 다른 나를 파괴하심으로 그 능력을 보이심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경고에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절별 해설

3:2 <<듣지도 않고 가르쳐도 따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혹 모르나 싶어서 가르쳐 보지만 유다 백성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따를 마음이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섬기지도 않는 상태에 있다.  


3:3,4 <<성 안의 관리, 예언자들, 제사장들>>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을 대표하는 직책이다. 이들은 백성을 선도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라고,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원리를 따라 다스리도록 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의 사명을 권력으로 바꾸어서 하나님의 분노를 만들어낸 자들이다. 


3:5 <<날마다 정의를 나타내신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악을 행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한결같이 의로우시며 공정하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배반 속에서도 자신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3:8 <<그러므로 나를 기다려라>> 유다를 향해서 하나님을 기다리라고 한 것은 앞의 문맥과 연관해서 볼 때, 유다를 향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만국을 모아서는 불순종하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 백성을 심판할테니 이제 두고보면 그런 사태가 벌어질 것임을 말한다. 


3:10 <<흩어졌던 내 백성이 에티오피아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 당하고 포로로 흩어졌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때에 다시 흩어졌던 곳에서 예물을 가지고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임을 말한다. 이 이미지는 과거 노예의 신분으로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나온 출애굽 사건을 연상하게 된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불의와 패역을 행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공의와 정의로 대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도 주를 닮아 공의로운 자, 정의로운 자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유다 백성들의 악이 얼마나 크고 악한가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관리와 예언자와 제사장이 타락했다. 이들은 그 사회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백성보다 더 큰 악을 행했다면 그 사회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인 셈이다. 반면 하나님은 여전히 이 백성들을 향해서 의롭고 공정하게 통치하시고 다스리셨다. 그러나 악한 백성들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5절) 따라서 이들은 돌이킬 가능성이 없는 백성이다. 하나님은 주변의 나라들을 파괴하고 무너뜨렸다. 이는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 마저도 이 백성들에게는 아무 소용 없었다. 여전히 악을 행했던 것이다.(7절) 유다의 악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흩어진 이들을 다시 불러 모으신다. 진노하시지만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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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바냐 2:8-15 이 땅에 안전한 곳은 없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유다의 주변국인 암몬과 모압에 대해서 심판하신다는 말씀과 에티오피아와 앗시리아도 황폐하게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암몬과 모압은 소돔고 고모라처럼 멸망당할 것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던 에티오피아와 앗시리아는 오히려 짐승만 사는 성읍으로 만들어 부끄럽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절별 해설

2:8 <<그들이 내 백성을 조롱하고 국경을 침범하였다>>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유로 언급된 내용이다. 이들은 유다를 침략했고,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를 우습게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압과 암몬의 침략 속에서 그들의 교만을 본 것이다. 


2:9 <<모압은 소돔처럼, 암몬은 고모라처럼>>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완전하게 멸망당한 도시로 창19장에 언급되어 있으며,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도시다. 즉, 모압과 암몬이 당할 재앙이 어느 정도인지를 언급한 것이다. 

<<살아 남은 내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도 심판을 받고 재앙을 만난다. 그러나 유다는 완전한 멸망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 중에 살아 남은 자가 있다. 그들은 훗날 오히려 모암과 암몬 땅을 차지하여 다스리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임을 말한다. 


2:11 <<그 때에 먼 곳의 백성들도 각자 자기 나라에서 여호와를 예배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에게 행하신 것을 보고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먼 곳에 사는 백성들조차 자기 나라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2:14 <<백향목 들보가 썩어 버릴 것이다>> 니느웨는 최상의 문명을 유지하는 도시였다. 그 도시는 백향목으로 치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백향목 들보가 썩어 버렸다는 것은 그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는 표현이다. 사람으로 붐벼야 할 도시는 야생 짐승으로 가득찬 도시가 된 것이다.  


2:15 <<이 성은 행복하고 안전한 성이며>> 니느웨가 가지고 있었던 자신감과 자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니느웨 성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강한 성이라는 자신감을 가질만한 성이었고, 그로 인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안락함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성조차도 무너뜨리며 황무지가 되게 하신다.


기도

하나님, 바벨탑 속에 인간의 교만이 뭍어있었던 것처럼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 모든 장치 속에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 뭍어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소서. 겸비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은 단순히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만을 알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베드로후서의 말씀처럼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기 위한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봐야 한다.(2:6) 특히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의가 없는 죄악으로 가득한 도시가 어떻게 멸망 당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광야 40년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죄과 그 형벌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다. 그 기록은 단순히 과거 역사의 기록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말세를 만난 성도들의 느슨한 삶을 깨우치기 위함임을 바울은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10:11) 따라서 구약의 이야기를 비롯한 신약의 이야기들을 단순한 과거 역사로만 묻어두어서는 안된다. 오늘을 위한 거울로 늘 살펴야 하고 늘 자신을 조심하게 하는 경건의 기록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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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바냐 2:1-7 마지막까지 열린 문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 구절에서 두가지 이야기를 한다. 하나는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이르기전 여호와를 찾고 겸손을 배우면 혹 다가올 진노를 피할 수도 있음을 선지자는 말한다. 심판이 이르기전 마지막 남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더불어 블레셋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살아 남은 유다 자손이 그 땅에 거주하게 될 것이고 번성하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 


절별 해설

2:1 <<함께 모여라>>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함께 모이라고 권면하는 것은 단순한 회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임박하게 다가올 진노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겸비하며 자신의 삶을 돌이키기 위한 회집을 요청하는 것이다. 


2:2 <<기회가 겨처럼 날아가기 전에>>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여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거나, 다시 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스바냐의 이 제안이 최후의 통첩일 수 있는 것이다. 이 기회마져 때를 놓치면 금새 사라져 버리고 만다. 반드시 잡아야 할 기회라는 것을 말한다. 


2:3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블레셋의 대표적인 성읍은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가드 이렇게 5개다. 그 중에 <가드>를 제외한 블레셋의 대표적 성읍 4개를 언급함으로 브레셋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왜 <가드>를 제외시켰는지 알 수 없지만, 미가 뿐 아니라 아모스와 스가랴도 스바냐와 동일하게 블레셋에 대한 신탁을 전하는 과정에서 <가드>를 제외 시키고 있다. 


2:6 <<지중해 해안은 목초지가 되어>> 지중해 해안이 목초지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농사짓고 밭을 일구는 땅이 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곳에서는 결코 양떼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블레셋 땅에 심판을 받아 황폐하게 되어 더 이상 사람이 거할 수 없는 곳이 됨을 뜻하는 것이다. 


2:7 <<밤이 되면 아스글론에 있는 집에서 잠잘 것이다>> 아스글론은 블레셋 사람들의 성읍인데, 살아 남은 유다 백성들이 블레셋 땅에서 양을 치고는 마치 자기 집처럼 아스글론에 와서 잠잔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블레셋의 완전한 멸망을 말하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모두 <기회>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기회>는 겨처럼 바람에 금세 날아갈텐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스바냐가 여호와의 진노의 날을 선언하고 그 날에 임할 재앙을 예언하나 그 목적이 심판에만 있는 것이 아님이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스바냐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가 예견되어 있으므로, 그 중에 주의 율법을 지키고 겸손한 자들은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모여서 올바른 일을 하고 겸손을 배워 여호와의 진노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있다.(3절) 요한계시록은 주님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과 재앙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편에 선자들은 구원을 얻지만,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단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모두 심판과 사망에 이르게 됨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초청>으로 마친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와서 생명수를 마음껏 마시십시오"(계 22:17) 성경의 복음은 심판을 확실하게 예언하고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나 마지막까지 구원의 길을 열어놓았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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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바냐 1:10-18 심판의 경고는 기회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지난 본문에 이어서 <그 날>이 오면 임하게 될 유다의 심판과 멸망에 대해서 예언하는 내용이다. 언덕이 무너지는 소리,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며 상인들과 하나님을 무시하던 사람들을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날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날이 될 것인데, 급하고 큰 재앙이 임하게 되어 온 땅이 불로 삼켜지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1:10 <<그 날이 오면 물고기 문에서>> <물고기 문>은 예루살렘 성읍 북쪽에 있는 문을 말하는 듯하다. 그곳은 적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방향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날이 오면> <물고기 문>을 통해 적들이 공격하고 그로 인해 큰 피해가 임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1:11 <<막데스에 사는 사람들아>> 막데스는 앞에서 언급한 <물고기 문>과 반대되는 지역인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저지대로, 아마 상업으로 이름난 지역을 가리키는 듯 하다. 이는 <은을 파는 사람들>이라는 언급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날이 되면, 예루살렘 북쪽에서부터, 남쪽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침략을 당하게 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1:12 <<여호와가 등불을 들고 예루살렘을 뒤지겠다>> 하나님께서 심판할 대상자를 반드시 찾아내서 심판하시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복이나 화나 내리지 아니하신다며 하나님의 부재를 떠들고 다녔던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 그동안 참고 때를 기다리셨던 것이지, 부재했던 것이 아님을 화를 내리심으로 증명하시겠다는 것이다. 


1:17 <<내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겠다>>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임하게 될 재앙은 단순히 자연 재앙이나, 주변 강대국에 의한 침략 전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스바냐는 다가올 재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명확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재앙을 만났을 때, 이것이 영적인 문제인 것을 알아야 한다. 


1:18 <<순식간에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을 없애실 것이다>>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단순히 예루살렘과 유다만을 대상으로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날에 이 땅의 모든 악과 죄에 대해서 함께 심판하시는 날이다. 따라서 스바냐가 말하는 <그 날>이란,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임하는 국지적인 심판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온 땅에 임하는 심판에 대해서도 함께 말하고 있다. 


기도

자비와 은혜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 오늘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두 측면이 내 안에 균형을 이루게 하시어 늘 경건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학자들은 스바냐 선지자의 이 말씀이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도왔다고 본다. 지난 57년간 므낫세와 아몬 왕의 어두운 통치 기간으로 말미암아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유다를 요시야 왕 혼자가 개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권력자들과 백성들의 마음 밭을 겸비하도록 기경했을 것이다. 거기에 요시야의 주도적인 종교 개혁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완전한 회복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영적으로 거의 지리멸렬해지는 유다에게 일시적인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는 미래에 있게될 예언이면서, 동시에 심판을 피할 수 있도록 하게 하시는 경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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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바냐 1:1-9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찬송가:

 

여는 이야기

스바냐는 아몬 왕의 시대를 거쳐 요시야가 유다 왕이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스바냐에게 주신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유다를 완전히 멸망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오히려 희생 제물로 삼으시겠다는 말씀과 왕과 왕자들을 비롯한 왕궁을 채운 자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통해서 볼 때 그 심판의 원인이 그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절별 해설

1:1 <<아몬의 아들 요시야>> 요시야 왕은 8세에 왕이 되어 31년 간을 통치한 왕이다. 성전을 보수하던 중 발견된 율법책을 기초로 하여 종교 개혁을 했던 왕으로 유다 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신앙적 개혁을 시도했던 왕이다. 그러나 요시야의 개혁도 그의 조부였던 므낫세 왕의 55년간의 악한 통치의 영향력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스바냐는 구시의 아들이고... 히스기야의 아들입니다>> 다른 선지서와 달리 스바냐의 경우는 4대 선조까지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히스기야와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히스기야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유다의 선한 왕 중의 하나인 <히스기야>로 본다.

1:3 <<악한 사람을 멸망시키고 모든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짐승과 새와 바다의 물고기까지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조차도 모두 없애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은 <노아>시대의 상태를 연상시키는데, 그 만큼 지금 이 땅이 얼마나 악한가를 반영하시는 말씀이다.

 

1:4 <<그마림>> 이 말은 히브리어 <케마림>을 음역한 것이라고 한다. 케마림은 바알을 숭배하는 가나안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명예로운 칭호였다. 하나님은 이 땅에 <그마림>이라고 칭호를 받는 자들을 이 땅에서 없애겠다고 말씀하신다.

 

1:5 <<말감>> 말감은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왕>이란 뜻이지만, 암몬 족속의 신이었던 밀곰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말감은 솔로몬이 후궁들을 위해서 산당을 지은 것에서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악에 빠지게 했던 우상 중에 하나이다.

 

1:7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여라>> 두렵고 떨리는 심판 앞에서 그 징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 재판관의 최후 판단을 기다리고 있듯이 유다를 향한 심판이 다가 왔으므로 잠잠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은 직접 지으신 모든 것을 완전히 멸망시키기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노아 홍수를 통해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도 다시 보게 됩니다.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더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스바냐서의 배경이 되는 요시야 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므낫세 왕을 알아야 한다. 요시야의 부친인 아몬은 실제적으로 2년 밖에는 통치하지 않았고, 요시야의 조부인 므낫세는 55년을 통치함으로 유다에게 가장 긴 통치를 했던 왕이다. 그러나 그 기간의 대부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시간이었다. 북이스라엘에 아합 왕이 있다면, 남유다에는 므낫세가 있을 정도로 므낫세의 통치 기간 중 유다는 영적으로 나락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요시야 왕이 종교적 개혁을 해보지만 잠시 회복되는 듯 했으나, 유다의 멸망을 막지 못한다. 따라서 요시야가 통치하던 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므낫세의 왕이 행했던 죄로 인해 전국에 만연된 우상 숭배와 죄의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있던 시대임을 염두하고 스바냐를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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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1장] 우리가 마지막 날 어떤 얼굴의 하나님의 만나게 될지, 우리는 잘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겸비하여야 한다. 겸비한다면 기회는 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1.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의 뜻을 묻다.
  1)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 바벨론의 위협으로부터 구원받도록 간구하도록 부탁함.  하나님의 기적을 바람.


  2) 예레미야가 그들을 통해서 시드기야 왕에게 전하는 내용
   (1) 여호와께서 바벨론과 싸울 때 사용하는 너희들의 무기를 다 모아들이겠다.
   (2)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너희를 칠 것이다.
   (3) 이 성에 있는 사람이나 짐승을 치리니 큰 전염병에 죽으리라.
   (4)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살아남은 자는 원수들의 손에 넘겨 죽게하고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


  3) 너희들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다.
   (1)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다.
   (2) 그러나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다.(그러나 전리품처럼 여겨질 것이다.)


  4) 여호와께서 이곳을 향하여 얼굴을 두심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

 

2. 유다를 향한 권면
  1)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2)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너희를 사르리라.
  3) 골짜기와 평원바위의 주민들아, 너희들은 누가 우리를 치고 우리 거처에 들어오겠는가 말하지만, 내가 너의 대적이다.
  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작성하기]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침공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예레미야를 찾게 된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같은 도움을 구하려 한다. 그래서 시드기야는 바스훌과 제사장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낸다.


예레미야의 답변은 충분히 예상되는 답변이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돕는 것이 아니라, 유다가 사용할 무기들을 성 중앙으로 모으고,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유다를 칠 것을 오히려 말씀하신다. 유다는 바벨론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염병과 칼과 기근으로 죽게 할 것을 말씀하신다. 비참한 죽음을 말씀하신다.


그러면서도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다고 말씀하여 뭔가 희망이 있는 것처럼 운을 떼신다. 그러나 생명의 길이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생명의 길은 아니다. 포로가 되어 목숨을 연명하는 정도의 생명의 길이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목숨을 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지금 유다를 향해서 얼굴을 향한 것은 복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심판하시기 위함임을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다윗의 집을 향해서 정의를 행하고, 탈취당한 자를 압제자의 손에서 건지라고 요청하신다.  

 

[정리3.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교훈과 묵상]

 

1. 시드기야는 은혜를 바랐지만, 하나님은 심판만 말씀하셨다.

 

시드기야는 절박한 마음으로 기적을 바라고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냈지만, 하나님은 냉정하게 심판만을 답하셨다. 하나님은 분노와 진노, 그리고 대노하셨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유다가 처한 위기는 바벨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믿던 하나님때문에 일어나게 된 것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은혜를 받았고, 은혜를 누렸고 안타깝게도 은혜를 남용했다. 하나님은 은혜로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유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은혜를 요청했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답하지 않으셨다. 전에는 은혜를 주셨던 그 분이, 이제 진노를 작정하시고 몰아붙이신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백성이 방자히 행하여 하나님을 진노와 분노, 대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얼굴 방향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해 얼굴을 향하신다. 마치 자식을 낳은 어미의 심정으로 늘 그 자녀에게로 고개를 향하신다. 그러다가 자녀에게 등을 돌리실 때가 있다. 자녀의 잘못이 반복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신다.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잘못을 구할 때까지 돌아보지 않으신다. 용서하시고 싶지만,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견디시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다시 고개를 향하는 것이다.

 

진심과 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은혜와 자비, 용서의 마음으로 고개를 향하시고 그 간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씻어주시고 위로와 격려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여전히 돌이키지 않고, 더 악한 길로 가며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는 악한 태도를 견지할 때,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그들을 진멸하시도록 심판하신다. 분노의 얼굴이며 심판의 얼굴이다.

 

우리가 마지막 날 어떤 얼굴의 하나님의 만나게 될지, 우리는 잘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겸비하여야 한다. 겸비한다면 기회는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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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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