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1-7 목적을 잊은 백성들


찬송가:


여는 이야기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2년 여섯 째 달 초하루에 학개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당시의 유대 총독이었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전한 내용을 다룬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오랫동안 성전 공사가 멈춰지고, 자신의 일상생활에만 머물러있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시면서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시는 말씀이다.


절별 해설


1:1 <<다리오 왕 이 년>> 다리오 왕은 주전 521-486년 동안 다스렸던 <히스타스페스>를 가리킨다. 따라서 다리오 왕 이년은 주전 520년을 말하는데, 이는 고레스가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하여 포로인 유대인들을 귀한 시킨 년대를 주전 538년으로 보았을 때 무려 18년이 지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전 재건을 위해서 귀환한 백성들이 18년의 시간 동안 성전을 완공하지 못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인 여호수아>> 이들은 학개가 전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대상들이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은 다윗 왕조에 속한 여호야긴의 자손으로 알려져있고,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아버지 여호사닥(요사닥)은 대제사장 스라야의 아들이다. 스라야는 바벨론 포로시에 끌려갔었다.(대상 6:14,15) 이를 통해 보면 총독 스룹바벨은 다윗 왕조의 혈통을,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아론 계열의 직계손임을 알수 있다.


1:2 <<아직 여호와의 성전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스룹바벨이 고레스의 허락으로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지만 주변의 방해로 인해서 성전 재건은 중단되었다.(4:23,24)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백성들은 성전을 재건한다면 목적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성전을 재건할 수 없는 상황이 장기화되자 성전 재건이라는 목적을 잊어버린 채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만 급급하게 되었던 것 같다.


1:4 <<너희가 그렇게 멋진 집에서 사는 것이 옳으냐?>> 귀환한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할 수 없게 되자 성전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줄어들고,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에만 집중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자신의 집과 생활을 유지하고 꾸미는 일에는 집착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되지 못한 채로 익숙해진 백성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1:6 <<너희가 심기는 많이 심었으나 거두기는 적게 거두었다>>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유다 백성들의 최근 상황이 이러했음을 보여준 것인데,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더 자신의 생활에 몰두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런 어려움이 생긴 것은 하나님을 잊고 자신의 필요만을 채우려고 했던 유다 백성들의 그릇된 삶 때문임을 하나님을 지적하신다.


기도


주님, 우리에게 주신 본질적인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잊고 우리의 일상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르심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백성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재건하기 위함이었고, 그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의 회복을 시기하는 주변 세력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은 그 기초만 세운 채 더 이상의 진척을 하지 못한다.(3) 그리고 다시 성전 재건을 위한 조건이 형성되기 전까지 그들은 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18년의 시간이 흐르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성전 재건은 요원한 일로,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이들은 자신의 생활에 더욱 집착하게 된 것이다. 우리도 지금 혹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로서 살아가고 싸워가야 할 목표를 잊은 채, 내 일상의 편안함에만 매몰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학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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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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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4장입니다. 성전 재건 사업이 잘 진행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기네요. 그리고 별거 아닐거라 생각했던 문제가 성전 재건 사업을 방해하고 결국은 13년간 성전 재건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생활을 하게 합니다. 그렇게 되었던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1차 내용정리] 본문에 있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함.

[반전] 성전 건축을 멈출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 설명

1.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사마리아인?)들이 유다와 베냐민의 성전 재건사업에 함께 하기를 원했다.

1)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성전 재건 사업에 그들이 상관없다고 거절함.

: 이들은 귀환 후 첫 일이 계보를 확인하는 것이고 선별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이들에게 있어서 혈통은 중요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함께 하면 순탄하고 좋지 않았겠나 생각도 들지만, 만약 그리되었다면 귀환한 유다민족은 금새 혼탁해졌을 것이다.

2) 이것이 불씨가 되어 그들이 적극적으로 유다와 베냐민의 성전재건 사업을 방해함.

3) 성전 재건 사업은 다리오 제 2년까지 중단되었다.(이렇게 약 13여년의 시간이 지난다.)

2. 성전재건이 아닌 그 이후(아하수에로 왕과 아닥사스다 왕 때의 비슷한 사건들)에 일어난 일들

1) 주변의 다른 민족들을 선동했을 것이고

2) 아닥사스다 왕(당시 왕)에게 조서를 보내, 유다민족은 예부터 위험한 민족인데, 이들이 지금 성전과 성읍을 재건하도록 둔다면 강 건너편 땅을 잃게 될 것입니다.

3) 아닥사스다 왕이 옛 사기를 읽고는, 예루살렘에 큰 왕이 있어서 그 주변 땅을 다스리고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성전 재건을 중지하도록 명령함

4) 사마리아 인들은 이런 내용의 왕의 조서를 근거로 유다로 성전재건을 못하도록 억제함.


 

[2차 내용 정리] 여러 가지 정보들을 종합하여 내 표현으로 다시 정리함.

순조롭게 잘 진행되던 성전 재건 사업은 아닥사스다 왕의 갑작스러운 제동으로 멈추게 된다. 그리고 다시 공사를 시작하는데까지 13여년의 시간을 성전 재건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보내게 된다.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논간 때문인데, 그들이 처음에 성전 재건 사업에 함께 할 것을 요청했을 때 스룹바벨과 예수와 그리고 기타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그들이 민족적으로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 재건 사업에 함께 해야 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유다인들의 대적이 되었고, 구체적으로 성전 재건을 하지 못하도록 정치적인 술수를 동원하기도 했다. 결국 성전 공사는 다리오 왕 2년까지(약 13년간) 중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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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성전 이야기가 아니라 성읍과 관련된 이야기 이면서 아하스에로 왕(에스더서 배경)과 아닥사스다 왕(느헤미야서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삽입되었다. 역사적인 순서와 진행은 맞지 않지만, 당시 계속해서 유다인들을 방해하려는 세력이 시대별로 계속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삽입으로 볼 수 있겠다.

뭔가 될 듯한 분위기였는데, 대적자들에 의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3차 묵상/적용]

1. 민족적 정통성을 지키는 것에 대한 대가를 생각보다 크게 지불함.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민족과 혼합되어 일을 쉽게 하거나 수월하게 하려고 했다면 더 큰 문제를 야기했을 것임

3. 결국 다시 성전을 재건하게 끔 인도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볼 때, 스룹바벨과 지도자들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보게 됨.

4. 바른 길을 가면, 순결한 길을 가면 생각보다 큰 장애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면 순결한 길, 의인의 길, 바른 길에 선 자들의 손을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5. 이와 같은 일들의 역사적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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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3장입니다.

본문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차 내용정리]

1. 귀환한 해 일곱째 달에 초막절을 지키는 사람들(1절)

1) 예수아와 제사장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율법대로 번제를 드림

2) 무리가 모든 나라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가운데, 터 위에 제단을 만들고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림.

3) 초막절의 규례대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림.

4) 그 이후부터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예물을 드리기 시작함

: 첫 해 초막절부터 조심스럽게 모세의 율법을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

5) 바사 왕 고레스의 명을 따라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기 시작했다.

2. 귀환하고 그 다음해 둘째 달에 비로소 성전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다.(8절)

1) 예수아와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 레위 사람들과 돌아온 사람들이 공사를 시작하였다.

2) 20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 예수아는 레위인으로 성전 공사 감독의 실무자가 되었다.

3)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불어 여호와를 찬양함.

4) 대부분의 백성들은 성전 기초가 놓인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5) 그러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오히려 대성통곡함.

6) 기쁨과 슬픔의 소리가 함께 뒤섞여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가지고 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한 반복이 되어서는 안된다. 내용면에서는 같지만 표현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서 내가 발견한 강조점등이 뭍어나게 된다.

 

[2차 내용정리]

예루살렘으로 귀한 한 유다인들은 먼저 명단을 확인하고, 정통 유다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였다. (2장)

그 다음으로 행했던 것은 우선 모세의 율법대로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초월절로부터 터만 남은 곳에 제단을 만들고 거기서 율법대로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다.(얼마나 긴장하며 두려움가운데 조용히 행했을까.. 상상이 된다.) 그러는 과정 중에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자 그 이후부터는 상번제와 월삯과 절기의 제사를 본격적으로 드리기 시작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번제를 다시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자재를 레바논으로부터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전은 레위인을 중심으로 감독되면서 사람들이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성전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흥분되는 일인가? 함께 찬양을 하며 백성들은 즐거움과 감격에 찬양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마냥 그렇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옛 성전의 영광에 비하면 초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본문은 강조하고 있다.

 

[3차 묵상과 적용]

1. 돌아온 유다인들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믿음 때문에 막무가내로 행동하지 않았다. 신중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자신들의 해야할 것을 행했다.

먼저, 초막절을 지키면서 주변 상황을 살폈다. 큰 이상이 없자 이제는 상번제와 월삯을 드렸다. 그 이후 여러 절기들을 하나씩 지켜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성전 재건에 필요한 자재를 준비했다.

우리도 지혜가 있어야 겠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막무가내로 해도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중함과 그 중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조심성 없이,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일한다면 일은 어려워지고 그르칠 수도 있는 것이다. 

 

2. 두번째 성전의 재건은 한 편으로는 감사와 감격이요, 다른 한 편으로는 안타까움이다. 

나라를 잃고 성전도 잃었던 유다인들이 다시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시작으로 성전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은 감격스럽고 놀라운 기적이지만... 그 영광이 옛 날의 영광(솔로몬 성전)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안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죄의 결과로 인해 받은 피해는 다시 회복되어 원 자리로 돌아왔을지라도, 그 모습이 전과 동일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복의 감격이 있지만, 원 모습으로의 온전한 회복이 아니기 때문에 받게 되는 안타까움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초라한 회복이 오히려 미래의 더 큰 완성(충만한 성전, 완전한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함)을 기대하게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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