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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31절.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절.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절.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은 집에 계셨고, 무리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식사할 겨를도 없을 정도였다.(3:20) 예수의 친족들도 그 곳을 찾았고(3:21),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도 예수를 찾았다.(3:31)

2. 사람이 많아 집에 들어올 수 없었던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대신해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는다'는 사실을 예수님께 전한다.

3.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다. 지금 밖에서 당신을 찾고있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와 동생들이 아니라 여기에 둘러 앉은 자들이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다. 


[질문하기]

1. 예수님은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무리 앞에서 부정하신 것인가?(무시하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어머니를 제자 중 한 사람에게 의탁하신 것이나 부모를 공경해야 함을 소중히 여기셨던 태도를 생각할 때 어머니와 형제들을 부정하거나 무시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런 상황(기회)을 통해서 혈육을 중심으로 한 가족에서 완전히 새로운 가족의 관계를 말씀하시고자 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 봐야한다. 

2. 예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무엇인가?(혈연인가?)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가족은 혈연의 육체적 관계를 넘어서 이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그 뜻을 행하고자 하는 자들이 새로운 가족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루게 될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며,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는 새로운 가족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새로운 관계, 새로운 가족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가 된다. 


[묵상하기]

우리가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남녀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이 근저에 있는 것이다. 당신은 여자 성도, 당신은 남자 성도를 말하는 것이 자매와 형제가 아니라 당신은 나의 형제, 나의 자매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로 한 새로운 백성이며 새로운 가족이다. 

복음의 시작으로서 예수는 이 땅에 새로운 나라와 질서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나라의 질서를 따르는 사람들간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것은 가족이다. 혈연의 가족을 넘어 믿음의 가족, 영적 가족 관계를 만든다. 

성도인 우리는 이 땅에 있으면서 두 영역의 가족과 연관되게 된다. 육체적 관계로 이루어진 가족 관계는 혈연 가족의 폐쇄적 테두리 안에 머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 반면 영적 관계로 이루어진 가족은 실제적인 가족처럼 마음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와 자매요 어머니다'라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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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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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정리]

20절.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절.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절.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절.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절.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절.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절.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절.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절.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본문내용 정리]

1.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셨고 사람들은 그 집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 호의적인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수의 친족들은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해서 예수를 붙들러 왔고,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은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그리한다'고 했다. 

2. 예수님은 예수의 사역에 대한 결과를 보고도 그와같이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비유를 들어 논리적으로 말씀하셨다. 나라가 분쟁하면 나라가 설수 없고, 집이 분쟁하면 그 집이 설수 없고, 사탄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거슬러 분쟁하면 설수 없고 망하는 것인데... 너희들이 나를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니...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집을 강탈하기 위해 상대의 강한 자를 결박하는 행위로 봐야 마땅한 나의 행동을 어찌 한 패라고 말하느냐?

3. 예수님은 이들의 태도가 매우 악함을 지적하고 경고하신다. 모든 죄와 모독하는 일은 사함을 얻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 지금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의 논리와 비난이 그와 같은 행위이다.(엄중한 경고)


[질문하기]

1.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뉘게 되는가? 

  무리는 예수님이 있는 곳을 찾아 인근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예수님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식사할 틈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첫째는 예수의 친족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어릴적부터 봐 왔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자기 태도와 인식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고,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은 갈릴리 변두리에서 자라고 사역하는 예수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의 능력은 부정할 수 없으니 오히려 예수가 가진 능력을 '하늘'로 부터 온 것이 아닌, '귀신'에게서 온 것으로 폄하하려고 했다. 

2. 본문의 상황으로 볼 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나?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매우 심각한 죄로 언급된다. 사하심을 받을 수 없는 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어떤 죄일까? 적어도 오늘 본문의 상황 속에서 해석을 하자면, 그 죄는 1) 악의적인 의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사역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매임에서 자유하게 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 논리(귀신의 왕을 힘입어 그 일을 한다)로 예수를 폄하하려 했고 그것은 악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이들의 죄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시작하시려는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 믿는 자를 죽이려 했고,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때까지 유대인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확신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면서도 부인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서기관들은 억지 논리를 내세워 악의적인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묵상하기]

1.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성공적이었다.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있었고, 권세와 능력이 드러났으며 귀신들도 예수의 말씀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제자들도 생겼고, 많은 무리가 여러 곳에서 예수님께로 모여들었다. 몇 차례의 논란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태클을 가볍게 이기셨다. 그 소문은 더욱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새로운 나라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충분히 임팩트 있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12명의 제자를 선택하고 조직을 갖추자 본격적으로 악의를 드러낸 사람들이 나타난다. 가까이에서는 예수의 친족이었으며(이들의 문제는 무지와 편견) 멀리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이었다.(이들의 문제는 악의와 완악함) 

시작은 화력하고 임팩트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가는 과정이 녹록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 사탄 조차도 자기 스스로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사탄도 분쟁하면 그의 나라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집'을 세우고 '나라'를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그 구성원이 서로를 향해서 '악의적으로 폄하하는 행위'는 삼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사탄 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그 구성원은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구성원 간의 분쟁은 그 집을 허물고 그 나라를 허무는 일이 되고만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모두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똑같은 가치관과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수도 없다. 서로 다름이 분쟁을 통한 멸망이 아니라, 다양성을 통한 세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합리적인 절차를 따라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통해 공동체는 분쟁이 아닌 세움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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