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_간사지원서류.hwp


사단법인 죠이선교회에서 함께 동역할 간사를 모집합니다.
: 2016년 신입 간사선발


죠이선교회는 JOY Spirit(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spell JOY)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섬기는 탁월한 그리스도인들을 세워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려는
Para_Church movement입니다.


죠이선교회 간사는 국내외 대학생을 섬깁니다.
죠이선교회는 포스트모던 사회로 급속하게 세속화되고 있는 대학에서 변하지 않는 복음을 창조적인 전략으로 전하며,
대학생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로 훈련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와 세상의 변혁의 기초를 놓는 일을 담당합니다.


죠이선교회는 올해 창립 57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57년 동안 국내외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 온 죠이선교회는
앞으로도 JOY Spirit으로 대학과 한국교회 나아가 열방을 섬길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함께 할 간사를 모집합니다.


▨ 대 상 : 죠이선교회 출신으로 대학 졸업자(전문대 포함) 혹은 졸업 예정자(8월)


▨ 지원분야
– 학원사역부 간사(약간 명)/ 국내 캠퍼스 사역
– 해외사역부 간사(약간 명)/ 해외 캠퍼스 사역


▨ 제출 서류
⑴ 간사 허입 신청서
⑵ 신상명세서
⑶ 죠이 선교회 신앙관
⑷ 간사의 자기 진단서
⑸ 간사 지원자의 후원 회장 동의서
⑹ 주민등록 등본(3개월이내)
⑺ 최종학교 성적 증명서
⑻ 영어인증시험(TOEIC,TOEFL,TEPS) 성적표(* 미 제출자는 영어 시험 실시합니다)
⑼ 사진 4매(3*4)
⑽ 참고인 의견서 작성을 위한 3인
(동료나 친구 중 1인/간사나 목회자 등 사역자 중 1인/ 동문회가 있는 경우-동문 임원 중 1인, 없는 경우- 죠이 선배 중 1인)의
성명, 관계, 주소와 핸드폰 연락처, 이메일


▨ 절 차

1. 서류 접수
◦ 지원서 배부 : 2015년 6월 15일(월) www.JOYMISSION.org에서 다운로드.
◦ 서류 접수 마감 : 2015년 7월 13일(월) 오후 5시 (우편접수일 경우 당일 소인까지 유효)


* 서류 다운로드

http://www.evernote.com/shard/s252/sh/06deca33-a0f7-4b6d-b37b-4b948438871e/aef2cc20aab34de40b7f7562496467fe


2. 선발 절차
◦ 출신지부 면접 : 7월 중순 / 출신 지부별 일정 및 장소 통보
◦ 선발시험 : 2015년 8월 13일(목) 오후 7시 / 죠이선교회 휴먼스테이션 (제기동 소재)
성경, 사역 일반, 인성검사, 영어(*영어인증시험 성적표 미체출자)
* 지원자에 한해 예상 가이드 배부
◦ 중앙 인사위원회 면접 : 추후 공고(8월 17-21일)


3. 합격자 발표 및 오리엔테이션
◦ 합격자 발표 : 2015년 8월 21일(금) / 개별 통지
◦ 오리엔테이션 : 2015년 8월 22일(금)
기타 문의는 학원사역부(신재호 간사 010-4234-2988 / wizy7@hanmail.net)


4. 학원사역부/해외 사역부 간사의 합격 이후의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⑴ 합숙훈련 : 2015년 9월 초(3개월 합숙)
⑵ 수료예배 : 2015년 12월 5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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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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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된 역대 간사님께 드리는 현직 간사와 동문의 감사와 환영의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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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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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죠이선교회 일정


<1월>

1/2 시무식(본부)

1/9 디렉터 회의


<2월>

2/2 직원예배

2/2-3 신입간사연합수련회(DMPD훈련으로 불참)

2/6 디렉터 회의

2/14 정기총회(본부)

2/24 지부대표간사회의(본부. 10:00-16:00)

2/25-26 학복협 전국 연합총회(대표참석. 대구)


<3월>

3/2 직원예배

3/6 디렉터 회의

3/10 정기 이사회

3/16-17 상반기 전략회의(현장 사역자 중심/대표,팀장,중견간사 10명)

3/23 간사 연합기도회(학복협)

3/26-27 선교한국 총회(1박)


<4월>

4/6 직원예배

4/10 디렉터회의

4/20-23 학원사역부 간사 수양회.(* 강사일정으로 인해 올 해만 변경 운영)


<5월>

5/8 디렉터 회의

5/11 직원예배(5/4일이 샌드위치데이라 변경)

5/16 창립 57주년 집회

5/20-23 단체대표 리트릿(학복협)


<6월>

6/1 직원예배

6/9 정기이사회

6/12 디렉터 회의

6/16-17 디렉터 리트릿(1박)

6/23-27 죠이 전국 대학생 수련회


<7월>

7/10 디렉터 회의


<8월>

8/3 직원예배

8/7 디렉터 회의

8/19-20 하반기전략회의(현장 사역자 중심)


<9월>

9/7 직원예배

9/8 정기이사회

9/11 디렉터회의

9/24 선교한국 총회


<10월>

10/2 디렉터 회의

10/5 직원예배

10/5 학복협 축구대회

10/6-8 단체대표 리트릿(2박3일)

10/20-23 전체 간사 수양회(강사: 손창남)

10/26 캠퍼스사역 컨퍼런스


<11월>

11/2 직원예배

11/6 디렉터회의

11/13 단체 훈련원장 모임


<12월> 

12/7 직원예배

12/8 정기 이사회

12/10 학복협 총회

12/11 디렉터 회의

12/22-23 디렉터 리트릿

12/31 종무식


———

<추가>

  1. 3년차 간사 리트릿(학원사역부)
  2. 6년차 간사 리트릿(학원사역부)
  3. 중국 지역 대표 모임(대표, 해외부 디렉터 참석)
  4. CDP(다면진단): 3년차, 6년차, 지부대표, 팀장
  5. 인터네셔날 죠이 컨퍼런스(예정: 말레이시아 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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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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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이어들의 교회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청년대학시절 죠이 활동을 한참 보람을 느끼면서 상대적으로 제가 출석하던 교회에 대해서는 불만이 커져갔죠. 선교단체에서 배운 새로운 찬양과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노력했지만, 교회에는 죠이어들만 있는 곳이 아니니 부딪히기도 했구요. 그러다가 맘이 상해 냉소적이 되기도 했죠. 그러니 더 선교단체 활동에 집중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했죠.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좀 어리긴했지만 신앙적 반항(?)이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죠이에서 간사가되고 나서 교회 청년부 리더들을 섬겼지요. 결혼하고도 아내와 함께 청년부를 섬기는 역할을 당분간 계속했습니다.(그 때 저는 교회에서 집사님이라 불렸습니다. 28살에 ㅋ)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9년전부터 지금 출석하는 교회의 협동목사가 되어 섬기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교회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어떻게보면 대학생 시절의 복음과 신앙이란 오랜 교회생활을 통해서 확인받고, 성장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교단체가 너무 좋아서 열심을 다하는 죠이어가 있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지역교회를 늘 사랑하십시오.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철없던 사춘기 시절 어머니에 대한 반항이 있을수야 있지만, 우리는 어머니의 품을 떠날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파라쳐치로서 죠이선교회는 로컬쳐치와 운명을 같이 할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어머니라면 선교단체는 이모나 외삼촌(?)이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부인한다면 이모와 외삼촌도 부인될 테니까요.

죠이선교회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지역교회가 죠이를 좋아해주신단 것입니다.(개인차가 있겠습니다만, 보편적으로 본다면 말이죠..^^) 그것이 죠이선교회가 파라쳐치로서의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죠이어들과 죠이간사들이 지역교회에서 열심히 잘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그래서 죠이는 동문그룹이 취약해 재정이나 지지그룹이 취약한 것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입니다만)

지난 주 저희 교회 주보를 찍은 사진을 첨부합니다. 오래전 제가 사역하던 캠퍼스 학생이었던 친구가, 훗날 결혼하여 한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그 교회의 협동목사로, 그 친구와 아내는 새가족으로 말입니다. 지금은 집사님이 되고 3자녀의 엄마아빠가 되었고, 교회를 섬기는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 큰 아이를 제가 유치부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저는 죠이어를 2대째 가르치고 있는 셈이죠. ㅋ


한 지역교회에 다른역할로 섬기는 죠이어들의 모습에 감사한 주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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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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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홈커밍데이 시즌이죠. 이번에는 홈커밍데이에 대해서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인하대홈커밍데이는 11/29(토)에 인하대에서 모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인하죠이 올드멤버(91학번 이상)들은 11/20(목)에 서울의 한 뷔페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 모임의 준비위원으로 발탁되어(?) 참석인원 파악하고, 장소 알아보고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서 저는 아직도 신입생(?)느낌이고, 일병 느낌이죠 ㅋ

오래전부터 어르신들은 홈커밍데이에 잘 참석하지 않으셨습니다. 최근 졸업한 동문들 중심으로 참석하더군요. 어쩌다 오신 올드 멤버들은 더욱 어색해 하셨죠... 그리고 맘 석으로 생각하셨겠죠. 다음에는 오지 말아야지... 하고 말입니다.

동문회가 30년 이상되다보니 이제 모든 세대가 모이는 홈커밍데이는 점점 힘들어지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오래된 동문회는 홈커밍데이 참석하는 동문들과 올드멤버들의 모임을 나누어(둘 혹은 셋으로) 하는 것은 어떤가 합니다.

올그멤버들은 적절한 때에 괜찮은 식당을 빌려서 함께 식사하고 나누고, 캠퍼스 담당간사를 초대해서 현장 소식을 좀 듣고 작은 선물을 나누는 형식으로 하면 어떤가 하고 말입니다. 서로 만나면 반가운 얼굴들 중심으로 올드멤버들은 년말 모임을 하고, 최근 동문들은 학생들이 준비하는 홈커밍데이에 참석하여 교제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나누어하면 어떨지요.

올드멤버들은 자녀들도 어느정도 크고, 경제적으로도 어느정도 안정되어 있으며, 직장에서도 좀 여유가 있는듯 합니다.(바쁘지만 일정을 조절할수 있는 권한을 가지거나) 그럼 상황이 되니 서로 돌아보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데, 전체 홈커밍데이로는 어려움이 있는듯 합니다.

이번에 인하대는 그런 방식으로 한번 변화를 해 봅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준비위원으로 일하시는 83,88학번 선배님들의 움직임이 발빠르십니다. 수고가 되지만 모임을 기대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1/20 모임 후에 결과보고 하겠습니다 ㅎ 죠이에 들어온지 25년 지났지만, 아직도 전화연락하고 식당 알아보고 ㅋ 이러다 레크레이션까지 인도할 기세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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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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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전: 죠이선교회의 더 죠이지에 실릴 글입니다. 아직 교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생동감있는 글쓴이의 느낌을 그대로 전합니다. 


나를 부른 땅, 그 땅의 기쁨


글: 권기정(한양 97)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상징하는 노란색 테두리의 네모상자와 죠이를 상징하는 흰 바탕에 빨간색 네모 테두리 그리고 그 속의 빨강색의 한 단어 'JOY'. 이 두 가지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저를 설레게 하는 것들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야생의 펄떡이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대학시절 청춘의 뜨거움을 마음껏 발산했던 죠이가 아마도 동일하게 각인되어서 인 듯합니다. 이 학창시절의 열정이 제가 지금까지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에서 그리고 긴급구호의 재난현장 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직업은 국제구호개발 활동가입니다. 흔히 긴급구호 활동가 혹은 NGO 활동가라고 불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생활 중 죠이에서 훈련과 삶이 저를 이 길로 인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00년 군대에 제대 후 복학하여 그리운 죠이로 제일 처음 달려왔고 그해 여름 한양죠이 내 친구, 후배들과 함께 중국을 횡단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선배님이 사역하시는 오지를 방문하고, 또한 육로를 통하여 국경을 넘어 카자흐스탄까지 다녀오는 단기선교 프로젝트를 준비하였습니다. 죠이 내 많은 선, 후배님들의 도움과 기도로 이 프로젝트를 잘 마무하였습니다. 또한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시립대학생을 통하여 시립대 개척을 시작하였습니다. 1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많은 동부지부 죠이어들의 도움으로 시립대 캠퍼스가 안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2001년 가을이 지나고 있었고 3학년이었던 저에게 삶의 길을 바꾸는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9.11테러로 말미암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본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참혹한 모습들은 저에게 ‘꼭 가야 한다!’는 메시지로 다가 왔습니다. 수십 통의 메일을 작성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긴급구호를 하고 있거나 혹은 하려고 하는 단체들에게 보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 단체에서 바로 연락이 와 긴급구호팀에 합류하였습니다. 파키스탄 국경을 통하여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하였고 전쟁 난민들 도우며 약 9개월 가량 활동하였습니다. 시립대에서의 저희 빈자리는 93학번 선배인 박민경 간사님이 그리고 이후 동생이자 친구인 황선관 간사 그리고 시립대 출신인 정가영 간사로 이어지며 멋진 사역들이 이루어졌습니다.   



 2003년 초여름에 이제 졸업을 준비하는 4학년인 저에게 아프리카 작은 나라인 르완다에서 종족분쟁 이후 이 나라 재건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동일한 단체에서 받았습니다. 몇 몇 간사님들의 조언과 기도를 통해 과감하게 또 짐을 싸서 출발 할 수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과 보건소를 통하여 말라리아 약품을 전달하는 일을 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가운데 제 일생에 가장 감사한 일이 르완다에서 벌어졌습니다. 바로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입니다. 미국의 한 선교단체를 통하여 파송된 아내는 저보다 1년 일찍 르완다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있었고 아프리카에 헌신한 귀한 자매였습니다. ‘한국에서 결혼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나오자!’라고 감언이설로 아프리카에 헌신한 이 자매를 데리고 2004년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한 학기를 끝내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점인 그 해 겨울, 12월 26일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 지진해일로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입사 면접을 며칠 앞두고 있었고 곧 아프리카에 헌신한 자매와 결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 한 번의 긴급구호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죠이 선후배들의 결정은 간단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Go!!"   

  


 긴급구호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제 이 길이 내가 갈 길이라고 생각하고 NGO에서 정식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조금 늦었지만 르완다에서 만난 ‘운명의 자매’와 결혼도 하였습니다. 양가 부모님께 최소한의 효도하기 위하여 1년간 한국에서 신혼집을 마련해서 살기로 약속했습니다. 딱 1년이 되는 시점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NGO 활동가의 역할과 또한 선교사 신분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3년간의 사역이 지나는 시점에 외국인 체류에 관한 법률이 바뀌어 사역지를 예멘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발 전인 2008년 봄에 한국인 테러사건이 발생하여 예멘이 아닌 이집트로 파견지역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천년이 넘는 기독교인 박해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 그 피와 전통을 이어 받은 우리 이집트 직원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잠깐의 은혜의 시간을 뒤로 하고 1년 후 아이티에서 초대형 지진이 발생하여 급하게 이집트에서 아이티로 또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받은 사랑의 힘으로 다시 아이티의 지진 피해자들과 콜레라와 각종 질병에 걸린 어려운 사람들을 열심히 섬길 수 있었습니다. 2011년 12월을 끝으로 아내와 안식년을 갖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약속했던 시간에서 몇 달 앞선 7월 9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남수단이 수단에서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 있는 데 안식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아내와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짐을 싸 2012년 1월 남수단으로 향하였고 현재까지 남수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캠퍼스 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다양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저의 선택은 늘 하나님이 아닌 제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하나님 보다 제가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의 기쁨은 자녀가 무언가 부모를 위해 애쓰며 일하는 것보다 자녀가 자신의 삶을 즐기며 행복해 할 때 오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삶의 매 순간을 감사하고 진정으로 기뻐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제가 기쁘게 선택하고 살아온 삶들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이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죠이에서 삶의 많은 규칙은 배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웃 그리고 나’ 바로 이 간단한 JOY Sprit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핵심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선배들의 헌신과 눈물이 있어야 캠퍼스 한 곳이 설 수 있는지 저 또한 시립대 죠이 개척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헌신과 눈물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앞으로도 이러한 헌신과 눈물이 지속적으로 흘러 넘쳐 한국과 세상의 곳곳에 기쁨의 죠이 정신이 흐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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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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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죠이선교회의 <장학기금>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사진작가: 조성호


죠이선교회에서는 정해진 기간 이상 전임으로 사역한 간사에게는 신학과 같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적지만 장학금을 주고, 전임 간사의 신분을 유지하여 모금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캠퍼스 사역을 병행합니다. 캠퍼스 현장은 여전히 간사 한 명의 손길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제가 신학을 공부할 당시만 해도 죠이 장학금을 받아가면서 공부하는 간사들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그 숫자가 늘어 8명 정도가 장학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정해진 기간 전임사역을 했기 때문에 자격이 된 간사들입니다.(신학관련 6명, 상담 1, 기타 1)

문제는 이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장학금입니다. 보통 국내 신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이 300만원 정도 되는데, 죠이에서는 한 명에게 한 학기에 등록금의 절반 정도인 150만원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장학금으로서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장학기금에서 줄 수 있는 최선입니다. 8명에게 150만원씩 지급하면 한 학기에 1200만원이 들고, 1년이면 2400만원의 장학금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3년이면 그 액수는 7200만원이 드는 셈이죠.

죠이는 오래전 1억원 정도의 장학기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정확히 언제 모금된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 이후 추가적으로 장학기금을 헌금하신 분들이 있고, 한 때 은행 이자가 높았던 시절이 있어서 원금이 많이 불었다고 합니다. (이 때는 신학공부를 하는 간사도 적었고요) 그래서 장학기금이 많을 때는 1억 6천만원 정도까지 모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은행 이율도 계속 떨어지고, 몇 년동안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는 간사들도 늘어나면서 원금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2014년 이번 2학기 장학금을 지급하고 나서 원래의 장학기금 1억 천만원이 안되는 액수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1억원은 장학기금이라 원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제 막 죠이선교회의 전체적인 살림을 맡아야 하는 저의 입장으로서 하필이면 왜? 내가 책임을 맡아야 하는 순간에... 이런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숨만 쉴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첫째, 우선 내부적으로 장기사역자로서 신학을 비롯해 사역에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할 간사들의 공부 시기를 조절해 주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한 시즌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둘째, 장학기금을 늘려서 장학금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이율이 높지 않은 시즌에 장학기금을 추가적으로 모은다는 것은 별 효율이 없어 보입니다.(모으기도 힘들고 모은다고 이자가 많지 않기에) 따라서 거액의 장학 기금 모금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셋째, 1년에 300만원(1인)의 장학금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중형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죠이에서는 좋은 인재를 발굴하고, 지역 교회에서는 
'좋은 사역자를 키우기 위한 장학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매칭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 간사는 '죠이. OO교회 장학생'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3년간 연결시켜서 죠이선교회 자체의 장학기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대상에게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지역 교회는 죠이에서 검증된 간사를 지원하여 한국교회의 일꾼으로 키우는 일에 동참하고, 장학금을 받은 간사들은 지역 교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더욱 갖게 되어 죠이선교회와 지역교회가 거시적인 안목에서 '한국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협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몇 몇 분들과 상의하면서 '현실적이고 좋은 방법'이라고 격려를 받기도 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와 같은 일에 협력하여 '장학금'을 지원해 줄 '지역 교회'를 찾는 것이겠죠. 쉽지 않겠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최근 몇 몇 지역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이런 상황과 취지를 나누었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많은 부분 공감해 주셨습니다.

결과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두드리면 열리게 되는 은혜를 따라 예비된 교회, 예비된 동력자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 지역교회가 아니어도 이와 같은 뜻에 공감하는 분들(혹은 모임)이 있다면, 1년에 300만원으로 죠이선교회의 사역자를 키우는 일에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함께 기도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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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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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이선교회의 1호 파송 선교사이시자, 3대 대표이신 문정선 목사님(빅터 문)께서 동문 카톡방에 올리신 글입니다.(2014.8.30) 죠이선교회의 어른으로서 죠이를 사랑하시는 목사님의 마음이 잘 녹아져 있는 글이라 여겨져 나눕니다. 동문 카톡방에 대한 논의차원에서 쓰신 글이지만, 우리 죠이어들이 한 번 읽어볼만한 글이라 여겨집니다. 우리가 '죠이어'로서 어떤 태도와 마인드를 가지고 신앙 생활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신 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래는 그 전문입니다.(사진은 제가 구글링해서 구한 사진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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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문정선입니다. 지금은 미국 뉴저지의 팰리세이즈 팍이라는 한인타운에서 수정교회를 담임목회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예장 통합의 장신대에서 공부하고 서울 서노회에서 목사안수 받았고, 현재 소속 교단은 한국에 언더우드 선교사를 파송하여 오늘의 한국 장로교회를 있게 한 미국장로교(PCUSA) 입니다. 저는 오늘 제 소개를 먼저 하고 죠이 동문들의 대화의 장인 이 그룹채팅에 대하여 제안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1967년 초, 제 형의 친구인 홍성철 목사님의 전도로 명목적인 그리스도인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1학년 때인 1967년 11월 경부터 죠이선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죠이에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믿음이 성장했고 주님께 헌신을 했습니다. 한국 동란중 어머니를 잃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낸 저는 돈을 많이 벌어야 제 자식들은 배고픔을 면할 것이라 생각하고 돈 버는 일을 제 삶의 주요 목표로 삼고 살다가 1973년 1월, 죠이선교회의 겨울수양회 참석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제가 가지고 있던 작은 야망들을 모두 버리고 주님만 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75년도에 죠이선교회의 첫번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OM 선교회의 로고스선에 승선하여 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 그리고 남부 유럽의 몇 나라들을 순방하며 선교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주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저는 죠이선교회가 기도와 재정으로 저를 지원해 준 것을 제 평생의 빚으로 생각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선교활동 후 귀국하여 신학교에서 수학, 목사가 되었고, 1980년대에 죠이선교회의 3대 대표를 역임한 후 1987년 2월에 도미,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는 죠이선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지금까지 미국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죠이정신으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마 앞으로 남은 생애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제가 죠이의 대표로 일하던 때에 "한 번 죠이어는 영원한 죠이어!"라고 해병대를 흉내내어 표어를 만든 일도 있습니다. 지금도 목회 현장에서 예수님 먼저, 이웃을 둘째로, 자신은 마지막에 두고 살자고 죠이정신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부터 어제 목요일까지 버지니아 주의 게인스빌에 살고 있는 죠이선교회의 2대 대표를 역임하고 지금은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신 정인량 목사 댁에 다녀 왔는데, 시카고에서 김현수 장로께서도 모처럼 시간을 내어 오셔서 2박 3일간 옛 이야기도 나누고 현 죠이선교회와 지도자들을 위해, 죠이선교회의 이사들을 위해, 죠이선교회가 앞으로도 지성사회의 복음화에 쓰임받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어제 오후 3시 반쯤 정목사 댁을 출발하여 워싱턴 DC 외곽을 도는 고속순환도로를 거쳐 볼티모어를 지나 뉴저지 유료고속도로(NJ Turnpike)를 달려 집에 오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겹쳐서 차량이 많아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습니다. 죠이의 올드 멤버들이 미국에서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는 것은 "몸은 멀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죠이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룹채팅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면서 제가 느낀 몇 가지를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곳은 대화의 장 내지 정보교환의 장, 죠이 식으로 말하면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톡은 읽기가 상당히 불편한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죠이선교회는 교단을 초월한 선교단체입니다. 정확한 분포도는 알 수 없지만 회원들의 소속 교단도 다양하리라 생각됩니다. 각자가 속해 있는 교단이 보수적인 색채의 교단도 있고 진보적인 교단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지금까지 죠이선교회는 어느 특정한 교단의 신앙고백을 우리의 것으로 채택한 일이 없습니다. 제가 죠이의 대표로 재직했던 약 30년 전에 우리가 믿는 바를 몇 문장으로 표현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기본적인 구원론과 구원받은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근 카톨릭의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그룹채팅룸에 카톨릭 교회와 교황을 매도하는 내용이 올라왔을 때 저는 그 내용을 읽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또 어떤 형제는 한국교회가 WCC총회를 개최한 것이 죄악이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죠이선교회의 초대 선교사로 로고스 배에 파송받아 갔을 때 그곳에서 인도에서 온 1등 항해사와 친밀한 영적 친교를 나누었는데 그가 천주교인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새벽에 일어나서 QT를 갖는 것을 알고 저와 함께 기도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형제와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어느 날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천주교회가 성모 마리아와 교황에 대한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아는가?" 그는 안다고 했고 저는 그러면 왜 천주교회를 떠나 개신교회로 오지 않는가고 다시 물었을 때 그가 대답했습니다. "형제여, 주님은 나에게 천주교회 안에서 바른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개신교의 시작은 종교개혁이지요. 하지만 만일 그 앞의 1500여년의 교회역사를 천주교회라 해서 부인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근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결과가 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로 시작해서 비록 타락한 중세교회가 있었지만 그 역시 교회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회를 몇 가지 잘못된 교리 때문에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천주교회나 WCC를 옹호하기 위해 이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죠이선교회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어떤 주장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죠이정신의 구현이 아닐까요?  저는 죠이선교회와 여기에 속해있는 회원 내지 동문들이 적극적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 아름다운 대화의 장이 어느 특정 단체를 공격하거나 정죄하는 내용, 그리고 신앙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으로 변하고 만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내용을 읽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사실 그래서 이** 목사께서 저를 이 채팅룸에 초대해 주셨지만 퇴장했었는데 '끈질기신' 이목사님이 다시 초대해 주어서 이제는 퇴장도 못하고 올라오는 톡을 다 읽고 있지요.


물론 어떤 내용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참 유익하고 또 기도생활을 돕는 것이어서 참 고맙게 읽습니다. 또 동문들의 경조사를 알려 주어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참 좋습니다. 그러나 간혹 어떤 내용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엿보이고 그것이 자칫 논쟁으로 발전하게 되기 쉽기 때문에 염려가 됩니다. 저는 지난 4년간 미국장로교에 속한 4백여 한인교회 전국총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이제 목회 일선에서 은퇴를 앞둔 60대 후반의 목사이지만 제가 젊은 시절에 죠이에서 우리를 지도해 주신 지도자들로부터 배운 한가지 귀한 진리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Teachable Spirit"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서라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살라는 교훈이지요. 아, 우리 모두 이같은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형제 자매들을 대하며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이런 제안을 여기에 올리는 것도 참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분들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제안에 대해 논박할 분도 있을 지 모르겠지만 논쟁은 사양합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조용히 퇴장할 것입니다. 혹 저의 제안에 마음이 불편한 분이 계시다면 미안합니다. 이 아름다운 대화의 장을 아름답게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이 제안을 한 것을 이해해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여기 그룹채팅 말고 저 개인에게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최선을 다해 답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raise God from whom all blessings f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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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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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기동에 소재한 죠이 휴먼스테이션이 2008년 죠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해서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된 것이라는 것을 최근의 죠이어들은 잘 모를듯 합니다.

아마 08학번 이전에 활동하셨던 분들은 이전에 약간은 허름한 3층 죠이 회관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 사실 그 당시의 건물도 누군가의 헌신을 통해 세워진 것이지요.(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2층에 올라가 보시면 알수 있습니다. ** 홀)




최근 죠이 휴먼스테이션의 변화는 없지만, 주변 지역의 변화는 상당합니다. 우선 제기역 1번 출구로 나오셔서 <함경면옥>과 <채선당> 사이의 골목 사이로 본부로 향하셨던 분들은 늘 그 초입에 있던 '법화정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법화정사가 몇 년전부터 신도들이 늘어나더니, 작년부터는 기존 건물을 헐고 새로운 법당을 공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거의 완공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외곽을 대리석으로 하고, 그 위에 불교 경전(?)을 새겨 놓았습니다.(추측 ^^)
매일 그 옆을 지나며 출근하는데, 그 때마다 저 많은 대리석들이 쏟아지는 것은 아닐지.. 괜한 긴장을 하곤 합니다.

















여기를 지나 죠이 스테이션으로 들어서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우리에게 익숙한 곳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가 있죠. 이곳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대로입니다. 다만 출입구를 새롭게 만들어서 차량이 드나들기 좋게 공사했다는 것 말고는요. 오래전에 죠이에서 활동하셨던 분들은 종종 이곳 농구장에서 농구도 하셨던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ㅎ






그리고 최근 가장 큰 변화는 죠이 휴먼스테이션 건물 뒷편에 있던 선농단입니다. 선농단과 놀이터가 있던 곳을 문화재청과 동대문구에서 60억을 들여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건물과도 아주 근접하여 공사가 진행되어 초반에 우려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외관 공사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아마 오랫만에 오시는 분들은 감짝 놀라실 것입니다. 이렇게 죠이 휴먼스테이션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사하는 곳 뒷편으로 보이는 곳이 <종암초등학교>이고, 그곳에는 몇 년전에 인공잔디가 깔렸습니다. 죠이에서 자주 이용하던 곳인데 인공잔디 깔리고 나서는 이용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ㅠ 아래 보이는 사진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있는 곳은 <선농단>이 있던 곳입니다.






아래 그림은 공사가 마쳐지고 잔디공사까지 완성된 조감도 입니다. 보기에는 좋아보이는데, 건물 높이가 저희 휴먼스테이션 3층 높이까지 올라와있어서 건물에서 보면 위협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오랫만에 제기동 죠이 휴먼스테이션을 찾아 오시는 분들이 당황해하시지 않도록 간략한 소식을 전합니다. 이상 제기동에서 김수억 기자였습니다.




* 많은 죠이어들에게 죠이선교회의 소식이 전해질 수 있도록, https://www.facebook.com/joymissioneuk 커뮤니티(페이스북)를 주변 죠이어들에게 추천해주세요. 공유도 해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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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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