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에 대하여 1]


1. 정욕 

   다른 이름: 타는 갈증에 마시는 바닷물


2. 정욕은 서구 사회에서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가장 치명적인 죄로 인식되어 왔다. ... 정욕은 기독교 문화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온 서구 사회에 '부도덕'의 대명사처럼 취급되어 왔고, 따라서 사람들은 이 욕망을 매우 은밀하고 음성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언제 그런 시대가 있었냐는 듯, 성이 거리와 광장에서 당당히 활보하고 있으며 성애가 공공연한 볼거리이자 대중적인 즐길거리가 된 상황이다. ... 피터 크리프트는 "만약 성이 현대 사회에서 제거된다면 우리 사회는 경제 공항에 빠질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로고스적인 이성보다 에로스적인 감성을 더 중시하여,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스토아주의 보다는 '너 자신을 즐기라'는 에피큐리아니즘에 훨씬 큰 영향을 받고 있다. (182쪽)


[개인생각] 현대에 가장 큰 죄악은 '고리타분'이 아닐까 싶다. 고전적인 윤리관이나 가치관 혹은 전통은 '고리타분'한 것이 되고 말았고, 그것은 혐오스러운 것이며 현대인들에게는 비상식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뭔가 전통적인 입장에서 말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사람이라는 눈길을 보내며 상대를 하지 않으려 한다. '고리타분'은 이 시대의 대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3. 성욕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니다. 하나님이 성을 만드시면서 성적 욕망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중략)

   성의 이런 독특한 기능과 성격 때문에 몸은 일종의 성례적 기능을 가진다.(184쪽)


4. 정욕은 성욕과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과도한 성적 욕망'으로 정의되는 정욕은 왜곡된 성욕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해 상대의 육체와 감정을 허랑방탕하게 사용하는 성적 욕망을 정욕이라고 한다.(185쪽)


헬리 페어리는 진정한 사랑과 육체적 정욕의 차이를 솜씨 있는 대조하며 그 차이점을 설명한다. 


사랑이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면, 정욕은 짜릿한 욕구 충족에 더 관심이 있다. 

사랑은 인격적 교감으로 따듯해지지만, 정욕은 외롭고 고독하다. 

사랑은 미래를 위해 때로 절제하지만, 정욕은 현재 감정과 만족에만 골몰한다. 

...

사랑은 잠자리를 나눈 사람과 또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있기 원하지만, 정욕은 아침이 되면 남의 눈을 피해 남남이 된다. 


[개인정리] 죠이 스피릿이 빠진 성욕은 정욕이 되고 만다. 

  * 죠이 스피릿이란: 예수님을 첫째로 이웃을 둘째로 자기 자신을 마지막에 둘때 참된 기쁨이 있다는 스피릿.


[정욕에 대하여 2] 


1. 육체적 죄이자 영적인 죄


  마귀는 금욕 생활을 하는 수도사들이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도록 유혹하는데, 정욕과 탐식은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마귀가 사람을 탁식에 빠지게 함으로써 정욕으로 유인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탐식으로 인해 마음과 몸이 느슨해지고 게을러지면 쉽게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가 이성과 정신을 장악하여 혼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욕은 육체에 속한 죄인 것 같지만 근원적으로는 마음과 정신에서 말미암는 죄다. 


2. 정욕의 원인들: 최상 정욕과 바닥 정욕


세이어즈는 인생이 최상의 상태에 오를 때와 바닥으로 내려갈 때 모두 정욕에 취약하다고 분석했지만 최상의 상태에 오를 때는 쉽게 정욕에 빠지듯이 극복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덜어렵다고 보았다. 반면 바닥에 내려간 상태에서 정욕에 빠지만 다시 해어나오지 못하게 되기 쉽다. 이 경우 정욕을 벗어날 수 있는 기운이 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C.S. 루이스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글을 쓴 것이 있다.) 


3. 정욕을 이기는 길


  1) 자리를 피하라: 부딪혀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피해야 한다. 요셉처럼.


  수도사 에바그리우스는 정욕이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는 사실 정욕으로 인생의 치명적인 위기를 맞은 수도사였다. 4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단과의 신학 논쟁으로 명성을 얻어 신망과 입지를 굳히고 있을 즈음, 에바그리우스는 한 교회 중직자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걷잡을 수 없이 끌리는 마음과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위치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어느날 밤 여자의 남편이 군인들과 함께 집에 들이닥쳐 그를 끌어내고 감옥으로 집어넣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깬 에바그리우스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정욕의 수렁에 빠져 죽기보다는 지위와 명성을 잃더라도 수렁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녀를 보는 한 그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은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박차고 나와 예루살렘으로 피했다. 더 이상 머물렀다가는 인생이 파멸에 이르고 말리라는 정직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2) 이 시대의 거짓말을 간파하라.

    [이 시대의 거짓 가치관]

   (1)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무엇이든 즐길 권리가 있다. 

   (2) 성적 즐거움은 그 어느 것보다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3) 배우자와의 친밀함을 높이라.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욕의 반대 극단에 있는 '성에 대한 무감각'과 '성 혐오증'을 정욕 못지않은 해악이라고 지적했다. 즉 부부들은 하나님이 상대를 섬기고 누리도록 허락하신 성적 즐거움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상호적으로 의식하고 노력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각자 자기 몸을 배우자가 주관하도록 하라는 바울의 권고를 따라(고전 7:4) 서로의 욕구를 존중한다면, 마귀도 틈을 탈 기회를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4) 우정을 극대화하라. 


   천국에는 성이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정이 그 자리를 대치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5) 궁극적 대안: 근원적 쾌락

   물질적 쾌락보다 더 근원적인 쾌락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면 인간이 누리를 성적 욕구에 대한 것보다 더 풍성한 풍요를 누리를 수 있게 되며, 결핍으로부터 극복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성 어거스틴도 방탕한 생활 이후 회심하고 나서는 홀로 살았는데 이전보다 더욱 큰 기쁨을 가졌다고 한다. 


[개인생각] 어떤 감정이나 욕구가 처음부터 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 직진하듯이 아무 의식없이 달려간다면 우리는 큰 죄악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로 인해 스스로 통제할 능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측 도로로 늦지 않는 순간에 나와야 합니다. 초행길을 가는 사람처럼 고속도로 어느 중간에 나와야 할 지를 늘 신경쓰지 않으면(이정표를 경고삼지 않으면) 우리는 돌아오기 힘든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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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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