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라는 단어에 여러가지 의미들이 포함되겠지만, 여기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다른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부분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의라는 단어의 한 측면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다룬다)

단어는 텍스트 안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느헤미야 9:8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땅을 그의 씨에게 주시리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룬 것을 보면서, 주는 <의>로우시다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여기서 <의>란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에 성실하게 행하심을 의미한다 하겠다.  

(느 9:8)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의=차다크, 체데크의 동사형)

 

창 38장의 내용은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이다. 유다는 다말에게 해야 할 도리로서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 반면, 다말은 그 언약에 근거해서 무리한 방식(비도덕적 방법)을 통해 언약 성취를 이루어 내려고 했다. 그런데 유다는 다말의 그와 같은 행동을 향해서 그것을 <옳도다> 평가하고 있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옳다고 평가한 것은 <옳다>라는 행위가 여기서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 언약에 있어서 신실하고 정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다.  

(창 38: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옳도다=차다크, 체데크의 동사형)

롬 3:25 '...하나님이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의 말씀 속에서도 언약 백성들이 지은 죄를 오래 참으시고 간과하셔서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와 심판을 내리지 아니했다는 면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이라 말할수 있으며,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에서 의란 바로 언약적 개념 속에서의 성실함을 일컫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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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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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4-9

아닥사스다 왕에게 느헤미야가 요청하고 아닥사스다 왕에 그 요청에 수락해주는 과정을 통해서 느헤미야는 이것을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고 해석했다.

(느 2: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는 지금 비상한 능력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을 하나님이 열어가시는 모습을 보고는 <하나님이 도우셨다>라고 신앙의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해석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해석이요 사건을 바라보는 해석이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현상을 경험하면서도 <운이 좋았다> 혹은 <내가 말을 잘 했다>와 같은 해석을 달기도 하고, <아닥사스다 왕은 참 좋은 분이다>라는 것으로 평가를 달 수도 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다른 방식으로 이 현상을 해석해 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의 입술을 다리스고 분위기와 상황을 다스려 주셔서 마치 순풍에 돛단 배처럼 일이 술술 풀리게 해 주셨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 중심으로 세상의 현상과 역사적 흐름을 해석하는 해석법이라 하겠다. 아마, 함석헌 선생과 같은 분은 <성서로 본 한국 역사(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 한국 역사를 해석해 내려고 했던 것이리라 본다.

 

우리도 세상을 해석하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사건과 현상을 해석하면서 봐야 한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볼 것인가에 따라(사관에 따라) 해석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섭리(구속사적인 섭리)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개인의 역사에서도 나라와 민족의 역사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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