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정리]


기독교 교육이란,

1. 종교의식이 싹트는 전통과 공동체를 효율적으로 의도하는 것

2. 무질서하고 감추어진 사건과 환경, 즉 세상의 모든 일과 모습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파악하는 눈을 길러주는 것

3. 주어진 기독교 유산을 가능한 한 일찍 항복시켜서 더 높은 경지로의 도전을 시도하는 것


이런 결론은 신학과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로부터 나온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교육의 조건>

1.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가르치는 내용)

2. 왜 그것을 가르쳐야 되는가?(교육의 가치)

3.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방법론)

  -> 이번에는 이와 같은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교육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1. 내용으로 당연히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2.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듯이 같은 성경을 다루면서도 다르게 가르친다.(해석에 따라)

3. 따라서 성경의 내용이 실제로 무엇이냐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서 기독교 교육은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4. 그래서 결국 기독교 교육이라는 것은 신학과 손을 잡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는 기관이 어떤 신앙관을 가지며 어떠한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예) 성경이 추구하는 것이 사회구원이 먼저냐? 아니면 개인구원이 먼저냐?


  [참고] 오늘날은 교육하면 방법론에 치중해서 마치 방법론이 하나의 가치인 것처럼 말하는데, 방법론은 내용은 아니다. 방법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과 그것을 잘 전하고자 하는 열정에 있다고 저자는 본다.(방법론이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은 세분화된 사회에서 그것으로만 업을 삼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생기게 되는 주장이라는 입장)

  주일 학교에서 반사(교사)에게 중요한 자질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과 열정, 감격.. 이런 것이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고 내용이다. 


5. 성경에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 / 구원 = 하나님 나라

  기독교 교육을 단순히 착하게 살자 / 경건에 힘쓰자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된다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살기 위해서 우리는 죄에서 꺼내어 거룩케 하시어 영광의 자리로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은 성경의 내용이다. 그것을 어디서 하느냐? 이 세상에서 하신다는 것.


  이것을 사회구원론식으로 설명하면, WCC운동이 되는 것이다. 개인의 죄보다는 사회적인 모순(구조적 죄)에 비중이 더 커진다. 그래서 그것부터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로부터의 해방, 민중신학 등등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폭력에 대해서도 허용함.(목적이 옳으면 방법은 허용된다는 의식을 가짐)


<왜 그것을 가르쳐야 되는가?>(왜 배워야 하는가? _ 동기부여)


1.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가?(동기부여가 무엇인가?)_성공에 대한 보장

2. 기독교 교육의 동기부여는 <교리>로 한다. 교리를 통해서 우리가 왜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친다.(종말론을 가르쳐야 다가올 종말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된다.)

3. 그런데 문제는 자연인에게는 기독교의 교리라는게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에)

4. 그래서 기독교 교육에는 교육답지 않은 요소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간섭>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 교육과 기독교 교육이 전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 

5. 기독교 교육은 중간에 <성령님의 간섭>이 중심으로 나타나서 교육이라는 개념을 무참하게 밟아 버린다.(세상에서 말하는 교육적인 방법론을 자랑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림)

6. 바울의 고백(고전 2:1-5/6-8 사람의 지혜와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성령의 간섭이 중심에 있다는 것은 기독교 교육이 일반적인 교육학의 범주하고는 전혀 다르다고 봐야 한다. 

7. 따라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과 은혜와 긍휼에 의존하는 것이지, 테크닉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그래서 대충해도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만)

8. 따라서 우리는 아무도 자랑하지도 못하지만, 못한다고도 못하는 것이다.(교사를 하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1. 신 6:4-9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수하라?의 의미

2. 부모가 그 내용의 중요성을 알아서 말로서 그들에게 전수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부모가 그 중요성을 아는 대로 삶을 살아감으로 자녀 교육의 샘플이나 모델이 되는 방식으로 전해 주라는 말씀인 것이다. 

3. 기독교 교육의 핵심은 가르치는 자가 하나님을 얼마나 살아하는가가 모든 문제에서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기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고, 안타까운 모습으로도, 좌절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 교육이다. 

4. 전도란 방법론 중에 최악의 방법론이다.(가장 될 수 없는 방법론이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다.)

5. 성경은 상식을 넘어서는 믿음의 사람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길래 사람들이 상식을 넘어서 순종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예)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이를 하나님께 바쳤다.-> 도대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길래 

6. 요한복음 13장.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모델로서)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리라. 

7. 핵심적인 기독교 교육 방법론: 주께 항복하고 순종하고 주를 만족하는 것(모델)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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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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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과부의 기도(눅 18장)에 대한 해석

 보통 붙잡고 늘어지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해석하지만, 낙망하지 말고 기도해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기도하는데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기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때 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 눅 16장.

이 비유는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가 있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세대를 사는 사람은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대를 사는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않더라...빛의 자녀들도. 이 세대의 것으로 다음 세대를 준비해 한다는 것이 비유의 핵심이다. 


밤에 찾아온 친구 비유> 눅 11장. 

눅 10장의 주기도문을 보충하는 비유다. 강청(부끄러움없는 고집)이란 의미는 요구함에 있어서 당연한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친한 친구에게는 자기 것인양 달라고 요구하는 것(예의와 법도를 떠나서)이다. 서로 배려하고 구분하고 하는 것은 이미 관계가 남임을 의미한다. 강청함이란 그런 관계를 전제한 행동이다. 


------------- 정리하자.


1.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성경의 주제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가 가장 근접하다. 

 

  1) 하나님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주권>이다. 

  2) 이것은 성경의 최고 사상이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라는 말과 일치한다. (칼빈주의)

  3)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중요한 것은 그의 백성들이 그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성경 신구약 통틀어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대주제로 삼고 모든 사건과 약속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진행에서 하나님의 주권의 유일성, 절대성, 사실성, 이런 것들이 강조되는 것과 함께 그 통치의 대상인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통치를 기쁨으로 수용하고 그들의 소원으로 삼고 양식으로 삼는 자로서 고쳐지고 훈련받고 완성되는 것이 동시에 다루어진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을 알려주고, 그 계획에 우리가 순종하도록 설득하고 납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와 같은 방식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설득시키고 이해시켜서 설복하도록 만드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때가 차매"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거절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우리를 향해서 성경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 무엇인가? '나를 믿어라', '나는 네 편이다'라는 설명 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때리거나 더불어 사랑으로 편이 되어 주는 것처럼)


설명해야 하는 데 설명이 안되니까? 사랑하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한다는 것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십자가다. 그런데 못 알아들으니까? 억지로 끌고 가고, 개같이 끌고 가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결국 복받는 자리로까지.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그 이유를 알아서 그의 뜻에 순복하게 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을 묘사함에 있어서 다양한 장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장르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목적은 같다. 그러나 장르에 따라 사용하는 칼라가 다르다. 풍경화를 그리면 초록이 많이 들어가고, 인물화를 그리면 초록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묘사함에 있어서 진노로 나타날 수도 있고, 용서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훈련하시는 것이 상을 주시는 것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매를 드는 것으로 나타날 때도 있는 것이다. 색깔과 그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듯이 표현과 내용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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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해석해야 하는 이유_ 계시의 초월적 내용이 인간의 이성에 인식가능하기 위해서는 변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1.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 부작용은 계시된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2. 계시의 내용은 초월적이다. 그러나 계시가 드러난 방식은 초자연으로 계시될수도 있고, 자연으로 계시될 수 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계시가 내용적으로 가지고 있는 초월을 계시 방식의 초월성으로만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비 자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예) 마리아 -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를 신비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결과적으로 중보자)

  개혁주의는 마리아가 가지는 신앙과 그 자세에 초점을 맞추게 됨


  예)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 그 은사가 어떤 메시지를 가지느냐로 가야 하는데, 은사 자체의 신비 쪽으로만 갔다.(은사가 가지는 의미를 해석하지 않고, 그 현상의 신비만을 추구함)

: 고전 12-14장에서 은사에 대한 이야기 / 한 몸이라는 비유 / 불완전한 지금

  - 밤중에 손전등이 필요한 것은 사람의 시력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 내가 손전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빛과 더 가깝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리해서 읽을 것] 113쪽 7줄부터~


3.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종들은 그 말씀을 단순히 그대로 전하는 자가 아니라, 먼저 내가 그 말씀에 의해서 항복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언어의 수단이나 논리성의 수단 등을 이용하신다.) _ 단순히 제스쳐로 단어 맞추는 게임식 전달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초월성)가 우리의 인식 가능한 형태로 변형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원형을 찾기 위해서 해석해야 한다.(A를 전달하기 위해서 A'로 왔는데, 이미 이 땅에는 A'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존의 A'와 하나님이 보여주신 A'는 완전히 같은 내용을 가진 것이 아니다. 기존의 A'이 개념을 빌려서 원래의 A 개념의 일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해석자는 계시된 A'를 시작으로 해서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의 내용까지 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4. 해석을 하지 않게 되면, 초월이라는 계시된 형식자체를 내용으로 받아 초월주의로 빠지게 되거나 혹은 계시된 것(A')을 원래 인간들이 가지고 있던 개념(A')와 동일시 해 버리게 되고 만다(자연주의).

  예) 자유주의 신학은 <부활>을 <부활적인 개념>으로 바꾸어 버린다. 


5. 성경의 특징: 구약은 사건적이고 신약은 설명적이다. 

  영화를 예로 든다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막이 있는 편이 낫다. 화면만으로는 그 뜻을 명확하게 알아내기 어렵다.(법정영화)_그래서 신약이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영상이 없으면, 잃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스케일이다. 구약은 그와 같은 스케일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구약은 사건과 스케일을 통해서 단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한다. 

예) 죄의 값은 사망이다. - 문둥병으로 죽는다, 지진으로 죽는다.... 그 죽음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십자가 사건, 우상숭배하면 질투하시는 하나님

  구약의 사건들을 통해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단어들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내용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6. 국어를 공부하는 방식

  1) 초등학교 때에는 문자를 가르친다. 단어를 정확하게 아는 것에 주안점을 맞춘다. 

  2) 중학교 국어교육: 그 단어들을 엮어서 문장을 만들어 문장 안에 사상을 담기 시작한다. 글자가 연결되어 사상을 담는 그릇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우리 말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사상을 배운다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민족사상교육>이 되는 것이다.  

  3)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개념과 이유와 목적을 알아야 한다)

일상: 네 마음대로 해!    집에 들어오지 마!!

성경: 내가 이 백성을 다 진멸해 버리겠다. 그러다가 다음 장에선 내 백성 치는 자는 죽는 줄 알아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따라서 성경의 내용들을 일차적으로 그 단어가 성경상에 어떤 뜻을 가지는가를 알아야 제대로 해석되는데, 그걸 알기 위해서는 많은 사건들을 알아야 된다. 왜냐하면 사건들이 그 단어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7. 성경에 기록된 제일 중요한 계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접하시느냐 하는 것이다. 

  1) 그런데 우리는 실존주의 영향으로 우리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진 주제로 성경을 이해하도록 했다.


8. 근본주의란?

근본주의라는 것은 성경이 초월의 내용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형태와 모습으로 계시했을 때(A'), 그 내용(A)은 꼭 그 모습(A')만을 가져야 된다고 하는 것.

  1) 정당한 근본주의: 자유주의를 대항 할 때는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 예수의 유일성,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예수, 하나님의 아들, 부활 등.


      곤란한 근본주의(율법주의적 근본주의)


  2) 이혼 증서: 이혼증서를 써주어 내보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해서 이혼하면 적법하다.

그러나 이혼에 합당한 이유없이 아내를 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절차를 두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함. 더 나아가 부부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함.


  3) 침례에 대해서.

어느게 맞느냐 하면, 물속에 집어 넣는 게 옳다. 그러면 왜 물을 뿌리냐? 그것은 의미가 같기 때문이다. 

  4) 유아세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땅함.

  5)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주의적 사고방식:

   (1) 6일 창조 / 6세대 창조(날: 욤 에 대한 해석문제) 

  6)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는 의미지, 간음한 자는 돌로쳐서 죽여도 좋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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