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8장에 와서 지도자에서 백성으로 중심 축이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지도자 느헤미야를 통해서 진행되던 예루살렘의 회복은 마지막 백성들의 움직임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 본문입니다.

 

[정리 1. 내용 정리]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모세의 율법을 가져오기를 청했다.

  1) 일곱째 달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를 불러 모세의 율법 가져오기를 청했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는 율법책을 가지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서다.

  3) 에스라는 나무로 만든 강단에 섰고, 백성 앞에서 말씀을 펴니 모든 백성이 일어났다.

  4) 에스라가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고 모든 백성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굽혀 경배했다.

  5)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레위인들은 그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해석해 주었다.

  6) 그 말씀을 깨달은 백성들은 모두 한결같이 울었다.

  7) 느헤미야는 오늘은 하나님의 성일이니 울지 말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고 요청한다.

  8) 레위 사람들도 백성을 정숙하게 하고는 오늘은 성일이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고 함.

2. 이튿날 또 다시 백성의 지도자들은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임.

  1) 에스라는 말씀 속에서 초막절 절기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그 말씀대로 행할 것을 요청.

  2) 백성들은 초막절 규례에 따라 무성한 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짓고 이레를 지냄

   : 지붕 위, 뜰 안, 하나님의 전 뜰, 수문 광장,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지음.(16절)

  3) 이와 같은 열심히 초막절을 지킨 것은 여호수아 때부터 그 때까지 없었던 일이다.(17절)

  4)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다.(18절)

 

[정리2. 내용을 내 방식으로 재 정리]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성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후속 작업을 모두 했다. 지도자를 세우고, 명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하여 훗날의 혼돈을 막도록 조치를 취해 놨다. 여기까지는 지도자의 몫이고 느헤미야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아직 예루살렘의 완전한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 느헤미야 8장은 그 완성을 향해 움직인다. 백성들이 스스로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에스라를 청하고 모세의 율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에스라는 그들의 요청에 사람들을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 레위인들은 그것이 잘 깨달아지도록 열심히 중간에서 힘쓴다. 백성들은 말씀을 깨닫고 (자신과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도 깨달은 것 같다.) 온 백성이 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일임을 강조하고 먹고 마시고 축제의 날이 되도록 요청한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꾼 것이다.

다음날 백성의 지도자들은 다시 에스라를 찾아 온다. 율법의 말씀을 더 알고 싶어서이다. 에스라는 내친김에 초막절을 가르치고, 지금이 초막절을 지켜야 할 때임을 말한다. 백성들은 그 말씀대로 마음을 다해 초막절 절기를 지킨다. 그 열심과 진지함이 얼마나 컸는지, 여호수아 이래로 이처럼 초막절을 지킨 일이 없다고 기록할 정도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예루살렘 성벽 공사의 최종적인 마무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이다.

성벽이 재건되고, 그것을 유지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나서 마지막으로 완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보여준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 성벽도 계보도 제사도 .... 모두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마지막 방점은 말씀으로 찍어야 한다. 모든 회복을 마무리하는 과정 속에서 반드시 최종 점검을 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그 교회 공동체 안에 말씀으로 채워짐이 있는가다.

내용없는 껍데기에 속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껍데기에 도취되어 알맹이를 간과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 성장을 교회의 건물과 사람 수와 재정으로 평가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그 교회와 그 성도의 영혼을 채워줄 말씀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성벽이 있고, 성도도 있고, 재정도 있고 좋은 프로그램과 영상 장비도 갖추었는데, 말씀은 비어있는 교회. 껍데기에 성도도 목사도 모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역사도 있고, 치유도 있고, 기적도 있고, 선교와 지역사회 봉사도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목사는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먹을 것 없는 잔치집처럼, 요란하기만 하고 성도는 모두 굶주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나는 말씀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먹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말씀을 먹고 내가 말씀을 익혀야 한다.

잊으면 안된다. 잊으면 안된다.  절대로 잊으면 안된다.

 

2. 말씀을 채우는 일은 느헤미야로부터 시작된 일이 아니라,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서 시작된 일이다.

말씀을 잘 가르치고 먹이는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말씀을 달라고, 우리는 말씀에 갈증이 있다고 요청하고 구해야 하는 사람은 백성들인것처럼 우리 성도여야 한다.

참된 성도는 교회의 시설과 크기와 프로그램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말씀에 대한 갈망과 배고픔이 있어야 한다. 목사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렸을 때에라도 우리에게 말씀을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이 성도다. 말씀에 대한 갈망과 요청이 성도인 우리들에게서 부터 나올 때, 이것은 제대로 된 회복이다.

성도들은 말씀을 달라고 삐약거리고, 목사는 그 간절한 요청에 부응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수시로 그들의 입에 넣어주는 교회. 그래서 성도도 말씀을 강건해지고 목사도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에만 전무할 수 있는 교회.

전도든, 선교든, 지역 봉사든, 제자훈련이든.... 모든 것은 그 후에 생각해 볼 일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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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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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라 3장입니다.

본문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차 내용정리]

1. 귀환한 해 일곱째 달에 초막절을 지키는 사람들(1절)

1) 예수아와 제사장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율법대로 번제를 드림

2) 무리가 모든 나라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가운데, 터 위에 제단을 만들고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림.

3) 초막절의 규례대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림.

4) 그 이후부터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예물을 드리기 시작함

: 첫 해 초막절부터 조심스럽게 모세의 율법을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

5) 바사 왕 고레스의 명을 따라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기 시작했다.

2. 귀환하고 그 다음해 둘째 달에 비로소 성전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다.(8절)

1) 예수아와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 레위 사람들과 돌아온 사람들이 공사를 시작하였다.

2) 20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 예수아는 레위인으로 성전 공사 감독의 실무자가 되었다.

3)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불어 여호와를 찬양함.

4) 대부분의 백성들은 성전 기초가 놓인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5) 그러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오히려 대성통곡함.

6) 기쁨과 슬픔의 소리가 함께 뒤섞여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가지고 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한 반복이 되어서는 안된다. 내용면에서는 같지만 표현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서 내가 발견한 강조점등이 뭍어나게 된다.

 

[2차 내용정리]

예루살렘으로 귀한 한 유다인들은 먼저 명단을 확인하고, 정통 유다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였다. (2장)

그 다음으로 행했던 것은 우선 모세의 율법대로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초월절로부터 터만 남은 곳에 제단을 만들고 거기서 율법대로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다.(얼마나 긴장하며 두려움가운데 조용히 행했을까.. 상상이 된다.) 그러는 과정 중에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자 그 이후부터는 상번제와 월삯과 절기의 제사를 본격적으로 드리기 시작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번제를 다시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자재를 레바논으로부터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전은 레위인을 중심으로 감독되면서 사람들이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성전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흥분되는 일인가? 함께 찬양을 하며 백성들은 즐거움과 감격에 찬양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마냥 그렇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옛 성전의 영광에 비하면 초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본문은 강조하고 있다.

 

[3차 묵상과 적용]

1. 돌아온 유다인들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믿음 때문에 막무가내로 행동하지 않았다. 신중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자신들의 해야할 것을 행했다.

먼저, 초막절을 지키면서 주변 상황을 살폈다. 큰 이상이 없자 이제는 상번제와 월삯을 드렸다. 그 이후 여러 절기들을 하나씩 지켜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성전 재건에 필요한 자재를 준비했다.

우리도 지혜가 있어야 겠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막무가내로 해도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중함과 그 중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조심성 없이,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일한다면 일은 어려워지고 그르칠 수도 있는 것이다. 

 

2. 두번째 성전의 재건은 한 편으로는 감사와 감격이요, 다른 한 편으로는 안타까움이다. 

나라를 잃고 성전도 잃었던 유다인들이 다시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시작으로 성전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은 감격스럽고 놀라운 기적이지만... 그 영광이 옛 날의 영광(솔로몬 성전)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안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죄의 결과로 인해 받은 피해는 다시 회복되어 원 자리로 돌아왔을지라도, 그 모습이 전과 동일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복의 감격이 있지만, 원 모습으로의 온전한 회복이 아니기 때문에 받게 되는 안타까움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초라한 회복이 오히려 미래의 더 큰 완성(충만한 성전, 완전한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함)을 기대하게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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