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logoPerry Grone

Photo by Perry Grone on Unsplash

[성경본문 정리]

13절.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절.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보내사 전도도 하며

15절.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절.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1)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절.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2)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3)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절. 또 안드레(4)와 빌립(5)과 바돌로매(6)와 마태(7)와 도마(8)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9)와 및 다대오(10)와 가나나인 시몬(11)이며

19절. 또 가룟 유다(12)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성경내용 정리]

1.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서와 능력을 가지고 오신 분으로서 어느 정도 인정받으셨을 때(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제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13절)

2. 열 둘을 세웠는데 이들을 세운 이유를 살펴보면(14-15절)

  1)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2) 보내사 전도도 하며

  3)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다.

3. 열 두 명의 제자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시몬(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다대오, 시몬(가나나인), 가룟 유다.

4. 이들 중 특징적인 제자는

  1) 원래의 이름 외에 새로운 이름을 더한 제자는 시몬(베드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보아너게, 우뢰의 아들)

  2) 예수를 판 제자: 가룟 유다


[질문하기]

1.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 전략(?)을 찾아 볼 수 있을까? 

  - 예수님께서 복음의 시작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공적 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셨다. 다양한 문제 제기에 대해 답하시면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고, 사람을 위하시고, 안식일의 주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명확하게 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의 초기 사역은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주목했고, 심지어 유다와 예루살렘 뿐 아니라 주변 이방 지역에까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장하는 일을 홀로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 중에서 따로 사람을 세워 일하시기를 원하셨다. 열 두 명을 따로 세우셨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있게 했으며,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시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행하게 하심으로서 예수님 홀로가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제자들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시길 기대하셨다. 사역의 새로운 전환점이 시작된 것이다. 

2. 열 두 명의 제자 중 다른 이름을 부여한 세 명의 제자에 대한 언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고,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에게는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이란 새 이름을 주었다. 본문에서는 새 이름을 주신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베드로의 이름이 반석이란 뜻이므로 베드로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셨다고 볼 수 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기질과 성향을 특징적으로 드러낸 말이 아닌가 싶다.(이후 성경을 읽는 중에 그 의미가 좀 더 밝혀질 수 도 있으리라)

3. 왜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 중에 예수를 팔 사람을 포함하셨으며, 성경은 굳이 가룟 유다를 언급하며 숨기지 않았을까? 

  - 예수님의 제자가 열 둘이라는 것은 구약 이스라엘의 지파가 열 둘 이라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열 두명을 제자로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열 둘의 숫 자 안에는 배신자(예수를 파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

  - 어쩌면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는 이 땅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 두 명 중 한 명은 배반하게 될 것을 모르지 않으셨음에도 그 배반자를 선택하시고 그와 함께 동행하셨고 마지마까지 함께 하셨다는 것은 이 땅에서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요소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팔리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 같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더 큰 그림 안에 있으며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묵상하기]

1. 완벽한 완성을 위해 치명적인 문제를 심는다. 예수님께서 열 두명의 제자를 선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다.  열 두명의 제자 중에 예수를 판 가룟 유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주는 메시지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완벽한 성취와 결과를 위해 무흠한 사람을 찾고 방해가 될 모든 변수를 제거하는 것에 힘쓴다. 그렇게 준비하고도 기대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에 불안해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가장 불완전한 요소를 심어 놓으신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요소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까지 극복하시고 그것을 넘어 완전에 이르신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가 불완전함으로 가득한 이 땅을 살면서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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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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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 왕의 아들 여호람이 여호사밧 왕과 함께,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을 공격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호람이 아버지 아합 보다는 괜찮은 왕이었다는 것이 인상적이고, 이스라엘 연합군이 당한 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그것으로 인해 모압을 쉽게 제압하게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정리1. 내용의 정리]

1.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1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지만,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않았다.
  2)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다.
  3) 그러나 여로보암의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했다.

2. 이스라엘과 유다의 연합군이 모압과의 전쟁을 준비하다. 
  1) 모압 왕 메사가 아합이 죽은 후에 그 동안 바치던 것을 바치지 않고 배반했다.
  2) 여호람은 유다 왕 여호사밧을 청해 모압과 전쟁할 것을 제안했고, 여호사밧은 승낙했다.
  3) 여호사밧의 제안으로 에돔 길을 통해서 가는 중에 가축 물이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됨.
  4) 이스라엘의 왕이 이 일로 인해 난처해 하자, 여호사밧이 여호와께 물을 선지자를 찾게 됨
  5)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이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알린다.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 내려갔다.

3. 엘리사를 찾아간 왕들.
  1) 엘리사는 찾아 온 이스라엘 왕에게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선지자에게로 가라고 비아냥.
  2) 이스라엘 왕이 위급함을 호소하자,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을 위해서는 하지 않겠지만, 유다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예언함.
  3) 엘리사가 받은 예언의 말씀
   (1)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바람도 비도 보이지 않겠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우리라.
   (2) 이 일은 작은 일이고 여호와께서 모압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라. 모압이 완전히 파괴됨
   (3) 아침이 되어 소제드릴 때에 물이 에돔쪽에서 흘러와 그 땅을 가득하였더라.

4. 모압 사람들의 그릇된 판단
  1) 모압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이 보이자, 연합군(이스라엘,유다,에돔)이 분열하여 서로 죽여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하게 됨
  2) 모압의 군인들이 비무장으로 노략하기 위해 달려들다가, 오히려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모압이 완전히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됨
  3) 모압의 전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안 모압 왕이 에돔 진영 쪽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돌파하지 못하게 되자, 자기의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성 위에서 번제로 드렸다.
  4) 이스라엘은 이를 보고 크게 격노함이 있하여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

[정리2. 내용을 나의 말로 재구성하여 정리]

본 장은 이스엘와 모압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 대한 배경과 진행과정이다. 아합 왕이 죽고 난 후 모압은 독립을 하려 했다. 이를 괴씸하게 생각한 이스라엘 왕(여호람)은 유다의 여호사밧을 설득하여 연합으로 전쟁을 치고자 했다. 당시에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도 함께 참전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의 제안으로 에돔의 길로 가서 모압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7일 만에 가축 먹일 물이 떨어지는 위기에 봉착했고 이는 전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이때 여호사밧은 선지자를 찾고,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게 된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왕에게는 반감이 있었지만, 유다 왕 여호사밧을 보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 준다.


이 골짜기에 개천을 파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지는 않겠지만, 물이 찰 것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모압과의 전쟁에서도 완전한 승리를 할 것으로 예언한다.


다음 날 아침 소제드릴 때 쯤 되어서, 모압에서는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모압의 병사들이 이스라엘 연합군이 있는 곳에 햇볕에 반사된 물을 보고는 피라고 오해하고는 연합군이 서로 싸우고 죽인 줄 알고, 전리품을 얻기 위해 무방비로 그들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무방비로 달려드는 모압의 군대를 쳐죽이고는 모압을 점령한다. 완전한 점령을 할 때 즈음에 모압 왕이 도망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다음을 이을 아들을 자신으 신에게 성 위에서 번제로 드린다. 이를 본 이스라엘은 크게 격노하고는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신앙이란 참 역설적이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심각하게 준비되고 진행되던 전쟁이 생각지 못한 문제(물 부족)로 인해 전쟁을 해보지도 못하고 패할 뻔 했다는 것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그 물이 아침 태양에 비취어 <피>처럼 보였기 때문에 모압의 병사들이 착각하고 이로 말미암아 오히려 쉽게 모압이 제압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이 전혀 없던 곳에 물이 생겼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다. 그곳에 물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그곳이 물이 없었기 때문에 모압은 다음 날 아침 물에 비친 태양을 보고는 그것이 <피>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피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곳은 물이 없었던 곳이기에 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물이 없었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위기라고 생각했지만, 물이 없었던 장소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은 반전이 있을 것이다. 물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다고 아우성을 친다. 왜 이런 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하나님께 따진다. 그런데 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하고, 물이 없었기 때문에 복을 누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설적이다. 복음의 적용도 역설적이다. 물이 없어 죽어가던 곳에서 오히려 승리와 생명이 잉태되니 말이다. 역설적이다.

 

2. 이스라엘 왕의 얼굴을 봐서는 아니고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

위기의 순간에 엘리사를 찾아 온 왕들을 향해서 한 엘리사의 고백이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여호사밧은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선지자를 찾았던 왕이다.(왕상 22장. 아합 왕과도 함께) 엘리사는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얼굴마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다. 당신 때문에는 아니지만, 이 사람 때문에 내가 당신을 돕겠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이 바로 나라면 우리는 얼마나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인가? 선한 사람에게만 유익한 자가 아니라, 심지어 악인에게까지도 유익한 자, 악인이라도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인정인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엘리사에게 아무 것도 얻어 낼 수 없었다. 위기의 순간이었음에도.. 그런데 그와 함께 있던 여호사밧으로 인해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여호사밧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여호사밧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여호사밧은 위기의 순간에 두려워 당황하지 않았고, 겸비하여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랬던 여호사밧은 위기의 순간을 구원의 순간으로 바꾼 존재가 되었다.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그 분의 뜻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나는 여호사밧 같은 사람이요, 거룩한 얼굴마담인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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