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석 명절이면서, 주일이네요. 추석 당일이라 교회에서 3부 예배 한번만 드린다고 하시네요. 덕분에 주일 아침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침 성경을 읽고 정래해서 올려 봅니다.

 

[정리1. 내용의 정리]

1. 엘리사가 쇠도끼를 물에서 건져 올리다.
  1) 선지자의 제자들이 공간이 부족하여 요단으로 가서 새로 거주할 처소를 세우려고 함.
  2) 엘리사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고, 본인도 같이 가자는 제안에 같이 요단으로 가기로 함.
  3) 요단에서 그들이 나무를 베다가 한 사람이 쇠도끼를 물에 떨어뜨림. (빌려온 쇠도끼임)
  4) 엘리사는 그 처지를 알고, 나뭇가지를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여 다시 찾아 줌.

2. 아람, 군대를 물리친 엘리사
  1) 아람이 어느 곳에 진을 치고자 계획을 하면 엘리사는 이를 알아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줌.
  2) 계속해서 아람의 계획이 미리 알려져 실패하게 되자, 아람 왕은 혹 우리 중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자가 있어서 정보를 이스라엘에게 전해 주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임.
  3) 신하 중 한명이,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한 말까지 알고 있다고 보고함.
  4) 아람 왕은 엘리사를 먼저 잡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엘리사가 도단에 있음을 알고 그를 잡기 위해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다.
  5)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 일찍이 아람의 군대를 보고 놀라, 엘리사에게 알리며 두려워하니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보다 많다고 하고는 사환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한다.
  6)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내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다.
  7) 아람의 군대가 엘리사에게로 오니 엘리사는 기도하여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도록 했다. 그리고 어두워진 아람 군대를 엘리사는 오히려 사마리아로 인도하였다.
  8) 아람의 군대가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사마리아에 왕의 군대에 의해서 포위된 상태였다.
  9)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에게 아람을 공격할 것을 허락받기 위해 재촉했다.
  10) 그러나 엘리사는 오히려 이들을 떡과 물을 주어 그들로 먹게 하고 돌려보내도록 했다.
  11) 이스라엘 왕은 이들에게 떡과 물을 많이 주었고, 아람 군대를 돌아가서 다시 오지 않았다.

3. 아람 왕 벤하닷의 사마리아를 공격함.
  1)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공격함으로 사마리아에 음식이 극심하게 부족하게 됨
  2)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 한 여인이 외쳐 자신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자 왕은 하나님이 돕지 않으며 내가 너를 어떻게 도우랴 라고 한탄스럽게 답함.
  3) 여인은 먹을 것이 없어서 이웃과 자기의 아들을 하루씩 먹자고 제안했는데, 그래서 자기 아들은 어제 먼저 먹었는데, 오늘 그의 아들을 먹자고 하니 그 아들을 숨겼다고 호소함.
  4) 왕이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 옷을 찢고 분노하였으며, 엘리사를 찾아 죽이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5) 엘리사는 그의 집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왕이 자신에게 사신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엘리사는 그 사신을 자신의 집에 들이지는 못하게 한다.

[정리2. 내용을 자신의 말로 정리]

본문은 엘리사와 관련하여 세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째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부족하여 이사를 계획하고, 요단으로 이사하게 되는 이야기다. 아마 선지자의 제자들이 늘어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는 과정에서 엘리사도 함께 가게 되고, 요단에서 새롭게 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사용하던 쇠도끼가 물이 빠지고, 이를 안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그 위에 던져 도끼가 물 위로 떠오르게 해서 도끼를 찾은 이야기다.

둘째는 아람의 계획이 번번히 이스라엘에 미리 알려져 실패하게 되자, 이것이 엘리사라는 선지자 때문이라는 것을 안 아람 왕은 엘리사부터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병사들을 밤에 엘리사가 있는 도단으로 보낸다. 새벽에 아람의 군대가 왔다는 것을 안 엘리사의 사환이 이를 보고 두려워하자, 엘리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군대가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엘리사는 아람의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을 사마리아로 이끌어서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포위 당하도록 한다. 아람의 군대는 완전히 괴멸될 상황이었고, 이스라엘의 왕은 엘리사의 허락만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엘리사는 오히려 이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떡과 물을 주어 먹이고는 돌려보내도록 했다. 죽음을 예상했던 아람의 병사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호의를 경험하고 모두 살아서 돌아간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이스라엘 땅에 다시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아람의 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한 이야기다. 이스라엘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심지어 자신의 자식을 잡아 먹는 협오스러운 일들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왕은 분노하게 되고 그 분노는 엘리사를 향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7장으로 이어진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엘리사가 있는 이스라엘이 강력한 아람보다 월등히 우월하다.

엘리사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매우 잘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선지자의 제자들도 많아져서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를 이사해서 새로 지어야 할 정도였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엘리사는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아람이 엘리사를 먼저 잡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엘리사로 인해 사마리아의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서 전멸할 위기를 맞게 된다. 이스라엘의 왕은 아람의 군대를 모두 죽일 것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공포에 떨고 있는 아람의 군대에게 떡과 물을 주어 먹게 하고 돌려보냄으로서 이스라엘의 강력함과 여호와 하나니의 위대하심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아람의 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23절)

엘리사는 왠만한 이스라엘의 말과 병거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였다. 엘리사는 하나님을 통해 아람의 계획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사 한 사람의 전투력이 얼마나 강력한 지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떡과 물을 주어 그들을 돌려보냄으로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여유롭고 넉넉한 지를 과시하였다.

내가 있어서 더 강력하고 더 넉넉한 공동체가 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아니면 내가 있어서 오히려 더 약화되고 빈약한 공동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엘리사처럼 ... 이 나라와 내가 속한 공동체에 유익이 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께 그와 같은 은혜가 있도록 기도하는 주일이 되어야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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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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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중 자주 언급되는 <나아만 장군>이야기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쳐주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람의 신보다 크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그 고백을 나아만이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더 인상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껏 드러나야 하는 상황에서 <물질>을 탐하므로 여호와의 영광을 물질로 대치할 뻔 했던 게하시의 어리석음도 드러납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1.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에 대한 소개
  1) 하나님께서 아람을 나아만 장군을 통해서 구하게 하신적이 있음.
  2)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가 되었던 나아만.
  3) 이스라엘 출신 종이 이스라엘의 선지자(엘리사)가 나아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함.
  4) 아람의 왕은 그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서신과 예물을 보내어 나아만 장군을 보낼테니 낫게 해달라고 나아만을 위해서 직접 부탁함.

2. 아람 왕의 편지를 받고 이스라엘 왕이 당황하다.
  1)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이 일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걱정함.
  2)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왕을 진정시키고,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말한다.

3.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와 병을 고치기까지
  1) 엘리사는 사자를 보내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함. 낫게 되리라.
  2) 나아만은 자기의 기대와 다름(내게로 와서 서서 그의 신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생각함)으로 인하여 분노하고 떠나갔다.
  3)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을 설득하여 요단강에 씻게 하였고, 일곱 번 몸을 잠그니 나았다.

4. 엘리사에게 예물을 바치려고 하는 나아만 장군
  1) 병을 고침 받은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와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고백하고, 예물을 받아 달라고 요청함.
  2) 엘리사가 예물 받기를 거절하자, 나아만은 다시 받으라고 강권하나 엘리사는 거절함.
  3) 오히려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하는 나아만.(이제부터 번제물과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않겠다고 고백함)
  4) 다만 양해를 구하는 것은 아람 왕을 위해 그가 림몬 신전에 들어가서 경배할 때, 자신의 손을 잡고 하기 때문에 자신이 림몬의 신당에서 어쩔 수 없이 몸을 굽히는 것을 용서해 달라.
  5) 엘리사가 나아만을 평안이 가라고 허락함.

5. 재물을 탐내는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1) 게하시는 자기 주인 엘리사가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신이 직접 엘리사 몰래 나아만의 일행을 쫓아갔다.
  2) 게하시는 엘리사의 요청이라고 하면서, 선지자의 제자 중 두 사람이 왔으니, 이들에게 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고 말함.
  3) 나아만은 은 두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주고, 옷 두 벌을 두 사환에게 지워서 보냈다.
  4) 집에 다 와서는 사환에게 짐을 받아 가지고 들어와서는 집에 감추었다.
  5) 이를 눈치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어디 다녀왔는가하고 물었지만, 게하시는 거짓말을 함.
  6) 엘리사는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하고는 게하시를 책망함.
  7) 나아만의 나병이 너와 네 자손에게 미칠 것임을 말씀하시자, 게하시가 나병이 발하였다.

[정리2. 내가 이해한 내용을 내 머리 속의 언어로 표현하기]

본장은 아람보다도 큰 이스라엘, 아람의 신보다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아람에 군대 장관 나아만이 있었단. 그는 혁역한 공을 세운 대표적인 장수였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나라에서는 그 병울 고칠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여종이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 선지자는 고칠 수 있다고 자랑을 했고, 이를 들은 나아만을 왕의 추천서를 받아 이스라엘로 향했다.


한편 아람 왕의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의 왕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것은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 어떻게 알았는지 엘리사는 그 소식을 듣고 왕에게 사신을 보내 나아만 장군이 오면 자신에게 보내라고 요청했다.


엘리사를 찾아 온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기를 맞아 들이고 손을 위에 대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해 줄줄 알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얼굴도 비치지 않은 채, 종을 보내서는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만 하고 만다. 엘리사의 대우에 기분이 상한 나아만이었지만, 그 종의 지혜로운 답변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물 속에 들었갔다. 일곱 번을 몸을 담그고 나서는 몸이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나았다.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바로 엘리사를 찾아와 준비해 온 예물을 드리려고 했으나, 엘리사는 절대로 받지를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했다. 그 흙을 쌓아 단을 만들고 거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번제와 희생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여호와만을 믿겠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직책상 왕과 함께 림몬 신전에는 가서 경배해야 하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하자 엘리사는 인정해 준다.


그렇게 마치는 듯 한 이야기가 사환 게하시의 돌출행동으로 이어진다.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게하시는 다시 나아만을 찾아가 거짓말을 하고 는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오고, 이로 인해 저주를 받아 나병이 걸리게 되었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엘리사의 도도함, 여호와 하나님의 도도함.

나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온 나아만을 대하는 엘리사의 모습이 매우 도도하다. 엘리사는 나아만을 맞아 주지도 않았고, 만저 주지도 않았다. 종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만 대언하고 요단강에 가서 씻으면 날 것이라고 했다.

이 장면에서 엘리사의 친절함이 없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아람보다 높고, 나아만 보다 엘리사가 높으면, 아람의 신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월등히 강력한 분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계시다. 실제로 병을 고침받고 나서 다시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은 병을 고쳐준 대가로 예물을 받으라고 하지만, 엘리사는 받지를 않는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다. 강한자가 약한 자에게 베푸는 은혜로운 사건이기 때문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강하심이 더욱 돋보이도록 해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아만은 오히려 이스라엘 땅에 흙을 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은 이제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번제와 희생 제물을 드리겠다고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라는 고백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엘리사의 도도함은 하나님의 도도함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게하시가 나중에 다시 예물을 받으러 나아만을 찾아간 것은 하나님의 위상을 떨어뜨린 사건이 되고 만다. 게하시는 자신이 먹고 마시려고 챙긴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서 봤듯이 선지자들의 생도들은 늘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부족하였다. 게하시는 이런 기회에 그들을 위해 굴러들어온 예물을 받아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리의 향유옥합을 돈으로만 환산하려고 했던 유다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하시는 잘못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었고, 결국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2. 양해를 구하는 나아만, 그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주는 엘리사.

나아만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이 지금까지 섬겨왔던 신보다 더 크고 절대적인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진심이었다. 그는 엘리사의 요청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기로 한 것이 아니다. 그가 병을 고치면서 그 마음 속에 든 확신 가운데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는 엘리사에게 흙을 달라고 했고, 그것을 제단을 쌓고 번제와 희생제사는 여호와만을 위해 드리겠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그런데 한가지 양해를 구한다. 그것은 자신이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인데,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길 원하지만, 아람 왕이 림몬 신전에 가서 경배할 때, 자신이 군대 장관으로서 왕을 수행하고 또 그와 함께 경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런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타협적인 신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고 답함으로서 이해한다고 인정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만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이방의 문화와 종교로 가득한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방신을 섬기는 왕을 섬겨야 했고, 왕이 아람의 신전에서 의식을 행할 때, 함께 동행해야 하는 자신의 업무가 여전히 있는 것이다. 엘리사는 그와 같은 나아만의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했던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면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아만은 이방인으로서 방금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봤을 때, 나아만의 신앙은 진심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을 수 없는 삶과 패턴의 연속선이 있었다. 엘리사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는 시간을 인정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앙은 결정적인 것에서의 단절이 불가피하지만, 갑자기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을 이룰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고 양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을 향해서 엘리사처럼 <평안히 가라>고 여유있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를 믿었으니, 모든 것으로부터 당장 끊어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압박에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제사문제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을 명백하게 믿으면서도, 아직 아버지가 믿지 않기 때문에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어쩌면 절을 해야 하기도 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으니까...) 회심하고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당장에 끊어버리지 않으면 정죄의식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오늘 나아만을 보고, 엘리사의 <평안히 가라>는 말씀 속에서는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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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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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장에서는 '엘리사의 기적편'이라고 말할 정도로 엘리사가 행한 기적을 중심으로 다룹니다. 4가지의 기적이 있는데, 두 가지는 인간적인 정을 느낄수 있는 기적이고, 다른 두가지는 '능력'에 초점을 맞춘 기적인듯 합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 한 여인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다.
  1) 선지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아내가 빚으로 인해 두 아이를 빼앗길 형편이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엘리사를 찾아옴
  2)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여인은 기름 한 그릇 뿐이라고 함.
  3) 엘리사는 밖에 나가서 이웃에게 그릇을 최대한 많이 빌리라고 하고 문을 닫고 기름을 빌려온 그릇에 옮겨 담으라고 함.
  4) 여인이 아이들과 문을 닫고 기름을 옮겨 붇는데 빌려온 그릇에 다 차니 기름이 멈췄다.
  5) 엘리사는 기름을 팔아 우선 빚을 갚고, 나머지로 두 아들과 생활하라고 함으로 문제 해결.

2.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신세를 지고 엘리사는 감사하는 마음에 수넴 여인이 아들을 갖게 함.
  1) 엘리사가 수넴 지역에 가면 한 귀한 여인이 엘리사를 강권하여 자기 집으로 모셔 음식을 대접함으로 엘리사가 수넴에 갈 때마다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2)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위하여 남편과 상의하여 작은 방을 만들고 침상과 책상, 의자와 촛대를 두어 머물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3) 하루는 엘리사가 게하시를 통해서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나, 여인은 소원이 없다고 한다.
  4) 게하시는 그 여인이 아들이 없으니 아들을 얻게 해 주면 어떻겠는가 제안한다.
  5) 엘리사는 여인을 불러 내년 이맘 때에 아들을 안으리라고 말해주나 여인은 믿지를 못했다.

3. 수넴 여인의 아들의 죽음과 엘리사가 그 아들을 다시 살림
  1) 수넴 여인은 아들을 낳았고, 아이는 자라서 아버지와 함께 밭에 있을 때 머리가 아프다고 함.
  2) 어머니의 품으로 온 그 아들은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게 됨.
  3) 수넴 여인은 아들을 선지자의 방에 눕히고, 남편의 허락을 받고 사환과 함께 나귀 한 마리를 타고 엘리사를 만나기 위해서 갈멜산으로 달려감.
  4) 달려오는 여인을 발견한 게하시는 엘리사의 지시를 받고 그 여인을 마중 나가지만, 그 여인은 급히 엘리사에게 달려와 엘리사의 발을 안았고, 당황한 게하시는 물리치려 했다. 엘리사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알리시지는 않았지만, 이 여인에게 큰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5) 여인은 자신의 죄가 생각나서 아이가 죽은 거라며 호소했고 왜 자기에게 아들을 주어서 오히려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셨냐며 호소했다.
  6) 상황을 파악한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주어 가는 도중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고 그 아이 얼굴에 지팡이를 놓으라고 했다. 그래도 여인이 엘리사 곁을 떠나지 않자, 엘리사도 하는 수 없이 여인을 따라 그 아이에게로 향했다.
  7) 게아시가 먼저 그 아이의 얼굴에 지팡이를 놓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엘리사가 도착하자 엘리사는 문을 닫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엎드려 자기의 입과 그의 입에, 자기의 눈을 그의 눈에, 자기의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을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다. 엘리사는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그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뜸.
  8) 그 여인은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고 아이를 안고 나갔다.

4. 엘리사가 독이 든 솥의 음식을 해독해 줌
  1) 엘리사가 길갈에 있을 때,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없을 때 사환에게 선지자들을 위해서 큰 솥을 걸고 국을 끓이라고 함.
  2) 사람들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갔다가 들포도넝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가져왔다.
  3) 그것을 썰어서 국에 넣고 끓여 먹으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솥에 죽음의 독이 있다고 소리치자 아무도 그것을 먹지 못했다.
  4) 엘리사가 어떤 가루를 솥에 던지고 나서는, 퍼다가 무리에게 먹게 하니 솥에 독이 없어졌다.
 
5. 엘리사가 보리떡 이십 개와 자루에 담긴 채소로 많은 무리를 먹이심
  1)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긴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드렸다.
  2) 그것을 엘리사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는데, 사환이 100여명의 사람에게 어찌 이것을 주어 먹게 하겠냐고.. 너무 적은 양이라고 말했다.
  3) 엘리사는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다시 말했고, 오히려 먹고 남을 것이라고 했다.
  4) 사환이 그들 앞에서 주었더니 정말 여호와의 말씀대로 먹고 남게 되었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_잘 정리해서 내것으로 만들기]

본장은 엘리사가 행한 기적 중 4가지에 대해서 다룬다. 처음에 두 가지는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적이고, 나중에 두 가지는 기적이라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처음의 기적은 선지자의 제자 중 한 명이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죽게 되었다. 그 아내는 두 아이를 먹이기 위해서 빚을 졌고, 그 빚을 갚지 못하자 빚쟁이는 두 아이를 종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상황이 되어 엘리사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엘리사는 이를 불쌍히 여기고 그 과부의 유일한 재산인 <기름 한 그릇>을 가지고 기적을 일으키신다. 많은 그릇을 빌려오게 하고 그릇에 기름을 옮겨 담아도 기름이 마르지 않는 것이다. 빌려온 그릇에 기름이 다 채워지자 기름은 멈췄다. 그 기름을 가지고 빚을 갚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기적은 엘리사를 잘 섬겨 주었던, 수넴에 사는 한 여인에 대한 것이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선지자를 위하여 자신의 집에 방을 마련하고 침상과 책상들 지날 때마다 머물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줄만큼 극진히 엘리사를 섬기던 여인이었다. 엘리사는 이 여인에게 아들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주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갑자기 죽게 되자, 엘리사는 다시 그 여인을 위하여 아이의 생명을 살려주게 된다.


세 번째 기적은 선지자의 생도들이 먹을 것이 없어 들에 있는 채소들을 거두어 먹을 때, 잘못된 넝쿨이 들어가 먹을 수 없던 음식을 엘리사가 가루를 넣어 해독케 하고 먹을 수 있게 했던 기적이다.


네 번째 기적은 누가 헌물한 제한된 떡과 채소로 백여 명의 선지자 생도들을 먹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환은 이것을 어떻게 선지자들을 모두 먹일 수 있겠는가? 의문을 가질 때, 엘리사는 오히려 먹고 남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실로 모두 먹고도 남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말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기적(능력)에는 인간적인 향기가 나야 한다.

엘리사의 기적을 집중 보도한 것이 열왕기하 4장인데, 엘리사의 기적은 놀라운 것들이다. 제한된 기름이 계속해서 흘런 넘친다든지... 태가 닫힌 여인이 아이를 갖게 된다든지...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는 이야기다. 뒤에 나오는 음식의 독을 해독한다든지, 음식의 양이 들어나는 것과 같은 것보다는 앞에 나온 사건의 기적이  훨씬 그 파워가 크다.

그런데도 그 기적에는 인간적인 향기가 난다.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가정을 살리기 위해 능력을 행하신 것이다. 정성을 다해 섬기는 수넴 여자를 위해 무엇인가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갖을 수 있게 한 것이고, 늦게 얻은 아들의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와 우는 여인의 아들을 살려낸 것이다. 물론 뒤의 기적에서 인간의 향기가 나지않는 것은 아니다. 굶주리고 있던 자들의 음식에 독이 들어 있어서 먹지 못함을 보고 먹을 수 있도록 해독한 사건,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여야 할 처지에서도 음식이 남는... 그런 따듯함과 스토리가 있는 기적인 것이다.

기적과 능력은 인간의 향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저 힘만, 능력만, 기적만 나타나서는 별 매력이 되지 못한다. 사람의 향기가 나는 기적은 그 기적의 현장에 있지 못한 우리에게까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다.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도와와지, 나도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지, 나도 누군가를 먹일 수 있다면 먹여야지와 같은 우리 안에 잠자고 있거나, 죽어 있던 선한 감정들을 일으키고 우리를 희생하는 자리로 인도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2. 엘리사의 주변(선지자의 제자들)은 참 가난했다.

이 당시 선지자들의 제자들의 삶이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볼 수 있다. 돈이 없이 빚에 쫓기고, 먹을 것이 없어 들풀을 뜯어다 먹고, 누가 준 떡과 채소로 근근히 생활해 가는 선지자들의 생도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수넴 여자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을 것같다. 엘리사라고 해도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았고, 있는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다녀야 했던 것이다. 다행이도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극진히 대접해 주었고, 그것에 엘리사는 감복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시대가 선지자들을 지원해주는 시대는 아니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다스리던 때다. 그러니 선지자들의 생계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어려운 시절에도 하나님의 죽은 선지자 생도의 남은 아내와 자녀들을 돌봐주셨다. 못먹을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셨으며, 적은 음식으로도 먹고 남음이 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또한 수넴 여자와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주님의 종들을 섬기는 사람을 세워주셨다.

없고 가난한 시절, 참 기적이 많이 일어났으며 선지자를 향한 대접은 부족하지 않고 넉넉했다.

없는 시절이 되도록 기도할 필요는 없지만, 없는 시절을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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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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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 왕의 아들 여호람이 여호사밧 왕과 함께,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을 공격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호람이 아버지 아합 보다는 괜찮은 왕이었다는 것이 인상적이고, 이스라엘 연합군이 당한 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그것으로 인해 모압을 쉽게 제압하게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정리1. 내용의 정리]

1.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1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지만,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않았다.
  2)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다.
  3) 그러나 여로보암의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했다.

2. 이스라엘과 유다의 연합군이 모압과의 전쟁을 준비하다. 
  1) 모압 왕 메사가 아합이 죽은 후에 그 동안 바치던 것을 바치지 않고 배반했다.
  2) 여호람은 유다 왕 여호사밧을 청해 모압과 전쟁할 것을 제안했고, 여호사밧은 승낙했다.
  3) 여호사밧의 제안으로 에돔 길을 통해서 가는 중에 가축 물이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됨.
  4) 이스라엘의 왕이 이 일로 인해 난처해 하자, 여호사밧이 여호와께 물을 선지자를 찾게 됨
  5)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이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알린다.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 내려갔다.

3. 엘리사를 찾아간 왕들.
  1) 엘리사는 찾아 온 이스라엘 왕에게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선지자에게로 가라고 비아냥.
  2) 이스라엘 왕이 위급함을 호소하자,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을 위해서는 하지 않겠지만, 유다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예언함.
  3) 엘리사가 받은 예언의 말씀
   (1)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바람도 비도 보이지 않겠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우리라.
   (2) 이 일은 작은 일이고 여호와께서 모압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라. 모압이 완전히 파괴됨
   (3) 아침이 되어 소제드릴 때에 물이 에돔쪽에서 흘러와 그 땅을 가득하였더라.

4. 모압 사람들의 그릇된 판단
  1) 모압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이 보이자, 연합군(이스라엘,유다,에돔)이 분열하여 서로 죽여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하게 됨
  2) 모압의 군인들이 비무장으로 노략하기 위해 달려들다가, 오히려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모압이 완전히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됨
  3) 모압의 전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안 모압 왕이 에돔 진영 쪽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돌파하지 못하게 되자, 자기의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성 위에서 번제로 드렸다.
  4) 이스라엘은 이를 보고 크게 격노함이 있하여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

[정리2. 내용을 나의 말로 재구성하여 정리]

본 장은 이스엘와 모압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 대한 배경과 진행과정이다. 아합 왕이 죽고 난 후 모압은 독립을 하려 했다. 이를 괴씸하게 생각한 이스라엘 왕(여호람)은 유다의 여호사밧을 설득하여 연합으로 전쟁을 치고자 했다. 당시에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도 함께 참전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의 제안으로 에돔의 길로 가서 모압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7일 만에 가축 먹일 물이 떨어지는 위기에 봉착했고 이는 전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이때 여호사밧은 선지자를 찾고,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게 된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왕에게는 반감이 있었지만, 유다 왕 여호사밧을 보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 준다.


이 골짜기에 개천을 파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지는 않겠지만, 물이 찰 것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모압과의 전쟁에서도 완전한 승리를 할 것으로 예언한다.


다음 날 아침 소제드릴 때 쯤 되어서, 모압에서는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모압의 병사들이 이스라엘 연합군이 있는 곳에 햇볕에 반사된 물을 보고는 피라고 오해하고는 연합군이 서로 싸우고 죽인 줄 알고, 전리품을 얻기 위해 무방비로 그들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무방비로 달려드는 모압의 군대를 쳐죽이고는 모압을 점령한다. 완전한 점령을 할 때 즈음에 모압 왕이 도망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다음을 이을 아들을 자신으 신에게 성 위에서 번제로 드린다. 이를 본 이스라엘은 크게 격노하고는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신앙이란 참 역설적이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심각하게 준비되고 진행되던 전쟁이 생각지 못한 문제(물 부족)로 인해 전쟁을 해보지도 못하고 패할 뻔 했다는 것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그 물이 아침 태양에 비취어 <피>처럼 보였기 때문에 모압의 병사들이 착각하고 이로 말미암아 오히려 쉽게 모압이 제압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이 전혀 없던 곳에 물이 생겼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다. 그곳에 물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그곳이 물이 없었기 때문에 모압은 다음 날 아침 물에 비친 태양을 보고는 그것이 <피>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피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곳은 물이 없었던 곳이기에 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물이 없었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위기라고 생각했지만, 물이 없었던 장소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은 반전이 있을 것이다. 물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다고 아우성을 친다. 왜 이런 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하나님께 따진다. 그런데 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하고, 물이 없었기 때문에 복을 누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설적이다. 복음의 적용도 역설적이다. 물이 없어 죽어가던 곳에서 오히려 승리와 생명이 잉태되니 말이다. 역설적이다.

 

2. 이스라엘 왕의 얼굴을 봐서는 아니고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

위기의 순간에 엘리사를 찾아 온 왕들을 향해서 한 엘리사의 고백이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여호사밧은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선지자를 찾았던 왕이다.(왕상 22장. 아합 왕과도 함께) 엘리사는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얼굴마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다. 당신 때문에는 아니지만, 이 사람 때문에 내가 당신을 돕겠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이 바로 나라면 우리는 얼마나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인가? 선한 사람에게만 유익한 자가 아니라, 심지어 악인에게까지도 유익한 자, 악인이라도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인정인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엘리사에게 아무 것도 얻어 낼 수 없었다. 위기의 순간이었음에도.. 그런데 그와 함께 있던 여호사밧으로 인해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여호사밧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여호사밧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여호사밧은 위기의 순간에 두려워 당황하지 않았고, 겸비하여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랬던 여호사밧은 위기의 순간을 구원의 순간으로 바꾼 존재가 되었다.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그 분의 뜻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나는 여호사밧 같은 사람이요, 거룩한 얼굴마담인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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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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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이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엘리야의 시대가 가고 엘리사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고 해도 그의 시대는 끝이 있는 법입니다. 오늘은 옛 시대의 마지막과 새 시대의 시작이 만나는 장입니다.

 

[정리1. 내용의 정리]

1. 엘리야의 승천
  1)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회리바람으로 올리고자 하실 때, 엘리야를 길갈에서 벧엘로 보내심
  2) 엘리야는 엘리사를 길갈에 있으라 했지만, 엘리사는 엘리야를 쫓아서 같이 감.
  3) 벧엘에 왔을 때,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를 여호와께서 데려갔실 것을 엘리사에게 알렸고, 엘리사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4) 엘리야는 엘리사를 벧엘에 두고 여리고로 가려고 했으나, 엘리사는 끝까지 쫓아감.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도 엘리사에게 하나님이 엘리야을 데려갈 것을 알림.
  6) 엘리야는 엘리사를 여리고에 두고 요단으로 가려 했으나, 엘리사는 끝까지 쫓아감.(3번)
  7) 엘리야가 겉옷으로 요단강을 가르고 건넜고, 선지자의 제자 50명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8)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했고, 엘리사는 갑절의 역사를 구한다고 했다.
  9)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는 것을 보면 이루어지리라고 말함.
  10) 두 사람이 길을 갈 때, 불수레와 불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를 회리바람으로 데려감.
  11) 엘리사는 자신의 옷은 둘로 찢고,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요단을 치매 물이 갈라지고 엘리사가 다시 요단강을 건넜다.

2. 엘리야에게서 엘리사에게로
  1)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의 성령이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게 나아가 엎드려 경배했다.
  2) 그들이 엘리야의 몸을 찾아 보겠다고 강청하매, 엘리사가 허락했으나 찾지 못함(사흘동안)

3. 엘리사의 기적
  1) 여리고에 있을 때,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이곳은 위치는 좋은데 물이 좋지 못하여 토산이 익지 못한다고 말하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그것을 물 근원에 던져 물을 고쳤다.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지금까지 이르렀다.
  2)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갈 때, 길에서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놀리자,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했고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42명을 죽임.
  3)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정리2. 내용의 재정리, 재구성]

엘리야는 아하시야 왕과의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데려가시기로 하신 것 같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분위기는 엘리사나 선지자의 제자들도 대게는 눈치채고 있는 분위기였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옮기셨고, 그 때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그 지역에 두려고 했으나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를 쫓겠다고 고백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간절히 쫓았고, 그로 말미암아 기대하는 영적인 복을 갈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요단에서 요단 건너편으로 엘리야를 데리고 가신 하나님께서 불말과 불병거로 엘리야를 데리고 올라가신다. 이 장면을 엘리사는 바로 곁에서 보았고 엘리야가 올라간 그 자리에 엘리야의 겉옷이 남겨져있었다. 엘리사는 자신의 옷을 찢고, 엘리야의 옷을 챙겼다. 그리고 그것으로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요단을 갈랐다. 선지자의 제자들은 엘리야에게 있는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에게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고 그 앞에 경배했다.


엘리사에게 권능이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된 여리고 사람들은 자기 지역의 문제를 가지고 엘리사에게 나온다. 물이 좋지 않아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것이었는데, 엘리사는 소금을 물근원에 뿌림으로 해결해 준다. 생명과 열매를 회복케 한 사건이다.


엘리사는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가던 중 철없는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로 놀린 것에 대해서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함으로 아이들 42명이 암곰 두 마리에 의해 죽게 된 이야기도 언급하고 있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안주함을 넘어서는 엘리사의 강한 영적 열망

본문을 통해 강조되는 것은 엘리야가 곧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왠만한 선지자의 제자들은 알고 있었다. 물론 엘리사도 알고 있었다. 엘리야는 지역을 옮길 때마다 엘리사를 그 곳에 두려고 했다.(선지자 생도들의 지역 책임자로 두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것을 마다했다. 끝까지 엘리야를 쫓겠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이 역사가 갑절이나 자신에게 전수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 같다.(9절)

결국 엘리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엘리야를 쫓았고, 엘리야의 승천을 봤고, 마침내 엘리야의 영적 권세의 두 배를 받게 된다.

엘리사는 안주하지 않았다.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만족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지역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 곧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될테니 더이상 쫓지 말고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지만, 엘리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갑절의 영적 은혜를 얻기 위해서 엘리사는 불투명한 여행을 엘리야와 계속해서 함께 했던 것이다.

영적 성장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엘리사도 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안주함을 극복하면 열정에 대한 성취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2. 잔혹한 사건을 통해 계시되고 있는 것

엘리사가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 42명을 저주하여 죽게 한 사건은 엘리야가 50부장과 오십명의 병사들을 두 번이나 죽게 한 사건과 같이 설명하기가 곤혹스러운 사건이다. 상식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놀린다는 것으로, 그것도 어린아이들을, 그것은 42명이나 죽인 사건.... 그것도 엘리사가 말이다.

난 이 사건을 계시적인 사건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엘리사가 어떤 권세와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엘리사는 여리고에서 생명을 살리고 열매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사역을 했다. 즉 엘리사에게는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엘리사에게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심판하는 능력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엘리사는 생명을 살리게도 하시고, 죽게도 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엘리사가 가진 권능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지, 목사들에게 저주권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엘리사 사역 초반에 엘리사가 받은 권세와 능력이 얼마나 크고 두려웠는지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그 정도 선에서 봐야 할 사건으로 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면에 있어서 엘리사가 경솔하고 충동적이었다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엘리야가 두려움으로 인해 100명의 사람들을 불로 죽인 것이나, 엘리사가 철없은 아이들 42명을 죽게한 사건은 컨트롤 되지 못한 파워가 가지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특별한 권세(힘)는 컨트롤 될 수 있는 장치를 전제할 때에만, 유익하다 할 수 있겠다. 견제 장치가 없는 권세는 위험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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