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해설]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일반적인 원리로부터 시작한다.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임시적으로 제한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1. 어렸을 동안에는 '종'처럼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는다. 

2. 이와 같이 우리들도 '아들'이지만, 어렸을 때에는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서 종노릇했다.


이 원리는 당시 일반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앞으로 바울이 하려고 하는 논리를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이미 있던 제도인 '초등교사'(몽학선생)의 역할이 주인의 자녀를 훈육하는 일을 담당했기에 주인의 아들이었지만 마치 그 초등교사의 통제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있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원리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하나님께서 이전까지는 자기 아들들을 율법(초등교사) 아래에 두셨다. 그리고 초등교사(율법)은 하나님의 아들을 훈육하듯이 엄격하게 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때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들(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을 더이상 율법의 아래에 두지 않을 때가 된 것이다. 즉 초등교사(율법) 아래에서 자기의 아들을 해방시키신 것이고 원래의 위치인 아들의 신분을 주실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 아래에서 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대속, 부활 그리고 성령의 사역은 하나의 신호탄처럼 하나님의 아들들을 율법 아래에서 해방되어 아들의 자격을 누리는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사건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속량하신 이후로는 우리가 종이 아니요 아들이다. 시간이 꺼꾸로 흐를 수 없는 것처럼 이제 아들이 된 자는 다시 초등교사 아래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유업을 받을 자의 신분만 남은 것이다. 



[묵상]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그 이전 시대와 그 이후 시대를 구분하는 신호탄이 된 것이다. 그 이전에 우리를 인도했던 것은 율법(율법으로 말미암은 의)이었다. 유대인에게는 모세의 율법이요, 이방인들은 마음에 새겨진 율법, 양심이었을 것이다. 핵심은 자신의 공로와 수고로 이룰 수 있는 의가 구원의 핵심이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시간이 일부러 두신 것이다. 마치 어린 자식에게 초등교사를 붙여 어린 시절의 훈육을 담당하듯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시대는 율법과 양심이라는 초등교사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훈육했다. 마치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그의 종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에 그와 같은 시간을 허락하신 것이다. 즉 율법의 종되어 살아야 했던 기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원히 그 아래에 두고자 한 것은 아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되었다. 더 이상 초등교사인 율법에 맡기지 않아도 될 때가 된 것이다. 


그 때에(때가 차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 아래에 보내셨고, 그 가운데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마치 모세를 애굽의 종 되었던 때에 종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어 그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셨던 것처럼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해 이제 우리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었음이 분명해졌다.(사실 그 전까지는 초등교사의 통제 아래에 맡겨졌기 때문에 주인의 아들인지 종이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모호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우리가 '종'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신 것이다. 그것을 바울은 '아들의 영을 보내셨다'는 것으로 표현한듯하다. 그 때로부터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향해서 '아빠 아버지'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종이 아니라, 자유자의 아들로 말이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 때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역사적인 큰 시점이 되었음을 말한다. 주전과 주후는 종의 시대에서 아들의 시대로 바뀐 역사적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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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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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5장] 나보다 선하고 괜찮은 사람이 혹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그 고난이 나에게 오지 않았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고난은 곧 나에게도 더 크게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장면을 목격한 그 순간(깨닫게 된 순간: 나도 괜찮은 사람에게 왜 저런 일이 있는가?) 그 때가, 우리 자신에게 닥칠 더 큰 재앙을 두려워하며 겸손해야 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은 재앙의 신호탄이니까요.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유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하심과 70년간 바벨론의 왕을 섬길 것이다.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주신 말씀.

  2) 요시야 13년부터 지금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예레미야가 꾸준히 일렀으나 순종하지 않음.

   (1)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면 해를 당하지 않으리라.

   (2) 그러나 너희들은 여호와의 말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스스로를 해한 결과가 되었다.

  3) 여호와께서 북방 종족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 이 땅과 주변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4) 모든 즐거운 소리가 끊어지고, 70년간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5) 그러나 70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과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벌하리라. 

  6) 하나님께서 그 땅을 향하여 예언하고, 예레미야가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2. 모든 나라에 내리는 진노의 술잔을 마시게 하라.

  1)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보내는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2)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행동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냈음이라.

  3) 진노의 술잔을 마시게 할 민족과 나라

   (1)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라. 

   (2) 애굽의 왕 바로와 그 신하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백성들, 모든 섞여 사는 민족들

   (3) 우스 땅, 블레셋의 여러 도시의 백성들,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도, 드단, 데마, 부스, 아라비아, 광야에서 섞여 사는 민족들의 모든 왕과, 시므리, 엘람, 메대, 북쪽 원근의 모든 왕과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게 하라. 


  4) 너는 이 진노의 술잔을 이 민족과 나라들 앞에 마시게 하되, 혹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반드시 마셔야 한다고 말하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성에서부터 재앙을 시작하셨은 즉 어찌 능히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5) 여호와께서 자기 민족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과 다투기로 작정하셨다. 악인을 칼에 내어 주신다. 

  6)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다. 죽임을 당하는 자가 많을 지라도 애곡하거나 시신을 거두어 주는 자가 없을 것이다. 

  7) 목자들은 도망할 수 없겠고, 양떼의 인도자들은 도주할 수 없으리라. 젊은 사자가 그 굴에서 나와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내 방식으로 풀어쓰기]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에 대한 지적과 심판에 대한 말씀이다. 오늘 본문에서 좀 다른 것은 예언의 때를 정확하게 언급한다는 것이다. 여호야김 넷째 해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부터 그 때까지 부지런히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을 대신해서 언급했으나, 이 백성들은 순종하지 않아 결국 화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 다른 점은 그 심판의 시간이 70년이라는 것을 언급하신다. 바벨론 왕을 70년간 섬길 것이라는 제한을 두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여기에서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에 대한 심판 말고, 유다를 시작으로 해서 모든 주변 열방들에 대한 심판도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 진노의 술잔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이름으로 된 성읍도 심판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볼 때, 그 외의 나라에 대한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때 모든 백성과 싸우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젊은 사자가 굴에서 나와 모든 땅을 황폐화시키듯이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나라에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러게 받는 교훈과 묵상]


1.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되 70년이라는 제한을 두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라도 심판하신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마치 심판 받지 않을 것처럼 자만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언약도 있고 성전도 있고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최종적으로까지는 심판하지 않으리라고 오해했던 것 같다. 예레미야는 그런 이스라엘의 기대를 박살내 버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멘붕에 이를 때까지.


그러나 오늘 본문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멸하기를 원하시지는 않으신다. 70년이라는 제한을 두신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육체적 이스라엘 모두가 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려주시고 그 중에는 가라지도 함께 있었다는 것도 보여주신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니은 알곡과 가라지, 참 백성과 그렇지 않은 백성을 구별해 내신다. 그리고 알곡을 밟아 완전히 으깨지도록까지 하시지는 않는다. 깨닫고 알게하여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기계적으로 안심할 수 있게 하시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행동과 하나님의 감정에 따라 운명을 최종적으로 바꾸시지도 않는다. 안심할 수 없으면서도 영원한 돌봄의 관계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긴장으로 존재한다. 


2. 유다의 심판은 모든 열방의 심판의 시작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이방의 악한 나라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은 억울하다고 말했을 것이고, 이방 나라들은 오히려 방자히 행동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무시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이유가 있으시다. 이방의 악한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책망할만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더 악했다. 그러나 덜 악한 이스라엘을 책망하심으로서(이방인에 의해서) 하나님은 그 이방인들을 명백하게 심판하실 근거를 마련하시게 된다. 상대적으로 덜 죄를 지은 자기 백성도 심판하셨다면, 상대적으로 많은 죄를 지은 이방 민족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뒤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시작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열방에 대한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에 불과했다. 


우리는 누군가 심판을 받을 때, 잘 봐야 한다. 그가 상대적으로 덜 악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심판을 받고 있다면, 오히려 더 악한 우리는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심판이 나에게 먼저 오지 않고 작은 자에게 먼저 왔다는 것은 그것을 보고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지막 사인인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할 수 있어야 하며, 주변의 작은 일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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