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장, 묵상 한모금] 사무엘상 12장. 사무엘의 퇴장과 왕정시대의 도래:불안한 시작.


1. 사울 왕이 세워지면서, 자신의 사역을 정리하는 사무엘

2. 너희 앞에 왕을 세웠고, 나는 늙었으며 나의 아들들도 너희들과 함께 있다.

3. 그 동안 너희 가운데 사역하면서, 내가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말하라. 빼앗거나 속였거나 뇌물을 받아 눈을 흐리게 한 일이 있었는가? 내가 갚으리라.

4. 백성들은 사무엘의 결백을 확인해주고 증언해 주었다.


* 사무엘은 자신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사역 속에서 그릇된 것이 있었는지에 대해 백성들 앞에서 스스로 청문회를 한다. 힘과 권위로 부당하게 빼앗거나 뇌물을 받아 눈을 흐리게 한 판단이 있었는지에 대해 묻고, 백성들은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확인해준다. 그만큼 사무엘은 흠 잡을 것이 없는 사역을 했다. 사무엘은 선지자와 사사로 왕의 리더십을 발휘했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전혀 백성들의 재물을 탐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았다.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지도 않았다. 사무엘은 이와 같은 리더십으로 이스라엘이 운영되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 일을 건강하게 잘 감당한 사역자다.(그러나 그의 자녀들에게서는 그와 같은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런 경험은 엘리와 그 자녀들에게서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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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무엘은 이들을 향해서 과거 역사를 설명해 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권면한다.

6.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이후 너희들이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세우셔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 그래서 너희들이 여기에 살게 되었다.

7. 그런데 너희는 하나님 여호와를 잊었다. 그래서 블레셋과 모압의 손에 너희들을 넘겼다. 너희들이 다시 부르짖으며 자신의 우상 숭배를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보내 구원해 주셨다.

8. 그런데 너희가 암몬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오자 너희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너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너희 위에 세우셨다.

9. 만약 그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 조상들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다.

10.여호와께서 오늘 밀 베는 때에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밝히 알게 하시리라.

11.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매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였다.


* 출애굽 이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구원해 주셨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이 수많은 죄악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손길을 펴셨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제 암몬의 나하스가 치러오자, 하나님을 통한 구원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왕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 동기가 악하다. 하나님은 이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 주셨지만, 이들은 동기가 악함을 지적하신다. 사울은 사실 그런 측면에서 세워진 왕이다. 하나님의 기대하는 입장에서의 왕이 아니라, 인간 편에서 요구되어지는 측면에서의 왕인 것이다. 결국 사울에게서 왕정 제도의 한계와 부정적인 측면이 크게 부각 될 것임은 자명한 것이다. 왕 한사람의 이스라엘 전체를 죄악으로 끌고 갈수 있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 이후 분열왕국에서 충분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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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모든 백성들이 두려움으로 사무엘을 통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였이다.

13. 사무엘은 백성에게 너희가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14.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하지 못하고,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15.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않을 것이다.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다.

16.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 백성들은 사무엘의 이런 메시지를 듣고서야, 또 하늘에서 우뢰와 비가 내리자 두려움에 휩쌓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중재를 부탁했다. 사무엘은 헛된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지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를 섬기라고 요청한다.(왕정 제도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과 태도의 문제이다.) 사무엘은 이들을 위한 중재를 지속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면서도 만약 너희들이 악을 여전히 행한다면 그 중재라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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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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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개관 설교1_ 사무엘: 새 시대의 서막

본문: 삼상 3:1-14


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3.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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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0장. 사울을 왕으로 기름붓고, 제비뽑아 왕으로 세움.

<사울을 왕으로 세우다>


1.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고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았다.

2. 이 일에 대한 증표로 3가지 일을 보이신다.

 1) 가던 길에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텐데..그 사람은 암나귀에 대한 염려를 하지 말라. 사울의 아버지가 너희를 염려하고 있음을 알려줄 것이다.

 2) 거기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들중 한 사람은  염소 세 마리를 가졌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을 것이다.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받을 것이다.

 3) 그 후에 산에 이를 것인데,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다. 선지자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인데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될 것이다.

 -> 이 징조가 네게 임하면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거기서 길갈로 내려가서 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거기서 행할 것을 가르칠 때 까지 기다리라.

 * 사무엘의 기름부은 사건이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라는 것을 3가지 징조를 통해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 징조는 무엇보다기름부음을 받은 당사자에게 신적 소명임을 확인시켜 주는 싸인이 된다. 다른 하나는 이와 같은 내용을 소개함으로 훗날 사울의 왕 됨이 하나님이 세우신 것임을 확신시켜주는 것이 된다. 본문은 이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3. 사무엘이 떠나려고 할 때,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이루어졌다.

 1) 사울이 예언을 하게 되어 사람들 사이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다.

 2) 사울의 숙부가 사무엘과 만난 이야기를 듣고자 하나, 사울은 일부만 이야기를 했다.

* 사무엘이 예언했던 3가지 일이 모두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이것을 통해 사울을 왕으로 부름 붓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일이었음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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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불러 모았다.

5.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를 친히 불러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셨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리 위에 왕을 달라하였으니...너희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오라.

 * 하나님의 개인적인 소명의 확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이 일을 공적으도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각 지파별로, 가정별로 제비뽑기를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도 <사울>이 뽑혔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과정이 공적으로도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 우리가 교회와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 투표를 하게 될 때, 이것은 공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이 된다. 참된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이런 공적인 과정을 통해서도 선별되는 과정을 밟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체험과 확신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공적인 영역에서도 반영되어 나타나야 한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 방식에 있어서 공정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교회라는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예외일 수 없으며, 세상 정치가라고 하더라도 그 룰은 다르지 않다.


6. 그 중에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다. 그러나 사울 찾지 못하였다.

 * 사울은 처음에는 왕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기쁨보다는 부담이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역할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확증을 확인하고도 말이다.모세도 그러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끝까지 부정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7. 하나님께서 사울이 짐보따리 사이에 숨었음을 알려주셨다. 사람들이 그를 찾아 데리고 오니 그는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8. 사무엘은 사울을 가리켜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다>라고 말하자 모든 백성들은 왕의 만세를 외쳐 불렀다.

* 사무엘도 사울을 보면서, 만약 왕을 세운다면 이런 사람이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왕 같은 사람...사무엘이 보더라도, 모든 백성이 보더라도 심지어 하나님도 이런 백성을 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사울은 가장 대표적으로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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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냈다.

10.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 마음에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다.

11. 그러나 어떤 불량배들은 사울을 향해서 <이사람이 어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말하며 멸시하고 예물을 바치지 아니했다. 그러나 사울은 잠잠했다.   

 * 사울의 왕 됨에 대해서 추종하고 따르는 무리도 있었지만, 사울의 왕 됨을 기분 나빠하며 멸시하던 사람도 있었다. 안티 세력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늘 존재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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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장, 묵상 한모금] 사무엘상 8장. 사사시대의 한계 / 왕을 구하는 백성들


1. 사무엘이 늙어 그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웠는데 그 아들들은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었다.

2. 그러나 그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다.

 * 사사 시대의 한계가 왔다. 사무엘이 훌륭한 사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들은 형편없는 자들이었다. 자식은 부모의 신앙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엘리도 그랬지만, 사무엘도 그 자식에게 있어서 만큼은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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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스라엘의 모든 장록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와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4. 이유는 사무엘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의 행위가 당신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5. 사무엘은 그들의 요구를 기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했다.

6.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임을 지적하신다.

7. 이 백성은 내가 애굽에서 인도하던 날부터 오늘까지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음 섬겼는데, 사무엘에게도 그리한다고 지적하신다.

8. 허락하고 다만, 엄중히 경고하여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신다.

 * 백성의 장로들은 <왕정시대>가 열리기를 원했다. 왕이 강력한 권력을 중심으로 백성을 대신해서 전쟁해주고, 나라를 평강하게 인도해 주길 바랬다. 이스라엘의 사사시대가 그러지 못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왕정 정치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대는 이전 시대의 한계(반복적인 한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보면 한계가 없다면, 새로운 시대는 도래하지 않는다. 인생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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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왕의 제도에 대해서 가르친다.

 1)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할 것이다. 그들이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다.

 2)왕은 너희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시키고, 왕의 밭을 갈게 하고 추수를 하게 하고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다.

 3) 너희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다.

 4) 너희 밭과 포도원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5) 너희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관리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6) 너희 노비와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다.

 7)너희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갈 것이다. 결국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8) 그 날에 너희가 세운 왕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되 여호와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리라.

 * 사무엘은 왕정 정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왕정 제도를 엄격하게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전반적으로 사무엘은 왕정 제도에 대해서 부정적 인상을 가진다. 왕은 자신과 자신의 신하들을 위해서 백성의 아들들과 딸들을 데리고 가서 전쟁에 필요한 일들, 왕정을 유지하기 위한 일들을 시킨다. 물질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은 백성들을 자신의 종처럼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왕이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을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 경고를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원하는 것을 주라고 하신다. 사무엘의 손을 들어주시지 않고, 백성들의 손을 먼저 들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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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럼에도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부하고 왕을 구한다.

11.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왕이 우리를 다스리고, 왕이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다.

12. 사무엘이 이 말을 여호와께 아뢰되, 여호와는 그들의 말대로 하여 주라고 허락하심.

13. 사무엘이 각기 자신의 성읍으로 돌아가라고 함.

 * 백성들은 안정적인 왕을 통해서, 권력의 공백을 매우고 백성들의 작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왕정 정치가 주는 국가적 힘을 기대하였다. 이런 열망으로 가득한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응 듣기를 거절하고 계속해서 왕을 요구했다.  


[정리]

사무엘은 정치적으로는 불완전했지만  하나님의 신정정치(사사를 통한)를 원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권력과 힘이 집중된 인간적인 왕이 다스리는 왕정정치를 원했다. 절대적인 원칙과 시대적인 요청이 충돌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당연히 신정 통치이지만, 사사대신 왕을 세우도록 허락하심으로서 시대적인 요청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신다. 다만, 그것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꼭 짚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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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장. 하나님의 혁명(부제)



1.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 시대가 사사 시대여서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음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특히, 말씀이 희귀하던 시대였다.

2. 엘리의 눈은 점점 잘 보이지 않았다. 엘리는 자기 처소에 누웠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

 * 엘리는 자기 처소에 눕고, 사무엘은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는 것이 영적인 거리를 말해준다 하겠다.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 사무엘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맡은 것인지는 모르나,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어떤 희망이 있음을 상징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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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불렀으나,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 알고 그에게 간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아니라고 말한다.

5. 두번째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에 또 다시 엘리 제사장에게로 간다. 다시 돌아온다.

6. 그 때는 아직 사무엘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던 때라. 분별력이 없었다.

7. 세번째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에 다시 엘리에게로 간다. 엘리 제사장은 그제야 눈치를 채고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 이 장면은 사무엘이 아직은 미숙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언제라도 부름이 있으면 몇 차례라도 엘리 앞에 나아가는 성실하고 긴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미숙하나 설실한 사무엘의 모습 속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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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다시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고,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답한다.

9.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의 집을 영원히 심판하시겠다고 확인해주신다. 이는 엘리도 아는 죄악 때문이다. 자기 아들들의 죄에 대해 금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엘리 집의 죄악에 대해서는 어떤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할 것임을 알려주신다.

 *엘리 집안의 죄가 얼마나 큰 가를 보여준다. 속죄되지 못하는 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엘리와 그 자녀들의 죄가 얼마나 극악한가를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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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을 열었으니 그 이상을 엘리에게는 말하길 두려워했다.

 * 사무엘이 선지자로서의 첫 사역은 자신의 스승인 엘리 제사장 집안의 저주를 전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힘든 사역이었을까? 선지자적 사명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 것.

11. 엘리는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추궁했고, 결국 사무엘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 사무엘은 여호와의 말씀을 사실대로 말했고, 엘리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 엘리 제사장 자신의 신앙과 사역으로만 본다면 괜찮은 제사장이라고 보인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식의 죄악을 알고도 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죄를 책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2:22-26) 그러나 아들들의 죄를 통제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자식은 <기도>로 키워야 하는 것인가 보다. 엘리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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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무엘이 점점 자라면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의 말일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14.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여호아께서 세우신 선지자인줄 알았다.

15.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

 * 사무엘은 그 이후 이스라엘 전역에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사무엘에게 드러내셨다. 사무엘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안에서도 엘리의 무력함은 가고, 사무엘의 생명이 충만해 지기를 소망한다.



[정리]

엘리의 시대가 가고, 사무엘의 시대가 왔다. 그러나 사무엘의 시대는 엘리와 그 아들들의 완전한 퇴장과 함께 왔다. 단순한 시간적 순서라기 보다는 논리적 순서가 아니겠는가 싶다. 새 시대가 올 수 없는 것은 스스로는 자정할 수 없는 시대가 사회 전체의 구조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가능성 있는 사람들을 제거하거나 변질시켜 버리는 강력한 구조가 새 시대를 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혁명을 꿈꾸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적인 혁명은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가진 처방인가!)

하나님은 구 세대를 심판하신다. 그들의 죄 때문이다. 사무엘이 구 세대를 심판하면서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사무엘을 세우시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사람들이 칼을 휘두를 때, 이것을 인간적 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새 시대는 사람의 혁명이 아닌 하나님의 혁명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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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5장] 하나님도 지쳤다. 아무도 하나님을 말릴 수 없다. 하나님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지치제 만든 우리들의 고집과 악의, 참 대단합니다.(묵상만 읽으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할 수있으면 요약하면서]


1. 여호와 앞에 모세와 사무엘이 있더라도, 이 백성은 용서받을 수 없다. 

  1)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다. 쫓아 보내라.

  2) 유다 백성들이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란 말입니까?

  3) 죽을 자는 주음으로, 칼을 받을 자는 칼로,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가라.

  4)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네 가지로 벌하신다.(죽이는 칼, 찢는 개, 삼켜 멸하는 공주의 새, 땅의 짐승)

  5) 유다 왕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여러 민족에게 흩음.


2.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길 자가 없다.

  1)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2) 네가 날 버리고 가지 내가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리라. 내가 뜻을 돌이키는 것도 지쳤다.

  3) 너희 자식이 끊어지고, 과부는 모래보다 많아졌고, 갑작스러운 멸망에 놀라고 두려울 것.

  4) 그 남은 자들은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3. 예레미야의 고통(사역자로서의 고통)과 하나님의 약속

  1) 내가 잘 못한 것도 없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저주하는 구나.

  2)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강하게 할 것을 약속하신다. 원수로 간구하게 할 것이라 약속함.

  3) 그러나 유다는 북방의 공격으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4)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자신을 기억하고 돌봐주시도록 그래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간구한다. 

  5) 예레미야는 자신을 기뻐하는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위해 홀로 앉아있다.(고독한 자신의 사역을 말함) 이는 주의 분노를 내게 채우신 것이다. 나의 고통은 점점 중하여 낫지 않고,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습니다.(낙심)

  6) 여호와는 예레미야에게 다시 돌아오면 내 앞에 세울 것이고, 헛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다시 여호와의 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다. 예레미야를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여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는 못하게 하신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을 다시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펼치기]


여호와께서 유다를 판단하고 심판하시는데 어떤 중보자도 이를 막을 수 없다. 모세와 사무엘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분노를 막을 수 없다.(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막았으나) 그만큼 유다의 죄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 가지로 백성을 벌하신다는 것은 결국 완전한 심판을 말하고 작은 것 하나 남김없이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몰인정하셨던 분은 아니다. 하나님은 한없이 좋은 분이시고 인자와 자비로 자기 백성을 대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유다는 교만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했다. 하나님도 이제는 지쳤다. 내가 뜻을 돌이키는 것도 지쳤다고 말씀하신다. 오래 참으신 만큼 하나님의 진노 또한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식을 끊고, 수많은 과부가 일어나게 하며 갑작스러운 멸망에 놀라고 두렵게 할 것이다. 남은 자들은 대적의 칼에 모두 죽게 할 것이다. 


이런 완악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실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하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즐거워할 수 없었고, 늘 고통과 소외와 영적 부담에 눌려 고통가운데 지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영적 고난의 자리에서 피하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여호와께서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분노가 예레미야에게 쌓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암튼, 신음하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놋 성벽이 되게 하여 대적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는 못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남기신다.


[정리3. 묵상 및 적용_인상깊었던 문구,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메시지 등]


1. 하나님의 진노, 중재자가 없은 유다 백성.


누가 좀 하나님을 말려보세요.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요.... 아니요, 아무도 하나님을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중재자가 없는 유다의 상태를 말한다. 모세와 사무엘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모세와 사무엘의 중재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아니고, 하나님이 막무가내라는 말도 아니다. 그만큼 유다의 죄가 넘친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중재자를 잃어버린 관계. 풍랑 속에 표류하는 땟목같은 운명이 아니겠는가? 죄를 짓더라도 중재자가 언제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죄를 지어야 한다. 엄마가 내 편이 되든지, 아니면 아빠라도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을 때 그것도 아니라 형제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중재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최소한의 정의와 사랑)는 실현하면서 살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마지막 날 중재해 줄 사람이 없거나, 효력이 없어 그대로 망하게 되고 말 것이다. 


2. 이제 하나님도 지쳤다. 


성경에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충격적인 표현은 하나님도 이제는 지쳤다는 것이라 본다. 하나님도 더 이상 자기 백성인 유다를 위해서 뜻을 돌이키시는데 지쳤다고 말씀하신다.(6절) 하나님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자이신 하나님께서 관계속에서 이 백성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상황, 용서와 끊임없는 자비가 더이상 이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이 백성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유다 백성은 참 대단하다. 이 백성 앞에 하나님도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이 지친것이다. 여호와의 천사가 야곱과의 씨름에서도 지쳤다.(창 32:25) 야곱의 포기하지 않는 자기 고집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천사는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침으로 그 싸움에서 벗어나 그를 버리고 가려고 했다.(26절) 


하나님을 지치게 하는 사람들, 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으로하여금 한계(?)에 이르도록 했으니 이는 하나님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하나님을 지치게 만드는 인간....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3. 사역자가 짊어져야 할 고통


사역자가 짊어지는 진짜 고통은 가난과 핍박과 같은 외부적 고통이 아니다. 내면적 영적 고통이다. 하나님의 고통이 자기 자신에게 전해지고 채워지는 고통이다. 그것이 사역자가 본질상 느껴야 할 고통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표면적 고통 속에서, 이는 하나님의 고통을 자신에게 채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17절) 그래서 고통이 큰 것이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벗어 버릴 수 없는 것은 그 고통이 하나님의 고통이기 때문인 것이다. 


예레미야가 짊어진 고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짊어지신 고통... 예수님은 그 고통을 벗어 버리고 싶었지만, 벗어버리기를 원치 않았다. 짊어 지셨다. 그리고 죽음까지 간직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죄에 대한 것을 정하셨다. 예레미야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본다는 말이 진실로 그렇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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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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