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1-4>(정리하기)

1.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경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다면

 <해야 할 것>

  1) 마음을 같이 하고(2절)

  2) 같은 사랑을 가지고(유지하면서)

  3) 뜻을 합하여

  4) 한 마음을 품어


 <하지 말아야 할 것>(3절)

  5)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경쟁심이나) / selfishness

  6) 허영으로 하지 말고


2.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요청하는 권면(3-4절)

  1)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3절)

  2)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라.

  3)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4절)

  4)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질문하고 묵상하기]

1. 바울이 2장 첫절부터 한 마음과 한 뜻을 강조하고, 다툼에 대한 경계를 권면하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 일까? 

  1) 바울은 자신이 매임 가운데 있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인 자들 중에 바울에 대한 투기와 분쟁에 근거해 복음 전파하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1:15, 17)

  2) 바울은 이와 같은 부정적인 상황(그릇된 동기에 근거해서 열심을 내는) 속에서도 하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성취해 가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기뻐하고 기뻐하기는 하지만(1:18) 그들의 그와 같은 행동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 그리스도 안의 성도의 교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면(2:1, 사랑의 무슨 위로, 성령의 무슨 교제,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어떤 일이든 다툼(경쟁이나 시기와 같은)이나 허영 때문에가 아니라, 마음을 같이하고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한다. 


2. 빌리보서 2:1-4에 다루는 주제는 비그리스도인들과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권면이다.(사랑으로 한 마음이 아닌, 시기와 허영에 기인된 열심)

  1) 시기와 허영이 아닌 사랑으로 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2)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라,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야 한다. 

  -> 마음으로는 겸손하고, 태도로는 자기 일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도 돌아보아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두 가지 일(매임, 순수하지 못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 등장)로 인해 복음 전파의 사역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으나, 오히려 두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역은 확대되었다.(1:12-18) 그것을 깨닫고 바울은 찬양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결과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도로서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는(권면이든 위로든 교제든..) 다툼이나 허영으로 주의 일을 해서는 안되고, 겸손함과 서로 돌아봄으로 한 마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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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1:27-30>(정리하기)

1. [권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1)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을 기대함(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함께 하고 있을 때나, 떠나 있을 때에라도)(27절)

 2) 바울은 무슨 일에든지 빌립보 교회가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음에 대해서 듣기를 원한다.(28절)

  (1) 빌립보 교회의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2) 빌립보 교회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 빌립보 교회가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않음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확인되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를 대적하는 자니 그들은 멸망의 증거가 된다. 


2. (설명) 그리스도를 위해서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29절)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다.(30절)  

  1) 따라서 주를 믿는 과정에서 고난이 함께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바울이 매임을 당한 것도 그런 맥락 속에 있으며 바울은 그것에 대해서 대적자에 의한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 이제 이런 문제는 바울에게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당황해 하지 말고 담대하게 흔들리지 않고 해결해가야 할 것을 요구할듯 하다. 


[질문하며 묵상하기]

1. 27절에서 바울은 직접적으로 빌립보 교회에게 권면한다. 바울이 앞서 이야기 한 것, 그리고 뒤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 있지만 분명하게 빌립보 교회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이다. 

  1)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들이 있는데, 대적자들이다. 대적자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대적자들을 대하는 빌립보 교회의 태도에 있는 것이다.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이런 대적자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랄 필요도 없다. 

 2) 대적자가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우리들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옳은 일을 하는데 있어서 대적자가 있다는 것은 빌립보 교회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된다.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다. 

 3)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이다. 


2.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무엇인가? 빌 1:12-26까지 바울이 대적자들에 의해서 매임을 당하고, 매임 중에 시기와 분쟁으로 바울의 마음을 어렵게 하려고 했던 자들의 노력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로 삼았는가에 대한 간증을 통해서 우리는 간파해야 한다. 

 1) 대적자가 있어도, 그래서 내가 매임에 처해도 하나님의 일은 멈추지 않는다.

 2) 바울 개인에 대한 내부(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 계파가 다른 사역자)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주님과 함께 육체에서 떠나있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죽음도 유익하다) / 내부이 시기와 투기(15절)에서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바울의 매임) 그로 인해 긴장감이 없지 않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자신의 긴장감조차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3)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자신은 감추어지는 상황에 기꺼이 자신을 맡기는 생활이다. 자신의 헌신과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또 시기와 분쟁의 마음으로 자신의 순수함을 폄훼하는 무리들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음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온전히 드러나게 된다면 기꺼이 자신이 사라지는(무의미한 존재처럼 여겨지는) 자리에도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는 생활이다. 

  -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간의 시기와 긴장 안에서 복음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이라는 온전한 목적 속에서도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할 수 있음을 바울은 보여주고 있다. 

  - 바울은 자신이 사라지고,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을 기뻐한 자로, 삶의 주권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진 사역자임을 알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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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1:19-21>(정리하기)

1. 이것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을 안다. (19절)

 1) 너희의 간구(빌립보 교회의 간구)

 2)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


2.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20절)

 1)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2)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려 한다.

   (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다.(21절)


[질문하며 묵상하며]

1. '구원'(19절)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단회적인 경험인 영적 거듭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절망에서의 건짐, 좌절에서의 소망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듯 하다. 물론 구원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큰 전환이 되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본다. 

2. '구원'이라는 표현을 쓸만큼 큰 전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앞에서 바울이 말한 내용에 근거해 본다면 '매임'이라는 자신의 처지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수 없음'이라는 기계적인 결과로 이어질 줄로 생각했는데 상황을 지켜보니 전혀 그렇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매이지 않았을 때'보다도 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바울의 인식에 큰 전환이 왔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 전화는 '구원'이라고 할 만한 분기점이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부르신 나를 통해서만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바울의 생각은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바울이 형통하게 되고 사역이 생각대로 순조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역자의 능력과 상황을 넘어서서 그 분의 능력으로 그 분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바울은 본 것이다. 

우리는 종종 오늘날 기독교의 무능과 절망적인 상황에 좌절한다. 그러나 빌립보서의 말씀 속에서 바울이 매임중에 발견한 사실을 통해서 본다면 아직 한국 기독교에 '구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3. 이와 같은 '구원'이 일어나게 된 것에 빌립보 교회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울은 언급한다. 교회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 오직 이것을 바라며 사역자는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걸어가며 때론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뒤로 물러서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4. 복음이 부끄럽지 않은 것처럼, 사역자가 처한 상황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다.(바울이 매임을 당했을 때, 너희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란 질문에 부딪히게 되고 그것은 자신의 헌신과 믿음이 부끄럽게 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바울은 자신은 매임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복음과 사역은 매임을 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심지어 자신의 죽임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더 유익할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바울의 바람은 이것이다.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바울은 다시 한번 자신의 목적을 확인했고, 그 방법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생각지 못한 방법론에 놀라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5. 성숙한 사역자란 어떤 사람인가? 

 1) 온전히 주님을 위한 자신을 드린 사람이면서(목적성)

 2) 온전히 주님의 방법에 승복하여 따르는 사람이다.(방법론)

  - 심지어 나를 부끄럽게 하는 방법으로 일을 이루시더라도 말이다.  


<빌 1:22-26>(정리하기)

1. 바울은 앞의 깨달음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미련과 두려움은 없지만, 지금은 오히려 육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자신의 열매라고 생각한다.(둘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1) 지금 자신의 현실은 이 둘 사이에 끼여있다.(삶과 죽음의 사이)

  (1) 자신만 생각하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23절)

  (2) 그러나 육신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희 교회를 위해서는 더 유익한듯 하다.(24절)

   - 바울이 육신으로 함께 있는 것이 너희 믿음과 진보와 기쁨을 위한 것이다.(25절)

   - 다시 너희와 함께 있으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한다.(26절)


[질문하고 묵상하기]

1. 바울은 죽음보다는 삶을 택했다. 그러나 바울이 선택한 삶은 우리가 삶을 선택하는 이유와는 다르다. 

 1) 바울은 앞에서 이미 죽음(절망, 매임)을 경험했다. 그러나 자신의 매임에도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확대되었고 오히려 더 잘 진행되었다. 

 2) 따라서 바울은 굳이 사역자로서 살아 남아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죽음을 통해 인생의 고난과 한계를 끝내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한다. 

 3)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자신이 살아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한다. 교회를 위해서다.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사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한다. 교회의 믿음을 위해, 교회의 진보를 위해, 교회의 기쁨을 위해 그래서 교회로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바울은 살 것을 선택하고 소망하게 된다. 


2. 바울도 지금 살기를 원하고, 우리도 지금 살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서 살기를 원하고 내가 허무해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생명을 붙잡지만 바울은 죽음을 넘어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 자신이 살기 위해 교회를 죽이는 경우는 자주 보지만, 교회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목회자를 보기는 쉽지 않다. 

  -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살아야 한다는 정신이 대형교회의 세습이나 권력의 연장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오해다. 오히려 그런 이권이 있는 교회 일수로 목회자는 빨리 자신의 무력함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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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1:12-18>[정리하기]

1. 바울이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다. 

 1) 바울이 매임을 당했다는 것이 시위대 안밖에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13절)

 2) 형제 중 다수는 바울의 매임이 오히려 용기를 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4절)

 3) 또 어떤 이는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15절)

  (1) 바울이 매임을 당한 후에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세움받은 줄 알고 하는 것이고(그 일이 계속되도록)(16절)

  (2)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전파) 하는 자들이다.(17절)

 4) 소결론: 바울은 오히려 참 기쁘고 기쁘다.(18절)

  (1) 무슨 방도이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2) 그것이 겉치레로 하는 것이든, 참으로 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질문하고 묵상하기]

1. 바울이 당한 일(매임)이 개인에게 있어서나 사역적으로 있어서나 안좋은 일인 것은 분명한데 왜 바울은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바울이 매임을 당한 일은 세 가지 측면에서 안좋은 일로 보인다.

  (1) 개인적인 자유의 속박을 받으므로

  (2)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역에 지장을 받고 

  (3) 문맥적 상황을 살펴보면, 바울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무리가 있었던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이들에게 그 영향력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또 바울을 따르는 자들이 위축되게 되는 우려가 있다. 

 2)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생각지 못한 현상을 보게 된다. 

  (1) 바울을 따르던 자들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를 내서 담대하게 바울을 대신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더라.(14절)

  (2) 바울을 시기하던 세력들은 바울이 매임을 당한 시기에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려고(시기와 분쟁, 순수하지 못한 다툼으로)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파하더라.(15절, 17절,18절)

 3) 소결론: 나의 매임이라는 개인적인 불편함만 제외하고 본다면 오히려 바울 자신이 매여있게 된 것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는 더 효과적인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바울은 매임 중에 깨닫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고 있자니 바울은 매임 중에 절로 감탄하게 되고, 웃게되고 기뻐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 나는 무엇이 불편하고 억울한가?

 1) 내가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그 일이 막히고 나의 경쟁자들은 그 때에 승승장구 하는 것 때문에 나는 불편하고 억울한가? 

  - 이런 생각은 처음 주님의 제자가 되고 사역자가 되었을 때 이미 포기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왜 내가 잘 되어야 하고 왜 내가 형통해야 하는가? 그것과 하나님의 나라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2)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울과 같은 안목이 아닌가? 

   - 내가 불편하고 내가 억울한 상황 때문에 화가 나는게 아니라, 나는 매임을 당하고 나는 억울하고 나는 불편해도 그 결과로 인해서 내가 하려고 했던 사역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나는 감사할 수 있는가?

   - 왜 하나님의 사역이 나를 통해서만 일어나야 하고, 나의 성공을 통해서만 확인되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역조차도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자아)이 살아있기에 가능한 논리가 아닌가!


3. 바울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

 1)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이 아니다. 

 2) 고통에 대한 무감각 때문도 아니다. 

 3) 사역의 성취에 대한 주권도 오직 하나님께 내려놓을 수 있었던 그의 신앙에 있었던 것이다. 

  - 바울이 매임을 당할 당시 자신의 매임과 함께 제약받게 될 그리스도의 전파를 우려했으나, 일이 되어지는 상황을 보니 자신의 우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역이 확대되는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놀라게 되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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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고 정리하면서 질문하고 묵상하기


<빌 1:1-2>

1. 바울과 디모데가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감독들, 집사들에게 보낸 편지다. 


[질문과 묵상]

1. 바울은 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냈을까? 어떤 이유로?(안부? 문제발생?)

2.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일 뿐 아니라 교회가 잘 성장하도록 돕는 일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편지를 쓴다는 행위 자체가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3. 빌립보 교회는 성도들 안에 이미 감독(*)이 있고, 집사가 있는 교회다. 조직을 어느 정도는 갖춘 교회다. 


<빌 1:3-8>

1.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는 바울의 마음과 확신이 드러난다. 

 1)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3절)

 2)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한다.(4절)

 3) 그 이유는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5절) - 빌립보 교회의 의지

 4) 하나님께서 그 일을 끝까지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바울은 확신한다.(6절) - 빌립보 교회를 지지하시고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의지


2.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는 근거는 무엇인가? 

 1)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정서적 동지의식)

 2) 바울의 매임과 복음의 변명함(**)과 확정함에 빌립보 교회가 함께 참여했다.(사역적인 동력자) (7절)

 3)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증인이 되실만큼 분명하다.(8절)


[질문과 묵상]

1. 도대체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했기에 바울은 이런 고백(칭찬)을 하게 되었을까? 

  - 적어도 형식적인 관계는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감이 충분했음을 알 수 있고 그랬던 결정적인 근거는 바울의 매임(고난)에도 함께 했으며 복음의 변명과 확정하는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함께 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원조와 지원 정도가 아니라 동고동락의 관계이기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진심어린 감정(감사, 기쁨, 확신, 사모함, 하나님이 증인이다)이 묻어난다. 

  - 오늘날 파송교회와 파송선교사, 협력선교사의 관계는 어떤가? 오늘날 후원자와 캠퍼스 선교사와의 관계는 어떤가? 후원자는 정말 선교사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마음으로 후원하고 기도 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선교사와 간사는 힘들여 후원하는 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사하며 기뻐하고 있는 것일까? 이 양자의 마음이 서로 진실하지 않는 순간.. 이와 같은 관계는 금이 가고 참된 감사, 기쁨, 확신, 사모와 같은 표현들은 사라지고 만다. 


2. 바울의 이 고백을 통해서 바울과 빌립보 교회 간에 더 큰 신뢰가 생겼을 것이다.(혹 약화되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면 빌립보 교회는 큰 자극과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진실한 고백이면서 동시에 빌립보 교회가 더 발전적인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확신하며) 이 편지를 보냈을 것이다. 

  - 온전한 교회가 어디에 있겠는가? 빌립보 교회가 온전했기 때문에 바울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겠는가? 잘 하지만 부족했던 부분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힘내서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격려하고 앞으로도 지금하던 것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격려가 담겨 있는 것이다. 


<빌 1:9-11>

1.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바람) 내용이 언급된다.

 1) 빌립보 교회의 사랑이 더 풍성해지길 기도한다. 지식과 총명으로.(9절)

 2)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기도한다.(10절)

 3)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진실하고 허물이 없기를 기도한다.(10절)

 4)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한다.(11절)


[질문하고 묵상하기]

1. 빌립보 교회는 좋은 교회지만 온전한 교회는 아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지금보다 더 좋은 교회가 되길 바라고 더 온전하여지길 바라며 축복하며 기도한다. 

2. 기도의 내용을 보면 사랑이 풍성해지고, 분별력이 있고, 진실과 허물이 없으며 의의 열매로 가득하길 기도한다. 이 네가지 내용은 모든 교회를 향한 기도제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크기와 재정 그리고 주변의 영향력에 대해서 바울은 기도하지 않았다. 사랑이 풍성한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는가? 진실(sincere)하고 허물(blameless)이 없는가? 그리고 의의 열매가 있는가? 

- 건강한 교회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인가에 대한 평가는 바로 이 네 가지 기준에 근거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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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

* 감독들(overseers. NASB): 이것은 '장로'라는 말과 거의 같이 사용되었다.(딤전 5:1, 딛 1:5-7, 벧전 5:1,2). 여기서 '감독'은 하나님의 백성을 주관하도록 선택된 목사와 장로들과 기타의 사역자들을 포함한다.(Calvin) 이들의 책임은 하나님 교회 교인들을 양육하고 인도하는 것이다. (출처. 호크마주석)

** 변명함과 확정함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1)내가 여러분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입증할 때에, 내가 받은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새번역. 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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