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석 명절이면서, 주일이네요. 추석 당일이라 교회에서 3부 예배 한번만 드린다고 하시네요. 덕분에 주일 아침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침 성경을 읽고 정래해서 올려 봅니다.

 

[정리1. 내용의 정리]

1. 엘리사가 쇠도끼를 물에서 건져 올리다.
  1) 선지자의 제자들이 공간이 부족하여 요단으로 가서 새로 거주할 처소를 세우려고 함.
  2) 엘리사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고, 본인도 같이 가자는 제안에 같이 요단으로 가기로 함.
  3) 요단에서 그들이 나무를 베다가 한 사람이 쇠도끼를 물에 떨어뜨림. (빌려온 쇠도끼임)
  4) 엘리사는 그 처지를 알고, 나뭇가지를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여 다시 찾아 줌.

2. 아람, 군대를 물리친 엘리사
  1) 아람이 어느 곳에 진을 치고자 계획을 하면 엘리사는 이를 알아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줌.
  2) 계속해서 아람의 계획이 미리 알려져 실패하게 되자, 아람 왕은 혹 우리 중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자가 있어서 정보를 이스라엘에게 전해 주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임.
  3) 신하 중 한명이,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한 말까지 알고 있다고 보고함.
  4) 아람 왕은 엘리사를 먼저 잡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엘리사가 도단에 있음을 알고 그를 잡기 위해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다.
  5)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 일찍이 아람의 군대를 보고 놀라, 엘리사에게 알리며 두려워하니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보다 많다고 하고는 사환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한다.
  6)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내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다.
  7) 아람의 군대가 엘리사에게로 오니 엘리사는 기도하여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도록 했다. 그리고 어두워진 아람 군대를 엘리사는 오히려 사마리아로 인도하였다.
  8) 아람의 군대가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사마리아에 왕의 군대에 의해서 포위된 상태였다.
  9)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에게 아람을 공격할 것을 허락받기 위해 재촉했다.
  10) 그러나 엘리사는 오히려 이들을 떡과 물을 주어 그들로 먹게 하고 돌려보내도록 했다.
  11) 이스라엘 왕은 이들에게 떡과 물을 많이 주었고, 아람 군대를 돌아가서 다시 오지 않았다.

3. 아람 왕 벤하닷의 사마리아를 공격함.
  1)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공격함으로 사마리아에 음식이 극심하게 부족하게 됨
  2)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 한 여인이 외쳐 자신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자 왕은 하나님이 돕지 않으며 내가 너를 어떻게 도우랴 라고 한탄스럽게 답함.
  3) 여인은 먹을 것이 없어서 이웃과 자기의 아들을 하루씩 먹자고 제안했는데, 그래서 자기 아들은 어제 먼저 먹었는데, 오늘 그의 아들을 먹자고 하니 그 아들을 숨겼다고 호소함.
  4) 왕이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 옷을 찢고 분노하였으며, 엘리사를 찾아 죽이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5) 엘리사는 그의 집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왕이 자신에게 사신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엘리사는 그 사신을 자신의 집에 들이지는 못하게 한다.

[정리2. 내용을 자신의 말로 정리]

본문은 엘리사와 관련하여 세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째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부족하여 이사를 계획하고, 요단으로 이사하게 되는 이야기다. 아마 선지자의 제자들이 늘어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는 과정에서 엘리사도 함께 가게 되고, 요단에서 새롭게 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사용하던 쇠도끼가 물이 빠지고, 이를 안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그 위에 던져 도끼가 물 위로 떠오르게 해서 도끼를 찾은 이야기다.

둘째는 아람의 계획이 번번히 이스라엘에 미리 알려져 실패하게 되자, 이것이 엘리사라는 선지자 때문이라는 것을 안 아람 왕은 엘리사부터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병사들을 밤에 엘리사가 있는 도단으로 보낸다. 새벽에 아람의 군대가 왔다는 것을 안 엘리사의 사환이 이를 보고 두려워하자, 엘리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군대가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엘리사는 아람의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을 사마리아로 이끌어서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포위 당하도록 한다. 아람의 군대는 완전히 괴멸될 상황이었고, 이스라엘의 왕은 엘리사의 허락만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엘리사는 오히려 이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떡과 물을 주어 먹이고는 돌려보내도록 했다. 죽음을 예상했던 아람의 병사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호의를 경험하고 모두 살아서 돌아간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이스라엘 땅에 다시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아람의 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한 이야기다. 이스라엘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심지어 자신의 자식을 잡아 먹는 협오스러운 일들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왕은 분노하게 되고 그 분노는 엘리사를 향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7장으로 이어진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엘리사가 있는 이스라엘이 강력한 아람보다 월등히 우월하다.

엘리사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매우 잘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선지자의 제자들도 많아져서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를 이사해서 새로 지어야 할 정도였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엘리사는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아람이 엘리사를 먼저 잡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엘리사로 인해 사마리아의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서 전멸할 위기를 맞게 된다. 이스라엘의 왕은 아람의 군대를 모두 죽일 것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공포에 떨고 있는 아람의 군대에게 떡과 물을 주어 먹게 하고 돌려보냄으로서 이스라엘의 강력함과 여호와 하나니의 위대하심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아람의 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23절)

엘리사는 왠만한 이스라엘의 말과 병거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였다. 엘리사는 하나님을 통해 아람의 계획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사 한 사람의 전투력이 얼마나 강력한 지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떡과 물을 주어 그들을 돌려보냄으로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여유롭고 넉넉한 지를 과시하였다.

내가 있어서 더 강력하고 더 넉넉한 공동체가 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아니면 내가 있어서 오히려 더 약화되고 빈약한 공동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엘리사처럼 ... 이 나라와 내가 속한 공동체에 유익이 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께 그와 같은 은혜가 있도록 기도하는 주일이 되어야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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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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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이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엘리야의 시대가 가고 엘리사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고 해도 그의 시대는 끝이 있는 법입니다. 오늘은 옛 시대의 마지막과 새 시대의 시작이 만나는 장입니다.

 

[정리1. 내용의 정리]

1. 엘리야의 승천
  1)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회리바람으로 올리고자 하실 때, 엘리야를 길갈에서 벧엘로 보내심
  2) 엘리야는 엘리사를 길갈에 있으라 했지만, 엘리사는 엘리야를 쫓아서 같이 감.
  3) 벧엘에 왔을 때,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를 여호와께서 데려갔실 것을 엘리사에게 알렸고, 엘리사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4) 엘리야는 엘리사를 벧엘에 두고 여리고로 가려고 했으나, 엘리사는 끝까지 쫓아감.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도 엘리사에게 하나님이 엘리야을 데려갈 것을 알림.
  6) 엘리야는 엘리사를 여리고에 두고 요단으로 가려 했으나, 엘리사는 끝까지 쫓아감.(3번)
  7) 엘리야가 겉옷으로 요단강을 가르고 건넜고, 선지자의 제자 50명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8)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했고, 엘리사는 갑절의 역사를 구한다고 했다.
  9)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는 것을 보면 이루어지리라고 말함.
  10) 두 사람이 길을 갈 때, 불수레와 불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를 회리바람으로 데려감.
  11) 엘리사는 자신의 옷은 둘로 찢고,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요단을 치매 물이 갈라지고 엘리사가 다시 요단강을 건넜다.

2. 엘리야에게서 엘리사에게로
  1)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의 성령이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게 나아가 엎드려 경배했다.
  2) 그들이 엘리야의 몸을 찾아 보겠다고 강청하매, 엘리사가 허락했으나 찾지 못함(사흘동안)

3. 엘리사의 기적
  1) 여리고에 있을 때,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이곳은 위치는 좋은데 물이 좋지 못하여 토산이 익지 못한다고 말하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그것을 물 근원에 던져 물을 고쳤다.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지금까지 이르렀다.
  2)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갈 때, 길에서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놀리자,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했고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42명을 죽임.
  3)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정리2. 내용의 재정리, 재구성]

엘리야는 아하시야 왕과의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데려가시기로 하신 것 같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분위기는 엘리사나 선지자의 제자들도 대게는 눈치채고 있는 분위기였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옮기셨고, 그 때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그 지역에 두려고 했으나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를 쫓겠다고 고백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간절히 쫓았고, 그로 말미암아 기대하는 영적인 복을 갈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요단에서 요단 건너편으로 엘리야를 데리고 가신 하나님께서 불말과 불병거로 엘리야를 데리고 올라가신다. 이 장면을 엘리사는 바로 곁에서 보았고 엘리야가 올라간 그 자리에 엘리야의 겉옷이 남겨져있었다. 엘리사는 자신의 옷을 찢고, 엘리야의 옷을 챙겼다. 그리고 그것으로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요단을 갈랐다. 선지자의 제자들은 엘리야에게 있는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에게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고 그 앞에 경배했다.


엘리사에게 권능이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된 여리고 사람들은 자기 지역의 문제를 가지고 엘리사에게 나온다. 물이 좋지 않아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것이었는데, 엘리사는 소금을 물근원에 뿌림으로 해결해 준다. 생명과 열매를 회복케 한 사건이다.


엘리사는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가던 중 철없는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로 놀린 것에 대해서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함으로 아이들 42명이 암곰 두 마리에 의해 죽게 된 이야기도 언급하고 있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안주함을 넘어서는 엘리사의 강한 영적 열망

본문을 통해 강조되는 것은 엘리야가 곧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왠만한 선지자의 제자들은 알고 있었다. 물론 엘리사도 알고 있었다. 엘리야는 지역을 옮길 때마다 엘리사를 그 곳에 두려고 했다.(선지자 생도들의 지역 책임자로 두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것을 마다했다. 끝까지 엘리야를 쫓겠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이 역사가 갑절이나 자신에게 전수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 같다.(9절)

결국 엘리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엘리야를 쫓았고, 엘리야의 승천을 봤고, 마침내 엘리야의 영적 권세의 두 배를 받게 된다.

엘리사는 안주하지 않았다.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만족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지역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 곧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될테니 더이상 쫓지 말고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지만, 엘리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갑절의 영적 은혜를 얻기 위해서 엘리사는 불투명한 여행을 엘리야와 계속해서 함께 했던 것이다.

영적 성장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엘리사도 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안주함을 극복하면 열정에 대한 성취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2. 잔혹한 사건을 통해 계시되고 있는 것

엘리사가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 42명을 저주하여 죽게 한 사건은 엘리야가 50부장과 오십명의 병사들을 두 번이나 죽게 한 사건과 같이 설명하기가 곤혹스러운 사건이다. 상식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놀린다는 것으로, 그것도 어린아이들을, 그것은 42명이나 죽인 사건.... 그것도 엘리사가 말이다.

난 이 사건을 계시적인 사건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엘리사가 어떤 권세와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엘리사는 여리고에서 생명을 살리고 열매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사역을 했다. 즉 엘리사에게는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엘리사에게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심판하는 능력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엘리사는 생명을 살리게도 하시고, 죽게도 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엘리사가 가진 권능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지, 목사들에게 저주권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엘리사 사역 초반에 엘리사가 받은 권세와 능력이 얼마나 크고 두려웠는지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그 정도 선에서 봐야 할 사건으로 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면에 있어서 엘리사가 경솔하고 충동적이었다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엘리야가 두려움으로 인해 100명의 사람들을 불로 죽인 것이나, 엘리사가 철없은 아이들 42명을 죽게한 사건은 컨트롤 되지 못한 파워가 가지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특별한 권세(힘)는 컨트롤 될 수 있는 장치를 전제할 때에만, 유익하다 할 수 있겠다. 견제 장치가 없는 권세는 위험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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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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