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룻기 1장] 룻기의 두 주인공 중인 나오미와 룻은 배려와 충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1장에서 등장합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의 인생을 배려해 주고(은혜), 룻은 그런 나오미를 향해서 끝까지 충성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십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끝까지 충성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 말입니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룻기 이야기의 배경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일

  2)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다.

  3) 엘리멜렉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다.

  4) 그곳에서 살면서 남편 엘리멜렉은 죽고, 두 아들이 남아 두 아들을 결혼시켰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 다른 하나의 이름은 룻이었다. 

  5) 그곳에서 10년 쯤에 두 아들마저 죽게 되어 나오미는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다. 


2. 나오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룻만이 함께 함

 

  1)나오미는 유대 땅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보시어 양식을 주셨다함을 듣고 며느리와 유대로 돌아오려 함.

  2) 돌아오는 도중에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에게 너희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면한다. 새로 결혼해서 새 살림을 살라고 축복하며 보내주려 했다. 

  3) 나오미는 자신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으니 돌아갈 것을 제안했을 때, 오르바는 결국 마음 아파하면 떠났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붙좇았다. 

  4) 나오미는 오르바와 같이 룻도 돌아갈 것을 권면했지만, 룻의 결심이 굳어 더 이상 설득이 되지 않았다. 

    :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 결단했다. 죽는 일 외에 내가 어머니를 떠나면 벌을 받겠다고 말함. 

  5) 나오미도 룻의 결심이 굳은 줄 알고 더이상 재촉하지 않고 따라오도록 했다. 


3.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오다.


  1) 베들레헴에 돌아오자 사람들은 나오미를 알아보고 나오미의 이름을 불렀다. 

  2) 나오미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 싫었다. 왜냐하면 나오미의 뜻은 기쁨인데, 자신의 인생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불행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쳤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본 것이다. 

  3)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는 보리 추수 시작 할 때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 엘리멜렉 일가가 살고 있었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고, 그에게는 두 알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다. 그러나 그 때에 흉년이 들어 어렵게 되자, 엘리멜렉 일가는 모압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모압으로 이주하고 나서 얼마가 지났는지 알수 없지만, 엘리멕렉이 죽게 된다. 나오미는 그 이후 두 아들을 장가 보내어 오르바와 룻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모압에서 약 10년쯤 지나게 되었을 때 두 아들마져 죽는다. 결국 나오미는 두 며느리 하고만 남게 되었다. 


나오미는 유대 땅에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 돌아가는 과정에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돌려보내 새 가정을 이루고 살 것을 제안한다. 나름대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다. 결국 오르바는 돌아갔다. 그러나 룻은 돌아가지 않았다. 룻은 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할 것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나오미도 그 결심에 승복하게 되었고, 그들은 함께 베들레헴에 이르게 되었다. 


베들레헴은 10여년 만에 돌아온 나오미로 인해서 소란스러웠다. 나오미의 이름을 불렀지만, 나오미는 자신의 인생이 가난하게 비어 돌아오게 된 것을 말하면서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오미는 하나님에게 대한 많은 불만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그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할 때였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우리 인생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 될 수 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이주했다. 더 잘 살기 위해서 혹은 큰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흉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재앙을 당하고 말았다.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이 죽었던 것이다. 


우리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 살 길이라고 여겼던 것이 죽는 길이 되기도하고, 지혜롭다고 한 행동이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지금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모습이 그와 같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은 그와 같은 한계를 가진 존재다. 바로 앞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은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조심해야 하고 물어야 하며 들어야 한다. 그래야 실패를 초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그 분의 음성을 듣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2. 나오미는 가장 비참한 시간에 인간적인 배려를 행한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래서 아무것도 없을 때 그 때 두 며느리의 인생을 생각했다. 두 며느리는 나오미의 마지막 남은 재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이 빈궁에 처한 인생이 되고, 남편을 잃은 여인이 되자 두 며느리의 인생을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그들의 인생이라도 새롭게 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배려라는 것은 언제나 여유 가운데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부족할 때, 배려가 나올 수 있다. 가난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가난한 사람들(자기 뿐만 아니라)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정말 그들을 향한 연민과 배려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나오미는 자신이 남편을 잃어 보니, 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며느리들의 아픔과 고생이 얼마나 클지를 보게 된 것이다. 


배려는 어느 순간에도 나올 수 있는 삶이다 풍요로운 순간에 배려가 나올 수 있다. 가난한 순간에도 배려가 나올 수 있다. 배려는 외부적인 조건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배려를 힘써야 한다. 


3. 나오미의 인간적인 배려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룻은 나오미에게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한다.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배려를 행하자, 은혜를 베풀자 룻은 나오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오르바도 나오미를 떠나 보내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자신의 인생을 더욱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와 함께 운면을 같이 할 것을 맹세한 것이다. 


나오미는 은혜를 베풀고, 룻은 충성을 맹세한다. 사사 시대에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귀한 모습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두 여인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은혜와 충성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은혜란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의 호의에 의해서만 수여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성되지 못했다.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하나니의 은혜를 무시했다. 그러나 이방 여인 룻은 충성을 다했다. 우리도 룻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비참하게 돌아온 인생을 위해서 하나님은 보리를 준비하고 있으셨다. 


하나님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은 보리 사이에 숨어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행하고 있었고,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하나님은 써프라이즈를 종종 하신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준비하시고 우리를 놀래키신다. 기대하시라 여러분의 인생 속에 있는 하나님의 써프라이즈를!!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사사기 19장] 음행을 행한 첩을 다시 데리고 오는 레위인의 모습, 다른 이방 성읍보다는 자기 민족의 성읍을 의지했는데, 오히려 자기 민족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게 되는 레위인의 상황. 그리고 그 처참한 사건의 배경 속에 너무나 중요한 존재인, 에브라임과 유다와 레위인이 주배경이라는 것이 혼란스럽게 만드는 본문이다. 혼란을 위한 장이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상황 설정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2)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 하였다. 

  3)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의 아버지 집에 돌아가서 넉 달을 머물렀다.


2. 레위 사람이 자기의 첩을 데리러 유다 베들레헴으로 가다.

  1) 레위 사람은 자기의 첩을 잘 설득하여 데리고 오려고 유다 베들레헴 장인의 집으로 갔다.

  2) 첩의 아버지는 레위 사람을 반기면서 3일간을 머물게 했다. 넷째 날 떠나고자 했으나 하루 더 머물것을 제안해서 하루더 머물렀다. 넷째 날 떠나고자 했으나 장인의 간곡한 제안으로 하루더 머물렀다. 다섯 째 날 떠나고자 하자 저녁까지 머물게 했고, 또 자고 갈 것을 제안했으나 레위인은 그 집에서 더 머물기를 원치 않아 늦은 시간에 나오게 되었다. 

  3) 늦은 시간에 나온 터라 얼마가지 못해서 숙박을 해야 할 곳이 필요했다. 가까운 곳에 여부스(예루살렘)가 있었지만, 레위인은 그래도 자기 민족이 다스리는 기브아로 갈 것을 결정한다.    4)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에 들어갔으나 아무도 자기 집에서 유숙하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저녁 늦게 밭에서 일하다 돌아온 노인의 초대로 그 집에 유숙할 수 있게 되었다. 


3. 베냐민 땅 기브아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

  1) 노인의 배려로 하룻 밤을 평안이 머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기브아에 있는 불량자들이 노인의 집으로 찾아와 집에 들어온 손님을 끌어내라고 협박한다. 

  2) 노인이 자신의 딸과 이 사람의 첩을 내어 줄테니 손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만, 이들은 진정되지 않았다. 레위인은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주었다. 그들은 그 첩을 밤새도록 괴롭히고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아주었다. 그 첩은 그 집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3) 아침에 레위인이 집에 가고자 하였으나, 그 여인은 문 앞에서 죽은 채로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여인을 데리고 집으로 온다.

  4) 그 레위인은 자기 첩의 시신을 12 덩어리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으로 보냈다. 

  5)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이후로 이런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오늘 본문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한 레위인과 에브라임 그리고 유다 베들레헴이라는 핵심적인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한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첩이 있었다. 그 첩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의 여자였다. 그런데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레위인은 선한 마음으로 그 행음한 첩을 데리고 오고자 유다 베들레헴 장인의 집으로 갔다. 자신의 딸을 데리러 온 장인은 3일간 레위인 사위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돌아가고자 한 레위인을 붙잡고 붙잡아 이틀을 더 머물게 했다. 장인은 계속 붙잡았지만, 레위인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늦은 시간이지만 장인의 집을 나와 고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해가 떨어지고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해야 했다. 


가까운 곳은 여부스, 지금의 예루살렘이지만 그곳은 그 때까지만 해도 이방의 성읍이었다. 그래서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이 아닌 자기 백성의 성읍에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는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무도 레위인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노인의 배려로 간신이 머물 곳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곳에 있는 불량배들의 행패로 인해 곤란한 상황이 되자,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첩은 밤새 능욕을 당하고 죽게 된다. 이 사실에 분개한 레위인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그 첩의 시신을 12 덩어리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내게 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함께 분개하게 된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또 다시 에브라임, 유다, 레위인 이라는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사기의 이야기 속에서 에브라임이 자치하는 비중과 유다가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유독 레위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브라임은 대부분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유다는 자꾸 에브라임과 연관되는 관계로 등장한다. 레위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구분된 지파의 백성으로서가 아니라, 매우 세속적이며 영적으로 무감각한 존재로 등장한다. 


훗날 북이스라엘의 중심과 남유다의 중심 그리고 성전의 중심이 될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부정적임을 사사기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많은 다수의 사사들이 그 외의 지파에서 나와서 활동하고 있음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2. 믿었던 자기 백성에게 오히려 배신을 당하게 되다.


레위인은 길에서 밤을 맞게 되었기 때문에 머물 곳이 필요했다. 가장 가까운 성읍은 여부스(예루살렘)였지만, 그래도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에 머물기 보다는 자기 백성이 다스리는 성읍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 백성들은 레위의 일행을 맞아주지 않았다. 나중에 한 노인의 초대로 머물수 있는 곳을 얻긴 했지만, 불량배들의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레위인은 자신의 첩이 능욕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 백성에게 더 큰 피해를 입었고, 더 큰 고통을 얻게 된 것이다. 


왕이 없언 시대, 법이 없고 믿음과 신뢰가 모두 깨어진 시대가 우리가 보고 있는 사사 시대였다. 믿었던 자기 민족이 오히려 더욱 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볼 수 밖에 없는 시대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누가 딱히 선이고 누가 악이라고 구분하기도 어려운,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는 시대가 이 시대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를 보고 있는 것인지, 과거 사사 시대를 보고 있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이 모든 혼란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왕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왕을 세우자가 아니라, 과연 나는 지금 누구를 나의 왕으로 섬기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때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