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순전한 기독교_4-9 대가를 계산하기]


1. 너희도 온전하라

  -> 네가 온전해지지 않으면 도와 주지 않겠다?(틀림)

  -> 내가 유일하게 도울 일은 너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는 그 이하를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이하에 만족하지 않겠다.(바름)


2. 우리는 통증만 제거해 주길 원하지만, 치과의사는 문제 있을 다른 치아까지 손보길 원하신다. 

일단 그분을 끌어들인 이상, 완전하게 치료받지 않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가를 계산하라'는 주님 말씀의 의미다. 

   : 우리가 첫 걸음을 뗄 때, 기뻐하지 않을 아버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만족할 아버지도 없다. 


3. 우리는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작고 낡은 오두막집을 수리해 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작은 오두막집을 부수고 궁전을 지으시길 원하신다. 

성경은 우리를 '신'이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요 10:34)



[32 순전한 기독교_4-10 호감 주는 사람이냐, 새 사람이냐]


질문1. 기독교가 진리라면 왜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든 비그리스도인보다 더 호감을 주지 못하는 것인가?


 1. 맞는 측면: 체온계의 눈금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한 아무리 환자의 기분이 좋아졌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2. 틀린 측면: 그리스도인 A와 비그리스도인 B를 비교해 볼 때, A보다 B가 더 호감이 간다고 할 경우

  1) A가 처음부터 환경적으로 불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B는 더 나았을 수 있다. 이것은 환경을 바꾸어 보면 서로 달라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2) B가 A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은 조금의 차이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같은 것이다. 게가다 B가 호감 주는 성품을 가진것은 하나님이 B에게 주신 선물이지, B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 아니다. 

  3) 호감주는 성품이 자기 자신에게서 왔다고 생각하는 한, 그 성품은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한다. 자기의 것으로 붙잡는 한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한다.(많은 경우 호감주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찾는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4)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없고, 병든 자라에게야 쓸데 있다.


[적용]

  1) 호감을 주는 유형이라면, 조심하라!

      여러분이 받는 좋은 것들이 여러분을 더 쉽게 부패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2) 여러분이 가난한 피조물이라면, 절망하지 마십시오.

 고장한 기계를 가지고라도 열심히 돌려 보려고 힘쓰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새 기계로 만들어 주실 것이고, 우리는 그 고된 학업을 받는 과정에서 새 기계 돌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정리1. 호감을 주는 성품은 좋은 것이고, 모든 것을 동원해서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호감을 가진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의 영혼까지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리2. 개선이 곧 구속은 아니다.(주님은 우리를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

  

경고: 괜히 어리석은 그리스도인 한 명을 희생삼아, 그리스도과 그리스도인을 무시할 생각은 하지도 마라.(변명할 생각마라)


[33 순전한 기독교_4-11 새 사람]


1. 새 사람은 개선이 아니라 변형이다.(말을 더 높이 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날개하는 것이다.)


2. 루이스는 변형이라는 기독교적 개념을 '진화'와 연결하여 설명한다.(진화라는 개념으로 비유하여 설명)

  1) 거대한 몸집과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동물의 등장 -> 더 단단한 껍질과 힘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생각함.

  2)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다. 물리적 힘이 아닌 '두뇌'를 쓰는 힘으로의 진화.

  3) 진화라는 것은 그것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기대대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일대 전환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 

  4)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다음 단계를 더 두뇌가 커지고,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커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참다운 변형이 아니다. 약간의 개선이다. 그러나 인간은 변형될 것이고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될 것이다. 


3. 기독교에서 말하는 관점은 '다음 단계가 이미 나타났다는 것'이다. 

  더 좋은 머리를 가지게 되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로 바뀌는 변화다. 


4. 진화는 과거를 연구하다가 나온 결과이지만, 새 단계는 자연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1) 새 단계는 성적 재생산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2) 진화는 그들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나 새 단계, 즉 피조물이 아들로 바뀌는 이 단계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우리가 고집을 피우며 새 인류의 출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

  (3) 그리스도는 새 사람의 '최초 사례'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다. 한 종의 표본, 즉 한 새 사람이 아니라 그 새 사람(그로부터 그 종이 퍼져나가는)이다. 그는 모든 새 사람의 기원이며 중심이자 생명이다. 

  (4) 새 단계의 진행 속도는 이전 단계들의 속도에 비하면 번개처럼 급속히 퍼졌다고 할만하다. 우주 역사에 비하면 2천년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초대교회다. 

  (5) 우리는 자궁 안에서 출산의 날을 선택하는 아이와 같다.(실제로는 출산되어지는 것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의 자궁 안이 가장 안전하게 보이겠지만, 나오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5.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그들은 여러분을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지만, 그 누구보다 덜 필요로 한다.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잃어버린다는 의미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고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모두 똑같아 지는 것을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소금의 맛이 같지만 음식마다(재료마다) 소금의 맛을 내면서도 자신의 재료 맛을 드러내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분께 자신을 드리면 드릴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진정으로 자기다워집니다. 

   예1) 자연 상태 그대로의 나는 내가 믿고 싶어하는 것만큼 주체적인 개인이 못 된다.(본인은 주체적인 정치적 이상으로 여기는 것 역시 사실은 정치적 선전에 놀아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2) 자기 자신을 포기할 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이다.(자기를 의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 스럽지 못하게 된다.)


[도전] 자기 생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발견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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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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