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정리]


[교회 안에서 판단해야 할 사람들]


1.고린도 교회 안에 음행한 자를 용납하는 문제가 있었다.(이 음행의 정도가 심했다.) 음행도 큰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교회가 음행한 자를 통한히 여겨 좇아내지 않고, 교만하여 이들에 대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것.


2. 이와 같은 자들은 가만히 두면 누룩처럼 퍼져감으로 제거해야 마땅하다. 이들을 제거함으로 교회는 살아나게 된다.(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받게 해야 한다. 5절) / 유월절에 누룩을 제거하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을 먹듯 이와 같은 자들은 교회에서 내어 보내야 한다.


3. 이전에 보낸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명령한 말씀의 의미.

  1)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려며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다. 


  2) 그 때의 의미는 형제라고 말하는 성도들 안에서 그와 같은 자와 사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도라고 말하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3)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문제이기 때문이다. 너는 성도 안에 있는 대상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죄인들에 대해서는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생각 정리]


1. 교회는 두 가지 차원에서 '죄'에 대해서 준비해야 한다. 


  1) '죄'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거룩하고 경건한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2) 그럼에도 '죄'가 발생했을 경우, 그 이후 '죄를 저지를 사람'을 처리하는 과정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면서도, 연약한 사람으로서 공동체의 지도에 신뢰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죄가 발생한 후'에 대한 공동체적인 후속작업이 일관성이 없거나 혹은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그 공동체는 '죄'가 잘 자라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꼴이 되고 만다. 


따라서 공동체는 두 가지를 잘 준비해야 한다. 죄가 자라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고, 드러난 죄에 대해서는 신속하지만, 지혜롭게 처리하는 준비를 잘 감당해야 한다.


2. 교회 성도들이 판단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교회 안 사람들인가 교회 밖 사람들인가?


  1) 바울은 일차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대해서보다는 '교회 안' 성도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엄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도라고 말하면서,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사기치는 사람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도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오히려 교회는 이들을 '판단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는 '죄'에 대해서는 세상보다 더 엄격한 공동체다. 


  2) 반면, 교회 밖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라고 말씀한다. 교회 밖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좀 더 관대해 질 것으로 말한다.(용서하거나 봐주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의 일부라는 측면에서 대하지 말고(일부라는 측면이라면, 병든 곳을 도려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을 대하듯 좀 더 관대해지도록 하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은 하나님께 맡기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 몸의 자정능력으로 신속히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도록 하고(아니면 의사에게 우리 몸의 병든 곳을 맡기든지), 우리 몸 밖에서 일어나는 일(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치려고 하지 말고, '경찰'에게 맡기라고 바울이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죄를 지적하지 말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직접 재판하지 말라는 의미일듯 하다. 



[적용]


1. 우리 몸의 문제는 '의사'에게 맡기고, 다른 사람의 문제는 '경찰'에게 맡기자.


2. 죄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적이니 노력과 개인적인 노력을 힘써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죄가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언제든 발생하게 되는 죄에 대해서 공동체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 세월호 사건을 단순화 하자면, 죄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적인 정책은 존재했으나 그것을 따르고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도덕에 대해서는 검증하지 않았다. 검증이 오래도록 되지 않음으로 방치되었고 그곳에서 불법적인 관행이 생기게 되었다. 악이 구조화된 것이다. 구조화된 악은 권력과 밀착해있고, 그것을 고발해야 할 언론은 그들의 입을 닫았다. 최후의 경보까지 모두 구조적 악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세월호는 침몰했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가장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 중에 하나는 언론이라고 본다. 언론은 사회 감시라는 기본적인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지 못했다. 마지막 경보장치만 미리 울렸다면, 사태가 이렇게 가지 않았을 것이고 이 사건은 예방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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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해설]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로부터 처음 복음을 듣고 세워졌을 때, 이들은 순수한 복음 안에서 잘 자라났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상한 가르침이 들어와 교회 전체에 위협을 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 것이라고 표현했다.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 정도의 작은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작아보였던 문제가 큰 문제로 금새 확대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교회 전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만큼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대한 기대를 잃지 않았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확신하노라"(10절) 바울은 다른 복음으로 인해 풍지박산이 난 것 같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여전히 살아날 수 있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소생하는 힘이 있다. 바울은 이와 같은 확신 속에서 '지금 연약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기대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갈라디아 교회에서 <다른 복음>에 사로잡혀 다른 복음을 주장하며 가르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순수한 복음>에 <다른 것>을 가미하였기에 사람들이 듣기에는 더욱 그럴듯 하게 들리고 보였을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격이 되었다. 복음에 <다른 것>을 가미하자, 복음의 <대적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순수한 복음>에 천차해야 하는 이유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도우려 했던 것(?)이 오히려 원수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바울도 알았다.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전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불편해 했다는 것을. 만약 바울이 자신이 전한 <순수한 복음>에 <할례>라는 유대인들이 만족스러워하는 '가미료'를 살짝 넣었다면 바울은 이방인에게서 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서도 충분한 인정을 받으면서 사역할 수 있었다. 그렇게 했다면 바울 자신이 전한 <십자가 복음>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극적 방해(장애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바울의 사역은 순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알고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할례>를 복음에 가미한다는 것은 <순수 복음>을 훼손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불충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할례>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순수 복음>에는 그와 같은 요구가 들어가서는 안됨을 재차 확인하여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런 주장을 통해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어지럽게 하려 한다면, 스스로 베어 버리라고 바울은 말한다. 이 말이 의미는 그토록 <할례> 즉, 성기의 끝을 잘라내는 것에 집착하고 중요하게 본다면, 아예 거세를 하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을 향한 바울의 조롱(?)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묵상]


1. 상당한 타격을 입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바울은 여전히 희망을 가졌다. 


교회는 때로 강해 보이지만, 때로는 매우 무력해 보인다. 강력한 외부적 박해 가운데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힘을 가질 만큼 교회는 강하다. 오히려 박해를 통해서 더욱 확대되는 것이 교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교회는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 이단의 가르침도 그러했고, 갈라디아 교회처럼 다른 복음으로 말미암아 <순수 복음>이 훼손되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사역이 불충분하다고 여겨질 때 교회는 인간적인 것들이 유입되고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생명은 희박해 진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교회라면, <순수 복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여전히 있다며 그 교회는 소멸되지 않는다. 교회가 사람의 수고와 노력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것처럼, 교회가 사람의 훼손으로 무너질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라면, <순수 복음>으로 시작된 교회라면 '소망'은 있다.


2. 그릇된 가르침에 여전히 매여 있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공동체적인 결단을 촉구한다.


그릇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은 <누룩>처럼 공동체 전체를 순식간에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그들이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지적받고 바르게 되도록 요청하는 내용을 듣고도, 그 자리에서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복음_다른 복음>으로 교회를 흔든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그와 같은 강력한 경고가 전해져야 할 것이다.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는 자들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공동체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 참된 교회란, <거짓된 복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혼돈케 하는 자를 경고하고 내쫓는 건강한 징계(치리)가 있는 교회다. 이것을 통해 교회의 순결함과 교회의 권위를 드러내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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