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예배 마치고 바로 제기동으로 출근했습니다. 회관도 세상도 조용합니다. 어디서 기타소리와 함께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이 아침부터 어디서 나는 걸까요??

 

[정리1. 내용의 정리_어떻게 보면 본문을 다시 쓰는 것 같은데.. 쓰다보면 내용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고, 문단을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에 대해서
  1)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17년간 다스림.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함. 여로보암의 죄를 따름.
  3) 여호와께서 노하사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심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니 이스라엘 왕이 여호와께 간구하니 하나님께서 들으셔서 구원자를 보내주심으로 아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게 하였다.
  5) 그러나 그들이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다.
  6) 아람의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고 병력을 약화시켰다.
  7)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됨.

 

2.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 대해서
  1)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6년간 다스렸다.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의 모든 죄를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 행함.
  3) 요아스에 대한 이야기는 역대지략에 나오고, 그가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왕이 됨.

 

3. 이스라엘 왕 요아스 때에 있었던 한 사건(엘리사의 죽음)
  1)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찾아와 슬퍼하였다.
  2)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요청했다.
  3) 엘리사는 왕에게 활을 잡고 동쪽 창을 열도록 하고 그곳으로 쏘도록 했다. 왕이 활을 쏘자 엘리사는 이는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아람을 멸절하도록 칠 것이다.
  4) 엘리사는 왕에게 화살을 잡으라고 하고, 땅을 치라고 했다.
  5) 왕은 세 번만 치고 그쳤고, 엘리사는 왕에게 왜 세 번만 쳤냐고 화를 냈고, 대여섯번을 쳤다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6) 엘리사가 죽고 다음 해에 모압 도적 뗴들이 그 땅에 왔다. 그 땅에서 장사지내던 사람들이 도적 떼를 보고는 급한 나머지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졌는데, 그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난 일이 있었다.

 

  [여호아하스왕과 요아스 왕의 추가적인 이야기]
  1) 여호아하스 왕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했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불쌍히 여기셨다. 멸하기를 즐겨하시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다.
  2) 아람에 하사엘이 죽고 벤하닷이 왕이 되자, 요아스 왕이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았다. (부친 여호아하스가 빼앗긴 성읍을)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회복했다.

 

[정리2. 내용을 재구성해서 씁니다. 순서대로라기 보다는 일목요연하게, 내 표현으로 다시 쓴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요]

 

본 장은 이스라엘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와 그의 아들 요아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호아하스는 17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고 죄악 중에 있었다. 그가 다스리던 때에 아람과의 전쟁이 계속 있었고, 그 때 여러 성읍을 빼앗기고 백성들은 고통을 받았다. 국력은 매우 약화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아하스는 범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운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고 풀쌍히 여기셨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여기서 명을 다했을 수 있을 만큼 나라는 위태로웠다.(23절)


여호아하스를 이어 그의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되었으나,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의 아버지의 평가보다 낫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대에는 아람과의 전쟁을 세 번을 이김으로 인해 여호아하스 때에 빼앗긴 성읍을 다시 회복하는 성과가 있었다. 이것은 요아스 때에 병으로 죽은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성취이다.


요아스 왕은 엘리사가 죽음에 임박하자 그를 찾아 애통해 했다. 엘리사는 요아스 왕에게 활과 화살을 잡게하고는 동쪽으로 구원의 활을 쏘개하고, 화살을 바닥에 치게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아스는 3번 밖에는 치지 않았다. 엘리사는 노하였고 안타까워했다. 왜냐하면 대여섯번을 쳤다면 아람을 완전히 이길 수 있었을 것인데 3번 밖에는 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아스 왕은 활을 땅에 친다는 것이 무엇을 의지하는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었겠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요아스 왕의 한계이기도 했던 것이다. 암튼, 엘리사와 관련된 그 사건은 하나의 예언이 되었고, 그 예언대로 요아스 때에 이스라엘은 아람과의 전쟁을 이기면서 잃었던 성읍을 되찾았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몰라도 가계의 흐르는 축복은 확실하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왕 중 두 왕,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왕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할만한 것은 여호아하스 왕은 악하고 무력한 왕이었다. 그는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여로보암의 집의 죄악에서 떠나지 못했다. 고통속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음에도 그는 다시 악을 행하는 자리로 나아갔다.(5,6절) 게다가 그는 무능했다. 아람의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하여 많은 성읍을 빼앗겼다.

 

그런데 열왕기 기자는 여호아하스를 서술하면서 특이한 기록을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시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23절) 한마디로 여호아하스는 철저하게 선조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보존되고 유지된 것이지,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여호아하스 때에 이미 아람에 의해서 완전히 멸절되었을 것이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악인의 저주와 의인의 축복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악인의 가계의 흐르는 저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을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악인의 자녀들이 더 악한 환경 속에 노출되어 있어서 쉽게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여로보암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그와 같은 죄악이 대를 거쳐 흘러갔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것이 기계적으로 흐른 것은 아니다. 그 뒤를 이은 왕들이 그것을 개혁하지 못했다는 것이요 그 흐름에 편승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선친들이 받은 저주가 계속해서 죄없는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나는 모르겠다.(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진심으로... 나도 궁금하니...) 그러나 선친들의 선행으로, 선친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복을 누리는 것을 나는 종종 보게 된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와 같은 구체적인 사례중에 하나라고 하겠다.(23절) 남 유다의 아비얌 때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선한 것이 없었지만, 다윗 왕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유다를 견고하셨다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다.(왕상 15:1-5)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말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가계에 흐르는 축복과 은혜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긍정적 사고>라는 말보다는 <적극적 태도>라는 말이 좋다.  

 

긍정적 사고를 통한 긍정의 힘이 교회 안에서도 강조되고 있는듯 하다. 일반 상식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 근거가 성경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늘 교회 안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고 한다면 구약에서 선지서는 모두 제거해야 할 책이 되고 말 것이다. 아니 선지자들의 활동을 모두 부정해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긍정적 사고와 말에 대해서 나는 긍정하지만, 그것이 성경적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싶다. 오히려 성경은 <적극적 태도>를 강조한다고 본다. 오늘 본문에서 요아스가 활을 세번 만 친것이 문제가 되었다. 대여섯번을 쳤다면 아람을 완전히 이겼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세번만 친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요아스의 입장에서도 활을 땅에 치는 숫자대로 아람을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요아스는 열번도 쳤을 것이고 백번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요아스는 자신의 행동과 아람과의 전쟁 승리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힌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앞에서 엘리사의 지시에 따라 활을 동쪽으로 쏘고는 구원의 화살이라는 힌트를 엘리사가 주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힌트를 가지고 요아스는 활을 땅에 여러번 치는 시도를 해 봤음직 할만도 한 것이다. 그러나 요아스는 적극적인 태도가 없었던 것이고 수동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여기서 <적극적인 태도>의 소중함을 본다. 성경은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말한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한다.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권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우면서 환경에 굴하지 말고 해야할 일을 행하라고 말한다. 사랑할 때도 적극적으로 5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10리까지 가주라고 한다. 종은 적극적으로 종의 역할을 하고, 주인은 적극적으로 주인의 역할을 하라고 한다. 부모와 자식, 남편와 아내 모두 마찬가지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라고 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으로 내 제자인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말을 성경적이라고 하면, 교회 안에서는 비판도 평가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교회는 건강해지는가? 아니다. 죄인들이 모인 교회는 적절한 비판과 평가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성경은 많은 비평과 평가와 고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긍정적이란 말보다 적극적이란 말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오늘은 좀 늦었네요. 월요병인가요...^^ 아침에 푹잔것도 있고 죠이에서 오전에 직원예배가 있었던 것도 있고.. 암튼, 때를 놓쳤지만 쉽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장점입니다. 숙제하듯이 오늘도 한 장 정리해 봅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작업]

 

1. 요아스 왕의 성장
  1) 요아스 왕은 예후 7년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하였다.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
  3) 그러나 산당은 제거하지 못하고,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했다.

 

2. 요아스가 성전을 보수하는데 집중하다.
  1) 요아스가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가지고 성전의 어느 곳이든 파손된 곳을 수리하도록 제사장들에게 지시했다.
  2) 요아스 왕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요아스 왕 23년에 이르도록 성전을 수리하지 않았다.
  3) 요아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에게 지시하여 그들에게 은을 받지 말게 하고, 사람들이 성전에 드리는 은은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해서 드리게 하도록 지시했다.
  4)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들에게 은을 받지 않고 성전의 파손된 곳을 수리하지도 않기로 동의하였다.
  5) 그 이후로는 성전문 어귀에 한 궤에 구멍을 뚫어 제단 앞에 두게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도록 했다.
  6) 그 궤에 은이 차면, 그것을 계산하여 봉하고 성전 맡은 자의 손에 넘겨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도록 했고, 수리에 필요한 자재를 사는데 그 은을 쓰도록 했다.
  7)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을 은대접이나 불집게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했다. 오직 성전을 수리하는 것에만 사용했다.
  8) 그 일꾼들에게 은의 사용에 대해 회계할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했기 때문이다.
  9)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않고, 제사장에게 돌렸다.

 

3.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올 때 내린 요아스의 결정
  1)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가드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2) 요아스는 역대 왕들이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주니, 하사엘이 떠나갔다.
  3) 요아스는 마지막에 신복들의 반역으로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죽임을 당했다.
  4) 요아스를 죽인 신복들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다.
  5) 요아스는 다윗 성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었다.

 

[정리2. 내용을 다시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다시 정리함]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해서 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요아스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여호야다는 왕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렸고, 요아스 또한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갈 수 있게 되었다.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도움을 받는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그러나 요아스가 성장하여 독자적인 일들을 진행하고자 할 때, 한 문제가 발생했다. 요아스는 성전에 드려지는 은을 가지고 성전을 보수하여 더 아름답게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을 제사장들에게 맡기었다. 그러나 그 일이 오랫동안 진척이 없었던 것 같다. 이를 답답하게 여겼던 요아스는 기존의 대제사장인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그 일에서 손을 때게 하고, 다른 방식으로 성전 보수의 일을 진행했다. 성전에서 생기는 모든 재정적인 수입은 성전을 보수하는 일에만 전적으로 쓰도록 했다. 그리고 그 일은 충성스럽게 일하는 일꾼들에 의해서 잘 진행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요아스가 독자적인 사역을 하면서 성전을 보수하는 일에 있어서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갈들을 겪게 되고, 둘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본문에는 직접적으로 이 일에 있어서 평가하고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성전 보수가 일이 잘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아 요아스의 판단이 옳았다고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일 이후에 아람의 예루살렘 침략을 언급하면서, 요아스가 결국은 아람의 하사엘에 왕궁과 성전의 금을 내어주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요아스의 죽음이 비참했다는 것을 언급함으로 대제사장 여호야다와의 갈등으로 그와 분리되게 됨으로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볼 때, 저자는 요아스가 여호야다와 분리되게 된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요아스 왕도 이젠 독립이 필요했다.

 

요아스는 왕이 될 때부터 제사장 여호야다의 전적인 도움을 입은 왕이다. 요아스가 왕이 될 때의 나이가 7세였기에, 그 이후로도 상당한 시간동안 제사장 여호야다는 왕을 지도했고, 요아스 왕은 그의 지도를 따라 국가를 통치했다. 성경은 그 시절이 좋았다고 언급하고 있다.(2절)

 

그러나 이제 요아스의 나이 30세가 되었다.(6절) 요아스도 어른이 되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는 왕이 아닌, 왕 요아스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여호야다와는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왕이 지시한 일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 무리를 통해서 실천되고 있지 않은 것이고, 왕은 그것에 대해서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요아스 왕은 결국 여호야다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냈고 그것은 여호야다를 그 일에서 배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요아스와 여호야다는 분리되게 된 것이다.(7,8절)

 

요아스도 왕이다. 왕은 주변 신하들의 도움과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결국은 왕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왕이 된다. 이제 요아스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충분한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요아스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여호야다와의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직접적으로 요아스의 이와 같은 갈등을 비판하고 있지 않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립한 한 사람, 독립한 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선하고 옳은 사람이라고 할찌라도, 결국은 갈등과 대립의 순간을 맞는다.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그것을 통해 한 사람의 독립이 선언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나의 기도제목은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바르게 잘 성장하는 것이다. 사람 구실을 잘 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기도제목이 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아들 모습을 볼 때, 그와 같이 되지 못할까봐 걱정이 많기 때문이다. 훈계를 해도 듣지를 않고, 매를 들어도 잠시 뿐이다. 부모로서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왔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요아스의 독립을 통해, 내 아들의 독립을 보게 된다. 정신적인 지도자인 여호야다와의 갈등이 그의 독립 선언이었던 것처럼, 지금 나와 내 아들이 직면선 갈등은 탈선과 반항이 아닌, 내 아들이 아닌 한 사람의 독립 선언과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독립하는 요아스를 향해서 여호야다가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고, 요아스의 고집스러운 제안에 동의했다.(8절) 그렇게 요아스는 독립해 갔고, 그렇게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보내준 것이다. 나와 아들... 영원히 어린 아이가 아님을 기억하며 그는 내게서 독립하여 독립된 존재가 되기 위해 잠시 나를 밀치고 나갈 것이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주어 그가 독립된 인간이 될 기회를 허락해 주어야 한다. 불안하기에 기도하면서 말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오늘은 청년 결혼식이 있어서 아침부터 서산까지 다녀왔습니다. 다녀오니 오후 5시 반이네요.. 하루가 다 갔습니다.

 

[정리1. 내용의 정리] - 시간이 없을 땐, 정리1만 합니다. 우선적으로

1. 유다 왕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왕이됨
  1) 아달랴(아하시야 왕의 어머니)가 왕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되려고 함.
  2) 아하시야 왕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중 요아스를 빼내어 그의 유모와 함께 자기 침실에 숨겨 아달랴로부터 살려냄
  3) 요아스가 여호와의 성전에 육년간 숨어 있었고, 그 동안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다.

2.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다.
  1) 일곱째 되던 해에 여호야다가 백부장들을 여호와의 성전으로 불러서 맹세시키고 왕자를 그들에게 보였다.
  2) 안식일에 1/3은  왕궁을 지키고, 1/3은 수르 문에 있고, 1/3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왕궁을 지키고, 안식일에 나가는 너희 중에 두 대는 여호와의 성전을 주의하여 지켜서 왕을 호위하라.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여 대열을 침범하는 모든 자는 죽이라고 지시함.
  3) 백부장들은 안식일에 여호야다의 명대로 행했고, 여호야다는 성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었다. 호위병들은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면서 그 사이를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왕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여 왕의 만세를 불렀다.
  4) 뒤늦게 알아차린 아달랴가 달려와 반역이라고 외쳤으나, 오히려 그는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3. 제사장 여호야다의 개혁
  1)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함.
  2)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함.
  3)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제단과 우상들을 철저히 파괴하고 제사장 맛단을 죽임.
  4) 백부장들과 호위병들을 성전에서부터 왕궁까지 왕을 인도하여 왕이 왕의 왕좌에 앉게 함.
  5)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였다. 요아스가 왕이 될 때의 나이가 7세였다. 

[정리2. 내용의 재정리]

북이스라엘에서 예후에 의해 요람이 죽고 예후가 이스라엘을 장악해 가는 중에, 남유다에서는 아하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왕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아달랴는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된다. 그러는 중에 한 왕자는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에 의해서 생명을 보존하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요아스다.


요아스는 성전에 숨겨진 채로 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아래 6년간 아무도 모르게 자란다. 요아스의 나이 7세가 되던 해,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왕위에 앉히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먼저 백부장들을 모아 성전으로 불러모으고 이들에게 맹시키신 후 아하시야의 아들로서 요아스 왕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여호야다는 백부장들의 도움을 얻는다.


안식일이 되었을 때에, 백부장들은 여호야다의 지시를 따라 왕궁을 지켜 출입을 통제했다. 그리고 일부는 성전으로 가서 요아스 왕자를 호위했다. 요아스 왕자는 여호야다의 인도 아래 왕관을 씌움받고, 율법책을 받고 기름부음을 받아 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와 함께 사람들은 요아스의 왕됨을 크게 외쳤다.
이 상황을 전혀 몰랐던 아달랴는 성전으로 와서 반역이라고 외쳐보았지만, 이미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했고 결국 비참하게 죽게 된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와 언약을 맺도록 했고, 바알의 단과 우상을 파괴했다. 그리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그리고 왕이 된 요아스를 왕궁까지 인도하여 왕좌에 앉게 했다. 이로 인해 온 백성들을 즐거워하고 평온하게 되었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왕을 만드는 사람, 제사장 여호야다.

얼마전 이병헌이 주연을 한 <광해>라는 영화를 봤다. 왕의 부재를 대신해서 세운 가짜 왕이 왕의 역할을 하도록 돕는 신하가 나온다. 그 신하를 통해서 가짜 왕은 왕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물론 생각 이상으로 더 왕의 일을 잘 해내어 놀라게 되는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와 같은 역할로 등장한다. 그는 아달랴로부터 왕자 중 한 명을 살려냈고, 성전에서 키웠으며 어린 요아스를 왕의 자리에 다시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이후에도 유다가 깨어진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세우는 역할을 해냈다. 여호야다는 위기에 처한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는 결정적 공로를 세운 제사장이 되었다.

왕이 역할을 잘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왕이 부족하거나 왕이 부재한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그의 부재와 무능을 보완해 줄 신하가 필요하다. 그는 왕을 보호하기도 하고, 왕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왕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다. 왕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뛰어난 왕이 없다고 리더가 없다고 대통령이 없다고 세상은 난리다. 그렇다면 왕의 부재를 무능을 대치하고 보완할 수 있는 신하를 찾으라. 왕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왕이 되지 않고, 신하로 있으면도 왕으로 왕의 역할을 도울 수 있는 신하를 세우라. 왕은 왕이고, 신하는 신하다. 그러나 왕을 왕되게 하는 신하가 있다. 그런 신하가 있다면 왕의 무능과 부재에도 세상을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이 시대는 광해군 시대의 도승지 허균과 상선과 같은 신하, 요시야 왕 때의 여호야다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