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7.24)


제목: 북이스라엘왕02_여로보암2

본문: 왕상 12:25-33


 * 여로보암 왕의 두번째 이야기(왕이 되는 과정, 왕이 되고 나서의 잘못, 그 결과)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7.17)


제목: 북이스라엘 왕_여로보암1

본문: 왕상 11:1-13


 * 북이스라엘 왕 중 핵심적인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설교. 첫시간 여로보암 왕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오늘 말씀 묵상은 아침에 집에서 정리1과 정리2를 하고, 출근하고 나서 정리3 작업을 합니다.  

 

[정리1. 내용을 이야기의 순서대로 정리]

 

1. 유다 왕 아마샤에 대하여
  1) 25세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29년간 다스림. 어머니는 여호앗단, 예루살렘 사람이다.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다윗같지는 못했다. 그의 부친 요아스과 같이 행함. 산당은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3)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아버지를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그 자녀들은 죽이지 않음.
   (1)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한대로 한 것이다.
   (2) 자녀로 말미암아 부모를 죽이지 말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라는 법대로.
  4)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명을 죽이고, 또 전쟁하여 셀라를 취하여 욕드엘이라 함.
  5)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만나서 전쟁할 것을 알림
   (1)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아마샤가 에돔을 이기더니 교만해졌다며 그의 제안을 일축하려 했다.
   (2) 아마샤는 고집스럽게 전쟁을 하려하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가서 유다를 침.
   (3)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벧세메스에서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었다. 
   (4)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6) 아마샤는 요아스 왕이 죽은 이후 15년간을 다스렸는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여 라기스로 도망하던 중 거기서 죽게 된다. 시신은 다윗 성으로 옮겨져 장사하게 된다.
  7) 유다 온 백성이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를 왕으로 세우고, 아사랴는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다.

 

2.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2)에 대하여
  1)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41년 간 다스림
  2)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함
  3) 요나를 통해 말씀된 것처럼 이스라엘의 영토를 회복함(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4)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다.
  5) 여로보암의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다메섹을 회복한 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

 

[정리2. 내용을 재구성하여 자신의 말로]

 

본장은 유다와 아마샤와 이스라엘 왕 요아스 사이의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2)의 활약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유다 왕 아마샤는 평균 이상은 되는 왕이었지만, 다윗과 같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그가 나라를 그의 손에 장악했을 때, 그의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처단한다. 그러나 과도한 처벌을 하지는 않았다. 모세의 법대로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처벌하고, 그의 자녀들까지 죽이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에돔을 정벌하고 셀라를 취하여 얻기도 했다. 아마샤는 국내에 있어서도 국외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갖는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이 교만으로 넘어갔던 것 같다. 무리하게 유다 왕 요아스와 전쟁을 하려고 했고, 결국 요아스에 의해서 아마샤는 사로잡히는 수모를 당하고, 예루살렘 성벽은 일부 허물어졌으며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과 모든 기명이 탈취를 당하게 된다. 나중에 아마샤는 자신의 부친과 같이 반역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유다는 아마샤를 대신해서 아사랴(웃시야)를 왕으로 세운다.


북이스라엘은 요아스가 죽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된다. 여로보암은 요나의 예언처럼 이스라엘 전역을 확대한 위대한 왕이었다. 그의 영토는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였다. 아람으로부터 다메섹을 빼앗았고, 유다로부터는 하맛을 빼앗았다. 이와 같은 역사를 놓고, 열왕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구원자가 없으므로 또한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게 하셨다고 다소 시크하게 평가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왕도 법을 지켜야 한다.

 

아마샤는 아마 평점 4(5점 만점) 정도는 맞는 왕이었던 것 같다.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아버지를 뒤를 이어 갑작스럽게 왕이 되었지만, 안정적으로 자신의 기반을 잘 닦아 갔다. 하나님께로부터 다위과 같지는 못하지만 괜찮은 왕이라는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그는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숙청한다. 눌러왔던 복수와 심판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샤의 심판은 달랐다. 복수를 위한 복수가 아니라 죄를 묻기 위한 형벌이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아마샤가 법이 제한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했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는 죄를 지은 그 당사자만을 심판했지,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형벌을 가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이 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샤는 법 안에서 절제있게 권력을 사용한 것이다. 아마샤의 놀라움은 이 절제된 권력 사용에 있었다. 열왕기 기자도 아마샤의 그 부분을 기록함으로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 본다.

 

권위를 위한 권력을 필요하고,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의 권력이 온다. 그러나 그 권력은 언제나 통제가 되고 절제가 되는 권력일 때 정당성을 가지고, 유익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권력이 법이라는 절차와 테두리를 벗어나 한 개인과 집단 마음대로 휘두르게 된다면 그것만큼 역사적으로 큰 비극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역사가 진보한다면, 오늘 대한민국은 이와 같은 측면에서의 진보가 필요하다. 법을 무시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권세가들로부터 그 권력을 빼앗아, 법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권력을 사용하는 권세자를 세워야 할 것이다.

 

2. 교만은 결국 사고를 치게 되어 있다.

 

아마샤는 국내 정치를 안정적으로 운영했을 뿐 아니라, 국외적으로도 그 힘을 확장해 갔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경험했고, 국방도 강화하여 에돔과 같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셀라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마샤의 마음에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도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었나보다.

 

북이스라엘은 남유다 아마샤의 이런 제안을 우습게 여겼지만, 아마샤는 결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원했고 그 결과는 비참한 패배였다. 왕은 사로잡혔고, 많은 재산을 빼앗겼으며 성도 허물어지고 포로도 잡혀갔다. 아마 이 전쟁을 계기로 아마샤의 지지도는 급격히 하락했을 것이라 본다. 결국 아마샤는 반역자들의 손에 의해 라기스로 도망하는 도중에서 죽게 된다.

 

아마샤의 시작은 좋았다. 다윗까지는 아니어도 다윗과 견주어 비교할만한 왕이었다.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인정받는 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도를 넘었다. 교만을 다스리지 못했고 과시하려고 했고, 자신을 더 크게 보이고 싶어했다. 무리한 전쟁을 한 것이다. 그것이 한 순간 아마샤의 인생을 망처버린 것이다.

 

최근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인해 월드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참, 대단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김장훈 씨와의 불화설이 나돌고, 둘 사이가 않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정확한 불화의 원인을 모르지만, 마음 한 편 불안한 것은 교만으로 인해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너무 높은 곳을 갑자기 올랐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걱정이다. 아직까지는 그의 모습이 자신감으로 보일 뿐, 교만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섰을 때 우리는 넘어질까 조심할 수 있어야 한다.

 

교만 교만 교만 = 패망 패망 패망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이제 본격적으로 분열된 왕국간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도 남유다의 르호보암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로보암에게는 집안의 멸망을 예언하셨고, 르호보암은 그의 당대에 큰 재앙(애굽왕 시삭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 다루었다. 르호보암의 어머니가 암 사람이었다는 것을 두 차례 언급한 것을 보면 암에 대한 어떤 경고를 주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21,31절)

 

[정리1. 내용의 정리]

1. 여로보암의 집에 시작된 재앙의 일과 예언
  1)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위독하게 됨
  2) 여로보암이 아내를 시켜 변장하여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가 아들의 회복을 알아보게 함.
  3) 아히야는 눈이 어두웠으나, 하나님의 알게 하심으로 여로보암 아내의 찾아옴을 알고, 그녀에게 여로보암에게 일어날 흉한 일을 예언한다.
   (1) 악을 행하고 다른 신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나를 노엽게 하고 여호와를 네 등 뒤로 버렸다.
   (2)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남자를 모두 죽게 하고, 집안을 멸하게 하겠다.
   (3) 네가 돌아가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들이 죽을 것이라.
   (4) 그러나 여로보암의 집안에서 묘실에 들어갈 자는 오직 이 아이 뿐이라. 여로보암의 집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5) 이스라엘을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너머로 흩으시리니, 이는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고, 여로보암의 죄를 범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다.
  4) 여로보암의 아내가 돌아왔을 때, 선지자 아히야가 한 예언대로 아이가 죽었다.

2.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이야기
  1) 그는 41세에 왕이 되었고, 17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암몬 사람이었다.
  2) 르호보암은 조상들의 죄보다 심한 죄를 저질러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다.
   (1)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
   (2) 그 땅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가나안 백성들이 행하던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음.
  3)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아 갔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았다.
   (1) 르호보암은 금 방패대신 놋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장의 손에 맡김
  4)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다.
  5)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암몬 사람 나아마였고, 그의 아들 아비얌이 대신하여 왕이 됨.

 

[정리2. 내용의 재정리]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집안의 일과 남유다 르호보암의 집 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한다.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위독하게 된다. 아들의 운명을 걱정한 여로보암은 아내를 시켜 이전에 자신이 이스라엘 10개 지파의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가도록 한다. 자신의 지은 죄를 생각했는지, 아내로 변장하여 가도록 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그 사실을 알게 된 아히야는 그 여인이 찾아왔을 때, 아들의 운명 뿐 아니라 여로보암의 집의 운명에 대해서 알려준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것으로 말미암아 그 집 안이 완전하게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 오히려 지금 병들어 죽게 될 아이면 묘실에 제대로 안장이 되고 나머지 사람은 그렇지 못함을 예언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성읍으로 돌아갈 때 실제로 그 아들은 죽음을 맞게 된다.


남 유다의 르호보암도 하나님 앞에서 그리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는 이전에 가나안 사람들이 행하던 풍습을 쫓아 곳곳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고, 그 땅에 남색하는 자들을 방관했다. 결국 애굽 왕 시삭이 유다를 쳐들어와서는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아갔고, 솔로몬의 금방패도 빼앗아 갔다. 르호보암은 금방패 대신 놋 방패를 만들었다. 북이스라엘 과의 관계속에서는 늘 전쟁이 있어왔다.
르호보암의 어머니가 암몬 사람이었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북이스라엘이 여로보암 왕조에는 왕조의 멸망을 예언했으나, 남유다의 르호보암에는 그와 같은 예언은 없고 애굽 왕 시삭을 공격으로 인한 큰 피해만을 입었다.

현재의 외상이 크다고 해서 그것이 더 큰 재앙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더 큰 재앙은 표면적으로는 별일이 없지만 내부적으로 곪는 것이다. 남유다는 애굽 왕의 공격을 통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가 드러나게 되어 깨닫고 정신을 차리는 것이 낫다. 문제를 모른 채, 아니면 문제를 감춰둔 채 별일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회복의 기회마져 잃어 버리는 경우가 되고 만다. 리더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공동체의 문제를 직시하고 인정하고 알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요, 감춘다면 악한 것이다.

2.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악으로 부터 보호하시기도 하신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요, 죽음은 재앙과 같은 것으로만 알고 있지만,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의 죽음은 또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 준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가문에서 유일하게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던 인물이었고, 하나님은 그를 <죽음>으로 축복하셨다.(13절. 여로보암 가문에서 아비야만 유일하게 묘실에서 평온이 안장된 인물이었다.) 

살아 남았던 사람들은 악을 더 확장했고, 결국은 여로보암 집안이 멸망하는 자리에까지 가게 되어 그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아비야>만 평온하게 죽게 하셨고, 참혹한 재앙으로부터 보호해 주셨다.

하나님은 <죽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보존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도 어쩌면 하나님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악한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큰 재앙으로부터 미리 피할 수 있도록 <평온한 죽음>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잊지 말자. 죽음이 모두 불행이라고만 생각하지는 말자.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을 읽다 보면 참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이야기를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정리1. 내용 정리]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하여 그가 벧엘에서 여로보암을 만났다.
  1) 벧엘에서 분향하던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하였다.
   (1) 훗날 다윗의 집에서 요시야라는 아들이 이 제단 위에 제사장을 제물로 바칠 것이다.
   (2) 그날에 대한 징표로 오늘 제단이 갈라지고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2) 여로보암 왕은 그 선지자를 잡으려고 손을 폈으나 그 손이 말라 거둘수 없게 됨
  3)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처럼 제단이 갈라지고 재가 제단에 쏟아짐
  4) 여로보암이 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자신의 손을 다시 온전하게 해달라고 구함/온전해 짐.
  5)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물도 주고, 물과 떡조 주려 했으나 하나님의 사람은 거절함.

2.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속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함으로 죽게 됨.
  1)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가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과 여로보암의 일을 알게 됨
  2) 한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쫓아가서, 자신을 선지자라고 소개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냄을 받아 온 것으로 거짓말을 한 다음, 그 하나님의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는 물과 떡을 먹게 함. 그 하나님의 사람을 속아서 물과 떡을 마심.
  3) 그 늙은 선지자가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면 <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냐고 질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었으니 죽게 되고 그 시체가 조상의 묘실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하심>
  4) <하나님의 사람>은 돌아가는 길에서 사자를 만나 죽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그 시체 곁에서 사자도 떠나지 않고, 나귀도 도망하지 않았다.
  5) 이 사실을 들은 늙은 선지자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자신의 묘실로 옮기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으며 자신이 죽게 되면 이 묘실에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두라고 함.
  [정리]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것 같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자에게 진노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벧엘의 제단과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증해 주는 사건이다.

3. 여로보암은 이 일 후에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1)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다.
  2)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었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

여러보암이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 그의 죄에 대한 질책을 하고, 앞으로 돌이킴이 없다면 훗날 이 제단과 함께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주려고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람은 벧엘의 제단으로 갔고, 마침 그곳에 여로보암이 와 있었다. 그 사람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했다. 여로보암은 그의 말을 우습게 알고 그를 잡으려 했으나 오히려 명령하려던 손이 말라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여로보암은 마음을 겸손케 하여 그 사람에게 손을 온전케 해달라고 부탁함으로 회복되었다. 여로보암은 그 사람에게 예물도 주고 잘 대접하려고 했으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 거절하며 돌아갔다.


그러나 문제는 이 소식을 들은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였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늙은 선지자는 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람을 쫓아갔고, 그에게 거짓말(하나님의 천사가 시켰다는 거짓말을 의도적으로)을 해서는 그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를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도 전했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된 <하나님의 사람>은 사자에게 물려 죽게 된다. 이런 억울한 일을 계획한 늙은 선지자는 그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한다. 그리고 자기의 묘실에 안장한다. 이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벧엘과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 위에 반드시 이루게 될 것이라는 것과 여로보암은 이 사건을 통해서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악을 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멸망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성경에서 미래에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은,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서 하는 예언(주로 심판에 대한)은 단순히 기계적인 예언(변할 수 없는)은 아닌듯 하다. 좀 더 정확하게 하게 표현한다면 심판이 임하고 징계가 임할 것이라는 예언은, 지금 돌이키고 회개하라는 마지막 경고이면서 동시에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대표적인 경우는 요나서에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일 것이다. 심판을 예언하셨지만, 그들이 그 경고를 듣고 회개하자 그들은 심판으로 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하신 <심판에 대한 예언>도 그와 같은 차원의 예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회개할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그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려 했고(4절) 그 경고를 받고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계속해서 일반 백성 중에 제사장을 삼는 일을 자행했다.(33절) 그렇다면 여로보암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기회는 잃게 된 것이다. 결국 여로보암의 왕위는 끊어지게 될 것이 분명해 진다.

누군가를 극단적인 상황에서 살리려 할 때, 우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해야 한다. 성공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마지막 수단이요 그것말고는 다른 희망은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 방법을 쓸 수 있는 시기란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살려고 하는 동안) <죽음과 심판>을 말해야 한다.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은 희망이 없으며, 정말 죽음과 심판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듣는다면 그는 살아날 것이다. 그가 살아났다고 해서 그 심판의 예언이 틀린 것은 아니다. 원래 그 예언이라는 것은 그를 살리려고 한 예언이며, 정말 돌이키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예언이기에 그렇다.

 

2. 거짓말에 속은 <하나님의 사람>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그는 용기를 가지고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았다. 그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 만일 벧엘의 늙은 선지자의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다면 그는 늙은 선지자의 말에 순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까지 잘못으로 여기지는 말자. 늙은 선지자도 왜 그와 같은 일을 했는지 의아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스스로에게 무슨 유익이 있다고 그 사람을 찾아가 거짓말까지 한 것인가? 단순한 시기심인가? 그렇지 않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 죽고 난 후 그 시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묘실에까지 넣고 애도했음을 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하나의 상징적 사건, 메시지를 주기 위한 사건으로 봐야 할 것이다. 억울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이 심판을 모면할 수 없었다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고 회개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은 여로보암의 죄는,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당해도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하나님의 사람과 벧엘의 늙은 선지자의 역할이 좀 이상해 보이는 역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정황속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모두 계시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여로보암도 그렇고 <하나님의 사람>도 그렇고 <벧엘의 늙은 선지자>도 그렇다. 누구를 위한 계시인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계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그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죄에서 돌이키라!!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오늘은 이스라엘이 왜 두 개의 나라로 분할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안타까운 이야기 이지만, 분단이라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찌보면 이렇게 함으로서 나머지 한 쪽이라도 더 오래 살려보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정리1. 내용 정리]

1.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세겜에서 이스라엘의 왕 됨을 인정받으려 하였으나...(1-20)
  1) 솔로몬의 죽음과 함께 이스라엘은 애굽에 망명한 여로보암을 불렀고,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2)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한 대표들이 르호보암에게 <부역>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3) 르호보암은 3일간의 기간을 요청한 후 아버지의 신하들과 자기 주변의 신하들에게 각각 그 의견을 물었다.(아버지의 신하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고, 자기 주변의 신하들은 오히려 더 부역을 강하게 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4) 3일 후에 찾아온 이스라엘의 대표들에게 르호보암은 솔로몬 때보다 더 큰 부역을 시킬 것이라고 말하자, 이스라엘 대표들은 르호보암(유다지파)과 이스라엘이 상관없음 말하고 떠나감.
  5) 르호보암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인 일이 발생하자 르호보암은 급히 예루살렘으로 피신했다.
  6) 르호보암을 다르는 사람은 유다 지파로 제한되고, 이스라엘의 10개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했다. (르호보암은 애굽의 바로처럼 행동했다.)

2. 르호보암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하였으나...(21-24)
  1)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서 병사를 모집하여 솔로몬의 나라를 회복하려 함.
  2) 180000명을 모집하여 전쟁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서 이를 막으심.
  3) 이와 같은 일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라는 것을 알렸고, 르호보암은 돌아감.

3. 여로보암도 나라를 견고히 하려고 했으나...(25-33)
  1) 여로보암은 자신의 나라를 견고히 하려고 하는데 있어서 성전과 절기가 문제가 됨을 인식.
  2)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서 제사와 절기를 지키다보면 민심이 유다 왕에게로 갈 것을 두려워하였다.
  3)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다 두었다. 이 금 송아지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낸 하나님이라고 했다.(아론처럼 행동했다.)
  4) 산장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다.
  5) 여로보암이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정해(여덟째 달 15일) 벧엘에서 분향하였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

솔로몬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는 남유다 출신이기에 북 이스라엘 지파들에게도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세겜으로 갔다. 그러나 그는 젊은 친구들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권위에만 집중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심을 간과했다. 르호보암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을 무시하자, 이스라엘은 르보호암의 왕 됨을 거부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한다. 이렇게 해서 남 유다는 르호보암을,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한 두 왕국이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 내용을 읽다보면 르보호암이 애굽의 바로왕과 유사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된다.


르호보암이 병력을 모아 이스라엘과 전쟁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이를 막으심으로 극단적 위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반면 열 개 지파의 지지를 얻어 왕이 된 여로보암은 민심이 예루살렘 제사와 절기로 인해 결국은 남유다에게로 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결정을 하고 만다.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고 북쪽에 두 개(벧엘과 단)의 제단을 만든다. 그리고 일반 백성 중에 제사장을 임의로 세우고, 절기의 날짜도 의도적으로 왕의 마음대로 변경하여 남 유다와 분리하려고 했다. 이것은 여로보암이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타락하게 된 계기가 된다. 여로보암을 보고 있으면, 제사장 아론의 실수가 생각난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민심을 배반한 르호보암.

르호보암은 솔로몬을 계승한 정통성을 가진 왕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북쪽 세겜을 찾은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지파간의 갈등을 염두한 것이라고 보인다. 그는 남쪽 유다 출신이기에 북쪽에서도 왕으로서 인정을 받고 명실상부하게 이스라엘 전역의 왕으로 추대되길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솔로몬과 같은 왕으로 인정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지, 북쪽 이스라엘 지파들의 민심을 전혀 읽지 못했다. 부역을 가볍게 해달라는 민생의 간절한 요구를 르호보암은 철없는 젊은 신하들의 제안에 현혹되어 무시해 버린 것이다. 이 장면에서 <바로 왕>이 생각난다. 모세의 요구에 애굽의 바로는 더 큰 고통으로 이스라엘에게 돌려주었던 것 말이다. 이것을 계기로 르호보암은 북쪽 열개 지파의 대표로부터 지지를 잃고 이스라엘을 다른 왕을 찾게 된다.

르호보암은 왕의 정통성을 가진다. 그가 민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반영하기만 했다면 그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솔로몬과 같은 왕이 되었다고 생각한 르호보암은 민심을 우습게 여긴 것이다. 그들의 요구를 무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백성은 그 왕을 버린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을 될 만한 사람이 진정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제반 환경이 그를 돕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민심을 읽지 못하고(읽는 척하는 것은 모르는 것이요 오히려 배반하는 가증한 것이다.) 자기의 승리에만 도취되어 있다면, 그는 르호보암처럼 버림 받을 것이다. 민심은 그런 것이다. 민심의 마음을 읽지 않고 민심을 우습게 여기면 선거 때 표 한장 더 받으려는 속셈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결국 백성으로 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2. 무리하게 민심을 잡으려고 했던 여로보암. 

민심을 배반한 르호보암으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한다.  혈통적으로가 아니라 백성의 지지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왕이 된(물론 아히야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지만) 여로보암은 백성들의 민심이 다른 곳으로 갈 것을 가장 우려했던 것 같다.

제일 큰 문제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기 위해 일년에도 몇 차례식 모든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야 했다. 이것은 백성들의 마음이 지금은 르호보암에 대한 반감으로 국가가 나뉘어 졌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남유다로 향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그렇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무리수를 두었다. 민심을 잡기 위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행한 것이다. 금 송아지 둘을 만들었고, 예루살렘이 아닌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했다. 레위인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임며하고, 명하신 절기가 아닌 다른 날에 여로보암이 임의대로 정해서 절기를 지키도록 했다. 이것은 결국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북 이스랴엘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과거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 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뻔 했다.

민심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민심을 잡으려고 하면 그곳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할 수 없는 정책을 남발하거나, 해서는 안되는 일까지 추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도 않을 것을 할 것처럼 꾸미기도 하고, 그릇된 방법을 동원하기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후보들이 거론되고 있다. 누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인가? 민심을 무시하는 자도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자기의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서 민심을 얻으려고 하는 자도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민심을 천심으로 알고, 하늘의 뜻을 읽고 사심없이 겸허히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려는 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