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기독교. 2-2 하나님의 침공] 실재하는 우주의 선과 악에 대한 대립. 이원론으로 풀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적 관점으로 풀것인가? 루이스는 기독교적 관점이 우주의 실재성을 더 잘 설명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악이란 독립된 힘이 아니라 선에 종속된 변형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악마를 타락한 천사라고 말한 것도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1. 루이스가 말한 단순하기 그지 없는 말.


 1) 무신론자들의 주장: 우주는 무의미하다.

 2) 물 탄 기독교의 주장: 하늘에 선한 하나님이 계시니 만사형통이다. 여기에서는 죄니 지옥이니 악마니 구속이니 하는 어렵고 무서운 교리들은 전부 제쳐 놓는다. 


2. 실재하는 세상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도 단순할 수 없다.(복잡하고 어려울 수 밖에 없다.)


  1) 단순하게 보이는 것도 실재에 들어가면 매우 복잡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2) 단순한 대답 이상의 것을 요구하면서 왜 대답이 단순하지 않냐고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6살짜리 어린애한테나 맞을 기독교를 내세워 놓고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것은 어리석다.(너무 단순회 시킴)

  3) 종교뿐 아니라 실재는 매우 복잡하고 말끔하지 않고 분명하지 않다. 

예) 의자를 보는 과정, 태양과 행성간의 모습과 규칙에 대해서도 

  4) 오히려 짐작할 수 없고 인간이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기독교를 믿는 이유다. 기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부류의 어떤 것이 아니다. 

  5) 기독교도 우리의 예상과 맞지 않는 기묘한 비틀림이 있다. 실재하는 것들이 대게 다 그렇다. 


3. 본론적인 논지: 우주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해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관점은 두가지다. 


   1) 기독교적 관점으로 세상은 원래 좋았는데, 나빠졌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야 할 원래 모습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는 관점

  2) 이원론적 관점으로 모든 것의 배후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동등하며 독립적인 힘이 있어 우주는 그 두 힘의 끝없이 싸우는 전쟁터라고 믿는 것이다. 

    (1) 두 힘 내지 두 영 또는 두 신(하나는 선하고 하나는 악한)은 아주 독립적인 존재이다.

    (2) 두 힘은 모두 영원 전부터 존재했다.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만든 것도 아니고, 하나님으로 자처할 수 있는 권리를 더 가진 것도 아니다. 아마 두 힘은 각각 자기가 선하며 상대방이 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4. 이원론적 관점의 오류에 대해서 

  1) 어떤 신은 선하고 어떤 신은 악하다고 규정할 때, 이것은 제 3의 존재 즉 두 힘 중에 하나는 거기에 부합되지만 다른 하나는 부합되지 않는 어떤 법칙 내지는 기준을 우주에 끌어들이게 되는 셈이 된다. 

  2) 이는 그 기준을 따라 두 힘을 판단하게 되는 것을 볼 때 그 두 힘보다 더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이고, 더 높은 곳에 있을 것이기에 그 제 3의 존재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일 것이다. 

  3) 즉 선하고 악하다는 것은 사실상 하나는 진정한 궁극적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그릇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면]

  악을 악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악을 행할 때에는 악을 통해 쾌락을 느끼거나(가학성 변태성욕자 처럼) 아니면 악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것들은 본래적으로 악한 것들이 아니라 그것들은 선한 것인데, 그것을 그릇된 방식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혹은 과도하게) 악이 되는 것이다. 


  선은 선 그 자체이지만, 악은 선이 부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한 힘이 악해지려면 먼저 선한 것을 원하고, 그 다음에 잘못된 방식으로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 충동을 왜곡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왜곡시킬 좋은 충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악이란 선의 왜곡인 것이다. 악한 힘이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선한 힘이 다스리는 세상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에서 악마를 타락한 천사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악이 원형이 아니라 원형에 기생하는 것임을 인식한데서 나온 말이다. 


5. 기독교적 관점이 더 실재에 근접한 설명이다. 


  1) 루이스는 참된 기독교가 이원론에 아주 가깝다는 것을 인정한다. 

  2) 그러나 기독교는 이 우주 안에 있는 어두운 권세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로서 본래는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후에 악하게 변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원론과 구별된다.

  3) 이 우주가 전쟁중이라는데는 기독교도 이원론과 동의한다. 

  4) 그러나 이 전쟁이 독립적인 두 세력간의 전쟁은 아니다. 기독교는 이 전쟁을 일종의 내란 내지는 반란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반역자들에게 일부 점령당했다고 생각한다. 

  5) 적들의 점령 지역, 이것이 현재 이 세상의 모습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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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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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해 심기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어떤 사람은 종교문제는 이미 과거에 끝난 문제로 시계를 거꾸로 돌릴 생각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해 3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1) 시계가 잘못 가고 있을 때에는 오히려 거꾸로 돌리는 것이 더 현명한 일 아닌가!

  2) 잘못된 길로 접어들엇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진보를 위해서는 다시 올바른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선재해야 한다. 

  3) 수학의 예로도 설명할 수 있다. 잘못된 공식으로 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바른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 


  [소결론] 지금 세상의 상태를 보면 인정하시겠지만, 인류는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되돌아 가야 한다.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2. 본격적인 <종교 선전>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1) 지금까지 도덕률 배후에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 존재한다고 까지만 이야기했지, 특정 종교의 신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도 하지 못했다. 성경이 없이도 알아올 수 있는데까지 온 것뿐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인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1) 누군가 우주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2) 그가 우리 안에 둔 도덕률이다. 이것은 내부 정보이기 때문에 더 좋은 증거가 된다. 

     이것을 볼 때, 우주 배후에 있는 존재가 옳은 행동(공정한 처신, 이기적이지 않은 마음, 용기, 신뢰, 정식, 신용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이 '선하시다'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다. 


   (3)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이 선하시는 말의 의미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주는 상냥하고 동정많은 분이라는 뜻에서 말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덕률에는 어떤 짓을 해도 다 받아 준다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률은 올바른 일을 하라고 명령할 뿐, 그렇게 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4) 만약 절대 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행동 대부분을 미워하리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절대 선이 우주를 지배하지 않는다면, 어떤 노력을 해도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없고, 반면에 절대 선이 우주를 다스린다면 우리는 매일 그 선의 원수가 되는 셈이다. 다음날이라고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선 없이 살 수도 없고, 그 선과 더불어 살 수도 없다." 

   "하나님은 유일한 위안인 동시에 최고의 공포이다."

3.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용서를 약속한다. 

   따라서 자신이 회개할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모르는 사람, 자신에게 용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독교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깨닫기 전에는 정말이지 기독교는 여러분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좀더 유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기독교는 결국 지금 말하는 것과 같은 낭패감에서 출발하는 종교다. 따라서 그 낭패감을 먼저 겪지 않는 한 아무리 위안을 얻으려고 노력한들 소용이 없다. 


[결론] 여러분이 진리를 구한다면 결국 위안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위안 그 자체를 구하다면 위안도 진리도 얻지 못한 채, 오로지 감언이설과 몽상에서 출발해서 절망으로 마치고 말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처럼 전쟁 전 국제 정치에 품었던 몽상에서 이제 막 깨어난것처럼 우리는 종교에 대해서도 몽상에서 깨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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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1. 돌이나 나무에 해당하는 이른바 자연법칙은 단순히 하나의 표현법(현상에 대한 설명)에 불과함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서 그 너머에 무엇인가 실재한다고 할 수 없다. 


2. 반면 인간 본성의 법칙 내지는 옳고 그름의 법칙은 인간 행위(보여지는 것)라는 현실의 사실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가 창안해 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실재적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법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해서 어떤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 이제 논하려고 한다.


1. 인간이 우주에 대해서 가지는 두 가지 관점

  1) 유물론적 관점: 물질과 공간은 우연히 생긴 것으로서 늘 존재해 왔지만, 그 존재 이유는 알 수 없다. 

    우연의 산물로서 우주와 생물은 발생하게 되었다고 본다. 

    [결론] 우주의 배후에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없다.


  2) 종교적인 관점: 우주의 배후에는 그 어떤 것보다 정신(mind)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고 본다. 

     그 존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우주를 만들었다고 본다. 

     [결론] 우주의 배후에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있다.


2.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서 우주의 배후에 존재하는 자의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까?

 

  1) 일반적으로 과학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확인하려고 하는데 과학은 그것을 파악하는데 한계를 가진다. 



   * 과학은 관찰을 통한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다. 과학이 관찰하는 사물들의 배후에 무언가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과학이 던질 질문이 아니다. 배후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술은 과학이 할 수 있는 진술은 아니다. 과학이 훗날 전 우주에 있는 것을 낱낱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우주가 지금처럼 지속되고 있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과학만으로는 그 배후의 존재에 대한 힌트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2) 과학 말고 하나의 길이 있는데, 그것은 우주 중에 하나이면서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을 통해서다. 


  * 그러나 하나의 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인간이다. 우리에게 인간은 단순한 관찰대상자 일뿐 아니라, 우주의 내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우리가 앞에서 확인한 것은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내지 아니한, 도덕률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3. 따라서 우리 자신을 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 말고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앞에서 도덕률, 인간 본성 법칙, 옳고 그름의 법칙과 같이, 우리 안에 누군가가 심어놓은 법칙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것을 심어놓은 배후의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반론]  인간만의 경험을 놓고 모든 우주에 다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논리가 아닌가?

    우체국 아저씨가 집집마다 봉투를 두고 갈 때, 우리는 그것을 다 열어보지 않았지만 그 안에 어떤 내용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편지 봉투를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연 봉투에서는 언제든지 편지가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일반화해서 말할 수 있다.(다른 사람의 봉투는 열어볼 수 없으니까...)


   인간으로서 우리가 열 수 있는 유일한 봉투는 인간 자신뿐이다. 우리는 나라는 인간을 열어보았을 때, '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어떤 법칙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한 '내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정리] 루이스는 지금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에게까지 나아간 것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지금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주를 지휘하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 무언가는 내 안에서 옳은 일을 하도록 재촉하고 그릇된 일에는 책임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하나의 법칙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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