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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1:19-21>(정리하기)

1. 이것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을 안다. (19절)

 1) 너희의 간구(빌립보 교회의 간구)

 2)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


2.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20절)

 1)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2)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려 한다.

   (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다.(21절)


[질문하며 묵상하며]

1. '구원'(19절)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단회적인 경험인 영적 거듭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절망에서의 건짐, 좌절에서의 소망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듯 하다. 물론 구원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큰 전환이 되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본다. 

2. '구원'이라는 표현을 쓸만큼 큰 전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앞에서 바울이 말한 내용에 근거해 본다면 '매임'이라는 자신의 처지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수 없음'이라는 기계적인 결과로 이어질 줄로 생각했는데 상황을 지켜보니 전혀 그렇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매이지 않았을 때'보다도 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바울의 인식에 큰 전환이 왔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 전화는 '구원'이라고 할 만한 분기점이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부르신 나를 통해서만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바울의 생각은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바울이 형통하게 되고 사역이 생각대로 순조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역자의 능력과 상황을 넘어서서 그 분의 능력으로 그 분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바울은 본 것이다. 

우리는 종종 오늘날 기독교의 무능과 절망적인 상황에 좌절한다. 그러나 빌립보서의 말씀 속에서 바울이 매임중에 발견한 사실을 통해서 본다면 아직 한국 기독교에 '구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3. 이와 같은 '구원'이 일어나게 된 것에 빌립보 교회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울은 언급한다. 교회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 오직 이것을 바라며 사역자는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걸어가며 때론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뒤로 물러서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4. 복음이 부끄럽지 않은 것처럼, 사역자가 처한 상황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다.(바울이 매임을 당했을 때, 너희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란 질문에 부딪히게 되고 그것은 자신의 헌신과 믿음이 부끄럽게 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바울은 자신은 매임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복음과 사역은 매임을 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심지어 자신의 죽임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더 유익할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바울의 바람은 이것이다.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바울은 다시 한번 자신의 목적을 확인했고, 그 방법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생각지 못한 방법론에 놀라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5. 성숙한 사역자란 어떤 사람인가? 

 1) 온전히 주님을 위한 자신을 드린 사람이면서(목적성)

 2) 온전히 주님의 방법에 승복하여 따르는 사람이다.(방법론)

  - 심지어 나를 부끄럽게 하는 방법으로 일을 이루시더라도 말이다.  


<빌 1:22-26>(정리하기)

1. 바울은 앞의 깨달음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미련과 두려움은 없지만, 지금은 오히려 육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자신의 열매라고 생각한다.(둘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1) 지금 자신의 현실은 이 둘 사이에 끼여있다.(삶과 죽음의 사이)

  (1) 자신만 생각하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23절)

  (2) 그러나 육신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희 교회를 위해서는 더 유익한듯 하다.(24절)

   - 바울이 육신으로 함께 있는 것이 너희 믿음과 진보와 기쁨을 위한 것이다.(25절)

   - 다시 너희와 함께 있으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한다.(26절)


[질문하고 묵상하기]

1. 바울은 죽음보다는 삶을 택했다. 그러나 바울이 선택한 삶은 우리가 삶을 선택하는 이유와는 다르다. 

 1) 바울은 앞에서 이미 죽음(절망, 매임)을 경험했다. 그러나 자신의 매임에도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확대되었고 오히려 더 잘 진행되었다. 

 2) 따라서 바울은 굳이 사역자로서 살아 남아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죽음을 통해 인생의 고난과 한계를 끝내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한다. 

 3)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자신이 살아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한다. 교회를 위해서다.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사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한다. 교회의 믿음을 위해, 교회의 진보를 위해, 교회의 기쁨을 위해 그래서 교회로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바울은 살 것을 선택하고 소망하게 된다. 


2. 바울도 지금 살기를 원하고, 우리도 지금 살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서 살기를 원하고 내가 허무해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생명을 붙잡지만 바울은 죽음을 넘어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 자신이 살기 위해 교회를 죽이는 경우는 자주 보지만, 교회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목회자를 보기는 쉽지 않다. 

  -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살아야 한다는 정신이 대형교회의 세습이나 권력의 연장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오해다. 오히려 그런 이권이 있는 교회 일수로 목회자는 빨리 자신의 무력함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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