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3장은 두 부류의 권위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2:15을 포함해서) 첫째는 그레데에 있는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디도의 권위에 대해서, 다른 하나는 당시 정치권력의 통치자에 대해서 권면한다. 요즘처럼 민주주의적 사고가 편재하고, 탈 권위적인 사회 속에서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권면같지만,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가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1. 목회자의 권위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아야 한다.(2:15)

목회자가 권위로 권면과 책망을 해야 한다는 것과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이 말이 목회자의 권위주의를 인정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것이다. 권위주의란 자기 스스로가 권위의 근거가 되어 언제든지, 누구든지, 어떤 일에 대해서건 권위를 가지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권위는 권면과 책망의 내용에 대한 권위를 말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권면하고 책망하는 근거가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을 때, 그 권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시행하는 목회자는 평소에 권위있는 내용이 가벼운 것이 되지 않도록 품위를 잃지 않아 업신여김을 받지 말아야 한다.

포장보다 내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용에 맞는 포장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있게 교회와 세상 가운데 들려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전하고 보여주는 목회자와 성도(교회)가 걸맞는 포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권위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의 권위, 불교의 권위는 사제와 승들의 자기 희생적 삶의 태도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목회자와 교회의 삶에 모습으로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목회자와 성도는 품위있는 겉모습을 가져야 한다. 정직하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며 자신의 꾸밈에 있어서도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편하다고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2. 통치자의 권위

  통치자들에게 대해서 다른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복종하고 순종하며 선한 일을 하기에 준비하게 하라고 권면한다. 국가의 권력이라는 것이 악을 지양하고 선을 격려하는 것이 기본일찐데 우리는 마땅히 그 권위 아래에서 순종하고 복종하여 선을 격려하고 악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권위를 잃게 만드는 것은 공직자들(권세자들)의 부정과 부패다. 권위는 인정하되 그들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책임을 묻고, 밝혀 낼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방치된다면 국가의 권위라도 정당한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권력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공직자들의 부정과 부패는 반드시 감시되고, 처벌되어야 하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교회든 국가든 권위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가 잃어지지 않도록 목회자와 성도는 품행을 단정하게 해야 할 것이다. 성도다운 높은 수준의 삶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국가는 공직자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권력을 가지고 사적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부정과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 그래야 공직자의 권위가 살고, 그들이 권위를 주장하여 선을 격려하고 악을 제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있다. 어떤 일을 결정하는 절차가 옳아야 한다. 절차가 합법적이지 못하면 그 권위의 기반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적이다, 비민주적이다라는 것은 그런 절차의 합법성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통진당의 행태를 보면서 만약 당권파가 다시 당 권력을 장악한다고 한들 거기에 무슨 권위가 실리겠는가 생각한다. 만에 하나 그들이 다시 당을 장악한다고 하더라고 그 당은 금세 무너질것이고 지리멸멸해 질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의 권위를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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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2장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권면은 크게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첫째, '하지 마라'는 것은 '논쟁하고 변론하고 싸워이기려고 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왜냐하면 이런 것은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디모데의 싸움의 대상이 되었던 자들은 헛된 이야기를 퍼트리는 악성 종양과 같은자고 경겅하지 아니함으로 나아가는 자들이기에 그들을 논쟁과 변론으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오히려 사역자인 디모데에게는 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디모데는 교회 안에서 이와 같은 자들 혹은 세력들과 대항해서 복음과 진리를 지켜내기 위한 논쟁적 싸움을 오랫동안 해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논쟁에서 이기기도 한 적도 있을 것이고, 또한 밀리기도 했을 것이다. 변론에서 밀리면 더 많은 준비를 통해서 다시 논리적 반격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반복되는 논리적 싸움 속에서 나온 결과물들은 선한 것이 없었다. 반대편에 선자들은 더욱 그들이 입장을 고수하는데 논리를 세워갔고, 그 논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점점 어떤 것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을 수 있다. 논쟁을 주도했던 디모데조차도 지칠대로 지쳐갔을 것이다.

여기에 디모데의 낙심과 눈물의 배경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디모데는 젊고 똑똑한 젊은이였기에 지적싸움에서도 지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진리로 대응해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진리를 지켜내지 않으면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디모데는 싸웠다. 그러나 이제 디모데는 지쳤다.

둘째, '하라'는 것은 너 자신을 경건하고 깨끗하게 준비하는 사역자가 되라고 한다. 논쟁적 대적자들은 하나님에게 맡기고 너는 너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해서 주님의 쓰심에 합당하도록 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일꾼이 되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고, 불필요한 논쟁은 그만 하라는 것이다.

만약 거역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온유한 마음으로 훈계하는 정도로만 해라. 그래서 돌아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라. 네가 다 책임지려고 하지 말아라.

 

목회란 무엇이고, 목회자의 자기 관리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묵상해 보는 것은 목회자의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 목회자의 자기 관리인 것이다. 이것 저것(멋있어 보이더라도, 논쟁에서 이길 때의 쾌감이 있고 시선의 집중에 대한 짜릿함이 있지만, 목회적 성공과 같은) 관심을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본질적으로 해야 할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여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그 일을 다른 충성된 일꾼에게 맡기어 지속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목회자의 본질이면서 자기 관리이다. 이것을 떠나 이것 저것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기웃하는 것은 목회자 사명의 본질과 비본질을 혼돈하는 것이고 결국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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