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4 새벽기도회
본문: 요한복음 18:39-19:16
제목: 빌라도의 변명, 빌라도의 죄
- 환영과 대표기도
- 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 본문읽기: 요한복음 18:39-19:16
4. 본문의 내용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했지만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리가 예수를 정죄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풀어줄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유월절 특사 제도를 이용해 예수를 풀어주고자 했습니다. 무리를 향해서 바라바라는 강도를 풀어줄 것인가 예수를 풀어줄 것인가 거래를 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당연히 강도 바라바를 풀어주자고 할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리는 완강하게 예수를 풀어주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요청합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판단은 이미 그릇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 하도록 합니다. 군인들은 가시나무로 관을 만들어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는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놀리며 손으로 때렸습니다. 자신을 왕이라고 한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독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 정도의 체벌과 모욕을 주었으면 무리들의 흥분이 가라앉혀지지 않았을까 기대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죄를 찾지 못한 자지만 너희들의 요구가 있어서 이정도 했으니 이 정도로 끝내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은 이 정도로 만족이 안 되고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예수를 그들에게 내어 주고 맙니다.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6절)
빌라도는 다시 한 번 예수를 심문한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를 가볍게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빌라도는 어떻게든 예수를 죽이고자 하지 않았고 오히려 놓아주려고 했으니 유대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놓으면 기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라는 논리로 압력을 가했습니다. 자기를 왕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인데 그것을 알고도 예수를 놓아준다는 것은 가이사에게 반역하는 것이라고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무리들의 요구와 대제사장들의 압력에 의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고 맙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4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빌라도는 세 번에 걸쳐서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8절에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19:4에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그리고 19:6 ‘나는 그에게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예수의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예수를 죽여야 할 만한 죄를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고 맙니다.(19:16)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확신했던 빌라도였지만 예수를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바라바라는 강도와 대체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짜 죄인인 강도 바라바만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예수에게 채찍질 하는 것으로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까지는 변하지도 멈추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가이사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빌라도의 주저함이 가이사를 반역하는 행위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예수의 죽음에 대해 빌라도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바로 여기에서 판결납니다. 예수님의 편에서 자신이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는 자는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리로 내 모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무리의 두려움, 로마 황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양심과 다른 결정을 했고 결국 그것은 평생 빌라도의 과오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 사실을 영원히 반복해서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이런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신앙적 양심을 따라 주님의 편에 서실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유대인들의 완악함
오늘 본문에서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예수를 죽여야하겠다는 무리들의 의지입니다. 빌라도는 강도 바나바와 예수를 거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강도 바나바를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평생을 생명을 살리며 평화를 전하며 유대인들에게 참된 진리를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강도보다 못하게 취급한 것입니다. 예수가 채찍질 당하고 조롱과 모욕을 당한 것으로도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가이사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냥 로마를 위해서라도 예수를 죽여야 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빌라도를 통해서 죄가 없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예수를 이렇게 죽여야 우리가 얼마나 완악한 죄인임을 깨닫게 될까요? 나를 사랑하는 자를 내가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언제 깨닫게 될까요?
'매일 성경 > 매일성경 묵상 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년04월25일 / 매일성경 / 나훔 1:1-15 / 산울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0) | 2022.04.25 |
---|---|
2022년04월15일 / 매일성경 / 요 19:17-30 / 산울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0) | 2022.04.15 |
2022년04월13일 / 매일성경 / 요 18:28-38 / 산울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0) | 2022.04.13 |
2022년04월5일 / 매일성경 / 요 15:18-27 / 산울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0) | 2022.04.05 |
2022년04월4일 / 매일성경 / 요 15:1-17 / 산울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0) | 2022.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