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3 새벽기도회
본문: 요한복음 18:28-38
제목: 나의 죄를 보고 주님의 은혜를 보자
- 환영과 대표기도
- 찬송가 38장. 예수 우리 왕이여
- 본문읽기: 요한복음 18:28-38
4. 본문의 내용
유대인들은 이제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아 죽도록 하기 위해 빌라도 총독의 관정으로 그 새벽에 예수님을 데리고 갑니다,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결정이 필요했기에 총독의 관정으로 예수를 데리고 갔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공간에 들어감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과 예수 사이에 벌어지는 문제에 연류 되기를 원치 않았기에 유대인의 법에 따라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으나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길 원했기 때문에 빌라도의 판결이 필요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함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관정으로 들어가 예수를 심문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으시고 그 말을 빌라도 스스로 하는 고백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따라 말하는 것인지 묻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말’로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이 자신과 상관없음을 말합니다. // 두 번째 질문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네 나라 백성과 제사장들이 너를 나에게 넘긴 것을 볼 때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일 텐데 무슨 일을 했는지 자백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말함으로서 예수를 넘긴 그들은 예수님의 백성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님을 말씀합니다. // 세 번째 질문은 ‘네가 왕이 아니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자신은 왕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태어났고 이를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리에 대해서 증언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라고 답합니다. 정리하면 예수님의 나라는 진리에 속한 나라이고 예수님의 백성들은 진리를 듣고 그 진리를 따라는 사람입니다. // 네 번째 빌라도의 질문은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언급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끝에 예수에게는 사형을 언도할 만한 죄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게 판단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28절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유대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로마 총독이 있는 관정으로 끌고 갔다는 것은 로마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정말로 원했던 것은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식으로 로마 총독의 권위를 빌리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근거 중에 하나는 그들이 예수를 새벽에 관정으로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재판을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재판을 열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절차만 밟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어서 빌라도에게 데리고 왔다고 말함으로서 예수에게 사형을 언도해야 함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죄 없는 자에게 죄를 씌운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동생 아벨이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서운함을 동생에게 뒤집어 씌워서 동생을 시기하여 동생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리하고도 왜 동생을 자신에 찾느냐고 하나님에 대들지 않습니까? 우리는 시기와 질투, 그릇된 기대와 욕망 때문에 죄 없는 자를 죄 있는 자로 판단하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종교적인 열심조차 그렇게 작동될 수 있음을 성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의 피가 우리에게 있으며,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의 피가 우리에게도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죄성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문 앞에 엎드리고 있는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죄한 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서 정죄하고 심판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놀라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그 백성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오히려 정죄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저들을 향해서도 ‘저들은 자신이 행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고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억울하게 죽이는데 내 몰았는데, 주님은 오히려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선인이거나 의인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죄인이라는 것이 우리가 옆 사람에게 잘못한 죄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분을 ‘배반’하고 ‘팔아 넘겼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자신을 배반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롬 5:8)
그래서 복음은 나의 죄를 깨닫는 만큼 더 크고 선명하게 깨달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통해서 나 자신의 죄인됨을 돌아보고 주님의 은혜를 상기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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